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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찬
작품등록일 :
2018.04.1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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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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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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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DUMMY

구중궁궐이 산을 뒷배로 자리하고 있고 그 주위로 끝도 없는 기와지붕이 이어져 있다.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비단옷을 나풀거리며 돌아다니고 금, 은이 건네진다.


활기가 가득한 저잣거리엔 온갖 먹 거리가 늘어져 사람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저마다 달콤한 간식거리에 환한 웃음을 입에 베어 문다.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거리에 초로에 들어선 남성이 작은 아이를 안고 걸어간다.


거친 삼베옷 차림에도 깔끔히 올려 묶은 머리와 잘 정돈된 수염, 깨끗하게 다려진 옷가지에서 범상치 않은 사람임을 알렸다.

가벼운 봇짐을 메고 한 손엔 아이를 반대편 손엔 낡은 검 한 자루를 들었다. 번잡한 거리를 지남에도 그는 누구와도 부딪히는 일없이 유유자적 자신의 길을 걸었다.

노인은 특별히 사람을 피해 다니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의 앞길을 비켜주는 듯 자연스런 전진이었다.


화려하기만 한 도성에 홀로 흰 삼베 입은 노인은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누구도 노인을 알아채지 못했다.


노인은 느릿하게 걸어 도성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눈앞의 대문을 넘으면 육십 여년의 도성생활이 끝이 난다. 혈기왕성할 때에 이 문으로 들어와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죽을 고비도 여럿 넘겼고 나라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이 황도를 호령하며 지내던 과거를 떠올리다가 이내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과거의 찬란함은 지나간 미련일 뿐이다.

지금 이 문을 나서는 사람은 칼 한 자루가 재산의 전부인 늙은이일 뿐이다.



노인이 황도의 동쪽문인 홍원문(虹源門)을 지나자 그곳을 지키는 군사들이 모두 나와 머리를 숙였다.

평소엔 두 명의 문지기만이 지나가는 행인을 감시할 뿐이지만 오늘은 황도경비를 담당하는 중앙군의 대장군 김영희와 예하 사대문의 장군들이 모두 나와 노인을 배웅하였다.

침묵한 채 고개를 숙인 수 백 군세는 장엄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홍원문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기운에 짓눌려 구석에 가만히 서있었다.

한(韓)의 군대는 조용히 스승을 떠나보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진 장수들이었다.

가히 나라의 모든 장수들이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연 저 노인이 어떤 존재이기에 나라의 모든 장수들을 모을 수 있었는가.


쓸쓸하게 수도를 떠나는 저 노인은 한때 한(韓)나라 군대의 최 정점에 있던 무장이었다. 황제를 제외하면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능력자였다.


모든 것을 가졌던 그는 품속의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길이었다.

정확히는 그 이유가 아니었지만 알려지기를 그것으로 알려졌다. 황가의 명령을 거부하고 아이를 지킨 대가로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과거 그의 전공을 감안해 황도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그 벌을 다했다.

그는 이제 나라의 대원수가 아니라 일개 노인일 뿐이다.

한 때 그를 따르던 장수들은 그들의 지휘자를 위해 홍원문에 모였다. 황제의 엄명으로 누구도 그와 말을 섞지도 예를 표하지도 못하였어야 하지만 대장군 김영희는 그의 스승을 위해 기꺼이 고개를 숙였다.

이 소식이 황가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화를 면치 못할 테지만 노인을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송별했다는 것만으로 벌을 내린다면 이 자리에 모인 장수들의 불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황가라도 군벌의 힘을 함부로 무시할 순 없었다.


만일 지금 저렇게 떠나가는 노인이 순순히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면 홍원문의 장수들은 군세를 이끌고 황궁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


한나라의 상장군 신승검은 일개 병사로 시작해 전장에서 공을 세워 상장군까지 오른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15세에 군역에 들어섰는데 그때부터 이미 대적할 적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상대보다 빠르고 강했으며 지혜로웠다.


그는 부하를 이끄는데 있어서도 출중한 능력을 보였으며 나라를 여러 번 구하기도 했다. 명백한 나라의 영웅이었다.

그를 시기한 문관귀족들이 황제를 움직여 그를 사지로 보내더라도 그는 오히려 흔쾌히 나가 적장의 목을 가지고 당당히 돌아왔다.

그렇게 그는 한나라 최고의 장수가 되었고 황제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지고한 존재가 되었다.


황제는 더 이상 그를 움직일 명분이 없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곁에 둘 수 있었다.

부하들의 무한한 신뢰와 황제의 총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을 누리지 않았다. 관복을 입고 정치 질을 하기보단 갑옷을 걸치고 나라를 지키는데 힘썼다.

후학을 양성하고 무예를 다듬으며 그는 세 명의 황제를 모셨다.


나라를 지키고 정세를 단단히 했던 선무제를 거쳐 영토를 확장한 광영제 그리고 지금의 황제인 왕휘까지 세 황제를 모셔왔다.

그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은퇴를 하려 했지만 광영제의 간곡한 부탁으로 현 황제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국정에 참석하여 황제의 의견에 동조할 뿐이다. 비록 상장군의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였다.


신승검은 선황제의 부탁으로 관직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깔끔하게 은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어야 했다. 아니면 여전히 군대를 손에 쥐고 있었거나.

황제의 외척들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민씨 일가는 권력을 잡기 위해 문관들과 손잡고 무관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당연히 무관들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신승검이 필히 없어져야 했다. 하여 그들은 계략을 꾸몄다.

신승검은 애초에 계획에서 제외였다. 그는 함정에 빠질 위인도 아니었고 직접 역모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죄를 추궁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죄를 물기 전에 성공하리라. 결국 그를 잡을 방법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직접 건드리기엔 문인들의 담이 충분치 못했다.


그들은 저 멀리부터 차례차례 계획을 실행했다.

신승검의 자식들과 닿아있는 사람에게 죄를 만든다. 상장군이던 그의 지위를 이용해 신가와 일하던 사람들이 군납비리를 저질렀다고 모함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신씨일가에 책임전가 했다.

신승검은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한 만큼 철저한 단죄를 내렸다. 대상이 가족이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지방으로 유배를 보내고 나라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었다. 스스로 손발을 잘라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나라에 대한 부채의식을 건드려 국경에 자원하게 만들었다.


민씨 일가는 북쪽의 오랑캐에 물자를 지원해 강한 압박을 하게하고 신승검을 구슬려 지원 보냈다.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과 자신의 가족으로 인해 나라에 피해를 끼쳤다는 죄의식에 그는 노구를 이끌고 북방으로 나갔다.

그를 보좌해주던 가솔들도 없고 무관의 힘은 극도로 약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신승검 또한 황도에 없으니 문관들의 세상이 만들어졌다.


신승검이 변방에서 오랑캐들과 싸우며 자식들의 죄를 갚아나가는 동안 선대황제의 둘째부인이자 신승검의 손녀를 역모로 몰아 사약을 내렸다.

신승검은 그 소식을 들은 즉시 황도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의 손녀는 죽은 뒤였다. 어린 황제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저 외척들의 계획대로 끌려 다니는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신승검은 손녀의 죽음에 분노했고 배후를 잡아 죽이려 했다.

비록 늙었지만 그에겐 아직 수 백 명을 뚫고 문관들을 찢어죽일 능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결국 신승검이 칼을 들고 궐에 쳐들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모는 나라법상 구족을 멸하는 중죄중의 중죄였다. 민씨는 신속히 신승검의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던 관직들을 모두 파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이미 집안을 인질로 잡은 후였다.


신승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전국 곳곳에 인질이 잡혀 있었고 그는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알지만 복수를 할 수가 없다.

민씨일가와 합의를 했다. 자신이 유배를 가는 대신 가족들은 풀어주기로.

그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스스로 황도를 떠나 잠적한다는데 무리하게 압박해서 일을 그르칠 필요는 없다. 신승검이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자신들의 권력은 물론 나라가 망할 수도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장애물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몰래 신승검을 죽이고 싶었지만 지금 그를 죽이게 된다면 무관들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 당장은 얌전히 보내주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역모의 원흉으로 지목된 아이를 데리고 그가 한평생을 바쳤던 황도를 떠난다. 그에겐 증손자였다.

그의 손녀가 이 아이를 황제로 만들려 했다고 한다. 손녀는 권력에 욕심이 없었다. 승하한 선황제를 사랑했던 마음씨고운 아이였다. 방실방실 웃고 있는 이 자그마한 아이는 황제란 자리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 작고 가여운 아이에게 그들은 더럽고 추잡한 음모를 뒤집어 씌웠다.

나를 끌어내리기 위한 희생양이었다. 나 때문에 손녀가 죽었다.


지금도 화가 치밀지만 화는 가슴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다.

앞으로 평생을 타는 울분을 품고 살아가야 하리라. 아무리 강한 무력과 인망을 가졌더라도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배경의 무협소설 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차용하였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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