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막 3장 - 꼬리잡기(3)
10막 3장(3)
*
“앉게.”
케넌의 말에 뤼시앵은 의자를 당겨 자리에 앉았다. 그는 불쾌한 냄새라도 맡는 것처럼 코를 연신 훌쩍이며 단장의 집무실을 눈으로 훑었다. 그러나 그가 새로 발견할 만한 것은 없었다. 집무실의 모습은 오래 전 방문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심지어 서임식 때와 비교해도 그랬다.
“간만에 뵙습니다, 단장님.”
케넌은 여전히 고개를 아래로 기울인 채 안경 너머로 뤼시앵을 살폈다. 케넌의 손에는 여러 장의 종이가 쥐어져 있었고, 그렇게 종이를 들고 있는 손 아래에도 두툼한 서류들이 깔려 있었다.
“올해 3월 로파인 지구에서 들쥐인간을 처리한 적이 있군. 보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줄 수 있겠나?”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하수도를 뒤져 보니 의뢰서에 적힌 것보다 수가 많았지만요. 그런데, 아시잖습니까. 들쥐인간 정도면 수습 사냥꾼도 무리 없이 잡을 수 있다는 거.”
그 말의 의미를 가늠해보려는 듯 케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넘기고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같은 달 20일에는 들개인간들 무리를 처리했고. 그것도 수습 사냥꾼에게 무리가 없는 임무였나?”
“안드로스 단장님.”
뤼시앵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문답에 가담하는 대신 케넌을 호명함으로써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아니, 그보다는 결론을 앞당겼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알겠습니다. 이 뜬금없는 문답이 적어도 안부 인사는 아니라는 걸 알겠단 말입니다. 제가 안체에게 일을 모두 떠넘기고 있다는 의혹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내가 자네의 스스로에 대한 변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군.”
케넌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뤼시앵을 쳐다보았다. 케넌이 그토록 무신경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도 수년 전보다 살이 빠져 해쓱하게 변해 버린 뤼시앵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을 터였다. 케넌의 무디고 단단한 영혼이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금 지쳐 보인다는 것, 그리고 독특한 기호(嗜好)가 생겼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몸을 움직이는 뤼시앵에게서 짙은 향수의 냄새가 풍겼다. 이윽고 그가 내놓은 답은 케넌의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의혹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변명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설명하게.”
케넌은 상대가 한 발 뒤로 빼면 자신이 한 발 더 다가붙는 인물이었다. 그건 그가 교언(巧言)의 첫걸음이 계산된 후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뤼시앵에게는 전진에 대한 계산이 없었던 듯했다. 그는 뒷걸음치다 주저앉은 이처럼 짓눌린 목소리로 답했다.
“무서웠습니다.”
케넌은 벗은 안경을 쌓여있는 보고서들 위에 내려놓고 손을 들어 자신의 두 눈을 지그시 눌렀다. 눌린 안구에서 헝겊으로 유리창을 닦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는 이제 맨눈으로 뤼시앵을 응시했다.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제대로 들으셨습니다. 저는 마물들이 무서웠고, 그래서 사냥에 나서는 게 두려웠습니다.”
뤼시앵은 케넌의 머리 위로, 그 부자연스러운 백발 위로 케넌이 떠올렸을 법한 몇 가지 의문들, 그가 할 수도 있었던 따뜻한 위로 몇 마디, 다독여주고 용기를 북돋는 조언들이, 그 모든 것들이 차갑게 잘려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뤼시앵은 절단된 말의 시체 위로 던져진 낭비 없는 한 마디를 들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마물이 근처에 올 때면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립니다. 그것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지만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목을 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게 제가 공포를 딛고서 해낸 일인지, 아니면 그저 관성에 몸을 내맡긴 결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뤼시앵은 핏발 선 눈으로 케넌을 잠깐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마주한 집무실의 벽에는 유화가 한 점 걸려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거대한 곰과 싸우고 있는 모습의 여자는 사냥꾼들의 수호성인인 본퍼머트의 다니엘라였다.
뤼시앵이 그림 속에서 보고 있는 것은 다니엘라의 용감하고 고귀한 결투가 아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림 속에 없는, 뒤에서 그녀를 향해 소리 치고 있는 구경꾼들이었다.
“단장님께서도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시잖습니까.”
“안다고 믿었지. 이해한다고도 믿었고. 자네가 오늘 내게 이런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시간들이 계속 되살아납니다. 그 때는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래서 지금까지 목숨 부지하고 살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짜 고통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있었는데,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악몽들로부터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건 진짜가 아니니까요. 손을 휘두르면 그것들은 모두 흩어지니까요. 그랬다가 다시 모여 그 날을 재현하니까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네.”
물론 케넌이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사냥꾼의 임무였다. 뤼시앵은 입을 굳게 다문 채로 몸을 떨었다. 붉게 상기된 그의 얼굴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그건 그가 말했던 악몽이 그의 지친 육신을 짓누르고 쥐어짜서 흘러내린 분비물 같았다.
“어떻게요? 지금껏 이루어 놨던 모든 것들을 그렇게 쉽게 버리고, 도망쳐 버린 겁쟁이라는 오명을 얻으면서요? 단장님이라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거기다가··· 거기다······. 그 날 제가 찢어죽일 마물 놈들한테 붙잡혔을 때 제일 괴로웠던 게 뭔지 아십니까? 다시는 전과 같이 멀쩡해질 수 없다는 것?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부터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 비웃음, 수치, 모욕? 아뇨, 아닙니다.”
뤼시앵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희망을 갖고 있었단 겁니다. 그걸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제일 괴로웠습니다. 누구든 내 부재를 알아차리고 구하러 와줄 것이라는 믿음, 그게 아니라면 힘을 짜내어 놈들을 뿌리치고 도망쳐 나올 수 있을 거라는 헛된 생각. 묶여있는 동안 내가 지린 오물들이 살을 썩히고 있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들이 저를 제일 괴롭게 만들더란 말입니다.”
케넌이 그 일을 보고 받은 것이 작년 이맘때였다. 케넌은 방치된 고통이 때로는 교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하던 이 젊은 사냥꾼을 어떤 식으로 좀먹었는지 알게 되어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그가 약속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는 마차 위에서 어중간한 타협은 없었다.(*)
마차는 멈출 수 없었으니 뤼시앵은 뛰어내리거나, 지금껏 하던 대로 속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쪽팔리게 마물들한테나 목숨을 구걸한 쪼다 병신 같은 겁쟁이 뤼시앵이 다시 예전의 건방진 사냥꾼 뤼시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저를 괴롭게 만듭니다. 그 날 저를 살린 건 그래도 그 괴로운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만둘 수가 없는 겁니다.”
뤼시앵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의 몸이 잠시 동안 흐느낌으로 떨렸다. 그러나 바람에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풀처럼, 뤼시앵은 기약 없는 수심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그웬돌라드의 사냥꾼들이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그웬돌라드로 보내주십시오. 거기서 제가 저를 이토록 떨게 만드는 두려움과 대면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케넌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 있었다.
“펠레도에서 마물들을 상대로 농성을 벌였을 때, 난 마물들만큼이나 사람도 많이 죽였네. 도망치려는 낌새를 보이면 그 자리에서 등을 쐈지. 사람들은 나를 앞에서는 지휘관이라 불렀고 뒤에서는 집행인이라고 불렀네.”
사냥단을 이끄는 사냥꾼이 마물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 일로 그 유명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은 뤼시앵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괘씸해서 죽인 게 아니었어.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죽인 것도 아니었고. 도망을 입에 담고,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조차 잊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서 항복을 지껄이는 사람들을 볼 때면 거기에 내가 비춰져 보였기 때문이었어. 그런 사람들에게 설득 당하는 내 모습이 눈에 선해서, 그 모습을 지우려고 그들을 죽였네. 난 두려웠어. 마물들이 저기 흰 머리가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 자리에서 내 머리를 쏘아 자살하고 싶었지.”
타고난 행운으로 비범한 용기가 허락된 소수를 제하자면 인간의 정신은 마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에 한없이 취약했다. 올 것이라 믿었던 초극(超克)의 순간이 끝내 찾아오지 않으면, 인간은 비로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두려움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
“그때 붙잡혔다면 나도 자네와 같은 수모를 겪었겠지. 나는 운이 좋았네. 내게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이윽고 케넌에게서 허락이 내려졌다.
“안체도 데려갈 텐가?”
“이렇게 말한다면 안체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안체는 제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 어린애가 마물에 맞서서 싸우는 걸 보고 있으면 저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그가 파놓았던 함정이 교활한 마물들에 의해 역으로 그 자신을 옭아맸을 때, 십 수 마리의 마물들에게 둘러싸여 결국 붙잡히고 말았을 때, 그래서 나흘간의 목적 없는 고문에 몸이 엉망으로 상했을 때, 결국 뤼시앵을 구했던 건 그 자신이었다.
케넌은 뤼시앵이 안체와의 동행을 고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그가 사라졌을 때 그의 실종과 부재를 알릴 사람이 뤼시앵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다른 할 말은 없나? 내가 알아야 할 것들 말이야.”
케넌은 자신의 앞에 쌓여 있던 서류들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 치웠다. 뤼시앵은 케넌과 케넌의 등 뒤에 있는 벽 사이 어디쯤에 시선을 둔 채로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준비해둔 것처럼 뤼시앵의 입에서 답변이 쉽게 굴러 떨어졌다.
*
뤼시앵은 헬하우젠 성당이 자신에게 내어준 방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땀으로 흠뻑 젖은 이불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괴롭혔던 악몽의 내용을 떠올리지 않기 위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는 동안 저주스러운 냄새가 다시 그의 몸을 덮쳐왔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탁자를 향해 다가가 그 위에 놓여 있던 향수병을 집어 들었다. 살이 타는 역한 냄새, 오물의 구린 냄새, 들쩍지근한 타액과 토사물의 냄새가 썩은 살에서 피어오르는 구더기들처럼 스멀거렸다. 뤼시앵은 마치 악마를 쫓는 제의와 같이 향수로 그 냄새들을 죽였다.
광기에 휩싸인 듯이 온몸에 향수를 뿌려대던 그의 몸짓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에야 비로소 끝이 났다. 상처로 뒤덮인 흉측한 몸. 살가죽이 벗겨진 자리는 뱀이 벗어놓은 허물처럼 번들거렸고, 인두로 지져진 허벅살은 그 아래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도사리고 있던 고통의 괴물이 즐거이 웃으며 깨어났을 때, 뤼시앵은 옷걸이의 외투를 뒤져 가죽 주머니를 찾았다. 담겨 있던 하얀 가루를 탁자에 조심스럽게 쏟는 그의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그는 가루에 코를 처박았다. 다음 순간 들이켠 호흡이 쾌락으로 변해 몸 안에서 휘몰아쳤다.
콧속을 사정없이 간지럽히는 불쾌함이 잠시,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뒷목을 기분 좋게 쓸고, 죽어 있던 뇌는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손바닥으로 호되게 얻어맞은 것처럼 양 뺨이 얼얼하고 두 눈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듯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뤼시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는 탁자 위의 흔적을 손으로 쓸어 없앴다. 급히 옷을 꿰어 입고 당긴 문 뒤에는 반갑지 않은 사람이 서 있었다.
“지금 출발하려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나 뤼시앵은 이븐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너그러워져 있었다. 이븐이 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따위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뤼시앵은 씩 웃으며 답했다.
“잠시만 기다려. 방금 일어났어.”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따옴.
**김수영의 「풀」(1968)에서 차용.
- 작가의말
‘들이킨’을 ‘들이켠’으로 수정했습니다. - 2019.3.5.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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