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세우다.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퓨전

느루찬
작품등록일 :
2018.04.10 18:33
최근연재일 :
2018.05.30 23:43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38,610
추천수 :
334
글자수 :
178,346

작성
18.04.24 18:42
조회
937
추천
9
글자
8쪽

12화

DUMMY

아라후와 카니스가 청수마을에 온지 한 달이 지났다. 아라후와 함께 있던 작은 새끼 늑대는 부모의 이름을 따라 카니스라 부르기로 했다.


두 아이는 마을 어른들의 사랑과 신승검의 정성을 받고 건강을 회복 했다. 푸석푸석하던 카니스의 진회색 털은 윤이 빤짝하는 은빛 털로 변모하였고 아라후는 살이 포동포동하게 올라 사랑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두 아이는 오늘도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처음엔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카니스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회복하고는 커가더니 이제는 아라후 보다 빠르게 뛰어다녔다.


아라후는 언제나 먼저 달려 나가 쫓기던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카니스를 쫓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듯 열심히 뛰어다녔다.


서로 누가 더 빠른지 내기라도 하듯 달리던 둘은 땅을 구르며 장난친다. 다섯 살의 아이 치곤 몸집이 작은 아라후지만 늑대부족의 핏줄 덕인지 카니스에 마냥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당을 이리저리 헤집는 두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신승검은 손자의 재롱을 바라보는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시원한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간간히 울리는 곳에 간간히 터져 나오는 아이의 웃음소리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런 평화의 공간에 눈에 띄게 탄탄해진 정립이 들어섰다.

“형아!”

컹컹-

“재밌게 놀고 있었어?”


세 아이들은 그야말로 형제가 되어 서로를 반겼다. 동생들을 안아주는 정립의 한 손에는 토끼가 들려 있었다.


한동안 수련의 일환으로 토끼잡기를 이어오고 있었다. 맨손으로 산토끼를 잡는 일은 매우 지난하여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는데 요즘은 매번 토끼를 잡아오는 정립이다.


정립이 토끼를 잡게 된 날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그날도 열심히 토끼를 쫒았는데 어느 순간 시간을 빨리 돌린 것처럼 순식간에 몸이 나아갔다.

홀린 듯이 움직인 정립은 손아귀에 토끼를 그러쥐었다.


순간 깨달은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하던 뜀박질의 과정에서 어떠한 예고도 없이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되었다.


처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정립은 신이나 온 산을 뛰어다녔다. 몸을 타고 흐르는 공기가 한 올 한 올 느껴지고 발을 옮기고 팔을 휘두르는데 거침이 없었다.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갑자기 빨라진 움직임을 머리는 따라오지 못했다.


몸은 눈에 잘 안보일 정도로 빠른데 머릿속은 그대로니 인식속도가 움직임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수없이 나무에 부딪쳤다.


거의 본능에 가깝게 장애물을 인식하고 겨우 반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그때부터는 다시 끊임없는 반복이었다. 동체시력을 키우고 순간적인 판단력을 육체에 맞게 끌어올렸다. 깨달음을 완벽히 이해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제는 과거와 비교해서 한순간에 몇 배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턴 토끼는 손쉬운 상대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었기에 이제는 복잡한 방법으로 토끼를 쫒는다. 멀리서부터 일부로 기척을 흘리거나 최단거리가 아닌 나무 사이를 돌아 나오면서 달렸다.


다만 이 움직임은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만큼 유지시간이 극히 짧았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을 늘리는데 집중했다. 언제고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하루하루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는데 재미가 붙은 정립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


“이제 움직이는 법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잘’ 움직이는 법을 배워볼까?”

“잘 움직이는 법?”

“그래, 다른 치들이 부르기에 무공이라 하는 것이란다.”

“무공이라면 땅을 가르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그거? 막 초식 같은 거 알려주는 거야?”

정립은 돌개 아저씨들이 보던 영웅소설의 내용을 떠올리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바라봤다.


“초식이라, 무공이니 초식이니 말만 그럴듯하게 부르는 것이지 실상은 잘 움직이는 법이란다.”

“그럼 매화검법이나 운룡대팔식, 태극혜검. 이런 거 없어?”

“뭐, 그네들끼리는 그런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듯하나, 네가 생각하는 무공과는 조금 다르지.”

“뭐야, 재미없어.”

“하핫, 그래 재미없지. 살아남기 위한 무공은 단순한 법이야.”

아직 어린 정립이다 보니 화려하게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 속 무공들에 대한 동경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 않다. 생존은 보다 처절하고 잔혹한 법이다.


“화산파니 무당파니 소림사같은 문파들이 나름의 무공을 내세우며 수련을 하곤 한다만 그 수련이 살상을 위한 수단이 아닐 뿐이란다. 책의 내용처럼 바위를 깨부수거나 산을 날아 넘지 못해.”

“무공은 악인을 처단하고 협을 실천하기 위한 무술이잖아. 당연히 강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들 무공의 기원은 내면의 성장을 위한 수련이란다. 남과 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어. 살상을 위한 실전무술이었다면 제국에 문파니 무가니 하는 집단들은 진작 황군에 의해 없어졌겠지.”

“그럼 할아버지가 알려주는 잘 움직이는 법은 뭐가 달라?”

“내가 알려줄 잘 움직이는 법은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란다. 가장 실용적이고 효과적인 생존법이자 공격법이지. 그래서 잘 움직이는 법이라 하는 거야. 무공처럼 예를 차리거나 형을 중시하는 등, 고결한 목적이 아니지.”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어.”

“설명해 주마, 문파들은 각자 신념을 따라 독특한 움직임으로 수련을 한단다. 정해진 보폭과 자세를 따르며 심신의 수련을 이루는 것이지. 흔히 초식이라고 부르는 형(形)을 익히며 그 안에 담긴 공부를 배우는 수단일 뿐이란다. 그 과정에서 내기가 생겨 고수의 면모를 풍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근원은 싸우기 위해 만든 움직임이 아니라는 소리지.”

신승검은 설명을 하며 찬찬히 움직였다.


칼을 흔들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신승검의 모습은 마치 춤추는 것과 같았다. 넓었다 좁아지는 보폭과 몸의 회전을 따라 흐르는 칼의 기운이 날카롭기 보다는 부드러움에 치중했다.

나비가 나는 듯 유려한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내가 전장을 떠돌 때 보았던 무공 중 하나다. 지방의 유명 무가였던 장가의 무공인데, 고요한 풀밭을 노닐던 하얀 나비를 보고 만든 무공이라고 하지. 이 무공은 유(流)를 받들며 내면을 가다듬는다. 살아가는데 있어 날카롭지 말고 부드럽게 살아라, 라는 공부(工夫)를 다잡기 위해 유를 형상화한 움직임이야. 호흡도 길고 거칠지 않아야 하며 발걸음의 높낮이도 일정하여 움직임이 항상 매끄러워야 한다. 오래 수련하면 그 초식을 따라 반응할 수 있겠으나 실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형에 집중한 형태다.”


세간에 떠도는 무공의 탄생은 살상에 맞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 물론 몸을 단련하니까 일반인보다야 강하겠지만 어디까지나 학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공이란 이런 것이다. 반면 전장의 싸움은 처절하고 효율적이다.


“적과 싸우는 중에 등을 보이면 안 된다. 가장 기본이지, 적과 대치하는 와중에 한가롭게 형을 신경 쓰며 몸을 돌리면 적은 옳다구나 하고 등에 칼을 찔러 넣을 것이다. 동작은 항상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이루어져야해.”

그의 공부를 알려주는 와중에도 신승검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언제고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몸을 가볍게 움직인다. 긴장한 상태로 집중 하느라 발을 가만히 두고 대비하다보면 갑작스런 상황에 몸이 굳어 반응이 느려진다.

하여 신승검은 조금씩이라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대치를 한다.


“그것이 내가 알려줄 잘 움직이는 법이다. 싸우는데 형은 필요 없어. 그저 적보다 더 빠르게 적의 빈틈을 찾아 칼을 찔러 넣으면 그만이야.”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배경의 무협소설 입니다. 다양한 문화를 차용하였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바로 세우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5월 2~4 예비군 갑니다. 18.05.01 736 0 -
47 47화 18.05.30 548 2 12쪽
46 46화 18.05.30 547 3 12쪽
45 45화 18.05.29 533 2 11쪽
44 44화 18.05.25 568 5 9쪽
43 43화 18.05.24 858 5 9쪽
42 42화 18.05.23 567 3 10쪽
41 41화 18.05.22 557 5 12쪽
40 40화 18.05.21 589 5 11쪽
39 39화 18.05.19 586 5 7쪽
38 38화 18.05.18 612 5 9쪽
37 37화 18.05.18 586 5 10쪽
36 36화 18.05.18 587 5 9쪽
35 35화 18.05.18 641 6 9쪽
34 34화 18.05.18 718 5 9쪽
33 33화 18.05.17 658 5 9쪽
32 32화 18.05.16 688 6 10쪽
31 31화 18.05.16 819 6 9쪽
30 30화 18.05.16 690 6 9쪽
29 29화 18.05.16 719 5 8쪽
28 28화 18.05.15 691 5 9쪽
27 27화 18.05.14 837 5 9쪽
26 26화 18.05.13 722 4 8쪽
25 25화 18.05.12 779 7 8쪽
24 24화 18.05.11 750 6 8쪽
23 23화 18.05.10 764 7 9쪽
22 22화 18.05.09 1,063 5 8쪽
21 21화 18.05.08 813 5 7쪽
20 20화 18.05.07 777 6 7쪽
19 19화 18.05.06 792 9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