9막 3장 - 야수의 심장(3)
9막 3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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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른에 있는 동안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던 데릭의 약속은 모호하게 어겨졌다. 오펜하른을 떠나면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마차에 술 궤짝을 싣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는 오펜하른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콰해져 있었다.
데릭의 무릎 사이에 놓인 할버드는 마차의 창문 밖으로 비죽이 튀어나가 있었고, 들이친 비로 그의 한쪽 어깨는 흠뻑 젖어 있었다.
스타샤는 그에게서 젖은 개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좋은 핑계만 한 안주가 없다고, 데릭에게도 변명거리는 있었다. 친우인 에이델이 죽었고, 자신의 담당 교구는 늑대인간들에게 점령당했다. 스타샤는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데릭이 들고 있는 병 속에서 찰랑이는 액체를 저주스레 노려보았다.
“곧 도착합니다.”
마부석에서 허드 기스데본 사제가 도착을 알려왔다. 허드는 그웬돌라드에서 활동하는 구마사제였고 잔베르의 ‘함락’ 사실을 오펜하른의 사냥꾼들에게 알려온 남자였다.
스타샤는 외투 아래로 손을 넣어 어깨의 가죽끈을 단단히 조였다. 연이은 사냥과 전투, 그리고 찬 날씨 때문에 시린 통증이 어깨를 후벼 팠다.
“내려야겠습니다.”
허드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춰 세우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가 쇠도리깨를 집어 드는 소리가 마차 안으로 들려왔다. 스타샤가 팔꿈치를 들어 옆에 앉은 로지아의 옆구리를 찔렀다.
탈진한 것처럼 졸고 있던 로지아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려 하자 스타샤가 얼른 목깃을 잡아당겼다.
“뒤에 붙어있어. 죽기 싫으면.”
스타샤가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렸고, 데릭과 로지아가 차례로 따라 내렸다. 할버드를 창문에서 빼내는 데릭의 움직임이 서툴고 굼떠서 로지아가 거들어야 했다. 스타샤의 눈에는 눈 밑이 시커먼 데릭의 모습이 자꾸만 에이델과 겹쳐 보였다.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 그들에게로 덮쳐오는 늑대인간을 가장 먼저 포착한 것은 허드였다. 그는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 자루의 끝으로 허공에 떠있는 늑대인간의 턱 아래를 걸어 땅에 꽂았다.
진창에 몸을 처박은 늑대인간의 머리는 곧 도리깻열에 맞아 으깨졌다. 로지아가 스타샤의 등에 붙으며 그녀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스타샤는 떨리는 로지아의 손을 뿌리치고 칼의 자루를 쥐었다. 달려오는 두 번째 늑대인간은 그녀의 칼끝에서 조각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스타샤는 실패했다. 데릭이 예고도 없이 앞으로 끼어들며 할버드를 휘둘러 늑대인간의 머리를 찍은 것이었다. 위력적인 공격이었으나 정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기랄, 데릭!”
데릭과 몸을 부딪어 넘어질 뻔한 스타샤가 짜증스럽게 부르짖었다. 데릭은 할버드의 창날로 늑대인간의 숨을 끊으며 말했다.
“잔베르는 내 교구야.”
“누가 뭐래?”
둘의 눈치를 살피며 로지아가 조심스레 성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문이 닫혀 있어요.”
“나도 알아, 이 아가씨야.”
데릭은 그렇게 말하고는 비치적거리는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할버드의 자루가 진흙 위에서 질질 끌렸다. 허드가 데릭의 뒤를 따랐으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과묵한 사제가 술 취한 사냥꾼을 통제 불가능한 변수쯤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들은 성문에 닿기까지 한껏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나 더 이상의 기습은 없었다. 스타샤는 허드에게서 당황한 기색을 읽었다. 그가 전했던 내용과는 상이한 모습이었던 탓이었다. 대신에 그들은 피와 오물의 냄새와 물기가 스민 바람에 실려 온 탄내를 맡았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잠갔군.”
어깨로 성문을 밀어본 데릭이 말했다. 잔베르 교구의 성벽은 근처에 지어진 인가들 때문에 사실상 요새의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다. 한때는 수행했을지도 몰랐으나 지금은 그러한 기능을 상실한 채 다만 성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표지의 역할만이 남아있었다.
성인 남자 두 명을 쌓고 그 위로 어린아이를 하나 더 올리면 딱 맞을 높이였기에, 스타샤는 고행자처럼 비쩍 마른 허드와 자신 중에 누가 더 무거울지 가늠해보았다.
그녀가 순순히 두 번째 층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장갑을 꺼내어 낀 데릭이 성벽의 튀어나온 돌을 움켜쥐었다. 기다란 할버드는 가로로 허리에 고정시킨 상태였다.
“어쩌려고?”
스타샤의 물음을 뒤로 한 채 데릭이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스타샤는 그 꼴이 마치 나무를 오르는 곰 같다고 생각했다. 로지아가 넋 빠진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데릭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덩치에 비축되어 있던 것은 날렵함과 탄성이었던 듯, 몸을 퉁기며 올라가는 데릭의 모습에는 과연 감탄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데릭이 성벽의 삼 분의 이 지점을 통과했을 때 그의 머리 위로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늑대인간 하나가 성가퀴에 하반신을 걸치고 뻗은 팔로는 차츰 데릭에게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타샤는 지체 없이 칼자루를 쥐고 눌렀다. 칼집에 장치된 용수철의 탄성을 이용해 도약한 그녀는 우선 인가의 난간에 안착하고, 다시 같은 방식으로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지붕 위에서 또 다시 도약한 그녀의 몸이, 이번에는 위가 아니라 옆의 성벽을 향했다. 그녀의 두 발이 디딘 곳은 데릭의 어깨였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벽돌을 잡은 데릭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타샤는 데릭의 어깨 위에 위태롭게 선 채로 그들에게 접근해 오는 늑대인간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서걱-
늑대인간의 머리와 균형을 잃은 스타샤의 몸이 함께 추락했다. 스타샤와 같은 재주가 없는 허드는 정직하게 펄쩍 뛰어 건물의 난간을 기어올랐고 떨어지는 스타샤를 두 팔로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바닥에서 엉켜 구른 허드와 스타샤의 몸이 진흙으로 칠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타샤는 옷보다도 칼의 진흙을 먼저 털어냈다.
미리 합을 맞춘 듯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호흡에 이미 열려 있던 로지아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그녀는 박수를 치려던 것처럼 들어 올렸던 팔을 얼른 내렸다.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지각한 것이었다.
데릭은 더 이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성벽을 끝까지 기어 올라갔다. 곧이어 성문이 열렸고 성벽 아래의 셋은 재빨리 그 사이를 통과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늑대인간들의 시체 더미였다.
“우리 말고 누가 왔었나?”
스타샤가 발로 시체를 하나씩 밀어보며 말했다. 부패하기 시작한 마물들의 시체에서는 코뼈를 녹일 것만 같은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데릭도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시체를 살폈다.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지만 목도한 광경 때문인지 정신은 맑아진 듯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사냥을 할 줄 아는 놈인 것 같은데. 은탄환을 썼고 머리와 심장을 정확하게 노렸어.”
두려움에 몸이 움츠러들면 머리와 심장을 노리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도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 되고 만다. 공포에 몸을 내맡기지 않을 정도로 대담하고, 그 대담함을 날카로이 벼려 정밀한 타격을 가할 정도로 신중한 이만이 마물의 절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건 인간의 피입니다. 이 늑대인간들을 죽인 것이 누구든 간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겠습니다.”
몸을 낮추고 거무튀튀한 흙바닥에 은으로 된 단도를 찔러 넣은 허드의 말이었다.
“아니면 벌써 죽었거나.”
스타샤가 대꾸했다. 아직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은 핏자국의 면적이 제법 넓었던 것이다. 번개가 쳐 일순 주위가 밝아지고, 천둥보다 유리창이 깨어지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넷이 동시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그러나 이븐은 아직 죽지 않았다. 외견상으로는 시체와 다를 바가 없었으나 그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생존을 증명하기 위해 다음 움직임을 꾀했다. 이븐은 부러진 식칼의 손잡이를 집어 던지고 늑대인간의 허리에 걸려있던 권총을 빼 들었다. 손잡이가 손에 꼭 맞았다.
테오도어를 겨냥해 쏠 때에야 비로소 이븐은 그것이 자신의 권총임을 깨달았다. 테오도어는 탄환을 피하지 않았다. 가슴팍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테오도어는 점차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빗발이 응답 없는 창문을 성급히 두드리고, 화덕에서는 여전히 장작을 태우는 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가운데, 밤과 그 밤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악몽이 구현되었다.
새까만 털은 하나하나가 별개의 생물인 듯이 바람도 없는데 살아서 물결쳤고, 악몽처럼 빛나는 노란 두 눈에는 동공 없이 살기만이 가득했다. 테오도어 볼드윈, 늑대들의 군주, 인간의 도살자이자 포식자.
이븐은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테오도어의 발아래 수십 명의 인간들이 고통 속에 몸을 뒤트는 환영을 보았다. 비명이 귓가에 쟁쟁했다.
테오도어는 끓는 기름을 뒤집어 쓴 채로 몸부림치고 있는 늑대인간을 집어던져 치웠다. 이제 이븐과 테오도어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낮게 깔린 환영밖에 없었다. 그조차 이븐의 눈에만 보이는 실체 없는 허상일 뿐이었다. 테오도어가 바닥을 박찼고, 이븐은 옆으로 몸을 던졌다.
탕-
츠컥-
테오도어의 날카로운 손톱이 자신의 옆구리를 찢어 발겨놓는 것을 느끼며, 이븐은 계산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떨어뜨린 권총을 재빨리 주워들고, 총격이 상대의 몸에 가하는 충격의 값을 영(零)으로 조정했다. 은탄환을 맞고도 테오도어의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이다.
“네 생명은 얼마나 남았지? 약실에 남아있는 탄환보다는 많이 남았나? 그렇다면 네 머리를 쏘는 게 어때, 이븐? 그 편이 훨씬 깔끔하고 더욱 기억할 만한 죽음이 될 텐데.”
무방비하게도 양팔을 벌리고 선 채로 테오도어가 과장된 음성으로 지껄였다. 그의 목소리는 이븐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이븐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피로 물든 외투의 한쪽이 무거웠다. 테오도어가 천천히 다가오며 계속해서 말했다.
“나를 죽여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중의 하나가 되고 말 테니까.”
“총알은 아껴뒀다가 그때 내 머리를 쏘는 데 쓰도록 하지.”
이븐의 입에서 침 대신 피가 튀었다. 테오도어가 음산하게 웃었다. 변이한 뒤에도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으흐흐, 여기서 일어난 일들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거라면 머리가 나쁜 게 틀림없군. 아니, 잊고 있었어. 너는 미쳤지. 내가 너를 물어 이 축복을 전해주면 너는 인육에 미칠 거다. 넌 훌륭한 늑대인간이 될 거야, 이븐.”
이븐은 자신의 피를 밟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려는 차에 테오도어가 달려와 기다란 팔로 이븐을 후려쳤다. 이븐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곧 바닥에서 굴렀다. 이제는 영영 남이 되어버린 그의 오른쪽 눈이 식탁 위에서 옛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이븐은 눈구멍에서 쏟아지는 피를 닦으려다 왼팔이 말을 듣지 않는단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몸을 일으키던 이븐은 목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바닥에 뱉었다. 시커먼 핏덩이였다. 이븐은 권총을 쥔 오른손으로 자신을 묶었던 밧줄을 집어 들었다.
“그걸로 목이라도 매달게?”
“비슷해.”
“혀를 뽑아내는 수고는 덜게 되었군. 너도 알다시피··· 아니 너는 모르는군. 아무튼 혀는 훌륭하고 또 고급스러운 재료거든.”
멋대로 지껄이는 테오도어의 말 속에서 이븐은 그의 권속이 되었다가, 또 식재료가 되었다가 다시 미친놈으로 돌아왔다. 이븐은 자신의 왼 팔뚝에 밧줄을 묶었다. 테오도어가 여유 있는 걸음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이 따위 미친 짓을 하는 이유가 뭐야? 여태 이걸 안 물어봤다는 게 신기하군.”
“네겐 이유가 있나? 잔베르를 습격해 사람들을 도살한 이유 말이야.”
“식재료가 창고에서 썩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어. 그것뿐이야. 이제 네 차례야. 뭣 때문이지? 내가 네놈 가족을 죽였나? 그게 아니면···?”
이븐은 창문을 등지고 섰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비의 손길이 더욱 다급해졌다. 유리로 된 평원 위를 비의 말이 내달리는 것처럼, 불길한 신탁이 적힌 종이를 품에 안은 파발꾼과 같이 조급히. 이븐은 총구를 들어 테오도어를 겨눴다.
“내 시체에 대고 물어, 이 개자식아.”
테오도어가 달려들었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섬광이 한순간 방 안을 밝혔다. 아니, 그건 이븐의 착각이었다. 번개가 내리치고, 총을 맞은 테오도어는 그대로 이븐에게 달려들어 그를 창밖으로 밀쳤다.
콰창-
이븐의 몸이 허공에 떴다. 빗발 속에서 테오도어와 이븐은 아래를 향해 떨어졌다. 이븐은 테오도어의 등을 붙잡고 그 위로 올라탔다.
테오도어의 몸이 땅에 먼저 떨어지고, 그러나 충격은 그 위에 올라탄 이븐에게도 전해져 왔다. 이븐은 두 무릎이 한꺼번에 박살나는 것을 느꼈다.
뇌 속의 혈관이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이븐은 매듭지은 밧줄을 테오도어의 목에 걸고 조였다. 테오도어가 밧줄을 끊어낼 때까지 그것은 이븐을 그의 등에 고정시켜줄 터였다. 테오도어가 몸을 일으키며 목에 손을 가져갔다. 이븐은 왼 어깨를 뒤로 뺐다가 힘껏 내질렀다.
“미친 새끼···!”
왼팔의 부러진 뼈가 테오도어의 질긴 가죽을 뚫고 그 속에 박혔다. 이븐은 테오도어의 등에 매달린 채로 심장을 겨눠 총을 발사했다. 약실에 남은 마지막 한 발이 등가죽에 박혔다.
이븐을 떼어내려는 테오도어의 오른손이 그의 등을 마구잡이로 할퀴었다. 이븐은 권총을 떨어뜨리고 총상을 입은 부위가 재생되기 전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테오도어는 왼손으로 밧줄을 끊고 이제 양손을 이용해 이븐을 떨어뜨리려 들었다. 테오도어가 움직일 때마다 이븐의 부러진 두 다리가 제멋대로 흔들거렸다.
“큭-!”
이븐이 테오도어를 공격한 이래로 처음으로, 테오도어의 머리가 고통으로 쳐들렸다. 테오도어의 등에 번지는 예리한 통증은 그가 지금껏 인간들에게 선사해오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몸에는 허락한 적 없는 유의 고통이었다.
이븐이 상처에 입을 들이밀고 그의 살을 씹어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븐은 하나 남은 손으로 상처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이제 그의 유일한 무기인 치아로 생살과 근육을 뜯었다. 입안에 들어차는 피와 살점을 뱉어낼 겨를 따위는 없었다. 그는 씹어 삼킨 마물의 육신으로 자신의 위장이 뿌듯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시체의 눈알을 파먹는 까마귀처럼, 상처 위에 피어나는 구더기처럼 이븐은 연한 부위를 찾아 계속, 계속해서 물어뜯고 삼키고 그렇게 벌린 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테오도어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이븐의 등을 파고들어 장기를 헤집고, 바닥에 몸을 던져 깔아뭉개었으나 그 따위로는 광인의 폭식을 멈출 수 없었다.
테오도어의 재생력은 계속해서 조직을 새로이 구성하고 빈틈을 메웠다. 이븐은 더 빠르게, 차오르는 살보다 빠르게 그것들을 이로 찢었다. 그는 집어넣은 손으로 갈빗대를 벌렸다. 이 끝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장기의 감각이 느껴졌다.
마침내 물어뜯는 일이 성공했을 때 어느 때보다도 많은 피가 이븐의 입안을 적셨다. 포도주 부대를 찢어놓은 것처럼 피가 뿜어져 올랐다. 이븐은 그것을 들이켰다. 피에 취한 것처럼 힘이 빠진 이븐의 목을 테오도어가 잡아 비틀었다. 허공에 던져진 이븐은 곧 흙탕물 속에 몸을 처박았다.
“미친 새끼··· 이 미친 새끼······.”
테오도어는 한쪽 무릎을 꿇고 이븐을 노려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온 몸에 피를 뒤집어 쓴 이븐은 웃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의 턱이 무엇인가를 씹고 있었다. 무엇인가 시뻘겋고, 아직도 꿈틀거리는 것을. 테오도어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박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테오도어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지고, 이븐은 찢어진 입으로 피를 질질 흘리며 테오도어의 심장을 씹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테오도어가 둔한 움직임으로 이븐을 향해 다가왔다. 이븐은 뒷걸음질 치려다 이제 자신의 몸 가운데 움직이는 부위가 입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테오도어가 이븐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이븐은 이미 그의 심장을 삼킨 뒤였다. 테오도어가 이븐의 목울대를 잡아 뜯었다. 심장이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이븐의 배에 박아 넣은 테오도어의 오른손이 멈췄다. 그가 뱉어낸 피가 세례처럼 이븐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으드득-
테오도어가 이븐의 목과 어깨 사이를 물었을 때는 이븐도 웃음을 멈췄다. 세상을 잘라내는 것처럼 선명하고 예리한 고통이 점차로 희미해지고, 마침내 아늑해졌다. 이븐은 시야가 유리에 서린 김처럼 하얗게 물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쏟아지는 빗속에 잠겼다.
- 작가의말
6막 4장(2)에서 이븐이 잔베르의 얘기를 꺼내면서 테오도어에게 치명상을 입혔으나 그가 권속의 힘을 거두어들이며 회복했다는 묘사가 등장하는데, 사실 9막을 쓰면서 이 부분을 잊고 있었습니다. 후에 더 자연스럽게 가다듬어야겠습니다만 지금 당장은 생략된 부분(테오도어를 제외한 다섯 마리의 늑대인간과 싸우는 내용)에 해당 내용이 들어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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