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56,347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9.01.02 23:52
조회
165
추천
1
글자
10쪽

두려움 (3)

DUMMY

“이거 예언자님이 만드신 거 맞지? 전설에 나오는 절대자가 예언자님 맞지?”


엘르는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갈팡질팡 하면서 퇴기와 하스트 양쪽으로 도리질 쳤다.


“크하하하! 우리 마을에서는 동일 인물로 보고 있다! 예전에 선조님이 직접 물어보셨다는 말도 있으니까! 어떤가, 하스트? 전설의 주인공이 예언자님이 맞으신가!?”


“맞아. 그런데 딱히 산이 의지를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중간에 튀어나온 녀석들도 그렇게 대단한 녀석들은 아니었고.”


“크하하하! 전설이란 원래 다 그런 거 아니겠나! 허풍이 조금 섞여있는 것이 바로 전설의 재미지! 눈 앞의 이 경이로움의 주인공이 실제 한다는 것만 해도 전설의 가치는 충분하다!”


퇴기는 호탕하게 웃었다. 적어도 전설이 완벽한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니까.


‘놀랍군.’


그리고 그 반응과 이야기를 듣고, 카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예언자에 대한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언덕을 넘어, 작은 산을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하늘의 구름을 뚫었던 호수의 주인도 대단했지만, 이건 그것을 넘어섰다. 물과 땅의 술법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니 바람의 장벽도 처음에는 그 사람이 만들어줬다고 한 것 같은데. 아무리 남부 사람을 못 믿는다고 해도 우리 마을에도 뭐 하나라도 만들어주지··· 위험만 늘리지 말고... 쩝.’


선조들이 원한 일이고, 머나먼 옛일이지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만나면 부탁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맥의 사람들이 왜 예언자를 그렇게 따르는지 더욱 이해가 갔다.


‘단순히 마을의 은인 정도가 아니군. 은혜를 상회하는 무력이야. 특히 옛날에는 개기다가는 그대로 죽었겠는데?’


자연력이 희소할 때도 이 정도면,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로 강할지 상상이 안 간다. 애초에 이런 술법 쪽으로는 상상력이 딸리지만. 정령인 휴도, 최강의 영물인 호수의 주인도 그를 인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하스트에게 들었던 것과 다른 점을 발견한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다른 곳에 있잖아? 정말 여기가 제일 높은 거야?”


“아니, 여기가 제일 높지는 않지. 이 근처에서 가장 높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뭐 다른 곳은 거리가 거리니, 조금 작아 보이긴 하지. 북동쪽에 있는 화염산도 여기보다 높고. 뭐, 진짜로 가장 높은 곳은 따로 있지만.”


“네가 번개를 부린다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곳?”


“어, 맞아. 용케 기억하고 있구나. 거기가 제일 높아. 근데 웬만한 사람들은 모를 거야.”


“왜? 여기는 몰라도 다른 산에 올라가면 보이는 거 아냐? 방향으로 보면··· 이쪽인가?”


카를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하스트가 움찔한다.


“너-”


“응?”


하스트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예상치 못한 하스트의 격한 반응에 오히려 카를이 당황한다.


“어··· 어? 산맥의 최북단이라며? 그럼 저쪽밖에 없는 거 아냐? 내가 잘못 말했나?”


“아··· 그런 식으로 추리한 건가··· 아니야, 내가 잘못 생각했네. 맞아. 그쪽에 있어.”


카를의 대답을 듣고, 하스트의 눈빛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하긴 제대로 알리가 없지.’


카를만이 아니라 아마 도깨비들도 모를 것이다. 아니, 세계 전체를 뒤져도 그 산을 아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 것이다. 다른 모든 산이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산이지만.


개인의 무력이 강력하여 이 산, 저 산을 들쑤시고 다니는 도깨비들. 다른 산의 정상에서 세상을 본 그들이라 하여도 여기를 가장 큰 산이라 여기는 이유가 있었다.


‘이 나조차 제대로 모르는 장소인데. 나도 우연찮게 발견한 거고.’


세상 어디를 뒤져도 그것보다 거대한 것이 없는 산이지만,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말도 안 되는 모순이지만, 이것은 진실이었다.


‘그 산은 보이지 않으니까.’


다른 산을 아래에 둔 그 거대한 산은, 볼 수 없는 산이었다. 하스트조차 최북단으로 점점 이동하다가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산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야말로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산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자신은 그 산의 초입에 몸을 들인 후였다.


도대체 어떻게 그 거대한 산을 감출 수 있는 것인지는 천하의 하스트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무언가 거대한 힘과 술법이 산을 감추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것조차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뭔가, 다른 느낌이었어.’


그 어떤 자연력에도 포함되어있지 않는 알 수 없는 힘이었다. 아니, 그것을 떠나서 아예 근원이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자연력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술법도 마찬가지였다. 물리적으로 모습을 감추는 술법이 아니었다.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인식 자체를 비틀어버린다는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만난 그 거대한 수수께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다. 그 산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 번개를 부리는 사람들한테 쫓겨났으니까. 하스트조차 무력으로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것도 한 명, 한 명 모두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후퇴한 후, 산을 벗어나고 더 큰 충격에 빠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산에 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기억을 지우는 술법이 펼쳐져있었다는 것을.


이 해괴한 술법에 당할 수 없었기에 반항했다. 발악하며 벗겨내었다.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는 술법을. 그런데 기억에 작용하는 술법을 해제하지 않고, 억지로 벗겨내서였을까? 자신조차 어떻게 벗겨내었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자신이 아니었으면, 기억이 희미해지는지도 모르고, 산에 대한 기억을 날려버렸을 정도로 경이로운 술법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식으로 술법을 펼치면 인간의 인식과 기억에 작용할 수 있는지 도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 후로 그 산에 절대 다가가지 않았다. 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상대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것이 분명하다. 심증이 가는 것은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전설 중의 전설이다. 무엇보다 그 존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괜히 신경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그 산의 기억으로 인해 아직도 표정이 풀리지 않고 있는 하스트를 보며 카를은 생각했다.


‘별 이상한 걸로 과민 반응하네··· 애초에 못 볼 수가 없을 텐데.’


언젠가 보았던 그것을 생각한다.


‘그 큰 산을.’


“푸하하하! 우리 마을의 전설에 대해 열심히 말하고 있구나! 하스트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 마을의 전설이 아니라 예언자님의 무용담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나름대로 마을 사람들과 떠들고 온 촌장이 이번에는 하스트에게 다가온다.


“자, 그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는 이 장소를 알고 있지만, 그뿐이다.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위한 장소인지도 모르지. 그것도 어제까지의 일이지만. 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느냐? 예언자님이 특별히 만든 곳이니, 당연히 특별한 방법이 있겠지?”


“특별하다고까지 할 건 없는데요. 이건 그냥 벽이에요.”


“음? 그래? 그럼 이 절벽 위로 올라가면 되겠군.”


“아뇨. 탑은 위에 없어요. 말했잖아요. 눈 앞의 이건, 벽이라고. 그러니까-”


하스트가 절벽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 근처만으로는 모자란 지 이곳저곳을 들쑤신다.


“아, 여기네. 그러니까, 그냥-”


자리를 잡은 그 절벽에 손을 얹더니 땅의 술법을 발휘한다. 하스트 눈 앞의 절벽은 술법의 대상이 되더니 힘을 잃고 조금씩 허물어진다.


“부수면 그만입니다.”


절벽은 마침내 그 속살을 완전히 드러냈다. 하스트의 앞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향하는 구멍이 생겨났다.


“다들 조심히 따라오세요.”


하스트가 먼저 횃불에 불을 붙이고 들어간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불을 붙이려고 한다.


“왜 횃불을 챙기나 했더니.”


“그러게. 난 당연히 정상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하긴, 정상에 세웠으면 동물들이 터를 잡다가 상처가 날 수도 있었겠구나. 우리라고 해도 완벽하게 동물들을 막지는 못하니까.”


“그건 그렇네. 그런데 나 점화 도구 없는데, 누구 있는 사람?”


“나도 없는데.”


“나도 누군가 가지고 올 거라 생각하고···”


“...”


모두가 눈치만 보며 정지한다. 이방인인 카를과 엘르에게 불을 빌려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체면이 안 섰다.


어쩔 수 없이 퇴기에게 물어보려는 찰나, 왜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나 살펴보러 온 하스트에 의해 불이 나눠진 후에야 사람들은 하스트의 뒤를 따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 웅이는 여기서 기다려.”


“우엉?”


“네가 영물 직전의 영리한 동물인 것은 알지만, 파괴자처럼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는 상대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밖에서 다른 동물들이 들어오지 않나 감시해줘.”


하스트의 말에 웅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는 혹시 모르니, 한 사람이 더 남기로 한다.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동물한테 이런 것까지 맡기다니. 믿음이 엄청나네. 게다가 단 둘이서 있으라니.’


아무리 똑똑하고, 어떨 때 보면 사람 같기도 하지만, 맹수랑 단 둘이 있는 것은 카를은 사양하고 싶었다.


“자, 들어가자.”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드디어 산의 내부로 몸을 옮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령의 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수술 (수정) 19.10.02 54 0 -
공지 방관자 (5) 가 수정되었습니다. 19.09.27 32 0 -
200 다시 시작된 이변 (1) +2 19.09.30 53 0 27쪽
199 방관자 (9) 19.09.28 22 0 30쪽
198 방관자 (8) 19.09.27 23 0 27쪽
197 방관자 (7) 19.09.26 34 0 28쪽
196 방관자 (6) 19.09.25 32 0 26쪽
195 방관자 (5) 19.09.24 29 0 26쪽
194 방관자 (4) 19.09.23 29 0 17쪽
193 방관자 (3) 19.09.23 32 0 11쪽
192 방관자 (2) 19.09.21 43 0 13쪽
191 방관자 (1) 19.09.21 22 0 13쪽
190 왕국의 잔재 (4) 19.09.20 27 0 13쪽
189 왕국의 잔재 (3) 19.09.20 32 0 16쪽
188 왕국의 잔재 (2) 19.09.19 96 0 12쪽
187 왕국의 잔재 (1) 19.09.19 34 0 13쪽
186 나이트와 파괴자 (4) 19.09.18 25 0 14쪽
185 나이트와 파괴자 (3) 19.09.18 38 0 13쪽
184 나이트와 파괴자 (2) 19.09.17 25 0 17쪽
183 나이트와 파괴자 (1) 19.09.17 34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