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바이러스
거제도 슈퍼 일 층.
좀비는 없지만 해골은 꽤 많은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무리를 지어 창고를 습격한 후 일부 해골이 흩어진 것 같다. 해골이 달리는 속도는 일반인의 빠른 걸음보다 조금 느렸다. 포위만 당하지 않으면 위험할 일이 없다.
신기는 해골 한 마리를 가볍게 처리했다. 오른손으로 찌르고 왼손으로 내려치면 끝이다. 다른 둘은 협력해서 더욱 안전하게 해골을 처리했다. 한 명이 앞에서 주의를 끌며 공격하는 시늉을 하고 다른 한 명이 뒤에서 내리쳤다. 해골은 눈앞의 상대에게 집중하면 뒤에서 접근하는 사람을 완전히 놓치는 듯했다.
최대한 해골을 깨끗이 정리했다. 기동력이 생명이니 해골이 가로막고 있는 길들을 되도록 많이 뚫어놓았다. 좀비라도 만나면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전장을 넓게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신기와 두 남자는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웃기는데 웃지 못하겠네."
지하에서 올라오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에 좀비 한 마리가 있다. 좀비는 위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려 했다. 밑으로 내려가다 넘어지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다시 위로 올라온다. 겨우 일어서면 다시 내려가다가 넘어지고 또 위로 올라왔다.
"여기 발목 높이로 끈을 묶은 후 유인해 넘어뜨리고 지하로 내려가죠."
끈을 몇 겹으로 해서 발목 높이의 함정을 만들었다. 신기는 아예 진열대를 넘어뜨려서 좀비를 깔아놓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두 남자는 소리를 듣고 좀비나 해골이 올 수도 있다며 진열대를 넘어뜨리는 걸 반대했다.
"대신 저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죠. 좀비가 쫓아와도 에스컬레이터에 넘어질 겁니다."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무릎 정도 높이로 하나 더 묶었다. 혹시나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다. 준비가 끝나자 신기는 좀비를 향해 손에 잡히는 물건을 마구 던졌다. 좀비가 돌아서자 신기는 뒤돌아 뛰었다. 밧줄이 있는 곳을 훌쩍 뛰어넘은 후 좀비가 돌진하기를 기다렸다.
3미터 정도 거리가 되자 좀비는 돌진했다. 좀비의 두 팔이 뒤로 살짝 향하자 신기는 바로 옆으로 피했다. 예상대로 좀비는 밧줄에 걸려 넘어졌다. 셋은 매우 빠른 속도로 에스컬레이터를 달려 지하로 내려갔다.
뒤늦게 합류한 남자들은 지하에서 올라오며 해골을 꽤 처리했다. 그러나 도망에 급급해서 가로막는 해골만 해치웠다. 그래서 지하에는 해골이 꽤 남아있다. 셋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해골을 하나씩 처리했다.
"전기톱 쓸 줄 아는 사람 있어요?"
신기의 질문에 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전기톱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고 함부로 건드리다가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신기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곁에 있는 도끼를 들어보았다.
신기가 구매한 검들과 무게가 비슷했다. 나무로 된 자루도 꽤 단단해 보였다. 장작 패는 도끼와 벌목용 도끼에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짧은 손도끼도 있었다. 쇼핑 카트에 도끼를 전부 담은 후 조금 큰 망치들도 담았다.
"망치는 해골 부수기 딱 좋아 보이네요."
거기에 망치는 도끼보다 가벼워서 들고 다니는데 부담도 덜하다. 쇠파이프도 더 챙겼다. 무기로 안 쓰더라도 테이프와 끈으로 잘 묶어서 장애물을 만들 수도 있다. 발목 높이로 잘 설치하면 좀비를 넘어뜨리는 데 아주 유용할 것 같다.
모든 물건은 카트 하나에 담았다. 둘로 나누기보다 한 명이 카트를 밀고 둘이 호위하기로 했다. 지하에는 침상용품을 파는 코너도 있었다. 여름용 얇은 이불 몇 개도 챙겼다. 날씨가 따뜻하다고 하지만 새벽 기온은 높지 않다.
에스컬레이터에 가까워지자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카트를 에스컬레이터에 올리자 자석의 힘으로 찰싹 달라붙었다. 셋은 카트와 2미터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천천히 올라갔다.
거의 다 올라갈 때 좀비가 보였다. 아까 넘어진 곳에 서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발목 높이의 밧줄과 무릎 높이의 밧줄 사이에 다리가 이상하게 꼬여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발견하자 좀비의 두 팔이 뒤로 향했다. 신기는 빠르게 카트를 끌고 옆으로 피했다. 두 남자도 잽싸게 몸을 움직여 좀비의 정면을 비웠다. 돌진하려던 좀비는 밧줄에 걸려 제자리에 쿵 넘어졌다.
신기는 빠르게 달려가 발로 좀비의 등을 밟은 후 손도끼로 내리쳤다. 도끼날이 좀비의 뒷덜미를 반 정도 갈랐다. 도끼날이 생각 밖으로 깊이 박혀서 쉽게 빠지지 않았다. 신기는 도끼를 좌우로 비틀며 상처를 벌려 도끼를 뽑아내려 했다.
그때 좀비가 반쯤 잘린 목을 돌려 신기의 손목을 물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목 180도 돌리기를 펼친 좀비는 손목을 무는 데 성공했지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황급히 빼낸 신기의 손목에는 이빨 자국과 미세한 찰과상만 남았다.
신기는 다른 도끼를 건네받은 후 도끼 등으로 좀비의 목에 꽂힌 손도끼를 내리쳤다. 목이 2/3 정도 잘리자 좀비가 움직임을 멈췄다. 신기는 좀비의 머리를 완전히 몸통에서 뗀 후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긴장한 나머지 숨을 멈추고 있었다.
"별일 없으시죠?"
"네, 빨리 반응해서 다치지 않았습니다."
신기는 손도끼가 편했는데 정작 사용해보니 위험부담이 좀 컸다. 그래서 손도끼를 카트에 놓고 벌목용 도끼로 바꿨다. 출발할 때 꼼꼼하게 처리해서 돌아가는 길을 순탄했다. 셋이 돌아가자 남아있던 남자들이 반겼다.
효주는 곤히 자다가 갑자기 북적이자 깨어났다. 그리고 여자 셋이 복도에 나와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긴 화장실에서 뭘 먹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숨어있기만 한 게 부끄러웠는지 물건을 옮기는 걸 도왔다.
"저기요. 님 손목에 피가 나요."
신기의 손목이 조금 부었고 살짝 피가 맺혔다. 달리다 넘어져서 무릎이나 팔꿈치가 까졌을 때 피가 스며 나오는 정도였다. 신기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설마 좀비에게 물린 건 아니죠?"
안경을 쓴 여자가 날카로운 말투로 질문했다. 신기는 그래서 뭐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좀비에 대한 '상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상황에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상식'을 들먹이는 게 어이가 없다.
"좀비 바이러스 옮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요?"
여자는 공격적인 어투로 신기를 다그쳤다. 신기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거 다 지어낸 거잖아요. 저거 사람이 바이러스 옮아서 변한 좀비 같아요? 그럼 해골은 무슨 바이러스 걸렸는데요? 다이어트 바이러스?"
"그래도 조심해야죠. 최소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자는 위험요소를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키 크고 덩치도 있으며 손에 도끼까지 들고 있는 신기에게 대들었다. 효주가 울먹거리는 모습을 본 신기는 목소리를 낮췄다.
"격리요? 지금 이 상황에? 좀비랑 해골이 오면 당신이 싸울 거예요?"
"네, 제가 싸울게요. 그러니 얌전하게 격리조치 받으세요."
신기가 목소리를 낮추자 여자는 오히려 기세가 살았다. 화가 난 신기는 함께 다녀온 남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떠세요?"
"두 사람 얘기에 다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조심하는 차원에서 손발만 묶고 화장실 칸에 들어가는 건 어때요? 도끼도 있으니 웬만하면 저희가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가 나고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함께 음식 구하러 가자고 할 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아 신기 혼자서 움직여야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좀비에게 물렸으니 밧줄에 묶여 화장실 칸에 처박혀 있으라고 한다.
"다 됐고 저 혼자 떠날게요.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기도 싫네요."
"삼촌, 같이 가요."
효주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애원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던 신기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침착함을 회복한 신기는 정보 단말에 질문했다.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돼?'
- 좀비의 생성 과정은 무척 복잡합니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어려운 공정입니다. 물린다고 좀비가 되지 않습니다.
좀 더 고민하던 신기는 도끼 두 자루와 이불 하나 그리고 음식 몇 가지를 챙겼다. 신기가 등을 가져다 대자 효주가 등에 업혔다. 신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좀비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니 떠나는 게 더 낫다.
괴물이 많이 몰려와서 방어가 뚫리면 효주는 물론 손발이 묶인 신기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차라리 오가며 봐둔 안전한 곳 중 하나에 자리 잡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술과 음료수를 파는 코너에 좋은 곳이 있었다.
### DUAL SYSTEM ###
인천 강화도.
해골 세 마리가 탱크에 깔려있었다. 몸통 대부분이 탱크에 깔려 있어 꼼짝달싹 못 한다. 박영광은 F급 각성자에게 큼직한 망치 하나를 주어 두개골을 깨라고 했다. 이십 대 초반의 청년은 부들부들 떨면서 해골에게 다가가 눈을 감고 망치를 내리쳤다.
"진짜 백만 주는 거 맞죠?"
"지금 가진 돈 없어서 그런다니까. 전쟁터에 돈 들고 다니는 군인 봤어?"
박영광은 짜증이 치밀었지만 참았다.
"시킨 일이나 잘해. 한 마리 처리하고 레벨 확인하고, 또 처리하고 레벨 확인하고."
해골 세 마리 처리한 청년이 활짝 웃었다.
"레벨이 1에서 2로 올랐어요. 개인 등급이 2가 됐네요."
"됐어, 가봐. 김 소위, 오백만 원짜리 일은 하겠다는 각성자가 아직 없나?"
오백이라는 말에 청년은 귀가 솔깃했다. 그러나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뭐해? 돈은 나가는 길에 준다니까."
"오백 그거 위험한가요?"
"위험하지는 않아. 그러나 겁이 많으면 하기 힘들어."
청년은 본인이 겁이 많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다는 말과 오백이라는 숫자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안전하게 해골 머리 세 개 부수는 것으로 백을 벌었다. 오백이라고 해봤자 아주 어려운 일인 것 같지 않았다.
"할게요. 제가 하겠습니다."
백만 때와는 달리 계약서까지 작성했다. 백만은 개인 돈으로 주는 거고 이건 군과 계약하는 거라는 말에 청년은 쉽게 수긍했다. 시키는 일을 완성하면 오백을 준다는 게 계약의 주요 골자였고, 혹시나 후유증 같은 게 있으면 군에서 전부 책임진다는 조항이 달렸다.
청년은 시키는 대로 손을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손을 살짝 물린 느낌이 들었다. 통증도 없고 세게 물리지도 않았지만 겁이 많은 청년은 손을 급하게 움츠렸다. 빼내도 된다는 말에 손을 빼보니 연한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의사로 보이는 남자들이 와서 청년의 몸에 의료기구를 주렁주렁 달았다. 청년은 영문을 몰라 눈만 멀뚱멀뚱하게 뜨고 시키는 대로 했다.
"이 사람은 C급 치유 각성자다. 설사 네가 암에 걸렸다 해도 시간만 충분하면 치료할 수 있어. 그러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누워있으면 돼."
두 시간 정도 지나자 독이 발작해 청년의 목숨이 위험하게 되었다. 박영광은 치유 각성자에게 치료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삼 분도 안 되어 청년의 독은 전부 해독되었다. 박영광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좀비가 되었다면 확실하지만, 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각성자여서 좀비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오늘 일이야 탄로 나도 치유 능력자를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넘어갈 수 있지만, 일반인으로 실험을 하다 걸리면 모든 게 끝난다.'
아무 소득도 없는 것은 아니다. 좀비에게 물린 청년이 뱀에게 물린 사람과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좀비의 독이 피부 접촉만으로도 중독 가능하다는 초보적인 결론이 있고 체액이나 피부 조직 및 혈액에서 특이한 바이러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남부 해안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혹시 옷을 입은 좀비가 없는지 특별히 주의하라고 해."
바다에서 기어 나온 좀비는 옷을 입지 않았다.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무언가도 없다. 심지어 배설에 필요한 항문도 없었다. 톱으로 해체해보니 몸 대부분이 근육으로 이루어졌고 남은 부분은 뼈였다. 내장 같은 건 전혀 없었고 머리 안에 근육도 아니고 뼈도 아니지만 뇌로도 안 보이는 물건이 있었다.
'머리 안에 있는 건 제어장치라고 봐야지. 외계인이 만든 생체 전투 병기인가? 전투 병기라고 하기에 전투력이 너무 가소로운데?'
각성자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일투성이다. 그러나 박영광은 군인이지 학자가 아니다. 왜라는 질문보다는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더 집중했다.
- 작가의말
인체 실험하고 막 나가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모든 국가가 그렇다고 보장은 못 합니다.
어제 대부분 내용을 쓰고 오늘은 마지막 부분을 보충하고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비축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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