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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십자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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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me
작품등록일 :
2018.04.14 10:53
최근연재일 :
2018.12.0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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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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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화

DUMMY

서울 모처. 정·재계 고위 인사들이 무리지어 사는 동네.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왜건이 한대 도착한다.

열려있는 차고에 차를 주차하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 얼굴을 잔뜩 찡그린 진율이다.


진율은 오늘 아침부터 준비하느라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아 있다. 차도 하도 막혀서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진율은 정문으로 걸어가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잠시 뒤 들려온 어린 여성의 목소리.


"빨리 열어."


차고 문을 열어달라고 미리 전화했었다. 진율이 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당연하다.

인터폰 너머에서 혀 차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진율은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통과한다.

장식들로 가득한 현관에서 구두를 벗어 신발장에 올린다. 현관과 거실 사이에도 문이 있다.

진율은 슬리퍼를 신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대리석 바닥, 천장에는 샹들리에, 최고급 소파와 탁자, 벽에 걸린 그림들.

2층과 1층을 연결하는 계단에는 한 여성이 난간에 기대어 손을 흔든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드레스를 차려입은 소녀. 정하율.


"오빠 안녕?"


진율은 하율의 복장을 보고 한숨을 쉰다.


"넌 뭘 입고 있는 거냐?"


"오빠도 양복 입고 있으면서."


"네가 입고 오라며."


진율은 평소라면 죽어도 입지 않을 양복을 입고 있다. 넥타이까지 확실하게.

넥타이가 답답한지 만지작거린다.


"아빠랑 새엄마는?"


진율은 거실의 소파에 앉는다. 하율도 계단을 내려와 진율의 옆에 앉는다.


"오빠는 아직도 엄마가 불편해?"


진율은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가 나왔다.


"회사 일 때문에 조금 걸릴 거래."


하율은 진율의 표정을 보고 말을 바꾼다. 진율의 표정은 풀리지 않는다.


"물이나 가져와."


하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진율은 천장을 바라본다.


"제기랄 이놈의 집구석은 진짜 싫다."


진율은 이 집에서 자라지 않았다. 진율이 살던 곳은 좀 더 평범했다.

진율이 이 집으로 오게 된 것은 10살 때, 친엄마가 죽고 3년 뒤다.


"물 마셔."


하율이 진율의 상념을 깨트린다. 진율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물을 들이켠다.


"학교는 잘 다니냐?"


"뭐. 그냥저냥."


남매는 별다른 말이 없다. 사실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는 사이다. 심지어 하율이 어렸을 때 진율은 집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렇다 보니 둘 사이는 가족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어색하다.

사이를 좁히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현관과 거실을 연결하는 문이 열린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과 하율과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

남성과 여성의 나이 차이가 상당한 것 같지만, 저들이 진율과 하율의 부모다.


"늦어! 늦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율은 소파에서 일어나 부모에게 달려간다. 진율도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가다듬는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진율의 어머니는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떡인다. 아버지에게는 다가가서 주먹을 부딪친다.


"얼굴 좀 비춰라."


"바쁘셔서 제 얼굴 보실 시간이나 있으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보고 입꼬리를 올린다.




운전대는 진율의 아버지 정상현이 잡는다. 조수석에는 아내 김미화가 뒷좌석에는 정진율, 하율 남매가 앉았다.


"기사 생활은 할만해?"


"어떻게든 하고 있지. 이번에 종자 새로 들어왔어."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식당으로 향한다.


"그. 진율아."


상현이 머뭇거리며 진율에게 말한다. 진율은 다음에 나올 말을 눈치채고 인상을 찡그린다.


"식당에 할아버지가 있을 거야."


"차 세워줘. 내리게. 내가 미쳤다고 영감을 만나?"


"정진율! 그래도 네 할아버지다!"


"그리고 엄마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지."


차 안에 침묵이 감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당사자인 진율과 상현뿐 아니라 미화와 하율도 침묵을 유지한다.

차는 적막을 실은 채 식당으로 향한다.


차는 주차 요원에게 맡기고 가족은 식당으로 들어간다.

진율이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했지만, 하율이 끌어당기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식당으로 들어간다.


상현이 입구의 종업원에게 말을 걸고 종업원은 가족을 안내한다.


천장에는 샹들리에, 바닥에는 융단 카펫. 종업원들은 다 정장을 입고 있다. 손님들도 드레스와 정장 차림뿐.


진율 가족은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백발의 노인이 앉아 있다. 순혈주의자의 수장 정철주. 진율의 할아버지.

진율은 그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린다.


"영감. 아직 안 죽었네?"


진율은 철주의 앞에 앉아 비웃음을 날린다.


"정진율!"


진율은 상현의 일갈을 무시한 채 철주를 바라본다. 철주 또한 진율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집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는 게냐?"


"내쫓을 때는 언제고?"


철주와 진율의 문답에 다른 가족은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철주는 진율의 눈을 바라보다 한숨을 쉰다.


"오늘은 싸우러 온 게 아니니 식사나 하고 가려무나."


진율은 이를 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둘의 싸움이 일단락된 것을 보고 다들 자리에 앉는다.


코스 요리가 차례대로 들어온다. 진율이 내뿜는 기운에 철주를 제외한 모두가 식사를 편히 하지 못한다.


두 시간에 걸친 코스요리가 종료되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신다.


"하율이 넌 학교생활 잘하느냐?"


"네. 이번에 전교 5등에 들어갔어요."


평범한 대화의 진행. 진율의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무시하며 철주는 대화를 진행해나간다.


"대학은 어떡할 게냐?"


"일단 알아보고 있어요."


"꼭 갈 필요는 없다. 어차피 결혼하면 다 의미 없어."


하율은 입을 다물고 진율은 식탁을 내려친다. 진율의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온다.


"영감. 그게 무슨 소리지?"


철주는 자신을 노려보는 진율을 바라본다.


"집안에 관련된 이야기다. 외부자인 네놈이 알 필요는 없어."


"알아야겠는데? 내 여동생이거든?"


진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철주의 옆으로 가서 어깨를 잡는다. 진율은 철주의 어깨를 으스러트릴 듯이 짓누른다.

철주는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다.


"뭐하는 짓이냐!"


반응을 한 것은 아버지 상현이다.


"아빠는 알고 있었어? 아니. 모르고 있어도 문제 아닌가?"


진율의 말에 상현은 말을 잇지 못한다. 미화와 하율은 식은땀을 흘리며 침묵할 뿐이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고 영감."


"혼담이 들어왔다."


"열여덟한테 혼담? 어떤 미친 새끼래?"


"네가 자세한 건 알 필요 없다!"


진율은 하율을 본다.


"넌 어쩔 거야?"


하율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빠는 할 말 없어?"


상현 또한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는? 하율이는 당신이 배 아파 낳은 자식입니다. 할 말 없으신가요?"


미화 또한 진율을 바라보지 못한다. 진율은 손으로 얼굴을 덮고 천장을 바라본다.


"내가 이래서 이 집안이 싫어."


진율은 잔뜩 구겨진 양복을 가다듬으며 문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본다.


"영감. 이 혼담 진행하기만 해봐. 나 아직 영감 비리목록 가지고 있거든?"


진율은 문을 소리나게 닫고 식당을 떠난다. 진율이 떠난 식당은 적막이 자리를 잡는다.




"아! 차 두고 왔네."


식당을 나선 진율은 자신의 왜건이 차고에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 한숨을 내쉰다.


"걸어가야지."


집까지는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걷는다면 꽤 오래 걸릴 거다.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를 걷는다. 잘 차려입은 벰파이어와 인간들.

차도에는 차들이 오가고, 사람들은 즐거운 듯 대화를 나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어서 집에 도착한 진율은 대문의 초인종을 누른다. 문은 지체없이 열린다.


진율은 현관에서 구두를 벗고 집안으로 들어간다. 거실에는 가족들이 소파에 앉아 진율을 기다린다.

원래는 바로 차를 타고 나가려고 했지만, 차고 문이 닫혀 있어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진율은 아버지 상현의 맞은편에 앉는다. 상현의 오른편에는 미화가 왼편에는 하율이 앉았다. 상현과 진율은 서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다.


그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하율이다.


"오빠. 할아버지 얘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가 거부하면 강하게 못 나오시니까."


"그래서 1년 전에 상견례 했냐?"


진율의 날카로운 말에 하율은 대답하지 못한다. 오른손으로 이마 붙잡고 눈을 감고 화를 삭인다.


"아빠도 문제야. 왜 거절을 못 해? 엄마랑 결혼하겠다고 집을 뛰쳐나온 사람이 자기 딸 결혼 훼방은 못 놓냐고."


상현은 입을 다물고 진율의 시선을 피한다. 진율의 눈은 어머니 미화를 향한다.


"어머니도 말입니다. 저희 아버지랑 사랑 없이 재혼한 것은 알고 있는데, 그래도 딸은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화는 고개를 숙인다. 진율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한다. 인터폰을 눌러 차고 문을 연다.


"영감한테 결혼 얘기 진행하면 작년 꼴 날 거라고 전해줘."


작년 이맘때. 정철주는 법적으로 혼인이 가능해진 나이가 된 하율을 판사와 결혼시키려고 했다.

하율이 용기 내서 진율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실제로 일어났을 일.


진율은 혼사를 막기 위해 기사단의 힘을 빌려 쓰기도 했다. 상견례 자리에 기사 신분으로 출동해서 마약 복용 혐의가 있던 판사를 반쯤 죽여놓았다.

그 후 이경에게 얻은 철주의 비리목록을 눈앞에 들이밀고 "영감. 매장당하기 싫으면 하율이한테 관심 꺼." 라는 말을 했다. 진율이 철주를 영감이라고 처음 불렀던 일이다.


"그 일 때문에 팀장이랑 말도 안 섞게 됐지."


진율은 대로로 차를 몰며 중얼거린다. 한 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도어락에 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간다. 불편한 구두를 벗어 신발장에 집어넣는다.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고 양복 차림으로 침대에 엎어진다.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 멈춰 있던 진율의 사고를 가동시킨다. 안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낸다.

발신자 백강원. '너 오늘 회장님이랑 만났지? 술 사줄게. 나와라.'


진율은 잽싸게 양복을 벗고 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검은 바지에 검은 후드티. 양말을 갈아신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전화로 강원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택시를 타고 강원이 있는 곳으로 간다.


시장 한편에 자리 잡은 실내 포차. 진율과 비슷하게 옷을 입은 강원이 손을 흔들며 진율을 반긴다.


"적당히 주문해 놨어."


진율은 자리에 플라스틱 의자에 앉자마자 강원이 따라놓은 소주잔을 들이킨다. 진율이 잔을 내려놓자 강원이 바로 다시 채워준다. 진율은 채워진 소주를 다시 위장에 붓는다.


"너 내가 영감이랑 만난 거 어떻게 알았냐?"


"인터넷에 떴어. '정철주 회장 혼혈 손자와 싸워.'"


강원은 진율에게 인터넷 기사를 보여준다. 진율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쉰다.


"진짜 싫다. 망할 기자들."


강원은 빈 잔에 다시 소주를 채워넣는다. 진율은 잔을 들어 술로 목을 축인다.


"참. 한 명 더 올 거다."


제육볶음이 나옴과 동시에 강원이 말한다.


"누구?"


"백하진."


진율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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