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막 2장 - 안식일(2)
12막 2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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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벽에 메아리치는 총성을 듣고 말들이 놀라서 투레질했다. 이븐은 고삐를 마구간의 기둥에 묶고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베른트가 망치 잡은 손의 위치를 자꾸 고쳤다. 길게 잡으면 사람의 두개골을 부술 수 있었고, 짧게 잡으면 코를 깨고 뇌진탕을 일으키는 데 그칠 터였다.
이븐이 베른트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이븐은 베른트의 손을 자루 끝으로 옮겼다. 사냥꾼의 전당 뒷문에서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른트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븐을 바라보았다.
“교황 폐하를 구하러 가죠.”
“성하.”
“네?”
“아닙니다. 갑시다.”
뒷문을 열고 전당 내부에 발을 들였을 때, 이븐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수 개 무리의 검은 형체들이 서로 엉켜서 싸우고 있었다. 그는 먼저 나이로드를 발견했고, 그를 보호하려 사투를 벌이고 있는 케넌을 뒤이어 찾아냈다.
이븐은 뤼시앵이 내뱉은 욕지거리와 분노에 찬 여자의 절규를 분간해냈고, 정문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병사들과 그들에게 뒷문으로 돌아가 퇴로를 막을 것을 명령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남자가 창문에 대해 무어라고 외치는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케넌과 뤼시앵은 우리 편입니다. 케넌이 보호하고 있는 은발의 남자가 교황입니다.”
이븐이 한 호흡 속에서 빠르게 말했다. 아직 서임식을 치르지 않은 수습 사냥꾼으로서 베른트는 교황을 본 일이 없었다. 베른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븐은 케넌이 있는 구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캉-
그를 향해 쇄도하는 칼날을 본 이븐은 반사적으로 사냥칼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븐은 사냥칼을 든 손이 강인한 힘에 끌려가는 것을 느꼈다. 상대가 이어서 내려친 둔기에 이븐은 등을 맞고 휘청거렸다.
이븐은 몸을 돌려 상대를 겨냥했다. 그러나 그런 이븐보다 방아쇠를 먼저 당긴 이가 있었다.
쾅-
이븐은 산탄이 배를 뚫고 내장에 편편이 박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넘어지면서 한 손으로는 석관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다시 상대를 겨누었다. 상대는 산탄총 아래 부착한 도끼날로 이븐의 얼굴을 찍으려 들었다.
퍽-
이븐이 쏜 총에 상대의 몸이 무너졌다. 이븐은 팔꿈치와 어깨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큼 거대한 약실이 묵직하게 돌아가며 다음 발사를 준비했다. 이븐은 쓰러진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다음 발사는 필요 없었다.
헤인체 히스터스. 그는 성당의 보육원에서 자랐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헤인체도 마물에 의해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 보육원 아이들 가운데 달리기를 가장 잘하던 그는 원장수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냥단에 들어갔다. 싸움을 익힌 바 없었지만 목공 일로 몸이 다져져 배우는 게 빨랐다. 스물넷이었고 자신을 죽인 이가 동경하던 늑대사냥개였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븐은 배를 움켜쥐고 일어났다. 살갗과 내장이 원형을 회복하며 은으로 된 파편을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산탄이 돌바닥 위로 떨어지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그는 잔베르의 테어도어 볼드윈을 떠올렸다. 은탄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던 그의 모습이 이븐의 몸 위로 겹쳤다.
이븐은 떨어진 사냥칼을 집어 들고 다음 상대와 맞섰다.
이제 그는 조금 전 사냥칼을 잡아채는 듯했던 상대의 공격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오른손엔 메이스를, 왼손엔 단도를 들고 서서 짐승처럼 엉버텼다. 단도의 날에는 수 개의 홈이 나 있었다. 소드브레이커였고, 이븐은 그걸 든 손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와라, 사냥개!”
남자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는 달려들 듯 몸을 움직였다가 발치의 향로를 걷어찼다. 이븐의 상체로 불붙은 향과 재가 쏟아졌다. 이븐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메이스가 그의 턱을 후려쳤다. 덜컥거리는 소리가 두개골을 울렸다.
탕-
제대로 겨냥하지 못한 총은 빗나가 천장을 맞혔다.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우수수 쏟아졌다. 이븐은 가슴을 찍는 칼날의 감각에 숨을 토해냈다. 그 들쭉날쭉한 칼날이 그대로 뽑혀나가면 무슨 꼴을 보게 될지 자명했으므로, 이븐은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이븐은 권총 쥔 손을 들어 남자가 휘두른 메이스를 막았다. 손목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이븐은 남자를 발로 차 밀어뜨리고 권총을 겨냥했다. 이어진 총격에 남자가 선 자리에서 반 바퀴 회전하며 쓰러졌다. 이븐은 가슴에 박힌 소드브레이커를 위로 들어 상처를 벌려 빼냈다.
안톤 뷔히너. 이븐 베르자크의 총에 맞고 쓰러진 그는 석관에 머리를 부딪혀 의식을 잃었다. 그 덕분으로 안톤은 훗날 역사학자 가이트 뮐러가 은검의 밤이라 명명한 내분에서 목숨을 건졌다. 의사들은 그의 어깨를 꿰뚫은 총탄의 위력에 혀를 내두르며 오른팔을 절단해야 했고, 이 일로 교단의 무기 장인들 몇이 회의감을 느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븐은 석관 사이를 비틀거리며 지나가 뤼시앵과 베른트가 있는 쪽을 향했다. 둘은 거대한 칼을 든 남자와 맞서고 있었다. 남자가 내려친 일격에 뤼시앵의 검이 두 동강 났고 뤼시앵은 돌바닥 위에서 굴렀다. 넘어진 뤼시앵은 석관의 뚜껑을 밀어 진로를 막았다.
오래된 시체의 냄새가 향내와 뒤섞였다. 망치를 가로로 들어 공격을 막았던 베른트가 비틀거리다가 뒤로 쓰러졌다. 이븐은 어둠 속에서 검게 번들거리는 베른트의 얼굴이 피를 뒤집어 쓴 탓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딜!”
이븐이 남자를 향해 권총을 겨눴을 때 또 다른 사냥꾼이 달려들어 그를 베었다. 이어진 총격에 이븐은 흘러내린 땀이 눈에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목울대를 관통한 총알 때문에 피로 목이 막혔다. 이븐은 묵직한 총열로 여자 사냥꾼의 머리를 후려갈기고 비틀거리는 그녀를 겨냥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여자가 빠르게 파고들며 환도의 끝으로 권총을 노렸다.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았다. 이븐은 잘려나간 그의 검지가 허공에서 회전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븐은 피를 삼키고 왼손으로 총을 꺼냈다. 여자는 이븐의 왼팔을 베었지만 상처가 얕았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여자가 이븐의 품에 안기듯 쓰러졌다. 이븐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그녀를 옆으로 밀어 치웠다.
로즈플뢰르 다르몽. 그녀의 친구들은 로즈라고 불렀다. 로즈플뢰르가 소속된 본슈타트 교구에서는 그녀의 옆얼굴이 새겨진 기념주화를 팔았다. 교구민들이 사서 머리맡에 두고 잤다. 폐와 비장을 관통한 총알은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고열과 환각에 시달리다가 이틀 뒤에 죽었다. 서른넷이었고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의 사촌언니가 맡아 돌보던 아이들은 길 위에서 부고를 들었다.
이븐은 바닥을 더듬어 잘려나간 손가락을 찾았다. 손가락을 붙이려고 환부에 댔을 때는 이미 새로운 손가락이 자라나 있는 상태였다. 이븐은 고개를 들어 어둠 속을 훑었다. 치고받는 싸움의 형태가 선연히 드러났다. 전투 때문인지 속에서 번지는 갈증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는 흥분으로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커흑!”
비틀거리며 일어났다가 다시 남자가 휘두른 칼에 맞은 베른트가 벽에 부딪쳐 신음을 토했다. 이븐은 남자의 몸을 겨누어 총을 쐈다. 총알이 칼날의 넓은 면에 막히며 불똥이 튀었다. 칼을 든 남자, 이고르는 빠르게 이븐을 향해 다가붙었다.
거대하고 묵직한 칼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이븐을 덮쳤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공격에 이븐은 팔을 맞고 권총을 떨어뜨렸다. 세 개의 총열을 겹친 권총이 바닥에 떨어지며 제멋대로 발사됐다. 돌 부스러기가 튀어 올랐다.
“이븐 베르자크?”
이고르가 이븐의 왼팔을 붙잡았다. 이븐은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려다본 팔은 불가능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러나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이븐은 방금 올려친 이고르의 공격이 칼등으로 가한 것임을 깨달았다.
“교황을 데리고 떠나게.”
이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고르의 뒤에서 천천히 접근하던 뤼시앵이 부러진 검을 거두고 물러났다. 이고르는 등 뒤와 이븐을 번갈아 봐 상황을 파악하고 다시 말했다. 그는 눈 위가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은 부상의 고통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싸움을 멈추게. 교황을 데리고 떠나.”
“이고르!”
케넌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비앙카 에스트룀이 이고르의 말을 듣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미 많이 죽었습니다, 부단장님! 그만둬야 합니다!”
그건 절규에 가까웠다. 사냥꾼들이 죽어 묻힌 전당에서는 이제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인 피비린내가 풍겼다. 향내와 화약의 냄새, 뚜껑 열린 관에서 피어오른 추깃물의 냄새와 갓 죽은 시체에서 번지는 생생한 쇳내가 한데 섞여 코를 쥐고 흔들었다.
이븐은 이고르를 지나쳐, 쓰러져 있는 베른트에게 다가갔다. 베른트는 미동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었다. 이븐은 그를 일으켜 세워 팔을 어깨에 둘렀다. 베른트의 목이 아래로 꺾였다. 웨인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웨인에게 뭐라고······. 베른트가 몸을 들썩이며 기침했다.
이븐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텅-
이고르가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떨어진 칼이 돌바닥 위에서 부르르 떨었다. 케넌은 권총으로 비앙카를 겨눈 채 나이로드를 움직였다. 뤼시앵이 한쪽 다리를 바닥에 끌며 교황의 보호에 가세했다. 비앙카가 검을 거두어 손잡이를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이븐은 그녀가 왼팔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날 용서해, 케넌.”
다음 순간 비앙카가 케넌을 향해 달려들었다. 케넌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칼을 의수로 막고, 그녀는 목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뤼시앵이 쓰러지듯 덤벼들어 부러진 검으로 비앙카의 다리를 찔렀다. 비앙카의 자세가 무너지고, 피를 뿌리며 휘청거렸던 케넌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탕-
비앙카의 무릎이 꺾이고, 이어서 머리가 사라진 상체가 앞으로 쓰러졌다. 이고르가 비틀거리며 석관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케넌이 술 취한 사람처럼 불안한 걸음걸이로 이고르를 향해 갔다. 지치고 쉬어버린 목소리로 케넌이 말했다.
“대행을··· 맡아주게, 이고르. 국경에 나가 있는··· 마르셀을 불러서······ 그에게 단장직을 넘기겠다고··· 마르셀 바스케즈에게 단장직을 넘긴다고 전해주게.”
이고르는 얼굴을 감싸 쥐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이븐은 어둠 속에서 웅크린 이고르의 등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뤼시앵이 부러진 검을 버리고 베른트의 망치를 주워 들었다. 그는 망치의 대가리를 겨드랑이에 끼워 목발처럼 바닥을 짚었다.
“갑시다.”
뤼시앵이 절뚝거리면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뒷문으로 향했다. 케넌이 휘청거려서 나이로드가 그를 부축했다. 뒷문을 열고 나갔을 때 이븐은 가까워지고 있는 횃불의 대열을 발견했다. 서둘러야 했다. 그는 숫제 베른트의 몸을 업어 들고 마구간을 향해 내달렸다. 일전에 다모크에게 당했던 어깨가 욱신거렸다.
이븐은 말 위에 베른트를 던져 올리고 마구간에서 말을 꺼내왔다. 나이로드가 케넌을 이븐의 말 위에 태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뤼시앵이 등자에 다리를 걸려다가 넘어졌다. 이븐이 그의 허리띠를 움켜쥐고 올려주었다.
모두 패잔병 같은 몰골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큰 싸움에서 지고 작은 싸움에서 간신히 이겼다. 이제 병사들은 지척까지 와있었다. 그들이 외치는 고함이 귓전을 때렸다. 이븐은 베른트의 허리띠를 풀어 안장과 몸을 고정시키려 했다. 허리띠가 짧아서 이븐 자신의 것까지 써야 했다.
“손이 두 개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븐이 나이로드가 탄 말 위로 올라타며 말했다. 교황의 등이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고삐는 제가 쥘 테니 이것 좀 잡아주십시오.”
이븐은 베른트를 태운 말의 고삐를 교황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말에 박차를 가하기 전에 일행을 눈으로 훑었다. 방향을 정하지 못한 채로 이븐은 말의 배를 찼다. 말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를 필두로 케넌과 뤼시앵이 따라왔다.
여러 겹의 총성이 다발적으로 울리고 말이 길게 울었다. 이븐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뤼시앵이 탄 말이 주저앉아 필사적으로 바닥을 긁었다. 말에 발이 깔린 채 넘어진 뤼시앵이 소리쳤다.
“가!”
“뤼시앵!”
이븐이 고삐를 당겼다. 대열 후미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오고 머스킷을 발사했던 이들이 총신에 꽂을대를 넣는 것이 보였다.
“그냥 가라고!”
이븐은 말을 돌리지 않았다. 고삐로 말의 목을 때리며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말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이로드를 감싼 이븐의 등에 총탄이 박혔다. 이븐이 뒤를 돌아 응사했다. 병사 하나가 고꾸라지는 것이 보였다.
“죽이진 않을 걸세.”
이븐의 품 안에서 나이로드가 말했다. 뤼시앵이 악에 받쳐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들 일행은 병사들이 든 횃불이 한 점으로 보일 만큼 멀어져 있었다. 말 위에서 베른트의 몸이 점점 기울어서 팔을 뻗어 바로잡아야 했다.
교황청을 빠져나와 시가지를 통과할 때, 먼 데서 단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븐은 어금니를 악물고 말을 달렸다.
1275년 유월의 일이었다.
- 작가의말
전투 장면을 쓸 때 새로운 시도를 해봤는데, 다 쓰고 읽어 보니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것 같아 걱정스럽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자를 써야 할 부분에 편자를 쓴 것을 발견하여 고쳤습니다. - 2019.01.2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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