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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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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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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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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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6)

DUMMY

카를은 금방 남문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동물들이 들이박고 있는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이 정도는 정리하고 가도 되겠지.”


달려가는 그대로 도약해 벽을 넘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동물들이 들어올 테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남문 근처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대로 떨어져 내린다.


우선은 벽을 긁고 있는 들개들. 떨어지는 그대로 양 발로 한 마리씩 밟아버린다. 당연히 카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척추가 부서져버린다.


“왜 우리 마을로 들어오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꺼져주셔야겠어.”


갑자기 나타난 카를을 보고 놀라는 것도 잠시, 주변의 들개들이 동족을 죽인 것에 복수하듯이 카를에게 덤빈다. 카를이 반격을 가하니, 그에게서 명백한 적의를 느끼고 주변의 동물들이 카를을 집중 공격한다.


‘창을 쓰기에는 너무 많네.’


찌르기용으로만 쓰는 창은 지금 상태에서는 적합하지 않았다. 힘을 주고 휘두르다가는 나무로 된 창대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버린다.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는 검을 들고 한 손으로는 주먹질을 하며 전투에 나선다.


다가와서 물려고 하는 들개가 그대로 검에 휩쓸린다. 양단당한 아래턱과 윗턱은 이제 더 이상 서로를 만날 수 없다. 그 뒤에 있는 몸도 서로의 연결이 끊겨버리고 말았다.


왼쪽에서 다가오는 살쾡이를 주먹으로 내리꽂는다. 살쾡이의 목은 땅에 그대로 뿌리를 박았고 자신의 몸통을 묘비로 삼아야 했다.


‘다 일일이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군.’


대충 처리하고 가려고 했지만 싸우다 보니 생각보다 더 많았다.


물론 이들도 전부 같은 편인 것은 아니다. 지금도 카를이 처리해놓은 동물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육식동물들은 물론, 서로 싸우는 동물들, 그리고 저 멀리서 소극적으로 구경만 하는 초식동물들과 이 전장에서 벗어나는 동물들도 소수지만 있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전부 죽일 필요는 없겠지.’


결심한다. 어차피 빨리 떠나야 하는 몸. 여기서 시간을 끌 수는 없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기에도 꺼림칙하다. 그에 카를은 검을 집어넣었다.


자신들을 죽이는 무기가 사라지자 사방에서 이빨과 발톱이 짓쳐 들어온다.


발을 물려고 하는 오소리를 그대로 걷어찬다. 단, 아까와 다르게 위가 아니라 앞으로 걷어찼다. 오소리는 그대로 날아가 다른 동물들을 휩쓸었다. 대부분 즉사다. 발에 직접 맞고 날아간 오소리는 이미 형태조차 불분명하다.


“으랏차!”


쿠콰콰쾅!


발로는 모조리 앞으로 걷어차고 손으로는 목을 잡고 그대로 던져버렸다. 어찌나 강하게 부딪히는지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터진다.


평생 땅에서만 살아온 동물들은 오늘 처음으로 비행을 만끽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라는 게 흠이지만.


휩쓸린 주변의 동물들은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파열되어, 죽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행동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죽이지만 않는 살육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모든 것을 사방으로 쏘아 보내는 회오리가 된 카를은 남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땅에 쓰러져있었다.




촌장과 경비대장은 남문에서의 굉음이 멀어져 가는 것을 듣고 카를이 이제 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을 알았다.


“막을 수 있을까?”


“무리겠지. 우리끼리는. 그리고 아마 증원이 온다 해도 늦을 거야.”


“하지만 보냈지.”


“그래.”


촌장은 어차피 누구를 보내든 보내지 않든 마을의 멸망을 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마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역설적인 말이었다.


“슬프겠지만··· 카를은 이 마을의 다음 촌장이 될 거야. 그리고 거기에 우리 모두는 없겠지.”


마을은 멸망한다. 그 결과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을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카를은 이 마을을 재건할 것이다. 그렇기에 증원을 요청하러 가는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마을을 재건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했다. 마을의 최강자. 그러면서 젊은 사람. 카를밖에 없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뼈를 묻는다. 하지만 뼈를 묻는 건 우리만이 아니다.”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자네와 함께하겠나.”


경비대장은 그에 동의한다. 어차피 마을을 버리고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도망가는 와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정도의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을도 없을뿐더러, 자신들에게는 이 곳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사명이 있다.


“아버지!”


촌장의 아들이자 카를의 형인 카인이 다가온다. 촌장과 경비대장을 대신해 지휘를 하고 있던 그가 온 것을 보니 급한 일이 분명하다.


“무슨 일이지?”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보입니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어요.”


“생각보다 빨리 왔군.”


“뭐가 오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래. 카를이 말해주고 갔다. 엄청난 짐승들이 오고 있다고.”


세 사람은 재빨리 북문으로 돌아가 벽 위로 올라갔다. 북문 밖은 동물들끼리의 살육전 덕분에 막을만해진 상태였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멀리서 오는 동물들이 보인다. 면면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동물들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이한 형태들이다.


주변의 마을 사람들도 그것을 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훑어보고 있자니 괴물들이 다가오는 것을 멈춘다. 동물들이 있는 끝부분이었다.


“뭐지?”


방금 달려왔던 거대한 말이나 다른 동물들과는 취하는 행동이 다르다. 보아하니 다른 동물들에게 겁을 먹은 건 아닌 것 같은데 모두가 멈춘 것이다.


“저렇게나 다른 동물로 이루어진 무리가 통솔된 것처럼 움직이다니?”


“설마, 저놈들 중에서 특출 나게 강한 놈이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


“허. 저것들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나 강한 놈이라고? 미쳤군.”


멈춘 것도 잠시, 동물들이 움직인다. 아니, 오직 한 마리만 움직였다. 앞으로 튀어나와 선두에 선 동물은 마을 사람들도 흔히 보는 늑대였다. 마을 주변과 다른 것은 그 크기가 웬만한 소보다도 크다는 것. 그리고 온몸의 털이 새하얀 색이라는 것이다.


거대한 백랑이 다가오자 다른 동물들이 길을 터준다. 주변의 적들과 싸우느라 바빴던 야수들이 백랑에게서 압도적인 힘을 느낀 듯 설설 기고 있다. 늑대들은 백랑을 알현하는 것이 영광이라는 듯 고개까지 숙이고 있다.


“... 왕 같군.”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그 왕?”


“그래. 사람들에게도 예전에는 왕이 있었다고 하지. 마을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다스리는 사람이. 저 백랑을 보니 꼭 늑대의 왕 같지 않은가.”


“확실히···”


이윽고 주변의 다른 동물들을 물리고서 동물들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백랑이 문 앞에 도착한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만든 조잡한 화살들을 활시위에 걸어놓고서 백랑을 조준하고 있다.


문 앞에서 잠시 대기한 백랑은 벽 위를 둘러보고는 킁킁대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시선은 문.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 너머까지 보는 듯했다.


이윽고 냄새를 맡는 것을 중지하고 고개를 들더니 길게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


백랑이 먼저 선창 하자 주변의 다른 늑대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마을의 주변을 늑대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울림이 지배한다.


“위험해 보인다.”


“그래. 모두 준비!”


경비대장의 말에 주변의 궁수들이 모두 활시위를 더욱 힘껏 잡아당겼다. 상대가 어떤 녀석이든 어차피 마을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들. 어떤 행동양식을 취하든 적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쏴라!”


구령과 함께 모두의 화살이 백랑에게 쏘아진다. 화살이 자신에게 쏘아진 것을 모르는지 백랑은 아직도 하늘을 보면서 울고 있다.


“됐어!”


화살이 바로 앞까지 도달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백랑을 보면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저 거리면 아무리 대단한 동물이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을 이루어주듯 백랑은 모든 화살에 맞았다. 울음이 멈추고 주변에는 고요가 내려앉았다.


“... 맙소사.”


누군가의 경악이 고요를 가로지른다. 늑대들은 단순히 조용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모두의 화살을 맞은 백랑은 가렵지도 않다는 듯 그대로 서있다. 어떤 화살은 목이나 얼굴을 향해 쏘아졌는데도 백랑은 작은 상처조차 없다.


가만히 사람들을 쳐다보던 백랑이 갑자기 옆으로 살짝 움직인다. 그 자리에 두 자루의 창이 쇄도한다.


“젠장. 잽싸기도 하군.”


경비대장이 아쉬움을 담아 말했다. 방금의 창들은 경비대장과 촌장이 쏘아 보낸 것이다. 백랑도 그 창에서는 위험을 느꼈던 건지 화살들과는 다르게 회피했다.


“그렇다면 맞을 때까지 쏘아 보내면 그만.”


침착하게 다시 창을 손에 드는 촌장. 창 또한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가릴 때가 아니다. 하지만 침착한 그와 다르게 주변에서는 소요가 발생했다. 저 멀리서 다른 동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 다리가 8개 달린 이상한 괴물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저번에 봤던 원숭이와 비슷하군. 거대 원숭이인가. 그 옆에 있는 동물은··· 뭔지 짐작도 안 가는군.”


유인원은 그대로 괴물을 들었다.


“저거··· 설마?”


그대로 괴물을 던져버린다.


“젠장 피해!”


경비대장이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대피하고 있었다. 목표가 문은 아닌 것 하지만 충분히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다.


“역시 저것들은 동료가 아닌 건가!?”


그런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괴물이 날아온다. 문을 충분히 넘고도 남을 것 같은 속도였지만 괴물이 다리를 쫙 펴더니 감속한다.


“실?”


실을 엄청나게 촘촘히 다리 끝끼리 연결시켜놓고는 그것으로 바람을 막아 감속했다. 조절이 얼마나 절묘한지 문 바로 안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몸을 돌려 문 아래에 있는 사람 쪽으로 고개를 향하더니 앞발 쪽을 제외한 나머지 발에 있는 실을 떼어 버렸다. 자연스레 실이 문쪽을 향해 펴지더니 그대로 아래 있는 사람들을 향해 떨어진다. 꼭 그물로 사냥감을 잡는 것 같은 모습이다.


“으악!”


“살려줘!”


그 한 번의 동작에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실에 봉쇄당했다. 누군가는 곧바로 검으로 실을 쳐냈지만 실이 끊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실에 달려가던 사람도. 근원인 괴물을 먼저 처치하려던 사람도 괴물이 앞발을 이용해 실로 그물을 치더니 모두 봉쇄당한다. 그 와중에 몇 마리가 더 하늘을 통해서 넘어온다.


“후후후. 소용없습니다.”


“뭐야? 동물이 사람 말을?”


모두가 움찔한다. 사람의 말을 하는 동물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그나마 간부들은 실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실괴물을 돕는 다른 괴물들에게 모두 막힌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적들에게 끈질기게 싸움을 건다. 포기할 수 있을 리 없다.


촌장과 경비대장은 괴물들을 이기기 직전까지 간 것 갔지만, 점점 많아지는 적들의 협공에 당해내지 못했다.


결국 실에 모두가 봉쇄된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포박당해버렸다.


“젠장···”


괴물이 서서히 다가온다.


“전투는 끝났습니다.”


실에 갇혀서 정체 모를 괴물이 다가오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모두, 얌전히 있어주세요.”


‘카를···’


촌장은 탄식했다. 단순히 자신들이 패배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죽음은 각오했었다.


‘너에게 짐만 남기고 가는구나···’


단 한 마리도 처리하지 못한 자신들의 한심함이 뼛속까지 사무친다. 그리고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괴물을 보면서··· 촌장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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