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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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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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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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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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의 평원 (5)

DUMMY

“진짜였네.”


카를은 마을에서 나와 고요의 평원에 도착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였지만, 진짜였어. 동물들이 확실히 적어진 것이 느껴져.”


고요의 평원이라고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누군가 선을 그어놓은 것도 아니고, 강이나 산, 나무들로 경계가 뚜렷이 나뉘어있는 것도 아닌데도 동물들의 수가 확연히 적다.


“이건··· 확실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농경지 마을을 파괴시킨 이변을 조사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런 특이한 현상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이 현상이 농경지 마을과는 전혀 연관이 없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카를이 이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주 적은 가능성도 허투루 볼 수 없다.


“좋아.”


카를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사의 기본은 발품이다.




고요의 평원에 도착한 지도 어느새 일주일. 조사를 위해 카를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고요의 평원의 안과 밖을 부단히 돌아다녔다.


“흠··· 그러니까···”


카를은 조사 결과를 다시 상기했다.


첫째. 동물들은 고요의 평원 근처로 쉽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다. 억지로 끌고 와보기도 했지만, 무슨 위험한 곳에 있는 것처럼 다시 뛰쳐나가기 일쑤였다.


둘째. 외곽에는 그나마 동물들이 있는 수준이었지만, 심부로 들어갈수록 개체수가 점점 적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셋째. 동물들만이 아니라 식물 또한 이상하다. 같은 평원인데도 점점 식물의 종류가 변해가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뭔가 부족한데···”


지난 일주일 동안 알아낸 것은 이 정도밖에 없다. 게다가 모두가 완벽한 정보도 아니었다.


첫째. 그 수는 적지만, 억지로 끌고 들어왔을 때 그대로 고요의 평원 안에서 생활하는 동물도 확인했다.


둘째. 점점 적어지는 것은 맞지만, 고요의 평원 밖에처럼 무리를 이루고 있는 동물들도 확인했다. 덕분에 어느 지점에서는 동물들이 밖과 비슷한 수를 유지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셋째. 식물들의 종류가 변해가는 것은 맞지만, 이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식물들도 어느 정도 같은 종류끼리 뭉쳐있는 경우가 많으니, 더 북부에 있는 식물들의 세력이 여기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식물군의 분포가 달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정작 일주일이나 돌아다녔는데도 들었던 괴물들과는 마주치지도 않았다. 흔적들은 몇 가지 발견했지만.


“쉽지 않네··· 이게 자연스러운 것인지, 특이한 것인지조차 헷갈려.”


돌아다니는 동물들에게 규칙성도 없다. 강한 동물이나 약한 동물만 돌아다니면 오히려 이 장소에 대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다니는 동물들의 종류는 각양각색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헛짓 한 건가? ··· 응?”


허무함에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기분을 환기시키려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카를은 네 번째 정보와 마주했다.


“이건··· 선?”


물론 사람 한 명 없는 평원 한가운데에 선이 그어져 있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카를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카를이 서 있는 곳을 기준으로 양쪽의 식물들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지금까지도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었지만, 이곳에 와서는 전의 평원에서 가장 흔하게 보였던 식물군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이파리끼리 닿아있을 정도로 가까운데도 양 쪽의 식물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아니··· 이런 광경 얼마 전에도 봤던 것 같은데?”


-너무 똑같은 풍경만 보더니 우리 한스가 드디어?


-시끄러. 인마. 아무튼, 저 산맥 안쪽과 여기의 풀이 너무 다릅니다. 아니 정확히는 보이지 않는 경계라도 있는 것처럼 어느 한 선을 따라서 풀들의 생김새가 달라요.


‘그래. 그때였어. 그때도 여기와 똑같았어.’


-정말이네. 심지어 풀잎이 서로 닿고 있는데도 어느 경계를 기점으로 서로 종류가 달라.


-우와. 진짜네. 혹시 진짜로 안 보이는 경계가 있는 거 아닐까? 그래서 양 쪽에서 경계 건너로 못 넘어가는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본다. 그리고 알아챈다.


‘없어.’


이곳에 와서는 그나마 드문드문 보이던 동물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똑같다··· 산맥 주변과 똑같아. 생각해보니 그곳도 동물들이 없었어. 게다가 양쪽 모두에서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괴물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여기는 산맥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런 지형적 특징이 산맥에만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이 고요의 평원일 수도 있다.


‘만약에··· 이런 특징이 산맥 근처에서 나타나는 것이 맞는 것이라면··· 어쩌면 산맥의 세력이 커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하지만 카를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면 세력을 뒷받침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 그 자신들이 세력의 일부분이 된다. 하지만.


‘산맥의 세력이 커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군. 산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근처에 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이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닌 한...’


확실한 것은 없지만, 이 지형의 특성은 어느 정도 파악을 했다. 산맥과 흡사한 지형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 해도 크나큰 수확이다.


‘전설에나 나오는 신비한 일은 이 세상에 없어.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생각해야 해.’


카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더욱 깊숙이 들어갈 시간이다.


‘산맥에서는 경계를 확인한 후에 원숭이와 괴물과 싸웠지. 설마 이런 것까지 비슷한 상황이 생길 줄이야.’


카를의 시야에 고요의 평원에 들어와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괴물이 드디어 포착되었다. 산맥에서 봤던 놈과 흡사한 녀석이다. 그때와 다른 점은 괴물은 멀리 떨어져 있고,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 놈이 경비대장이 말했던 그놈일 수도 있겠군. 적어도 같은 종인 것만은 확실해. 흠··· 일부러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저 종류와 제대로 싸워본 것도 아니니 전투력도 파악할 겸 한번 싸워볼까?’


경비대장과 확약했던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띈 김에 처리해보기로 한다.


괴물과 점점 거리가 가까워진다. 카를은 미리 검을 뽑았다.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이니 운이 좋다면 조용히 다가가 급습할 수도 있겠지만, 목적이 단순한 말살이 아니니 소리쳐 놈의 주의를 끌기로 한다.


“어-”


어이라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괴물이 움직이는 바람에 소리치는 것을 멈췄다.


“엥? 저놈 어디가?”


괴물은 등을 보인 상태 그대로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즉, 카를한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날 눈치챈 것은 아닐 텐데. 우선 따라가야겠군.”


생각보다 빠른 괴물의 속력에 급히 따라나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은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달려가는 것만 그만두었다.


“뭐야? 싸움?”


괴물은 무언가와 싸우기 시작했다. 괴물의 덩치에 가려서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이야··· 빠르네.”


괴물의 움직임은 예상 이상으로 날렵했다. 힘만 강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민첩하기까지 하다. 저 정도면 확실히 일반 대원들은 떼로 덤벼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포위망 자체를 완성시킬 수가 없으니, 다수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낼 수가 없는 것이다.


놈의 몽둥이가 내는 파공음이 꽤 떨어져 있는 여기까지 들린다. 그에 반해 상대방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뭐랑 싸우고 있는 거지?”


상대방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괴물보다 덩치가 작은놈이다. 그런데 공격하는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 동물이라면 달려들어서 물어뜯거나 할퀴며 공격할 텐데 전혀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괴물이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한 듯이 괴물의 피가 튀는 모습이 어깨너머로도 잘 보인다.


궁금함도 잠시, 괴물의 바로 등 뒤에 도착한 카를은 드디어 상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핑.


바람을 가르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온다. 카를은 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카를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들어봤을 소리다.


‘이건, 화살 소리? 설마 싸우고 있는 상대가.’


그리고 카를의 의심을 확실히 깨뜨릴 소리가 괴물의 건너편에서 들려온다.


“젠장··· 하필 기름이 모자랄 때 트롤과 만나다니. 운도 지지리도 없군. 이러다 화살만 다 잃겠어.”


카를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사람의 말소리를 듣는 바람에 깜짝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사람!”


괴물과 싸우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


“뭐야!?”


놀란 것은 카를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의 목소리에서도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카를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크아!”


자신의 등 뒤에 적이 서 있다는 사실에 트롤이라 불린 괴물이 깜짝 놀라 몽둥이를 휘둘렀다.


“억!?”


평원에서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생전 처음 만난 사실에 멍 때리는 사이에 트롤의 몽둥이가 카를의 머리를 강타했다. 괴물의 강력한 힘에 대지에 기다란 흉터를 남기며 카를은 나가떨어졌다.


“이런. 이런 곳에 웬 사람인지는 몰라도 보자마자 시체가 되다니. 트롤한테 머리를 맞고 살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 무덤이라도 하나 만들어줘야껡?”


트롤과 싸우고 있던 상대는 측은한 눈빛으로 카를을 바라보다가, 멀쩡히 일어나는 카를을 보자 말이 꼬여버렸다.


“망할 자식. 갑옷과 옷이 더러워졌잖아.”


카를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이제 부탁이 아니라도 싸워야 할 충분한 명분이 생겼다.”


트롤도 카를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경각심을 높였다. 트롤 또한 분명히 죽였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넌 죽었어.”


대지에 남겨진 흉터가 무색하게 카를은 멀쩡한 모습으로 다가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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