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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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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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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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화. 에스테 - 1

DUMMY

덴에서 나오고 한동안은 베스파로제의 성에서 요양을 취했다. 라기보다 사실은 쉬라는 명목 하에 방치 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덴에서 방치되던 시절보다는 훨씬 안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선 이 성은 시원하기도 하고, 또 널찍한 계단을 하나 내 자리 삼기도 하는 등 지옥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여유롭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심상이라는 것을 삼키는 법을 배운 다음부터는 배도 고프지 않게 됐고 말이다.


이건 좀 신기했는데, 허공에 보이는 그 아지랑이 같은 것을 ‘허공에 떠다니는 물을 마신다는 기분’으로 주욱 들이키면 신기하게도 빵 몇 개는 먹은 마냥 배가 불러 온다.

물론 그렇게 삼키고 나면 눈앞의 그 심상은 없어져 버리지만.


강한 악마일수록 더 많은 심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서열이 낮은 악마들은 굶어죽기도 하는 것이라 하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심상이 모자라는지 잘 모르겠다.

눈앞의 한 줌. 난 이 정도만 먹어도 충분히 배가 부르니까.

뭐, 악마들은 나와는 먹는 양이 다르다는 거겠지.


어쨌든. 이런 식으로 지내는 거라면 지옥의 생활도 꽤나 만족스럽다.

특히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지옥에 오기 전 보다 더 나아진 것이고 말이다.

억지로 하나 문제를 짚어보자면, 시간감각이 없어진 와중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렇게 방치 됐다는 것 정도?

덴에 있을 땐 그렇게 바라던 평화였지만 사실 조금 질리기 시작하는 게.......


“너 각성 했다며?”


“우, 우왁!”


오랫동안 혼자 있어서였을까, 익숙한 목소리임에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베스파로제가 세르피....... 라고 부르던 미녀악마다.


“흐응, 그래서 그런지....... 전보다 멋있어졌는걸?”


아, 아니 잠깐만요.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시면.......


“이 옷 때문이려나? 베스가 이 옷을 줬다는 건.......”


껴안듯 달라붙은 미녀악마 때문에 몸이 돌같이 굳어버렸다.

가슴팍에 와 닿은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져 심장이 터져버릴 듯 뛴다.

그리고....... 조, 좋은 향기가 난다.


“이제 네가 베스의 에스테라는 거네.”


코, 콧바람이 귀에........

아, 안된다.

베스파로제가 이 악마는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얘기했었다.


“그, 그 에스테라는 게....... 뭐죠?”


“에스테....... 라는 건 말이지.......”


아, 아아....... 조, 조금만 떨어져 주시면.......


“첫 번째를 의미해....... 첫 번째 수계자.”


미녀악마의 손이 슬금슬금 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손길에 온몸이 짜릿 하고.......


“세르피, 내가 손대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을 텐데.”


“어? 왔어?”


미녀악마의 몸이 떨어지자마자 한숨이 놓이며 몸의 긴장이 풀렸다.

잔뜩 긴장했었기 때문일까, 머리가 어질어질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게.......


“하아, 지금부터 론니악으로 데려가려 했건만.......”


베스파로제는 나를 힐끗 내려 보더니 특유의 피곤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어, 어라? 그런데 이상하게 시야가 흐리다.


“조, 조금밖에 안 빨아 먹었다고! 그리고 이 정도는 네가 돌려놓으면 그만이잖아!”


빨아 먹었다고?


“우, 우와아아악!”


슬쩍 내려 본 내 왼팔이 마른 가지처럼 말라붙어 있어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하아, 각성을 했다고 하지만 인간이란 말이다. 네 조금이 조금이 아니란 말이지.”


베스파로제의 손짓 한 번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는 했다만.......

온몸에 소름이 돋고 말았다.


“그보다, 그보다 말야 베스. 나도 같이 가도 괜찮지? 론니악.”


“안 돼.”


굉장히 훌륭한 똑 부러진 대답이다.

어딜 간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미녀악마가 같이 가는 건 나도 반대다.

악마는 베스파로제 하나로 족하니까.


“왜에-! 내 에스티한테 시켜서 론니악도 소개시켜 줄 테니까아-! 응? 베스? 베스도 론니악에는 한 번도 간 적 없잖아아-!”


마치 어린아이처럼 때를 쓰는 모습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전부 다 연기겠지, 무서운 악마다.

하지만 베스파로제에게 그런 때는 통하지 않.......


“그것도 그렇군. 좋아, 동행하도록 하지.”


네? 자, 잠깐만요?



.

.

.



“여기가 론니악이다.”


아, 여기가 론니악이구나.......는 무슨!

대뜸 주위 환경이 바뀐다 싶더니 또 말도 없이 갑자기 이동해버렸다.

그리고.......


“.......덥네요.”


앗뜨 앗뜨 가 예상되었다만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그냥 조금 더운 수준이라 안심했다. 조금 많이 덥다는 게 문제지만.......

원체 땀을 안 흘리는 나이기에 다행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금방 땀으로 흠뻑 젖어버릴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덥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은 이 오른팔만 빼고.


“게르틴이 지었다고 했나? 내 취향은 아니군.”


론니악이라는 곳은....... 저건 가? 뭐 주변에 다른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맞겠지.


“그 말 게르틴이 들으면 엄청 서운해 할 걸?”


갈라진 틈 사이로 붉은 용암이 흐르는 흑색 대지.

그리고 그 위로 우뚝 선 거대한 검은 성.

가운데 높게 솟은 몇 층까지 있는지도 모를 성체와 그 주위를 둘러싼 열 개의 탑.


“자자, 그럼 안으로~”


“잠깐, 들어가기 전에 할 말이 있다.”


“아, 또 뭐!”


잔뜩 시무룩해져버린 미녀악마를 뒤로하고 베스파로제는 내 앞에 와 섰다.


“네가 반드시 지켜야할 세 가지가 있다.”


라고 말하는 얼굴이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해보여 나도 모르게 축 쳐져있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하나는 네가 인간이라는 걸 절대 다른 악마들에게 들키지 말 것.”


“네? 분명 다 미리 얘기 됐다고.......”


“마신님과 한 얘기는 다른 악마들에겐 비밀로 되어 있다. 안 그래도 지옥이 이 꼴이 난 후로 인간하면 이를 가는 악마들이 넘쳐나는데 사서 위험을 안고 갈 필요는 없지. 특히 상위 악마들은 아무리 마신님이라도 제어가 안되는 놈들 투성이니까.”


너무 편한 마음으로 와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급습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긴장해야하는 게 당연한 건데.

여긴 지옥이니까.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절대로 싸움을 일으키지 말 것. 이목이 집중되는 건 너도 원치 않겠지.”


그건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싶다.

내가 무슨 자신감이 넘쳐 악마에게 싸움을 걸겠는가.

물론 덴에서 있던 일은 별개지만.

베스파로제의 성에 온 후로도 몇 번이나 그 악마의 붉은 눈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렸던 걸 생각해 보면......


“마지막은 품위를 지킬 것. 혹여나 품위 없는 행동으로 내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소문이 들렸다간.......”


“우, 우웁!”


베스파로제의 눈빛이 매섭게 바뀐 듯한 느낌이 들더니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본능적으로 저게 가장 중요한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 이정도만 지켜도 별 일은 없을 테지.”


“다 된 거야? 그럼 이제.......”


“음, 들어가도록 하지.”


라고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먼저 앞서 걸어가는 베스파로제와 미녀악마.

론니악의 기괴한 모양새가 앞에 둘의 모습과 겹쳐 불길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만....... 이제 와서 망설일 건 없겠.......지?


“근데 베스. 베스는 저 인간을, 아니 에스테를 론니악에 맡길 거야? 아니면.......”


“한동안은 맡겨둘 생각이다. 난 가르치는 것엔 서투니까.”


“그래? 그럼.......”


뭔가 나에 대한 불길한 얘기들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다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휘둘리는데 익숙해졌다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인정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 안 걸어 앞의 두 악마의 발이 멈춘 곳은 용암 위 다리.

그 건너편 거대한 벽을 보고서는 움찔하고 놀라고 말았다.


“서열 32위, 론니악 문지기 후스. 베스파로제님께 인사드립니다.”


당연히 동상일 거라 생각한 거대한 악마가 베스파로제에게 인사를 해 왔기 때문이다.

베스파로제와 좀 더 다가가 올려다보려니 목이 다 아플 정도다.


“이 곳 문지기를 하면서 베스파로제님을 뵐 일은 없을 줄 알았습니다. 맘이라도 바뀌신 겁니까?”


“흥, 쓸데없는 소리를.”


베스파로제와는 달리 온 몸이 우락부락한 근육 덩어리에 왠지 화가 잔뜩 난 것만 같은 노기를 띈 얼굴.

이제 와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옥에서 악마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위압감을 느꼈다.

덩치가 한참이나 작은 베스파로제에게 굽신거리는 이해 안가는 모습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안녕 후스!”


“그 쪽은?”


“야! 난 무시하는 거야?”


무시당해 길길이 날뛰는 미녀악마의 위로 그 거대한 악마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팔다리가 찰싹 붙은 채 몸이 굳어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내 에스테다.”


베스파로제를 힐끗 보고 다시 나를 보는 거대한 악마의 얼굴이 미심이 가득 차 다시 한 번 움찔하고 놀라고 말았다.


“이쪽입니다.”


“야! 후스!”


발을 들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선 거대한 악마는 벽의 밑 부분을 팔로 받쳐 들더니 단숨에 들어 올렸다.

그 천지를 울리는 굉음에 정신이 아득해 진다.


“정신 차려라.”


어깨 위로 닿은 베스파로제의 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벌써부터 이러면 안 되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하루 종일 이러다간 내 명에 못 산다.


“론니악에 온 걸 환영한다. 베스파로제님의 에스테여.”


.

.

.


가까이서 본 론니악은 훨씬 더 웅장하고...... 또 기괴했다.

기괴하다는 건 벽에 노란색으로 가득 새겨져 있는 여러 문양들이 그 원인.

바닥은 성 바깥과는 다르게 의외로 부드러운 흙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전체적인 모습은 멀리서 볼 때보다도 더 괴리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세르피리아님!”


“아, 왔구나!”


갑자기 달려와 미녀악마에게 안긴 긴 금발머리의 악마는....... 예, 예쁘다?


“미리 말을 전해 놓기는 했는데, 잘 받았어?”


“네,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미녀악마도 미녀악마지만 이쪽이 고혹적인 매력이 있다면 저쪽은 청순한 매력이 있달 까?

아니, 난 또 무슨 생각을.

바로 얼마 전 미녀악마에게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이게 다 평생을 시골에서 미녀는커녕 밀밭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어머, 죄송합니다. 계신 줄 모르고. 리아에스테, 베스파로제님께 인사드립니다.”


하며 눈썹을 내린 얼굴도 귀엽다!


“에스티 에스티. 그보다 후스가 말야, 응? 날 또 무시하고.......”


“세르피. 지금 바로 에네스님을 만나러 가겠다.”


저렇게 계속 말을 끊기면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말이지.


“그럴래? 에스티. 이 애, 베스의 에스테야.”


“정말입니까? 베스파로제님이 에스테를.......”


하고 방금 만났던 거대한 악마와 마찬가지로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난 베스하고 에네스님께 가볼 테니 그동안 론니악 안내를 부탁할게.”


“예, 맡겨주세요.”


또 다시 나는 안중에도 없이 서로들 잘도 얘기하고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주변의 공기는 얼어붙을 정도로 어색함으로 가득.

일단은 내가 먼저 인사라도 건내는게......


“아, 안녕하세요?”


뭐, 이런 미인의....... 아니, 미악마의 안내를 받는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만.


“하아, 짜증나네.”


.......네?


“로제에스테님. 죄송하지만. 나 지금 할 일이 있어서 말이지.”


라며 긴 금발머리를 뒤로 찰랑하고 넘기는 일련의 동작.

그 모든 것에서 귀찮다는 느낌이 너무나도 확실히 전해져와 오히려 내가 더 무안해져 버리고 말았다.


“예? 로제에스테?”


“하아, 각성한지 얼마 안 되셨죠?”


방금 한쪽 눈썹이 씰룩인 건....... 느낌 탓이겠지?


“서열 3을 의미하는 ‘로제’에 ‘에스테’를 합친 말이에요. 같은 식으로 나는 세르피리아님의 에스테니까 리아에스테. 알겠어?”


베스파로제의 로제가 서열을 의미하는 말이었다는 건가.

악마의 이름에 그런 뜻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앞으로는 이름같이 쓰일 말이니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또 알아두면 좋은 건 베스파로제님께서 로제에스테님을 부를 때는 에스티라고 부른다는 것 정도? ‘티’는 낮춰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쉽지.”


눈도 안 마주치고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도 알려줄 건 또 다 알려주는 게 나로서는 도통 친절한 건지 불친절한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세스티!”


미녀악마의 에스테, 아니 리아에스테. 어렵군.

어쨌든 리아에스테가 손을 흔든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작은 유리병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악마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에, 에스테님? 부르셨나요?”


급하게 달려오느라 숨이 차 힘들게 말을 꺼내는 모습이 영주님이 불렀을 때 달려가던 내 모습과 겹쳐 동정해버리고 말았다.


“아, 옆에 분은.......”


리아에스테가 함부로 대하는 걸 보면 하수인같은 악마인 걸까나.


“여긴 로제에스테님.”


“예? 로제에스테라면......”


“응, 맞아. 베스파로제님의 수계자셔.”


라는 말에 세스티라 불린 악마 또한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미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다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로제에스테님. 전 세르피리아님의 일곱 번째 수계자. 세스테라고해요. 리아세스테라 불러주시면 돼요.”


일곱 번째 수계자란 말에 나 역시 조금 놀라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외견으로만 봐서는 미녀악마나 내 앞 리아에스테랑은 너무도 달랐으니까.

푸른 단발머리에 리아에스테에 비하면 작은 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 조금 부끄럽지만, 조금 빈약한 몸매가....... 아, 이건 미녀악마와 리아에스테의 인상이 너무도 커서.......


“.......”


나는 대체 누구한테 변명을 하는 건지. 왠지 변태가 된 기분이다.


“로제에스테님께 론니악 안내를 부탁할게. 난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아, 네!”


“그럼 전 이만.”


리아에스테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해 보이곤 나를 슬쩍 올려다 본 뒤 바로 사라져 버렸다.

마치 폭풍과도 같았던 악마였다.......


“저....... 로제에스테님?”


“으, 으응?”


“제가 지금 심부름을 하는 중이라....... 일단 연구실까지 가면서 안내를 해드릴게요.”



.

.

.



“하나 궁금한 게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 걷고 있는 곳은 론니악 가운데 위치한 거성의 안.

기괴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안은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벽에 달린 밝은 빛을 내는 구슬들로 인해 꽤나 우아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예, 로제에스테님.”


저 로제에스테라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어색하다.


“왜 나한테 경어를 쓰는 거야?”


리아세스테는 뭔가 다른 악마와는 다르게 대하기가 편해 좋은 것 같다.

겉모습이 쌘 악마들만 만나서 그랬던 걸까,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했으니까.

게다가 뭔가 허둥대는 인상이....... 몇 되지는 않지만 내가 봐왔던 다른 악마들과는 느낌이 사뭇 달라 호감이 간다.


“로제에스테님이 베스파로제님의 수계자시니까요. 제 수계주인 세르피리아님은 서열 10위. 베스파로제님은 서열3위시기에 로제에스테님은 저보다 상위 서열이 되시는 거라 이해하시면 돼요.


이렇게 친절하고 말이다.

정말 악마라는 게 믿기질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악마. 그런 거 아닐까?


“사실 전 각성하고 수계자로 들어 온지 얼마 안돼서요. 아직 경어에 익숙지가 않아서....... 가끔 실수를 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하며 지어보이는 미소는 말 그대로 천사다.

아, 물론 악마인건 나도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상대적으로.


“나, 나한테는 말 놔도 괜찮아! 나도 각성한건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니까.”


“하지만 론니악의 규칙이.......”


“그럼 둘만 있을 때만 말을 놓는 건 어때. 사실 나도 경어를 받는 게 너무 어색해서 그래.”


이건 진심이다.

평생을 야야 소리만 듣고 살아왔던지라 도무지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럼....... 그럴까? 정말 괜찮아?”


“응, 내가 그게 편해서 그래.”


“휴, 다행이다. 사실 아직도 경어 때문에 에스테님께 혼나곤 하거든......”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에 공감이 돼 코끝이 찡해졌다.

나도 말실수를 할까봐 걱정이 앞서 영주님이 말만 걸어와도 심장이 터져버릴 듯 뛰곤 했었으니까.


“아, 이쪽이 연구실이야.”


잠깐, 그러고 보니 리아에스테는 나한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썼는데.......

뭐, 그건 개인의 성격이라는 거겠지.

게다가 사실 나도 내가 그렇게 높여 불러 주고 싶게 생기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괜스레 침울해진다


“리아세스테가 데모테르님께 전해드릴 물건이 있어 왔습니다.”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그 사이로 회색 연기가 빠져나오며 동시에 강한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무, 무슨 냄새지? 계란 썩는 냄새? 아니 그보다 심......


“오오, 드디어 왔구나.”


문틈 사이로 들려온 가래 끓는 목소리.

이내 연기 뒤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지더니 그 사이를 지나 걸어 나온 것은....... 난쟁이?


“너는....... 그래, 세르피리아의 세스테. 맞느냐?”


하며 뒤집어쓴 로브를 뒤로 젖힌 난쟁이 악마의 얼굴은 끔찍하게 곪아 부풀어 있어....... 놀란 마음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쪽은.......”


“베스파로제님의 에스테입니다.”


“호오, 베스파로제님이........”


고름에 눌려 찌그러진 한쪽 눈을 억지로 뜨며 그 악마는 내게 눈을 맞췄다.


“인사하도록 하지. 서열 9위. 역병의 악마. 데모테르라고 하네.”


하고 내민 악마의 손을 조금 고민하다 오른팔을 뻗어 받았다.

자, 잠깐. 뭔가 물컹한 것이.......


“음? 너.......”


하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악마의 눈이 왠지 마음이 읽는 것 같아 소름끼쳐 고개를 돌려 피해버렸다.


“끌끌, 아닐세. 아니야. 요즘 마신님이 싱글벙글 웃고 계신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가는 군.”


하고 악마가 손을 놓자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오른손과 악마의 손 사이에 알 수 없는 점액이.......


“지금은 실험중이니 약병들은 그 앞에 놓고 가거라.”


손을 들어보니 손바닥에 알 수 없는 녹색점액이 점칠 되어 있었다.

팔목을 따라 흘러내린 점액이 바닥에 떨어지자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른팔로 악수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왼팔로 받았다면.......


“가시죠, 로제에스테님. 이번에는 다른 곳을 안내해 드릴게요.”


리아세스테가 문을 닫기가 무섭게 연구실 옆 벽에 오른손을 문질러 점액을 닦아냈다.

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인간냄새가 진동해 와 보았더니만....... 누구지?”


“이, 이스에스테님?”


갑자기 허리 굽혀 인사하는 리아세스테의 움직임에 당황해 돌아본 곳에는.......


“인사를 할 시간이 있으면 물어본 말에 대답해라.”


“죄, 죄송합니....... 꺅!”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리아세스테를 걷어차고 돌아선 녀석의 발 뒤로 남은 저것은 분명 어둠이다.

눈코입귀 아무것도 없는 저 녀석의 얼굴도.......


“너는 됐다. 직접 물어보도록 하지.”


.......어둠이다.


“너,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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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7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6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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