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야기들
남은 이야기들
모르델반트 수녀원의 메이윌 크로포드 수녀는 1281년 병동의 환자를 돌보던 중 결핵이 옮아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병상에서 죽었다. 뤼스베르크 시의 경찰서장이었던 파브르 드뷔레는 치안정감까지 승진했고 은퇴한 뒤 신생독립국 던트라인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용병이었던 앰버 콜필드는 일군의 사냥꾼들과 함께 한 일을 계기로 사냥단에 합류했다. 그녀는 마일스아이렌의 교황청에서 지원자들을 선발하는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사냥단의 연락원인 알렉쟝드르 다르나브와 코리나 본크는 1277년 동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슬하에 두 명의 자녀를 두었고, 다르나브는 은퇴 후 연락원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양의 탈: 사냥꾼을 속인 마물들』의 3판 발행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로지아 레니스는 글라트펠트 항마연구소로 소속을 옮겨 연구 활동을 이어가다가, 1279년엔 해당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280년 이래로 그녀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팔 인의 사냥꾼 중 일인이자 글라트펠트 교구의 사냥꾼이었던 뷔센 군터하임은 1278년 세상을 떠났다. 광증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를 간호했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날짜를 물어본 뒤 음독자살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사냥꾼의 전당에 안치되었다.
베른트 슈나이더는 베르자키스나이센 교구의 사냥꾼으로 얼마간 있다가 피에르벤 지방에서도 임무를 맡았다. 그는 다리를 크게 다친 이후로는 교황청에서 수습 사냥꾼들을 상대로 사냥을 가르치게 되었다. 슈나이더 엽사의 솔직함과 그리 나쁘지 않은 기억력은 이 책의 후반부를 집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웨인 헬라이드는 베르자크의 실종 이후로도 이 년간 더 사냥꾼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네 번째 제자가 뒤를 이어 체스바덴 교구의 사냥꾼이 되었다. 헬라이드는 노환과 합병증으로 앓다가 1288년 74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그의 고향인 비엔페른 인근에 묻혔다.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그의 며느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병동에서 죽었다.
케넌 안드로스 초대 사냥단장은 단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줄곧 교단에 남았다. 그는 게헤만, 멜레란데와 같은 주변국을 다니며 사냥꾼들의 원활한 활동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힘썼다. 그가 지젤 황제의 등극을 둘러싼 정황에 대해서 증언하기를 꺼렸으므로, 마레지에 감옥 폭파 시도에 대해서는 필자의 잘못된 이해가 반영되었을 수 있음을 여기서 밝힌다.
두 번째 사냥단장으로 은검의 밤 이후 혼란스러웠던 사냥단을 안정시켰던 마르셀 바스케즈는 쉰두 번째 생일을 맞던 날 단장의 자리에서 은퇴하며 사냥꾼의 짐도 함께 내려놓았다. 그는 1289년 가족들과 보육원의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보육원의 운영기금 일부를 제한 그의 재산은 사냥단에 전액 기증되었다.
테니아 브록센은 일선에서 물러나 사냥꾼의 처우 개선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는 조금씩 태동하는 중이었던 정신분석적 심리 요법 —아직 이 분야의 명칭은 통일되지 못했다— 을 사냥단에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오늘날 사냥꾼들이 신체적 외상뿐 아니라 정신적 외상까지도 치료받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녀의 공이다.
제자가 스승을 가르치는, 뤼시앵 드메스포르와 안체 하르트만의 기묘한 사제 관계는 하르트만의 수습 기간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1280년 두 사냥꾼은 멜레란데의 사냥단 지부를 돕기 위해 떠났다. 그들이 멜레란데에서 맞서 싸워야 했던 건 마물이 얽힌 조직적 범죄, 위정자들의 부패, 정화사들의 광기, 그리고 마물이 된 사냥꾼까지 실상 멜레란데라는 국가 자체였다. 그들의 싸움은 베르자크와 동료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아마 시간과 능력이 허락된다면 두 사냥꾼의 이야기도 전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게헤만의 사냥꾼 실비아 칼리노브스카는 그 후에도 꾸준히 국경의 다른 사냥꾼들과 연계해 마물들을 착실히 줄여 나갔다. 그녀는 게헤만에 있는 사냥단 지부의 장을 맡아 베르펠 통령 치하의 공화국에서 사냥꾼들의 독립적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1280년에 행방이 묘연해진 것은 로지아 레니스 연구소장뿐만이 아니었다. 스타샤 메이츠니르 역시 같은 해에 그야말로 잠적하면서 사냥단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다만 어디를 가든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성미 탓인지 그녀에 대한 목격담과 소문은 지금도 간간이 들려오고 있다.
어둡고 우울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불 밝힌 각등을 쥐고 먼저 걸어나간 이의 자취는 짙은 어둠의 장막에 가려 금세 지워지고 만다. 그러나 그들, 예정된 비극을 향해 담담히 걸어가 저마다의 운명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길게 늘어선 빛의 길을 보게 될 것이다.
짙은 밤의 배를 가르는 그 밝은 길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이런 문장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나아갈 것이며, 지금은 사라진,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과거의 악령들을 하나씩 꼽아보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감내할 만큼의 충분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심연의 사냥꾼들』 마침.
- 작가의말
두 번째 에필로그가 오늘 중으로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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