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츠 파티 타임
거제도 신기의 요새.
"삼촌, 삼촌. 효천이 목욕하고 싶대요."
곤하게 자는 신기를 효주가 흔들어 깨웠다. 밤늦게야 잠자리에 든 신기와는 달리 효주는 낮에도 자고 저녁에도 일찍 잠이 들었다. 그래서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에 효주는 이미 깨어났다.
신기는 잠을 제대로 깨지 못해 머리가 멍했다. 그저 효주가 이끄는 대로 계단을 내려 일 층 화장실에 가서 덥힌 물과 찬물을 적당히 섞어 목욕물을 만들었다. 강아지는 목욕을 싫어한다고 신기는 알고 있었는데, 이놈의 강아지는 물장구치며 아주 제대로 신났다.
"삼촌, 어제 이상한 글씨가 보였어요. 그리고 효주는 효천이랑 말할 수 있어요."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앉아서 졸던 신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효주를 다그쳐 물어서 정보를 알아냈다.
이름 : 효주
등급 : 병급
개인 등급 : 1
재주 : 훈육 초급 7
C급으로 등급도 높고 스킬 레벨도 높았다. 스킬 경험치를 위해 이미 성휘를 펼치고 있던 신기는 특성을 보호로 바꿨다. 효주의 열이 너무 빨리 내린 게 그제야 생각났다. 아무래도 신기가 스킬 경험치를 위해 특성을 바꿔가며 펼칠 때 치유 효과를 받은 것 같다.
- 새로운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 각성자 3명부터 파티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상세한 정보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신기는 병급이 아주 좋은 거라고 효주를 달랬다. 효주는 자신이 병에 걸려서 병급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병급은 3급으로 박철이나 신기보다 더 센 거라고 달래주자 효주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삼촌, 그럼 나도 도끼 들고 악당이랑 싸워야 해요?"
자신에게 초능력이 생겼다고 신났던 효주는 가장 센 자신이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신기는 효주에게 사람마다 각자 역할이 있고 앞장서서 싸우는 역할은 자신의 것이라고 효주를 안심시켰다.
- 파티를 맺으면 모든 파티의 소속원은 경험치를 균등하게 분배합니다.
- 시스템의 결속력이 낮아 경험치 분배 과정에 일부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럼 파티를 맺는 게 의미가 없네?'
- 파티를 맺으면 스킬의 범위와 효과가 증가합니다. 상세한 정보는 확인 중에 있습니다.
효주는 강아지가 원하는 것을 기막히게 알아내고 신기를 부려먹었다.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는 효주의 말대로 무척 이쁘게 생겼다. 작은 눈이 동그래서 마치 강아지 인형 같기도 했다.
- 파티를 맺으면 파티 등급과 파티 인원수에 따라 스킬 범위와 효과가 증가합니다.
- 같은 파티 소속원에게 스킬의 긍정적 효과가 증대되고 부정적 효과는 감소합니다.
- 파티 등급이 높을수록, 파티 인원이 많을수록 스킬을 사용할 때 부가 경험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레벨업만 생각하면 파티 기능은 오히려 신기에게 불리하다. 그러나 아직 스킬 레벨이 낮은 신기에게 파티 기능을 통해 스킬 범위와 위력을 조금이라도 늘이고 스킬 경험치를 더 얻는 게 중요하다.
'담이 든든한 집을 찾아 괴물을 불러온 후 안전하게 정화로 처리하면 레벨업을 빠르게 할 수 있다. 지금의 나에게 파티 기능은 이득이 손해보다 크다.'
위험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파티를 맺어 스킬을 강하게 하는 게 낫다. 지금까지 레벨업 했지만 스킬의 범위나 위력에 영향이 없다. 장기적으로는 등급과 레벨이 중요할지는 몰라도 지금 당장 신기는 스킬 위력을 조금이라도 키우는 게 급선무다.
- 파티 등급이 가장 높은 5등급이 되면 경험치 손실이 사라집니다. 이 부분을 연구해 보십시오.
뭔가 애매한 힌트를 정보 단말이 던졌다. 파티가 최고 등급이 되면 경험치 손실이 사라진다. 아까 시스템의 결속력이 약해서 경험치 손실이 발생한다고 했다. 거기에 법칙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단서임을 알고 있다.
'기회가 되면 공부도 좀 하자. 아는 게 적으니 갈피가 잡히지 않는구나.'
목욕을 끝낸 후 강아지를 대야에서 꺼냈다. 물에서 나온 강아지는 물을 털지 않고 얌전하게 신기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기를 기다렸다. 수건으로 최대한 물기를 없앤 후 드라이기로 털을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혹시 강아지도 효주 말을 알아듣는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요. 생각만 해도 돼요."
- 원시 정보 단말을 탑재한 시스템이 어제 활동을 시작한 후부터 각성자는 자신의 스킬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 늦어도 24시간 안에는 자신의 스킬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합니다.
'나는 되게 둔감한 편인가?'
박철을 구하러 가기 전에 신기도 검술 스킬이 어떤 스킬인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대충 20시간은 지나서였다.
- 시스템과의 호환이 다른 사람보다 낮을 뿐입니다. 각성할 때 호환성이 높을수록 등급을 높게 받습니다. 현재까지 수집한 정보로 볼 때, 레벨업을 통해 호환성을 높여 등급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럼 그전까지 자신의 스킬이 어떤 건지 다들 몰랐단 말이야?'
- 일부 호환성이 높은 각성자는 자기 스킬의 용도와 사용법을 깨달았을 겁니다. 다만 등급이 낮은 자들 대부분 자기 스킬이 뭔지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효주는 강아지에게 효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살뜰하게 보살폈다. 강아지가 암컷인지 효주는 자신을 언니라고 칭했다. 강아지를 목욕시켜주며 반쯤 졸아서 강아지의 성별을 확인하지 못했다.
'훈육 스킬에 대해 좀 알아봐 줘.'
- 파티를 맺어야 합니다. 현재 해당 단말과 교류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박철이 일어난 후 파티를 맺었다. 셋이 손을 모은 후 신기가 '파티 결성'이라 말하고 효주와 박철이 동의라고 외쳤다. 셋의 각성자 정보에 파티 등급이라는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파티 등급 : 0
- 파티 등급은 개인 정보입니다. 파티를 해체하더라도 파티 등급은 그대로입니다.
파티 등급이 전부 3인 사람들이 파티를 맺으면 파티 등급이 3이 된다. 그러나 3인 사람 둘과 1인 사람이 파티를 맺으면 2가 될 수도 있고 3이 될 수도 있다.
'혹시 손실된 경험치를 파티 등급이 가져가는 거야?'
- 아닙니다. 파티 등급의 경험치 누적 방식은 다양하고 방대하여 정보의 취합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삼촌, 우리 언제 악당 무찌르러 가요?"
신기는 치유와 보호를 번갈아 사용했다. 정화는 어차피 괴물을 상대할 때 많이 사용했기에 치유와 보호의 경험치를 쌓는 데 주력했다. 보호 특성 덕분인지 효주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박철도 두려움이 사라졌지만, 두려운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효주처럼 겁을 상실하지는 않았다. 보호는 부정적인 자극으로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뿐이지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 일으키는 역할까지는 없다.
"박철, 여기 별장 중에 어느 집이 제일 든든해?"
"형 집이요."
박철의 대답에 신기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근처에서 가장 든든한 건물은 신기의 집이다. 집도 튼튼하고 담장도 높고 대문도 철로 만들어서 무겁다. 그러나 자기 집으로 괴물을 불러올 생각은 신기에게 눈곱만치도 없다.
"이 집은 안돼. 태양광 발전기나 정수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절대 안 돼."
효주네 집은 담장이 낮고 대문이 취약하다. 담장이 낮아도 괴물이 점프하지 못한다는 걸 확실히 알기에 걱정이 없지만 대문이 취약한 건 확실히 문제다. 고민하던 박철이 말했다.
"동쪽 끝에 등대가 하나 있어요. 엄청 두껍게 지어졌거든요. 철문도 무척 든든하고요. 그런데 여기서 거기까지 가려면 거리가 너무 멀어요."
별장 구역의 동쪽 끝에 등대가 하나 있다. 파도가 센 곳이라서 등대를 제외하면 거의 건물이 없다. 그나마 봄이면 낚시꾼들이 찾아서 길은 닦여 있다. 역시 직선거리는 멀지 않은데 길을 따라가면 크게 에둘러 가야 한다.
"별장 구역에서 그곳으로 직접 가는 길은 없어요. 해안 도로를 타고 돌아가야 해요.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을까요?"
효주는 대화에 흥미를 잃고 강아지와 놀았다. 신기는 목소리를 낮춰 박철에게 말했다.
"어제 갑자기 핸드폰이 전부 먹통이 됐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핵심 교환기가 고장 났을 수 있어. 그러면 핸드폰이 안 되거든. 또 하나는 핸드폰 신호를 받는 안테나와 연결된 무선 기지국이 고장 나는 거야."
박철은 신기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신기는 박철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제 보면 기지국 신호가 아예 사라졌어. 그게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일부러 이쪽 기지국을 내려버렸을까? 요행을 바라지 말고 최악을 생각해 봐. 정부는 거제도를 버렸을 수 있어. 그러니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자력으로 탈출할 생각을 해야 해."
박철은 신기의 말 앞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구의 도움도 바라지 말고 본인들의 힘으로 탈출해야 한다는 말은 명확히 알아들었다.
"지금 우리 셋이 탈출할 가능성은 아주 작어. 그러나 네 미끼 스킬로 괴물을 불러 처리하다 보면 언젠가 괴물이 전부 사라질 거야. 그러면 우리는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어.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며 괴물을 처리하다 보면 언젠가는 안전한 곳에 이를 수 있어."
"그런데 먹을 거랑 마실 거는 어떻게 해요?"
"먹을 건 많아. 마실 물도 정수 시설로 얻을 수 있어. 우리가 확보해야 할 건 기동력이야. 너 혹시 운전할 줄 알어?"
박철의 소처럼 큰 눈이 더 둥그레졌다.
"형, 저 이제 15살인데요."
"효주 운전할 줄 알아요. 효주 차 두 대 있어요."
박철은 지기 싫었는지 효주의 말을 받았다.
"골프카 운전할 줄 알아요. 방학에 알바한 적이 있어요. 그때 배웠고 운전도 몇 번 해봤어요."
신기는 알 수 없는 패배감을 느꼈다. 나이는 가장 많은데 꼬맹이 둘과 달리 운전할 줄 전혀 모른다. 이론만 알아도 괜찮겠는데 시동 거는 방법조차 모른다.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준비가 무척 부족하다.
"삼촌, 우리 파티 이름 지어요."
효주가 불쑥 제안했다. 신기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파티 이름을 소원이라고 지었다. 신에게 소원을 빌 수 있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았다.
신기는 우선 박철에게 집에 대해 이것저것 가르쳤다. 탱크 세 개의 작용을 알려주고 물의 양을 표시하는 수량계를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떤 상황에 전기를 통해 높은 물탱크로 물을 끌어올려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지하 창고의 음식을 확인한 박철은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못했다. 한참 우물쭈물하던 박철은 용기를 내서 신기에게 질문했다.
"형, 이거 사는데 돈 얼마 들었어요?"
"일억 정도 들었어. 한꺼번에 많이 사서 싸게 샀거든."
식량이 다 떨어지는 것보다 유효기간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많은 박스가 쌓여있다. 신기도 자신의 준비가 과했음을 인정했다. 에어컨 바람으로 지하 창고는 여름인데도 으스스 추웠다.
"저쪽에 호텔 하나 있는데 거기에 보통 골프카 하나 세워두거든요. 열쇠는 호텔 프런트 아니면 골프카 짐칸에 있어요. 우리 그 골프카 가져오면 될 거예요. 시속 60은 달릴 수 있는 골프카에요."
박철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식량을 보고 마음이 든든해졌는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신기도 딱히 다른 방도가 없어서 박철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그때 정보 단말이 새로운 정보를 알려왔다.
- 파티원 효주가 강아지 효천에게 임시로 재주 탐지를 부여했습니다.
- 탐지는 일정 범위에 있는 괴물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강아지가 각성한 건가?'
- 재주 훈육에 의한 임시 부여입니다. 각성이 아닙니다.
효주가 알고 그런 것인지 모르고 그런 것인지 강아지에게 탐지 스킬을 부여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범위가 60미터 정도 된다고 정보 단말이 알려왔다. 효주를 통해 주변에 괴물이 없음을 확인한 후 셋은 효주네 별장으로 향했다.
삭막한 신기의 집과 달리 효주네 별장은 책을 비롯해 많은 물건이 있었다. 수차례 왕복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신기 집으로 옮겼다. 신기가 미처 옮기지 못했던 효주보다도 더 큰 곰 인형도 가져갔다.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급변하여 먹구름이 지더니 폭우가 내렸다. 신기는 대야를 비롯해 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들을 밖에 내놓았다. 옥상에 내린 빗물이 배수관을 통해 물탱크로 흘러들었다. 아직 당장 생존을 위협할만한 요소는 없다.
- 작가의말
요즘 글이 늦게 올라올 겁니다. 새벽이 되어야 잠이 들거든요. 만약 오늘도 저녁에 잠이 안 오면 비축분이나 만들겠습니다. 일찍 자려는 노력을 버리고 지금부터 월드컵에 시차를 맞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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