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막 4장 - 사냥꾼은 두 번 죽는다(1)
11막 회감
4장 사냥꾼은 두 번 죽는다(*)
체력에 대해서라면 슬로언은 계단을 오르는 일만으로도 숨이 차는 한심한 약골이었지만, 책상 앞에서 버티고 앉아있는 능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건 동물의 겨울잠과 비슷했다. 움직임을 줄이고 호흡마저 길게 늘여 오로지 머리만을 굴리는 일이 슬로언에겐 익숙했다.
이틀을 선잠으로 때워 졸음은 가려움증처럼 몸 안에서 꿈지럭대며 번졌지만, 동시에 몰아치듯 덤벼들지 않아서 견딜 만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 침대 위에 몸을 던진대도 잠이 들 것 같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글자는 제멋대로 굵어지고 확대되어 행간에 숨은 속내를 드러냈다.
표지(標識)와 색인은 소장의 방에서 얻었고, 그 개개의 상세한 내용은 연구원들의 책상과 서랍에서 두서없이 출몰했다. 이제 슬로언은 헤르돈 대교구가 품고 있는 금지된 지식에 대한 열망에 성큼 다가설 수 있었다.
“무슨 일이랍니까?”
슬로언은 잔을 들어 설탕을 타지 않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베른트는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봐달라는 슬로언의 주문으로 일층에 내려갔다 오는 길이었다.
“대주교님이 어딜 가시는 모양입니다.”
“대주교께서요?”
“네, 마차 주변에서 웅성웅성하네요. 뭐 좀 찾으신 건 있습니까? 제가 도와드려야 하는 건데······.”
슬로언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말간 베른트의 얼굴을 보았다. 최근에 기르기 시작한 모양인지 베른트는 수염을 자꾸만 어색하게 매만졌다.
“헤르돈 연구소가 이상할 정도로 혈액에 집착한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진행 중에 있는 연구가 대여섯 가지쯤 되는데 혈액에 대한 언급만이 유독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피 말입니까?”
“네, 그것도 인간의 피 말입니다.”
베른트는 손끝으로 턱을 긁었다. 이제 보니 그의 턱수염은 이븐을 흉내 낸 것 같았다.
“다친 사람들한테 넣어주려고 그러는 건 아닐까요? 사냥을 하다보면 피를 쏟을 때가 많은데, 그럼 어질어질하거든요. 그럴 땐 누가 와서 피를 좀 넣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큰일 날 소리를 하시는군요. 사람 피도 다 같은 피가 아니라서, 잘못 수혈했다가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로스키르헨에서 이 분야의 권위자인 블랙모어 박사가 산모에게 수혈을 한 적이 있는데 산모가 죽고 말았습니다. 블랙모어 박사의 법정 진술을 미루어볼 때 저는 이게 인체의 면역력과 관련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하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후로 수혈을 금지한 당국의 결정도 이해하기 어려운······.”
베른트의 표정이 점점 괴이하게 변하자 슬로언은 설명을 관두었다. 마물에 대해서라면 베른트도 연구원인 슬로언 못지않은 지식을 뽐냈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 그는 철저한 무지로 일관했다. 베른트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인 뒤 말했다.
“그럼 흡혈귀라도 기르는 모양입니다.”
“흡혈귀요?”
“아시잖습니까. 피를 빨아먹고 사는 마물들 말입니다. 흡혈귀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인육 대신 피를 먹는단 점에서 하나로 묶이죠. 피도 적당히만 빼내면 사람이 죽는 건 아니니 기르기 어려운 마물도 아닐 듯한데요.”
베른트는 말을 멈추고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었다.
“하긴, 그런 걸 대체 뭣 하러 기르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네?”
슬로언은 이제 책상 위에 쌓여 있던 서류를 다시 헤집기 시작했다. 이미 검토가 끝난 서류를 뒤적여서, 그는 헤르돈의 사냥꾼이 올린 보고서와 혈액 수급 내역서의 날짜를 각각 비교했다. 그는 추려낸 서류들을 상자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사실 이븐도 그런 존재 아닙니까? 교단이 기르는 늑대인간······.”
베른트가 던지는 무거운 침묵에 슬로언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곧 잘못을 시인했다.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우리 사냥꾼들이 대단한 걸 바라진 않습니다. 아주 작은 존중, 그게 우리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재차 사과하려는 차에 슬로언은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뒤로 물러났다. 베른트가 전투망치를 움켜쥐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곧 슬로언은 그 행동이 자신을 겨냥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베른트는 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열린 문 사이로 계단을 오르는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여러 명이 급박하게 내딛는 소리였다.
“무슨··· 무슨 일입니까?”
“둘, 넷, 여섯······ 여덟······.”
베른트는 문을 닫아걸고 책상을 끌어다 통로를 막았다. 슬로언이 당황해 있는 동안 그는 망치를 휘둘러 창문을 깨트렸다.
“자료들! 자료들을 다 챙기십시오!”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슬로언은 허겁지겁 책상 위의 서류들을 상자에 쑤셔 넣었다. 옥석을 가릴 여유는 없었다. 발소리는 이제 복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만 챙기면 됩니까?”
“이, 일단은······.”
“저 좀 도와주십시오.”
베른트는 외투를 벗고 책상 위의 남은 서류들을 그 안에 싸맸다. 그렇게 한 덩이의 서류 뭉치를 만든 그는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숫제 슬로언이 입고 있던 옷도 벗겼다. 베른트의 억척스러운 손에 셔츠가 찢어진 슬로언이 맨살을 가리며 물었다.
“뭘 하려는 겁니까?”
“탈출을 계획하는 중입니다.”
쿵-
슬로언과 베른트의 고개가 동시에 문을 향해 돌아갔다. 문은 그러고도 두어 번 더 충격음과 함께 흔들렸다. 누군가 밖에서 어깨로 부딪는 모양이었다. 베른트는 옷으로 싸맨 서류 뭉치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온 베른트는 서랍을 뒤져 펜을 하나 찾아냈다. 그는 슬로언이 챙긴 서류가 들어있는 나무상자의 뚜껑을 닫고 그 위에 펜촉을 대었다. 망치를 짧게 쥐고, 베른트는 못을 박듯 펜을 두드려 상자를 봉했다.
쩍-
할버드의 도끼날이 연구실의 나무문을 뚫고 들어왔다. 베른트는 상자를 들어 슬로언의 품에 안겨주었다. 슬로언은 휘청거리다, 그게 상자의 무게 때문이 아님을 깨달았다. 베른트가 그를 뒤쪽으로 밀었던 것이었다.
쩌적-
할버드가 한 번 더 문을 내리찍어 틈을 넓혔을 때, 베른트는 할버드의 자루를 잡아챘다. 우선 잡은 자루를 밀어 상대의 균형을 흩트리고, 힘껏 당겨 무기를 빼앗았다. 다음 순간 베른트가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는 교황 전하의 뜻으로 여기에 왔다! 너는 누구이기에 문을 부수는가!”
“네놈들을 잡아들이라는 대주교 각하의 명이시다!”
“대주교가 교황의 아래라는 걸 모른단 말인가! 노망난 우리 큰고모도 그건 안다!”
베른트의 고함 소리에 슬로언은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펜을 들어 종이에 급히 무언가를 휘갈겨 베른트를 향해 들고 섰다. 베른트가 종이에 적힌 것을 받아 읽었다.
“‘무도하게 침탈’하면 혼쭐을 내주겠다! ‘지금 물러나면 죄를 묻지 않겠다.’ 물러가라!”
그러나 둘의 협동 작전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듯했다.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는 곧 경첩을 부수는 소리임이 밝혀졌고, 그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베른트는 책상을 타넘어 올라오는 병사를 향해 망치를 올려쳤다.
쿵-
어쩌면 그토록 섬세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베른트는 망치의 스파이크를 병사의 멱살에 걸어 뒤로 내던졌다. 땅에 곤두박질쳤다가 일어나려는 병사의 머리를, 슬로언이 들고 있던 나무상자로 내리쳤다.
“교황이 우리 뒤에 있다고 했다, 이 머저리들아!”
그것이 은유적인 표현인지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병사들의 머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들이 베른트의 뒤에서 발견한 건 쓰러진 사람의 머리를 기절할 때까지 내려치고 있는, 겁에 질린 연구원뿐이었다.
“곧 우리 뒤에도 하나 생긴다! 들어가서 쳐!”
무리의 가장 뒤에 있던 남자가 맞고함 쳤다. 그의 호령 소리에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베른트는 책상을 타고 넘어오는 병사들의 정강이를 때려 넘어뜨리고, 할버드 자루에 망치 대가리를 걸어 뺏었다.
쉴 새 없는 반격에도 불구하고 베른트의 몸은 천천히 뒤로 밀렸다. 싸움에 문외한인 슬로언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상대는 인간이었고, 베른트는 그들을 죽이는 데 주저하고 있는 것이었다.
“흡-!”
상대를 무력화시키되 죽이지 않아야 하는 건 저들 병사도 마찬가지였는지, 그 가운데 하나가 할버드를 내질러 창날로 베른트의 허벅지를 찔렀다. 베른트는 왼손으로 자루를 밀었다가 다시 당기며 병사를 끌어들였다. 휘두른 망치가 갈고리처럼 병사의 목을 걸어 그를 연구실 구석으로 날렸다.
“슬로언! 도망칠 준비를 하십시오!”
베른트는 망치를 거꾸로 잡고 자루 끝으로 그를 향해 달려든 병사의 코를 찍었다. 부러진 코에서 코피를 터뜨리며 병사가 뒤로 나자빠졌다. 베른트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망치를 휘둘러 접근을 막았다.
탕-
구멍 난 천장에서 석회 가루가 떨어졌다. 베른트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발로 차 책상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는 다시 망치를 휘둘러 으스러진 손을 감싸 쥐고 있던 병사를 넘어뜨렸다. 기세가 꺾인 듯, 남은 병사들은 할버드를 길게 잡고 끝으로 베른트를 겨누기만 할 뿐 다가오지 못했다.
맹수를 잘못 건드렸다는 것처럼 난처한 표정들이었다.
“갑시다!”
베른트는 왼팔로 슬로언을 덥석 들쳐 업고 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베른트가 창밖으로 지체 없이 몸을 내던졌을 때, 슬로언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건 야만인들의 약탈혼 풍습에 대해 언젠가 읽었던 내용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혼수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꼭 쥐고 있는 것뿐이었다.
추락의 감각이 신경의 모든 말단까지 뻗쳐 머릿속 생각을 지워냈다.
콰직-
베른트가 슬로언을 그의 어깨에서 내려줬을 때, 슬로언은 어쩔 수 없이 볼썽사납게 속에 든 것을 게워냈다. 조금 전 내던졌던 서류 뭉치 위에서 베른트가 절뚝거리며 내려왔다. 부러진 정강이뼈가 살을 뚫고 나와 있었다.
“다음엔 좀 더 잘해보겠습니다.”
베른트는 그렇게 말하고서 슬로언의 옷깃을 움켜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리 부러진 사람보다 못한 운동신경으로 애처롭게 끌려가며 슬로언이 신음하듯 내뱉었다.
“뛰어내릴 일이 또 있으면 저는 빼주세요.”
*
이븐은 의자를 들어 날아오는 추를 막았다. 의자가 눈앞에서 박살나고, 잔해는 사슬에 감겨 추와 함께 다시 다모크를 향해 돌아갔다. 다모크는 잔해를 내던지고 어깨 위에서 추를 빙빙 돌렸다. 이븐은 아직 낫과 추 중에 무엇을 더 경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마물 사냥꾼으로서는 당연하게도, 한 번도 상대해본 적 없는 무기였던 것이다.
이븐은 허리 왼편에 걸린 권총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예상대로 다모크가 내지른 추가 오른팔을 향해 쇄도했다. 쇠사슬이 팔뚝에 단단히 감기는 것과 동시에 끌어당기는 힘이 전해져 왔다. 이븐은 지면을 단단히 딛고, 붙잡힌 손으로 쇠사슬을 잡았다.
치이익-
사슬을 잡은 오른손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이븐은 이를 악물고 사슬을 당겼다. 다모크는 버티지 않고 도리어 몸을 날렸다. 이븐은 공중에 뜬 다모크가 낫을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븐은 왼손으로 권총을 꺼내들었다. 그 모든 일이 들이쉰 숨을 내뱉는 동안 벌어졌다.
탕-
총성이 울리고, 다모크는 이븐의 머리 위를 넘어 뒤쪽 벽에 몸을 부딪었다. 얼굴에 번지는 미지근한 혈액의 감각을 느끼며, 이븐은 명중을 확신했다. 그러나 동시에 어깨에 번지는 격통으로 이븐은 자신 역시 공격을 허락했음을 깨달았다.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다.
다모크가 자세를 바로잡고 추를 다시 머리 위에서 돌릴 때, 이븐은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저 마물-사냥꾼은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이븐의 오른편 어깨를 베어, 쥐고 있던 사슬을 거두어 갔던 것이었다.
벌어진 상처가 쉽사리 아물지 않았다. 그건 총상을 입은 다모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오른팔을 늘어뜨리고 있는 이븐과는 달리 다모크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븐은 그가 자신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맞섰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했다.
탕-
이븐은 아블린을 겨냥해 주저 없이 총을 갈겼다. 좁은 공간에서의 싸움이라면 일대다의 수세가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블린도 여간내기는 아니어서, 이븐이 그녀를 향해 팔을 뻗는 순간 재빨리 글레이브의 칼날로 얼굴을 막았다.
글레이브의 넓은 칼날이 깨어져 땅으로 후드득 떨어지자 아블린의 얼굴이 드러났다.
“더해 봐요. 어차피 더 망가질 수도 없을 것 같으니까.”
아블린은 피가 번져 엉망이 된 얼굴로 말했다. 칼날의 파편이 뺨에 박혀 있었다. 이븐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다모크를 겨누었다. 이븐은 개인의 기량이 승부를 가르는 일대일의 전투에서 다모크를 누를 자신이 없었다. 그 때문에 변수가 존재하는 일대다의 전투로 아블린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그녀의 침착성 앞에서 실패한 듯싶었다.
거리를 벌리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파고드는 것이? 이븐의 머릿속에서 다가올 전투의 장면이 생생히 그려졌다. 그 장면 속에서 이븐은 쇠사슬에 목이 졸리거나, 낫에 머리가 잘리거나, 추에 맞아 골통이 깨졌다. 호흡곤란으로 눈알이 튀어나온 채 죽거나, 머리 잘린 자신의 몸을 보면서 죽거나, 뇌수를 쏟으며 죽어가거나······.
다모크를 죽이는 선택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는 단지 추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을 뿐인데, 이미 그는 이븐을 여러 차례 죽이고도 남은 것 같았다. 테네그림 숲에서 루퍼트를 상대했을 때와 같은 공포가 이븐의 몸을 엄습했다.
선택은 다모크가 내렸다. 다모크는 추를 내지르는 대신 이븐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븐은 발을 뒤로 들어 식탁을 차서 치워냈다. 이븐은 방아쇠를 연달아 당겨 약실을 비웠다. 손이 땀에 젖어 미끄러웠다. 총에 맞고도 다모크의 기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낫이 쇄도해올 때, 이븐은 떨어뜨렸던 권총을 향해 몸을 던졌다.
“끝났어요.”
아블린의 목소리였다. 이븐은 바닥을 더듬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줍고자 했던 권총은 아블린의 부서진 글레이브 칼날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권총을 손에 옮겨 쥐고 이븐을 겨누었다.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사냥꾼 둘을 상대할 수는 없는 거겠죠.”
이븐은 오른손을 허벅지에 가져갔다.
탕-
“크악-!”
이븐은 바닥에서 고통으로 몸을 뒤틀었다. 허벅지에 걸려있던 권총을 잡으려던 순간 다모크의 추가 날아들어 손등을 때렸고, 권총은 그대로 격발되며 허벅지에 관통상을 남겼던 것이었다. 쇠사슬은 거두어졌다가 다시 날아들어 이븐의 팔에 감겼다. 겨우 아물었던 어깨의 상처가 당기는 힘에 벌어졌다.
“헤레틱스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아블린.”
“집어치워요. 죽기 싫어서 개수작 부리는 거 다 알아요.”
“죽기 싫은 건 맞지만······.”
쾅-
그 폭음이 총성이라고 생각해서, 이븐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건 문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찌푸린 눈꺼풀 사이로 당황해서 주춤거리는 아블린의 모습과, 맹호처럼 달려들어 망치로 그녀의 얼굴을 후려갈기는 베른트의 모습이 차례로 보였다.
다모크가 이븐을 향해 덮쳐들었고, 이븐은 이번에는 확실히 허벅지에서 권총을 뽑았다. 은으로 된 낫이 목을 파고들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피가 몸을 적셨다. 이븐은 피에 흠뻑 젖은 권총을 버리고 맨손으로 다모크의 상처를 헤집었다.
“캬아악-!”
다모크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떨어졌다. 세 갈래의 턱이 이븐의 얼굴 위에서 닫혔다 열리길 반복했다. 이븐은 다모크의 찢어진 배에서 내장을 뽑아들어 그의 턱에 물렸다. 다모크의 몸에서 힘이 빠지자 이븐은 그를 옆으로 밀어치웠다.
이븐은 축 늘어져 있는 아블린을 향해 달려가 권총을 뺏어들었다. 그는 복부에 창자를 밀어 넣고 있던 다모크를 겨눴다. 연이은 총성. 이븐은 망설임 없이 약실을 모두 비웠다. 머리가 뭉개진 다모크의 시신이 천천히 무너졌다.
“제기랄, 베른트.”
이븐은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품에 넣으며 덧붙였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구세주예요?”
베른트가 이븐을 향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다리를 다친 건 그도 마찬가지라서 누가 누구를 부축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들은 오두막을 나섰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이븐을 향해 베른트가 속삭였다.
“이 얘기 웨인한테 꼭 좀 해주십시오.”
이븐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 따옴.
- 작가의말
와! 베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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