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역정(刺客歷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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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8.04.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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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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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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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잠입 2

DUMMY

63. 잠입


2


다음날 아침, 나는 서동만을 앞세우고 객잔을 나섰다. 이미 한 번 와봤던 곳이지만, 워낙 미로처럼 복잡한 곳이어서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서동만은 이전처럼 작은 보따리 하나를 챙겼다. 이틀 전처럼 어지러울 만큼 복잡한 골목을 돌고 돌아 오가대장간에 도착했다. 대장간은 전과 달리 시끄러웠다. 망치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왔느냐?”

서동만을 발견한 오 노인이 반색했다.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을 다 하세요?”

“허허, 장가네서 주문이 들어왔다. 그보다 가져온 거 있으면 얼른 내놔라.”

“치! 역시 저보다 이걸 더 기다렸군요. 자요.”

오 노인은 빼앗듯이 보따리를 받아들더니 잽싸게 풀어헤친 후 술잔을 채웠다.

“캬아! 좋구나.”

“그런데 아저씨가 주문한 건 다 만들었어요?”

“당연하지. 저쪽에 두었으니 살펴보시오.”

오 노인이 가리키는 곳에 보자기로 쌓인 길쭉한 물건이 놓여있었다. 풀어보니 내가 주문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있었다. 불과 이틀이란 시간동안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 정도 실력을 지니고도 왜 이런 궁벽한 곳에 사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제일 먼저 칼을 집어 들었다. 주문했던 대로 칼날의 길이가 50센티미터, 자루까지 포함하면 65센티미터의 중도이자 환도였다. 무게도 적당했고, 내 손에 맞춘 것처럼 쥐는 느낌도 딱 좋았다.

가볍게 휘둘러보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시범으로 마당 한쪽에 자란 관목을 베어보니 단면이 매끈했고, 날에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보검까지는 아니어도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좋군.

다음으로 30센티미터 길이의 단도 하나와 화살촉과 유사한 모양의 암기까지 살펴보았다. 어느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암기를 팔에 찰 수 있도록 가죽 띠까지 준비되어있었다.

“쓸 만하오?”

오 노인이 물었다.

“아주 좋군요.”

내 대답에 오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뭐랬어요. 이 도시 최고의 대장장이라고 했잖아요.”

서동만이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네 말대로구나.”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단도를 품에 갈무리하고 환도를 옆구리에 찬 후 12개의 암기를 가죽 띠에 꽂아 왼팔에 찼다. 착용감도 좋아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알아서 주시오.”

“에이, 또 그러신다.”

오 노인의 대답에 서동만이 끼어들었다.

“재료값에 수고비, 게다가 빠른 시간에 이토록 훌륭한 물건을 만들었으니 최소한······.”

“이 정도면 되겠는지요?”

나는 서동만의 말을 막으면서 가지고 있던 돈 모두를 꺼냈다.

“너무 많소.”

“아닙니다. 사실 이것도 부족하지요. 제가 가진 것이 이것뿐이어서 더 드릴 수 없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의 물건을 구하려면 내가 내민 돈의 서너 배는 필요할 것이다. 아니, 주문 생산한 것까지 감안하면 그 배가 든다 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옜다. 거간비다. 네 덕분에 오랜만에 목돈을 쥐게 됐구나.”

오 노인이 지폐 한 장을 서동만에게 내밀었다.

“헤헤, 제가 뭐 한 게 있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이 귀에 걸려서는 잽싸게 지폐를 낚아채는 서동만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여기서 일해 볼 생각 없느냐? 백가 놈 옆에서 주정꾼들을 상대하는 것보단 나을 거다. 너라면 나보다 더 뛰어난 대장장이가 될 수 있어.”

“아이고, 지금도 충분해요. 그런데 저 뜨거운 불 옆에서 힘들게 망치질하고 풀무질을 하라고요? 싫어요. 안 해요.”

오 노인이 진지하게 물었지만, 서동만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래도 한 번 생각해 보거라. 아무리 봐도 넌 대장장이의 천품을 타고 났어.”

“자꾸 그런 소리하면 다시는 안 올 거예요?”

“아니다. 아냐. 내 다시는 그런 소리 안 할 테니 자주 놀러오너라.”

오 노인이 아쉬운 눈빛으로 재차 권하다가 서동만의 공갈에 급히 손사래를 쳤다.

오 노인이 저러는 걸 보면 서동만에게 대장장이로서의 재질이 있는 모양이다.

“이만 갈게요.”

오 노인과 친 조손처럼 티격태격하던 서동만이 말했다.

“벌써 가려고?”

“오늘 흑사방으로 배달 가는 날이잖아요.”

“그렇구나. 조심해서 다녀와라. 자주 놀러오고.”

“예, 그럴 게요.”

“그럼.”

나는 목례를 하고 서동만의 뒤를 따랐다.

“뭐냐?”

판자촌을 벗어나자 서동만이 손을 내밀었다.

“수고비요.”

“무슨 수고비?”

“길 안내해줬잖아요.”

“못 줘.”

“왜요?”

“한 번 와봤던 길인데 무슨 길안내냐? 네가 없었어도 충분히 찾아올 수 있었다.”

“거짓말 마세요. 아까 보니까 갈림길에서 멈칫 하던데요?”

“아니다. 잠깐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런 거야. 게다가 거간비까지 챙기지 않았느냐?”

“그건 다르죠.”

“아무튼 못 준다.”

남은 돈 모두를 오 노인에게 건넸으니 주고 싶다 해도 줄 돈이 없었다.

“에이, 쪼잔 하기는······.”

“뭐?”

“아니에요. 전 객잔으로 갈 건데, 아저씬 어쩔 거예요?”

“산책이나 하고 갈 테니 먼저 가라.”

서동만과 헤어진 후 나는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수목이 우거진 작은 숲이 있었다. 그곳으로 발길을 한 나는 그럭저럭 몸을 움직일만한 공터를 발견했다.

산에서 유성우와 함께하는 동안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수련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새로 장만한 칼을 뽑아들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삼재육합도법과 벽파도법의 초식들을 연이어 펼쳐냈다. 과연 나무칼을 들고 펼칠 때와는 느낌이 달랐지만 이내 적응이 되었다. 이후 약간의 내공을 담아 다시 한 번 도법을 펼쳤다. 칼이 지나갈 때마다 작은 나무들이 가볍게 잘려나갔다. 초식의 흐름도 부드러웠고, 수발도 자유로웠다.

도법수련을 마치고 암기술에 대한 수련도 했다. 암기를 사용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십 수 년을 수련하고 실전을 통해 몸에 익은 것이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공이 높아지고 무공성취가 올라가면서 암기술도 한 단계 상승해있었다. 더구나 오 노인이 만든 암기는 이전에 내가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부엌칼이나 만들던 오 노인이 이토록 뛰어난 무기와 암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쩌면 그는 과거에 농기구나 부엌칼과 같은 생활도구가 아니라 무기를 만들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몸이 개운해졌다. 나는 상쾌해진 기분으로 숲을 빠져나왔다. 그 사이 해는 중천을 지나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흑사방에 잠입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걱정이나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비밀통로도 알고 있었고, 내 무공이 이전과 달리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도시의 4대 방파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내가 상대할 자들은 세 방주를 제외하면 죄다 건달패두목에 불과하니 걱정하거나 불안해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호랑이가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고수라도 상대를 얕보았다간 크게 경을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객잔에 돌아온 나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배를 채운 후에 해가 지길 기다리며 방에서 쉬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나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채비를 한 후에 방을 나섰다. 객잔에선 벌써부터 술꾼들이 모여들어 왁자하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가볼까?

그때였다.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의 주인공은 서동만이었다.

한창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어야할 녀석이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무슨 일이냐?”

“제게 빚진 거 아시죠? 꼭 갚으셔야 해요. 알았죠?”

빚쟁이처럼 말하는 것과 달리 서동만은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그토록 집요하게 흑사방에 관해 묻고 파고들었으니 이 영악한 녀석이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물론 진짜 목적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 잊지 않았다. 꼭 갚을 테니 걱정마라.”

나는 잠시 서동만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나중에 보자꾸나.”

서동만의 배웅을 받으며 객잔을 나선 나는 마침 정차한 합승마차에 올랐다. 어제 두 곳의 비밀통로를 확인한 후 객잔과 가까운 공원의 통로를 이용할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처음의 생각대로 강 건너 사당을 통해 잠입하기로 했다. 가까운 통로를 이용하면 시간적인 이득을 볼 수 있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30여 분 후, 나는 마차에서 내려 사원으로 들어갔다. 크기도 큰데다 오가는 사람도 없었고, 쇠락한 구도심이라 그런지 인근에 밝혀진 불빛도 많지 않았다. 거기에 그믐이라 달도 뜨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수고 없이 손쉽게 잠입할 수 있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사당으로 가서 주변을 살핀 후에 신상 뒤쪽에 난 입구를 통해 지하통로로 들어섰다.

왠지 설레는데?

오랜만에 하는 것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기되는 것을 느꼈다.

진정하자. 이래선 마치 내가 살인귀라도 된 것 같잖아.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한 번 와본 곳이기 때문에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약 40여 분이 지나 나는 어제처럼 벽 너머의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구멍을 통해 안쪽을 살펴보니 아직 불이 밝혀지지 않았다.

시간은 밤 9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서동만의 말에 따르면, 결산은 보통 9시 경에 열린다고 했으니 곧 두목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나는 밀실의 구조를 감안하여 어떤 식으로 공격해나갈 것인지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9시를 넘어 10시가 다 되도록 누구 하나 모습을 드러내기는커녕 인기척조차 나지 않았다.

뭐야? 오늘이 아닌가? 이러면 곤란한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떤 이유로 오늘 결산이 열리지 않거나 연기되었다면 손쉽게 일을 처리하려 했던 것이 수포가 되고 말 것이었다.

계획대로 오늘 일을 치르고 내일 새벽 떠나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만약 오늘 결산이 없고, 며칠 미뤄지거나 또는 아예 다음으로 연기되었다면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준비해야 할 것도 늘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시간제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시라도 빨리 본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라도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아냐, 조금 늦어지는 걸 거야. 일단 기다려보자. 제발! 어서 나타나라, 이놈들아!

나는 안달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자정이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오늘 결산은 없는 모양이군. 결국 하나하나 찾아가야 한다는 말이로군. 제기랄!

그렇게 짜증이 치밀어 올랐을 때였다. 미미한 소음이 들려오며 고대하던 인기척이 느껴졌다.

좆같은 새끼들! 이왕 올 거면 빨리 좀 올 것이지. 날 애타게 만들어? 오냐! 곱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 이 썩을 놈들아!

나는 칼자루를 쥐며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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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67. 위기 19.01.12 1,558 19 13쪽
134 66. 도둑의 사정 2 19.01.09 1,472 20 10쪽
133 66. 도둑의 사정 1 19.01.07 1,484 20 15쪽
132 65. 희락교 7 +2 19.01.03 1,493 20 15쪽
131 65. 희락교 6 18.12.31 1,488 19 11쪽
130 65. 희락교 5 18.12.28 1,563 19 15쪽
129 65. 희락교 4 18.12.26 1,585 18 12쪽
128 65. 희락교 3 18.12.24 1,604 23 17쪽
127 65. 희락교 2 18.12.21 1,569 18 16쪽
126 65. 희락교 1 18.12.19 1,633 17 12쪽
125 64. 임무복귀 2 18.12.03 1,775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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