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19화
한동안 지휘를 담당하던 우라베 씨는 다시금 C조의 조장으로서 복귀하게 되었다. 사가네 아츠시의 상황 대처 능력은 아직 조장의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젊은 놈들!! 쉰 만큼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
겉으로 티를 낼만한 사람은 아니었다만, 우라베 씨도 나름대로 아쉬움 정도는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로 C조는 우라베 씨와 마야가 전방을, 그리고 후방 지원과 경계를 담당하는 나의 3인 1조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아츠시~슬슬 내려와. A조가 잡았대.’
오늘도 나는 활시위를 당겨보기는커녕, 건물 옥상에서 눈만 부릅뜬 채로 임무를 마쳤다.
최근 들어서는 신어로 인한 사고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악의를 품은 사람들의 범죄 행위가 아닌, 그저 기물 파손 수준의 사고가.
또한, 추후의 연쇄적인 사고 방지를 위해 검거당한 사람들은 어쩐 일인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힘을 얻게 되면서 악을 자처하던 부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내게 세상을 바꿀 힘이’라며 악을 자처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왜 내게 이런 힘이?’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어딜 봐도 그 정신 나간 여자의 장난질로밖에 보이지 않아.”
히라는 이를 스마 린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런 짓을 인위적으로 할 만한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는 두루뭉술한 증거뿐이었지만, 신빙성만큼은 여느 의견보다도 강했다.
“뭐야 그 개운치 않다는 표정은?”
“...아뇨~ 그냥 생각 좀 하느라.”
물론 모두가 그의 의견에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번 일은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까 적당히 어울려주는 척만 해.”
여담으로 그들은 모두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으나, 단번에 신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라는, 미경험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표현을 사용했다.
.
.
“저번에 꼬맹이가 말했던 거, 내가 보기엔 아니야.”
그때나 지금이나 마야의 개운치 못하다는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힘이 얼마나 뛰어나든 간에 인간의 위치에서 이뤄낼 수 없는 일이야.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잖아.”
“하하..마야 씨는 되게 열정적이시네요.”
복귀하는 길 내내 멈추지 않던 투덜거림은 퇴근 이후에도 이어졌다.
“발현 조건은 스트레스야, 그건 너도 아는 사실이고. 그런데 그 사람들을 봐봐.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처럼 보였어?”
“개개인의 편차는 있으니까요. 비교적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마야가 소리를 질러댄 탓에 지나가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나의 난감한 웃음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제 갈 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지 들어봐도 될까요?”
“후우...내가 생각해봐도 정신 나간 소리 같아서 두 번은 안 해줄 거야. 그러니 잘 들어.”
“네 네...아무렴요.”
주위를 둘러보는가 싶던 마야는 곧바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벤치로 나를 잡아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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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오늘도 붙잡혀버렸어.’
“또 또 헤벌린다.”
옆에서 볼을 지그시 눌러주기 전까지는 나 자신이 웃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누구야? 남자친구?”
“아니~ 아츠시.”
“사가네 아츠시?”
그녀는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는 듯 흠~하는 소리를 내었다. 지금처럼 머리카락을 괜히 귀 뒤로 쓸어 넘기거나, 팔짱을 낀 채로 걷는 것은 생각에 빠진 그녀에게서 종종 보이던 버릇이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차분하게 내려오는 밝은 색의 생머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칫 무서운 인상을 심어주기 쉬웠다. 하지만 귀여운 것을 만났을 때 튀어나오는 미소도 지을 줄 아는, 의외로 알맹이만큼은 부드러운 소녀다.
“걔 이름, 학교 그만두고는 처음 듣네.”
“아무래도 친한 아이들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아츠시는 정말 친구가 몇 없었네..”
맨날 노아 노아 거리기만 하던 아츠시였으니,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이 없는 일은 당연하다 할 수 있을지도.
괜히 다 받아줬나 싶기도 하네.
“친한 친구 하나만 있으면 된 거지. 괜히 나이 든 사람들이 그런 말 하는게 아니더라.”
“그치~치요는 가끔 보면 정말 어른다워서 좋아.”
“딱히 좋은지는 모르겠어. 남자애들은 무섭다고 말도 안 걸어오질 않나, 발렌타인 초콜릿은 전부 여자애들이 주질 않나.”
“그게...뭔가 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치요라서...하하”
입 밖에 꺼내진 않을 거지만, 사실 힘자랑에서는 치요 본인도 즐기는 모습을 보이고는 하니까.
“실제로 나보다 힘이 센 애들은 없을걸? 아니지 아냐, 확실히 없어. 이건 내가 장담해.”
“그렇구나~”
“뭐야 노아, 너 안 믿는 눈치잖아. 보여줄까?”
치요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가방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녀는 가방이 더러워지는 것쯤은 상관없다는 듯, 그것을 바닥에 툭 던져놓고는 소매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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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는 손가락을 브이 모양으로 펼쳐 보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발현하는 증상이 나타난 건 여태껏 두 번밖에 없었어. 먼저 17년 전에 불특정 다수의 랜서가 나타난 일. 지금의 배 튀어나온 늙은이 랜서들은 그때 일의 수혜자들이지.”
아마 어딘가의 원로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엄밀히 따지고 보면 나와 마야의 머나먼 상관쯤 되는 사람들을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에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태초의 신이 등장했을 때.”
그녀는 검지를 접어내렸다.
“뭐야, 놀라는게 정상 아니야?”
“그게...그냥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처럼 들려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닌데. 어딘가의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믿는 일은 마냥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잘 생각해봐. 태초의 신이 등장했을 시대의 사람들은 최초로 신어의 힘을 얻었어. 문구를 보면 ‘베풀었다’고 해놨으니, 사전에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것도 아니겠지.”
그녀의 얘기를 듣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었다.
“신의 등장, 그리고 신어 무상 제공. 둘의 연관성을 알겠어?”
“무상 제공이라니. 괜찮은 서비스네요.”
“시끄러. 어쨌든 연관성이 있는 일이야. 그런데 지금은 태초의 신이 사라졌다고 하잖아?”
“그렇다면 17년 전의 발현은 왜 일어난 걸까?”
[호오, 매서운 지적인걸?]
“만약 신이 ‘재등장’해서 생긴 일이라고 가정하면, 이번에 힘도 다룰 줄 모르는 발현자들이 줄줄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번에는 ‘목소리’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신이 또 한 번 등장했다. 그게 나의 결론이야.”
“그렇다면...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신은..”
“응, 아마도.”
한 명이 아닐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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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언제 돌아와?”
“글쎄, 당장은 모르겠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기면 돌아와야지.”
“흐음~ 그러면 ‘이건’ 내가 잘 맡아두고 있을게! 그런데 너무 오래 걸리면 내가 까먹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빨리 와야 해? 알았지?”
“걱정 마.”
너라면 어떻게든 알아차릴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이제 서로의 반쪽처럼 강하게 이어져 있거든.
.
.
이게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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