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역정(刺客歷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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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악천후]
작품등록일 :
2018.04.16 19:45
최근연재일 :
2019.03.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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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0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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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도둑의 사정 2

DUMMY

66. 도둑의 사정


2


“요즘 들어서 아빠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나이는 계속 먹어 가는데 혼인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매우 불안하신가 봐요. 게다가 선 자리도 자꾸 들어오는데 마냥 거절하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엄마 없이 홀로 나를 키우신 아빠를 생각하면 불효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아요.”

심아연이 하소연했다.

“힘들게 했군. 하지만 연판장 문제도 있고, 이것저것 해결해야 할 것들이 쌓이다보니 당신 생각을 못했어. 미안해.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남자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알아요. 당신도 많이 힘들겠죠. 그럴 게요. 여태 기다렸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게 뭐 힘들겠어요. 하지만 너무 기다리게 하진 마세요. 당신만 바라보며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는 날 좀 생각해줘요.”

“그럴게.”

남자의 사과에 심아연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다. 남자가 다시 심아연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또? 아주 그냥 자리를 깔아라. 깔아.

나도 모르게 심통이 났다.

“그런데······ 그녀는 어때요? 많이 당황해하죠? 아니면 화를 내던가요?”

입맞춤으로 다시 한 번 얼굴이 상기되었던 심아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녀? 누굴 말하는 거지?

심아연이 물음에 남자가 다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러니까 그게······.”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니 뭔지는 모르지만 심아연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서, 설마? 아직 말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 거예요?”

남자의 난감해하는 모습을 본 심아연의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게 말이야······.”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저, 정말 말하지 않은 거예요?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떻게 아직까지 말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심아연이 화난 표정으로 추궁하듯 물었다.

“미안해. 앞서도 말했지만 요즘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다보니 아직 말하지 못했어. 곧 말할 거야.”

남자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심아연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심아연은 남자의 손길을 거부했다. 남자의 손이 허공에 멈춘 채로 갈 길을 잃고 어색해했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다니······.”

심아연이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데요? 당신과 함께할 거란 믿음 때문이에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부인에게 말하지 않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심아연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어느새 그녀의 크고 아름다운 눈망울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부, 부인? 그, 그럼 저 자식은 유부남이란 소리잖아? 그럼 뭐야? 부, 불륜이었어? 허! 그것 참······.

나는 심아연의 말을 듣고는 무척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 곧 말할 거야. 그러니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혹시 부인과 헤어질 생각이 없는 거 아니에요?”

심아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렇지 않아.”

남자가 말했다. 그러나 심아연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 굳어져있었다.

“그 말 진심이에요? 못 믿겠어요. 그녀는 호교부원장의 딸이잖아요. 당신의 출세를 위해서라면 한낱 제기상회의 딸인 나보다 호교부원장의 딸이 더 귀중한 존재 아니에요? 나는 그저 이용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척 하는 거 아니에요?”

심아연이 신랄하게 남자를 몰아세웠다.

“아냐! 절대 그렇지 않아.”

남자가 거칠게 도리질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오직 당신뿐이야. 그녀와 혼인한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야. 그저 아버님과 가문의 결정에 따른 것뿐이야.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이야. 믿어줘. 내 눈을 봐. 이건 진심이야. 난 당신만을 사랑해!”

남자가 심아연을 똑바로 쳐다보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 때문일까? 심아연의 낯빛이 조금은 풀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감정을 지우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남자의 눈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뭐,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누군가는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고,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도 말하지만,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법이다. 남자의 눈빛은 진지하고 진심이 담겨있었지만, 진짜 속마음이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흑······!”

심아연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엔 변함이 없어. 내겐 오직 당신뿐이야.”

남자가 심아연을 안았다. 그러나 심아연은 몸부림을 치며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남자가 더욱 강하게 끌어안자 못 이기는 척 남자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지금 아내와 헤어지려하면 내 입지에도 문제가 생기고, 저들에게도 빌미를 줄 수 있어. 일단 연판장 문제만 해결되면 곧바로 아내에게 말하고 헤어질 거야. 그 다음에 당신에게 청혼할 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심아연을 품에 안은 남자가 나직하지만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달랬다.

“알아요. 알지만······. 너무 힘들어요. 당신이 그녀와 함께 있는 걸 보는 것도 그렇고, 그녀와 한 침상에서 잠든다는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단 말이에요.”

심아연은 울먹이면서 투정했다.

“당신을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허! 그것 참······.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유부남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이토록 위험한 일에 가담하게 된 것일 줄이야. 심재원이 이를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유부남과의 사랑이라······. 쯧! 너도 참 어려운 사랑을 하는구나.

심아연이 조금 안쓰럽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화딱지가 났다.

염병할! 어떤 놈은 아내를 두고도 저리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는데······. 씹할! 난 그동안 뭐한 거지?

문득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

제기랄!

속이 쓰렸다. 하지만 속 쓰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는 어때? 요즘도 귀찮게 해?”

그 자는 또 누구야?

이젠 또 무슨 소리가 나와 나를 놀라게 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누구요?”

“왜 있잖아. 상회에 새로 들어온 자 말이야. 당신 정체를 들켰다고 했잖아.”

응? 그 자라는 게 날 말하는 거였어?

“흥! 그 작자 얘기는 왜 하는 거예요?”

심아연이 입을 삐죽이며 눈을 흘겼다.

“많이 귀찮게 하는 모양이지?”

“정말 짜증나 죽겠어요. 보기만 하면 저급하게 농이나 걸면서 어찌나 사람 속을 긁어대는지······. 정말 음흉한 변태에요.”

뭐, 뭐라고? 으, 으, 음흉한······ 벼, 변태?

충격적이었다. 음흉한 것도 모자라 변태라니······. 내 생전 이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이런 취급을 당한 적도 맹세코 처음이었다.

젠장! 수작질이라도 부려보고 그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겨우 농 짓거리 몇 번 한 것뿐인데······. 뭐? 음흉한 변태?

화가 나기보다는 마치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지들은 기껏 불륜이나 저지르는 주제에 나한테 뭐? 이 잡것들을 그냥······!

“하하하, 그게 다 당신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그런 거 아니겠어?”

내 마음이야 어떠하든 남자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남자의 모습을 심아연이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원망하고 서운해 하면서 신랄하게 몰아세우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애정이 듬뿍 담긴 모습으로 남자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다시금 속이 쓰렸다.

“꼴에 보는 눈은 있어서······. 하지만 정말 불편해요. 그 음흉한 눈길하며 추잡스러운 웃음까지······. 정말 소름끼쳐요.”

심아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 소름끼친다고?

심아연의 말이 계속될수록 내 충격은 가속되었다. 겨우 몇 번 농 좀 걸었기로서니 음흉한 변태에다 소름끼친다는 말까지 듣고 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죽여 버릴까?”

남자가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차가운 음성이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죽여? 이 자식이······.

“내버려둬요.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에 괜한 일을 벌일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앞으로 만날 일 없으니까 신경 쓸 필요도 없어요.”

“하지만 당신 정체를 알고 있다고 했잖아. 나중에 우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흥! 그래봤자 하찮은 작자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오히려 상회 직원을 건드렸다가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어요. 안 그래도 요즘 절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에서 일하는 직원이 살해당하기라도 해봐요.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이곳 사람도 아니고 뜨내기라고 했잖아. 소리 없이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을 걸?”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 게요. 이제 그 작자 얘기는 그만해요. 생각만 해도 짜증나요.”

“그래, 알았어. 그 문젠 당신에게 맡길 게. 이리와.”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열정적으로 부둥켜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이런 썅! 저것들을 확 베어버려?

나도 모르게 칼자루에 손이 갔다.

그때였다.

응? 누구지?

사당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둘이 아니었다.

넷? 아니 다섯이다.

아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지만, 내 예민한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남자와 심아연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물고 빨고 지랄염병을 해대는 상황에서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 없었다.

인기척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다 사당 근처에 다다라서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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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69. 거래 +2 19.01.18 1,506 23 18쪽
136 68. 구원 19.01.15 1,456 19 13쪽
135 67. 위기 19.01.12 1,558 19 13쪽
» 66. 도둑의 사정 2 19.01.09 1,472 20 10쪽
133 66. 도둑의 사정 1 19.01.07 1,484 20 15쪽
132 65. 희락교 7 +2 19.01.03 1,493 20 15쪽
131 65. 희락교 6 18.12.31 1,488 19 11쪽
130 65. 희락교 5 18.12.28 1,563 19 15쪽
129 65. 희락교 4 18.12.26 1,585 18 12쪽
128 65. 희락교 3 18.12.24 1,604 23 17쪽
127 65. 희락교 2 18.12.21 1,569 18 16쪽
126 65. 희락교 1 18.12.19 1,633 17 12쪽
125 64. 임무복귀 2 18.12.03 1,775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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