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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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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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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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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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위기 (8)

DUMMY

하스트는 결정해야 했다.


그가 생각해낸 방법이 성공한다면, 무사히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그 즉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자연화의 여파에 휘말린다. 그리고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여파가 더 클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여파로 탑은 무조건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재앙이 펼쳐진다. 그것도 세계 규모의 재앙이.


‘할 수 있을까?’


성공하면 무사. 하지만 실패하면 세계적인 재앙. 성공의 가치는 훌륭하고, 실패의 반동은 무시무시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단순한 50:50이라면 운을 믿고 할 수도 있다.


‘실패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그렇기에 결정해야 했다. 과연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 도박을 할 것이냐. 아니면 추후를 기약하고 후퇴할 것이냐. 하지만 후퇴를 한다고 해도 세계적인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쿨럭!”


“엘르!


그 순간, 결국 역류하는 물의 자연력을 이기지 못한 엘르가 각혈하며 연결 고리에서 튕겨나간다. 아직 정신은 있지만, 이제 전투는 무리다.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엘르는 하스트를 바라보았다. 하스트 또한 엘르를 바라보았다.


서로 마주치는 눈빛 속에서 엘르는 하스트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스트··· 이 멍청한 새끼야!!”


“엘르! 소리치면 안 된다! 침입한 물의 자연력을 몰아내는 것에 집중해!”


촌장은 딸을 걱정하며 외침으로 엘르의 행동을 만류했지만, 엘르는 끝까지 말을 이어나갔다.


“뭘 고민하고 있어!? 해버려! 어차피 무슨 방법이라도 실패하면 여기서 우리는 다 죽어!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그렇다면 성공만 생각하라고, 이 병신아! 그 잘난 대가리로 허공에 삽질만 하고 있을 거야!?”


“...”


엘르의 피 토하는 외침에 하스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하스트는 엘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여자가 그렇게 입이 험하면 시집 못 간다.”


“저게!? 쿨럭!”


엘르는 하스트를 보고 화를 내려다 몸을 다스리지 못하고 다시 각혈한다.


“남들 보고 멍청이 멍청이 외치더니, 가장 멍청하네. 가만히 몸을 다스려. 어떻게든 이 오빠가 끝내줄 테니까.”


“오빠는 무슨···”


엘르는 투덜대지만 이제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듯, 가만히 몸을 다스린다. 실제로 몸의 상태는 심각했으니까.


“그래. 잘 다스려라. 우리를-”


하스트가 물의 자연력을 사용한다. 지금까지는 주인이 죄다 흡수하는 바람에 시선 끌기 용도로밖에는 쓰지 못했지만, 이곳은 아니다. 우선 주인은 하스트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고, 여기는 물의 자연력이 무척이나 풍부하다. 여기라면 다른 곳보다 더욱 많은 물의 자연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하스트는 이 많은 자연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시 무덤가로 불러들이지 말라고!”


바닥에 흥건한 물기, 그리고 주인의 핏물. 그것들을 모두 이용해 자연력의 통로를 만든다. 목표는 주인과 호수. 주인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똑같이 따라 한다.


“하스트, 뭘 하려는 건가!?”


“주인을 정령화 시킬 겁니다.”


“뭐? 정령화?”


전설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모든 생물은 정령이 된다. 그 전설을 하스트는 실현하려는 것이다.


“가능한가?”


“... 물론 힘들 겁니다. 하지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차피 여기서 실패하든, 시도를 안 하고 도망가든 결과는 똑같다. 세상에는 재앙이 풀려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길게 봐도 몇 개월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것뿐.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가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령화의 필요조건은 몇 개 없다. 자연화를 할 정도로 육체에 많이 쌓여있는 자연력,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풍부한 주변의 자연력만 있으면 된다. 이것이 최소 조건이다. 그리고 성공률은 주변의 자연력이 자연화를 하는 대상과 밀접한 속성일수록 더욱 높아진다.


하스트는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낸 바람 안쪽으로 엄청난 물의 자연력을 채워 넣으려 한다. 여기가 호숫가라고 해도 다른 자연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안쪽의 다른 속성의 자연력을 모조리 밖으로 내보내고, 오직 물의 자연력만 채워 넣을 것이다. 4대 자연력을 모두 다룰 수 있는 하스트만의 묘기다. 다른 사람이 시도하려면 각각의 자연력에 맞는 사람들을 모아놓아야 한다.


나머지는 마을 사람들이 힘내 주어야 한다. 주인이 있게 될 물의 공간과 바깥을 최대한 차단해주어야 한다.


“오래 지속되면 우리가 더 힘들어집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엄청난 힘의 압력이 생길 거예요. 그것을 버텨야 합니다.”


촌장은 하스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방법은 없다. 이것이 주인과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이다.


“모두들 들었겠지?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마지막 바람 한 가닥마저 쏟아낼 각오를 해라!”


“네!”


우렁찬 외침이 대기를 흔든다. 각오는 진작부터 되어있었다. 오히려 마지막이라면 바라던 바다. 이 힘들고, 슬픈 작전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시작하겠습니다!”


하스트가 바람 안의 다른 자연력을 모조리 빼낸다. 다른 속성의 자연력은 물의 자연력에 치여 그리 많지 않았기에 빼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호수의 물과 자연력이 바람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순식간에 주인은 반구형의 물 안에 갇혀있는 모습이 되었다.


이대로 놔두면 압력이 온몸으로 고루 퍼져 다시 주인이 움직일 테니, 통로를 주인의 안쪽까지 연결한다. 그러자 사방에 가득 찬 물의 자연력과 호수의 자연력을 주인이 흡수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자연력의 길이 있는 주인의 몸속으로 물의 자연력이 멋대로 침투한다.


“절대 긴장을 놓지 마십시오!”


두근.


“큭!”


엄청난 반동이다. 심장의 박동 같이 물의 자연력이 요동친다. 자연력을 과다하게 흡수한 주인의 거대한 몸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두근.


자연화다. 자연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정령으로서의 시작. 반대로 말하면.


두근.


생물로서의 단말마다.


“거북 할아범···”


엘르는 몸을 다스리면서 주인의 모습을 씁쓸히 바라보았다.


흩어진다. 주인의 몸이 점점 흩어진다. 그의 몸이 흩어지며 물과 동화되고 있다. 다행히 주변에 가득 찬, 응축된 물의 자연력 때문에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행히 물의 자연력 또한 자신을 막고 있는 바람의 밖을 향해 흐름의 방향을 잡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


“칫. 아직 본격적이지도 않은데 이런 압력이라니.”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해지는 압력이 너무 강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물에게 밖을 향한 방향성이 생긴다면 바로 뚫릴 것이 분명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압력이다. 마을 사람들 전체보다 호수의 자연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증거다.


결국 자신의 육체가 사라진 주인으로 인해 심장의 고동 같은 떨림은 멈췄다. 그리고 주인의 육체가 사라진 자리에 주인의 정수만이 남아있다. 정수 크기는 주인의 힘만큼 상당히 컸다. 주인을 닮은 영롱한 흑색의 정수다.


그리고 진짜는 지금부터다.


“온다!”


우웅! 우웅! 우웅!


“흡···!”


“컥!”


주인의 정수가 정령화를 시작하며 어마어마한 압력이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주인의 정수가 주변 물의 자연력을 재배치한다. 자신에게 적합한 자연력을 선별하는 것이다.


같은 물의 자연력이라도 모든 자연력이 완벽히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정령화를 시작하면 이런 선별과정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선택, 배제, 동화, 그리고 변화를 일으킨다.


자신에게 맞는 자연력을 선택해서 흡수, 맞지 않는 자연력을 배제, 흡수한 자연력을 자신과 동화, 마지막으로 모자란 자연력을 보충하기 위해 차이가 적은 동일 속성의 자연력부터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킨다. 이것을 정령이 될 때까지 반복한다.


그리고 이때 격렬한 힘의 유동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사람들이 막아내야 하는 것은 이것이다.


“으윽···. 모두 힘을 내라!”


온몸이 삐걱댄다. 몸 안의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버텨내야 한다. 영원 같은 인고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정령화를 지속시키려면 엄청난 양의 자연력이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이 호수와 연결을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자연력이 대상이면 선별과정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어든다. 자신에게 맞는 자연력들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렇게 단시간에 승부를 보려는 이유는, 선별과정이 오래 지속된다면 육체를 잃은 정수로는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다. 그렇기에 단시간에 끝내야 한다.


그 과정을 어떻게든 빨리 끝내기 위해 지금 하스트가 돕고 있다. 주인의 자연력을 분석한 다음 최대한 비슷한 자연력들을 정수의 근처로 욱여넣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하지만-


지지지직.


그 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파멸의 소리가 들려온다. 결국 압력을 버티지 못한 바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아직 끝나려면 더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최고의 상태였어도 호수의 힘과 주인의 힘을 버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최고의 상태도 아니다. 침입자인 영물 오거와 전투가 끝나고, 장례식을 거친 후 바로 주인과의 끊임없는 전투로 인해 누적된 피로. 그리고 엘프 마을보다 바람의 자연력이 적은 호수의 영역 때문에 회복력과 출력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하스트는 이 작전의 성공률이 낮다고 판단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생각이 현실이 되려 한다.


“더 이상은··· 안 되는 건가...!”


사람들은 죽을 듯이 힘을 쥐어짜 내고 있다. 실제로 지금 몇 명은 이미 탈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다.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하고 있지만, 무리다.


균열이 점점 커진다. 결국 반구형의 밑 쪽으로 구멍이 뚫리고 만다. 그곳을 향해 물이 쏟아지려 한다. 하스트 인생 최대의 도박은 결국 실패로 끝나려 한다. 이대로라면 결국 정령화에 실패한 주인의 정수가 부서지며 폭발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평범한 자연화 때보다 많은 자연력을 품고 있기때문에 더 여파가 클 것이다.


“포기··· 하지 마세요! 아빠!”


몸을 돌보고 있던 엘르가, 다시 일어서서 사람들을 돕는다. 하지만 그녀는 물의 역류로 인해 바람마저 사용하기 힘든 상황.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엘르!”


구멍을 몸으로 직접 막는 것. 물리적으로 막은 육체로 인해 구멍으로 쏟아지는 물과 자연력은 잠시 막혔다.


“컥!”


하지만 그것은 구멍으로 나갈, 바람의 힘으로 겨우 막아내고 있는 힘을 온전히 그녀의 육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자연력이 엘르의 몸속을 헤집는다. 물의 자연력이 바람의 자연력과 몸속에서 충돌한다.


엘르는 지금 당장 구멍에서 몸을 빼내더라도 최소 몇 주는 요양해야 할 정도로 몸이 악화되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더 구멍을 막는다면, 평생을 불구로 살거나, 자연력들 간의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다.


“내 딸아!”


촌장이 힘을 거두고 엘르에게 달려가려 하지만 엘르가 소리치며 촌장의 행태를 나무란다.


“아빠! 지금 아빠가 보아야 할 것은 제가 아니에요! 제 아빠로서가 아니라 촌장으로서 이곳에 있으셔야 해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피를 토한다. 촌장은 잠시 이성을 잃을뻔했지만, 엘르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딸의 말이 맞다. 어차피 지금 힘을 거두고 바람이 깨어진다면, 어차피 모두 죽는다. 이에 다시 최대한의 힘을 쏟는다.


콰직!


“젠장~!!”


하지만 그렇다고 없던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미 힘의 차이가 너무나도 명백하다. 물의 자연력은, 마침내 바람을 박살 내버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이제 시간문제다. 쓰러진 사람들은 자신의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물을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멍하니 그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쿠웅!


그리고, 하늘에서 강력한 힘이 내려온다.


“뭐야?!”


모두가 예상치 못한 힘에 깜짝 놀란다. 어마어마한 힘이 내려와 있다. 원통형의 바람은 호수의 자연력을 완벽히 봉쇄하고 있다.


모두가 하늘을 바라본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이런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혹시 또 다른 적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너무나 익숙한 형태를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했다.


“저건··· 활?”


그곳에는 마을의 보물인 순백의 활이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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