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무량극
작품등록일 :
2018.04.19 18:40
최근연재일 :
2019.09.30 23:58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56,345
추천수 :
269
글자수 :
1,220,287

작성
19.09.25 23:58
조회
31
추천
0
글자
26쪽

방관자 (6)

DUMMY

카를이 검을 잡자, 검에 담겨있던 카를의 자연력이 카를에게로 넘어간다.


으득.


카를은 넘쳐흐르는 자연력에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과 똑같다. 몸이 터질 것 같다. 자연화 할 것 같다. 정령화 할 것 같다.


그러나 잠시 후, 카를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검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다.


연결되고 있다. 검이 카를을 서서히 돕기 시작한다.


우우웅! 우우웅!


카를과 검이 공명한다. 카를을 무너뜨리려는 자연력이 검에게로 흘러들어간다. 검이 카를의 자연력에 섞인 다른 자연력들을 밖으로 흘려보낸다. 그것을 다시 정제해서 카를에게 흘려보낸다.


이것의 반복이었다. 반복할수록 카를의 육체는 안정화되어갔다.


카를은 자신의 감각이 점점 날카로워지며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 모든 것이 다시 다르게 보인다.


하스트, 엘르, 퇴기, 시미, 스트라. 모든 것이 자연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 떠다니는 자연력들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인다.


하스트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도 자신이 검과 연결된 것처럼 어딘가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저번보다 강하게 보인다.


육체에 깊게 새겨진 균열들이, 결코 좁혀지지 않던 미세한 틈들이 사라진다.


불안정했던 육체가, 불안했던 정신이, 아물어간다.


그리고 모든 틈이 완벽하게 봉합되는 순간, 카를의 세계는 돌아왔다.


“오···”


카를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너무 상쾌했다.


“어때?”


남자가 웃으며 카를을 바라본다.


“아주 좋습니다. 하하하. 날아갈 것 같네요.”


카를은 주먹을 휘둘러보았다.


좋다.


주먹을 강하게 쥐어 보였다.


좋다.


모든 것이 좋았다.


하스트도 카를을 뚫어지게 보았다.


“놀라워. 자연력이 활성화되어있는데도, 자연화나 정령화할 기미가 안 보여. 엄청난 안정성이야.”


실제로 전투를 벌여봐야 알겠지만, 이 정도면 드워프 왕국에서의 힘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카를에게 무기가 생겼다. 맨손으로 싸우던 때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거 영물과 싸울 때 카를은 창을 들었다. 그때의 카를은 주먹질할 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싸웠다. 비록 내로라하는 창술가들보다는 미흡한 실력이었지만, 그의 육체는 기술의 차이를 매워주기에는 과할 정도로 충분하다.


“그런데 이러면 제가 이 검을 계속 들고 있어야 하나요? 놓으면 다시 자연화?”


“해 봐.”


남자의 말에 카를은 검을 놓고 떨어져 보았다. 그러나 순환은 멈추지 않았다.


“말했지? 연결해놓았다고. 네가 얼마나 떨어져 있어도, 순환은 계속될 거야. 네가 검을 잃어버려도, 공간을 넘어서. 물론 그래도 거리가 있으면 그만큼 순환의 시간이 길어지긴 해. 공간 마법이 절대적인 건 아니거든. 지금 상태를 보면 적어도 100km 이상은 떨어져야 순환이 느려졌다는 걸 느끼겠지. 나중에 순환이 거의 필요 없어질 때가 되면 그 거리는 더 길어질 테고.”


“100km?”


어이없는 단위다. 100m라고 해도 믿기 힘든데, 100km라니.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나저나...”


남자는 카를과 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무 작네.”


시미와 스트라는 말할 것도 없고, 하스트나 엘르 입장에서도 카를의 검은 작지 않다. 딱 알맞은 크기다.


“크하하하! 우리 입장에서는 단검 같군!”


하지만 거한인 퇴기와 카를의 입장에서는 작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아우루. 이것 좀, 더 가지고 와.”


“그거 꽤 비싼 건데요?”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금세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가만히 놔두기에는 좀 그래.”


“게다가 빌린 거잖아요.”


남자는 즉답했다.


“그건 상관없어.”


‘아니, 그게 더 상관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성은 주인의 도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사라졌다. 금세 다시 돌아온 여성의 옆에는 퇴기보다도 큰 자연철이 존재했다.


“우아아···”


엘르는 자신의 활과 눈 앞의 자연철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거라면 이 활을 100개도 넘게 만들 수 있다.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로 눈에 이채를 띄었다. 자연철의 능력이나 희귀성은 하스트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으니까. 자연력을 다루는 자에게는 최고의 장비 재료다.


“기대하지 마라, 너네 건 없어.”


그러나 남자의 말에 모두가 실망했다.


남자는 카를의 검을 자연철 덩어리에 꽂아 넣고 말했다.


“들어봐.”


카를은 남자의 말대로 검을 들었다.


“윽!?”


안 들린다. 성문조차 날려버렸던 카를의 힘이 무참하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안 되나?”


남자는 덩어리를 뭉텅뭉텅 떼어냈다.


“다시.”


카를은 다시 들었다. 아까보다 자연철의 양이 많이 작아졌기에 들리긴 한다. 하지만 버겁다.


“좋아.”


카를의 힘을 확실히 파악한 남자는 카를의 검을 재가공했다. 그 결과, 카를의 입장에서도 대검이라 불릴만한 검이 만들어졌다.


“휘둘러봐.”


카를은 검을 잡고 휘둘렀다. 그의 힘에 걸맞은 호쾌한 일격들이 쏟아진다.


“어때? 괜찮지?”


“아, 네. 지금까지처럼 손에 뭘 들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가볍지는 않아서 딱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무기라는 건 너무 무거우면 안 되거든. 본인이 무기에 휘둘리게 되니까. 그렇다고 힘에 비해 너무 가벼우면, 무기를 드는 이유가 없지. 둘 다 실력이 충분하다면 어떻게든 쓰겠지만, 넌 아니겠지.”


카를은 뻘쭘해졌다. 남자가 만들어준 이 검은, 대단한 물건이라는 것이 팍팍 느껴진다. 그러나 카를 본인의 검술 실력은 그처럼 대단하지 않다.


“내가 너 같은 녀석을 잘 알아. 아까도 말했다시피 드래곤들이나 용들은 죄다 게으르거든. 생명의 위협을 못 느끼니까. 아마 너도 지금까지 그랬겠지. 그것만 보면 너의 감성은 우리와 비슷해. 모든 것에 한발 떨어져 있지. 남들에게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위업도, 너에게는 그저 귀찮은 일에 불과했겠지. 최선을 다할 줄도 모르고, 다 해야 하는 감정도 느끼기 힘들었을 거야.”


카를은 남자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말은 그 누구의 말보다 깊게 다가왔다. 거기에는 이해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강하다는 것은 생명의 위험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지만, 성장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만한 저주가 없지. 하물며 주위에 대적할 자조차 없는 고독한 강함이라면 더욱.”


남자는 카를이 만나본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다. 그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던 카를의 입장을, 눈 앞의 남자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카를보다 훨씬.


“하지만 네가 우리보다 다행인 점은, 우리보다 약하다는 거야. 그리고 대적할 존재를 찾았지. 너보다 강한 존재를 보았지. 이번 일은 너에게 크나큰 파장을 남겼을 거야, 맞지?”


카를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어떠한 순간에도 그에게 단련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주위 사람과 달랐던 그는,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는지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으니까.


“육체적인 능력만이라면 넌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었어. 하지만 전투력의 척도는 신체능력만이 아니야. 무엇보다 넌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너보다 약한 힘을 가지고서도 훨씬 훌륭하게 자신을 단련한 사람들을. 그 사람들이 너보다 약하다고 해서 넌 그들을 우습게 봤어?”


남자의 말에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깨끗한 검을 보았다. 무엇보다 깊게 고뇌한 노력의 검을 보았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검을 보았다.


무엇보다 강인한 체술을 보았다. 무엇보다 투박한 체술을 보았다. 무엇보다 상대를 이용할 줄 아는 체술을 보았다.


그 모두가 카를에게 강하게 새겨져 있다. 단련하지 않았던 지난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고난이 이어졌다.


“단련은 언제나.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찾아오는 게 아니지. 단련이란 언젠가 찾아올 만약의 때를 대비하는 거야.”


남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카를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남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 여유는 강함을 통해서 생겨난다. 강해져라. 설사 홀로 떨어지더라도, 그 모든 여유가, 널 인간으로 만들어줄 거야.”


그것은 강철의 파괴자가 카를에게 했던 말과 완벽히 정반대의 말이었다. 홀로 강하기에 절대 인간으로 있을 수 없다는 그의 말이, 그의 저주가, 지금 카를의 안에서 서서히 녹아 없어지고 있다.


“물론 여러 명이 강하면 더 좋고.”


남자는 일행을 보면서 씩 웃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무엇보다 네가 세계에서 제일 강할 일은 절대 없으니까, 안심해.”


남자의 말에 카를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대로였다. 어디까지 올라가도, 어디까지 강해져도, 그 위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드래곤이, 눈 앞에 있다.


“자, 첫 번째와 두 번째 부탁은 끝이 났다. 세 번째는 대화라고 했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일행은 이동했다. 아까 왔었던, 남자의 집이다.


“주인님? 여기는 왜 왔죠? 설마 또 게임하려고 하는 거 아니죠?”


“맞는데? 어차피 대화라고 해봤자 뭐 있겠어? 그래도 난 경우를 아니까, 복잡한 게임 말고, 단순 반복 작업만 할게.”


‘대화하자고 하는데 게임하는 것부터 이미 경우가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더 이상 불만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소기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 애초에 그녀는 카를을 살리는 것만이 목적이었으니까.


‘그분과의 약속이 이걸로 지켜지기를 바라야지.’


물론 지금 카를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카를이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약속의 존재가 되기에는 한참 멀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남자는 방문을 열었다. 어두컴컴한 공간이 펼쳐져있다.


하스트는 그곳에 따라들어가기 전에 뒤에 있는 문에 눈길을 주었다.


남자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앉더니 바로 무언가 조작한다. 그러자 벽면 가득 빛이 들어온다.


일행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무엇을요? 대화요, 게임이요?”


“게임, 아니 둘 다.”


“후··· 알겠어요.”


여성은 한 발짝 떨어졌다.


방에는 오직 남자의 게임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일행은 하스트를 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그에게 대화를 양보한다고 써져있다.


‘떠넘기는 게 아니라?’


하지만 불만은 잠시, 안 그래도 하스트는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든 대답해 주시는 겁니까?”


“가능하면.”


대답이 불가능한 것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다. 어차피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을 한다고 해서, 불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내지르고 봐야 한다.


“용과 드래곤의 차이는 정확히 무엇이죠? 아까는 생김새라고 했는데, 제 생각에는 무언가 더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지?”


“경지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서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리고 이곳으로 오면서 살짝 봤습니다. 자연력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것도 세상의 힘 중 하나라면, 당신들은 그것을 다루는 게 아닐까 합니다.”


“가설에 가설에 가설이구만. 하지만 정답이다. 네 말이 맞아, 용과 드래곤의 가장 큰 차이는 다루는 힘이야. 용은 너희가 말하는 자연력을 다루지. 그러나 우리는 마나를 다뤄.”


“마나?”


“그래. 물론 우리는 강하니까 반대편의 힘도 다룰 수 있지만, 종족적인 특기는 그것이지.”


“자연력과 마나의 차이는 뭐죠?”


“그렇게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물론 내 입장이지만. 둘 모두 만능의 에너지라 불리는 힘이야. 그 어떤 것의 특징이라도 가져올 수 있지. 자연력을 쓰는 너희라면 알겠지? 불이나 물, 바람이나 흙의 특징을 가져올 수 있지. 마나도 똑같아. 다른 점은 변형과 유지야.”


“변형과 유지?”


“둘을 비교하자면, 자연력, 에테르는 마나보다 변형이 어려워. 고착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반대로 한번 변형되면 쉽게 유지할 수 있어. 에테르가 자연력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게 크지. 자연 여러 군데에 고착된 상태로 붙어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에테르를 주로 사용하는 자들은 한 가지 속성에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럼 반대로 마나는 변형이 쉽고 고착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렇지. 거기다 마나는 언제나 본래의 기본적인 상태로 회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렇기에 마나를 쓰는 자들은 마나에 속성을 불어넣어 간직하기보다, 마나 자체를 간직한 다음에 힘을 사용할 때 속성을 불어넣지. 물론 이것들은 아주 기본적인 특성에 불과해. 본인의 재능이나 사용법에 따라 마나를 에테르처럼, 에테르를 마나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 요술이나 도술처럼. 근데 거기까지는 알 거 없어. 어차피 이 세계에는 에테르만 존재하니까. 마나가 있는 곳은 오직 이 금지 안 뿐이야. 그나마도 나와 쟤의 마나지.”


“잠깐, 그러면 마나를 쓰는 사람들은 하스트처럼 다양한 속성을 두루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엄청 부럽잖아?”


“흠···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도 힘들겠네. 상황에 따른 만능성은 우리의 자연력보다 좋지만, 정작 술법을 사용하기에는 힘들겠어. 언제나 변환이라는 과정을 한번 거쳐야 하는 거잖아?”


“하하하. 하스트 말이 맞아. 게다가 에테르처럼 속성이 명확하지도 않으니, 변환의 과정은 온전히 사용자가 짊어지게 돼. 에테르 사용자와 마나 사용자가 처음 힘을 깨우치고 싸운다면, 거의 무조건 에테르 사용자가 이긴다고 봐야 해. 변환 자체의 위험성도 있고. 다만, 속성의 다양성이 없는 만큼 약점을 공략당하기에는 에테르 쪽이 더 쉽지. 이렇게 생각해. 안정성의 에테르, 다양성의 마나. 그런데 이걸 기억해도 평생 쓸 일 없을걸?”


“하긴 그러네요.”


시미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알 필요가 없는 정보였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스트는 다음 정보에 대해서 물었다.


“아까 그 문은 뭐죠? 그 문을 여는 순간, 동료들의 힘이 강해졌어요. 그리고 당신은 연결된 얘들이라고 했죠.”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너도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잖아?”


“제가 묻고 싶은 말은, 왜 문을 여는데 아이들의-”


“그러니까, 이미 알고 있잖아?”


“설마, 진짜입니까?”


“하스트··· 어떻게 된 거야?”


스트라는 둘의 이야기가 어떤 맥락인지는 알았다. 하지만 그 대화가 뜻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다.


하스트는 스트라를 잠시 보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너희들의 힘에 대해서야.”


“우리의 자연력?”


“아니, 그게 아니야. 너희들의 특이점에 대해서야. 파괴자를 상대한 술법을 통해서 사용해봤으니까 알 거야. 너희들의 힘은 단순한 술법과 다르다는 것을.”


“그래. 하스트의 말이 맞아. 좋은 증거 자료를 주지.”


여성이 손을 들자, 허공에 영상이 떠오른다.


“어? 이건 우리?”


거기에는 나이트와 맞서는 예언의 아이들이 있었다. 예언의 아이들이 술법을 준비하고 있는 영상이다.


-고작 속성과 술법의 적성만으로는 선택받을 수 없었다! 이 술법을 완성할 수 없었다! 너희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말이 맞다! 우린 예언자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다! 우리를 선택한 것은 세계다!


하스트가 나이트에게 외치던 그 순간이다.


“저 말이 사실 그대로였구나.”


카를은 영상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예언의 아이들이 무언가에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저번에 확인했었다. 방금 전에도 보았고.



“뭐야, 너도 뭔 소리인지 알아?”


엘르는 충격받았다. 카를도 아는 것을 모른다는 게.


카를은 엘르의 말에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보았다.


“훗.”


“으으으으!”


카를은 평소에 술법과 자연력에 대해 모른다고 구박받던 설움을 지금 풀었다.


“다른 말은 중요한 게 아니지. 마지막 말이 중요하지.”


남자의 말에 여성은 다시 한번 재생해주었다.


“근데 꼭 이걸 계속 봐야 합니까?”


“왜 멋있는 장면 아냐?”


“제 모습을 이렇게 보니까 좀···”


하스트는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창피한 건 아닌데, 영 보기가 그렇다.


남자는 하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속 재생을 명했다.


하스트를 구해낸 것은 스트라였다.


“우리를 선택한 것이 세계라고?”


스트라의 말에 여성은 재생을 멈췄다.


하스트는 그 사이에 얼른 말을 꺼냈다.


“그래. 너희들은 세계의 선택을 받았어. 그렇기에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힘을 사용할 수 있지. 스승님은 너희들을 그냥 선택한 게 아니야. 세계와 연결되어있기에 선택한 거지. 하지만 그 원리는 나도 잘 몰라. 너희들이 어떻게 힘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고.”


하스트는 남자를 보았다. 그라면 답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확실히 그 능력은 너희들이 사용하는 술법과 완전히 다른 능력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너희의 힘이 아니야.”


“... 세계의 힘이군요.”


“정답이야, 드워프 꼬마. 그 힘은 세계의 힘을 빌리는 거지. 세계와 연결되어있기에 가능한 훌륭한 능력이야. 그 힘은 세계의 일정 부분, 규칙이나 정보 같은 것이 연결되었다는 증거야. 힘이라기보다는 시야가 달라진다는 말이 더 맞겠지. 너희 같은 녀석들을 연결자라고 해. 아, 그것보다는 초능력자라는 말이 더 쉽겠구나.”


“초능력자···”


“그래. 어색한 말이지? 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말은 아니니까. 가끔 너희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지. 세계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아이들이 말이야.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불을 일으킨다던지, 무엇이든 던질 수 있다던지, 아니면 움직이지 않을 때라면 어떠한 충격도 버틸 수 있다던지.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들이지. 그렇기에 초능력이야.”


“에? 하지만 저희는 태어날 때부터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요?”


“그럴 수도 있어.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초능력자인데도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연결을 확실히 알아챌 수 있는 스승이라도 있지 않다면 말이야. 그런데 애초에 너희조차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를 텐데, 누가 알려주기도 힘들지.”


남자의 말이 맞았다. 예언의 아이들은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지, 그게 어떻게 해서 어떻게 발현되는 연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눈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러나 그 이유를 정확히 아는 자는, 인체에 통달한 자가 아니라면 힘들어. 너희 또한 마찬가지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감각이니 깨우친다면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왜 사용되는지는 모르지. 너희는 선천적으로 타고났지만, 그 감각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 거라 할 수 있지.”


남자는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저 게임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초능력자들은 그 능력이 극히 한정적인 개념인 경우가 많거든. 현실세계에서는 찾을 수도 없는 것일 수도 있어. 너희들은 종족 특성이나 다루는 속성과 어느 정도 어울리는 힘이니까, 그나마 금방 찾을 수 있던 거야.”


“그럼 저희의 능력이 뭔지 아세요?”


“물론. 엘프는 공간, 도깨비는 고정, 소인은 동화, 드워프는 방사네.”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저번에 쓴 술법을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럼 역시 문 안에 있는 건-”


하스트는 원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의 능력이 갑자기 팽창하듯 커질 리가 없다. 세계와 연결되어있는 자가 세계와 가까이했기에 벌어진 일이 분명하다.


남자는 대답하는 것에 잠시 뜸을 들였다.


“음··· 중심은 아니야. 말했잖아, 우린 세계의 눈을 피하고 있다고. 그런데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떡하니 내 방 앞에 놓으면 어떻게 되겠냐? 하지만 비슷해.”


“네? 아닌데, 비슷하다고요?”


“저 안 깊숙한 곳에는 세계의 중심을 굉장히 약하게 만든 간이 핵이 있어. 금지를 유지시키기 위해서지. 너희가 진짜로 세계의 중심에 그 정도로 가까이 갔으면 이미 자신을 잃었을 거다. 그대로 세계의 흐름에 빨려 들어갔겠지. 연결되어 있다는 건 그런 거니까.”


“그렇다면··· 세계의 중심을 뭐라고 부릅니까? 그렇게 중요한 곳이면 호칭이 따로 있을 법도 한데.”


“네 말대로야. 하지만 호칭은 다양해. 그냥 세계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녀석도 있지만, 근원, 도서관, 정보실 등등 별별 소리가 다 있지. 하지만 가장 정확한 표현은 따로 있어. 질서의 핵.”


“질서의 핵?”


“그래. 세계의 중심은, 세계가 만들어지고 난 이후에 그 중심에 자리 잡은 뭔가가 아니야. 핵이 먼저 만들어지고 세계가 만들어진 거다. 세계의 온갖 질서는 저 핵으로부터 나와. 핵을 교란하면, 세계는 뒤틀린다. 질서가 흔들리기 때문이지. 간단하게 내가 지금 앞으로 가는 것과 뒤로 가는 것이 바뀔 수도 있고, 모든 인간의 생김새가 달라질 수도 있어.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 바로 질서의 핵이니까. 그렇기에 도서관이나 정보실이라고도 불리는 거고.”


“그럼 그곳에 다가가면 세계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알 수 있다는 겁니까?”


“물론 알 수 있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도 알 수 있어. 하지만 그건 꿈도 꾸지 마. 나라도 힘드니까. 차라리 세계와 싸우는 게 더 나을 정도야. 애초에 인간은 그곳에 다가가는 순간, 세계의 흐름이 되어버리겠지만. 정보계 초능력자들 중에는 아주 가끔 과거의 일이나 세계의 인물에 대한 능력을 가진 놈도 있긴 해. 예언 능력은 그런 능력 중에서 최고 수준이지. 물론 예언을 뱉는 순간 다른 미래가 되면, 아무 의미 없지만.”


예언의 아이들이 예언이라는 말에 흠칫할 때, 반대로 하스트는 생각에 빠졌다.


그 침묵에 남자가 묻는다.


“왜? 알고 싶은 정보라도 있어?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걸? 세계의 보안은 엄격해. 네가 방법을 찾는다고 해도, 절대 다가갈 수 없어. 실패하면 단순히 죽는다 정도가 아니야.”


그 말에 하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방법도 알 수 없다. 이 금지 말고는 그런 것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 따위 보지도 못했다. 금지 안에서 그런 짓거리를 했다가는 사내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럼 다음 질문?”


어느새 분위기는 대화가 아니라 문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하스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혹시 저희에게 하사해주실 건 없으십니까?”


“하사? 뭐, 새로운 기술이라도 알고 싶어?”


“네. 파괴자와 싸우기 위해서라면 더 강력한 기술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라는 게 많군. 나보고 너희들을 가르치라는 거냐? 좋은 각오지만, 그건 기각이야. 말했다시피 우린 너희에게 관여할 생각 없어. 제자라면 더욱더 그렇지.”


“하다못해 번개의 자연력이라도 안 되겠습니까?”


“너 용들이 쓰는 거 보고 반했구나? 하긴 번개는 좋지. 무엇보다 그 속도는 절대 인간이 피할 수 없지. 그만큼 다루기도 힘들지만.”


“네. 번개의 파괴력에 대해서는 저도 몇 번 봐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번개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다른 속성과 다르게 저도 관찰해서 터득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너라면 확실히 관찰한 시간만 충분하다면 번개를 터득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기각.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전투를 하면 부담이 커. 용들의 힘도 아주 잠깐만 사용하는 거고. 그래도 힌트는 주지. 가끔 하늘을 날아서 구름 속으로 가봐. 거기라면 자연적인 번개가 가끔 있으니까. 대신 번개 맞고 죽어도 난 모른다.”


“그 외에 해주실 조언은 없으십니까?”


“조언이라··· 한 가지 있긴 하네.”


남자가 잠시 게임을 멈추고 뒤를 돈다. 그리고 일행을 둘러본다.


“너희는 모두 스승이 같지?”


“네? 아뇨. 스승은 모두 다르-”


“아니, 같아.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명이야. 현자라고 불리는 그 녀석이지. 예언자라고도 했지?”


“예언자님은 하스트의 스승인데요?”


시미의 말에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정확히는 너희 모두야. 너희의 모든 술법. 그 근원이 어디지? 각 마을의 술법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지?”


“아.”


남자의 말에 모두 깨달았다. 확실히 스승은 하나다.


“너희의 술법에는 다양성이 너무 부족해. 원래 종족들은 모두 각 특성이 달라서 술법의 방향성도 다르거든. 속성만이 아니라 술법을 발휘하는 과정조차. 그런데 세계의 인간들은 모두 획일화되어있지. 그래서 아마 종족마다 술법의 적응 정도가 다를 거야. 어떤 종족은 굉장히 원활하게 배우지만, 어떤 종족은 굉장히 느리게 배우지. 물론 현자를 욕하는 건 아니야. 그 녀석이 없었다면, 아마 세계는 술법을 잊어버렸겠지.”


일행의 주목을 받으며 남자는 말했다.


“너무 많이 말할 수는 없지만, 귀띔 정도는 해줄게. 원래 각 종족이 사용하던 술법의 방향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령의 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수술 (수정) 19.10.02 54 0 -
공지 방관자 (5) 가 수정되었습니다. 19.09.27 32 0 -
200 다시 시작된 이변 (1) +2 19.09.30 53 0 27쪽
199 방관자 (9) 19.09.28 22 0 30쪽
198 방관자 (8) 19.09.27 23 0 27쪽
197 방관자 (7) 19.09.26 34 0 28쪽
» 방관자 (6) 19.09.25 32 0 26쪽
195 방관자 (5) 19.09.24 29 0 26쪽
194 방관자 (4) 19.09.23 29 0 17쪽
193 방관자 (3) 19.09.23 32 0 11쪽
192 방관자 (2) 19.09.21 43 0 13쪽
191 방관자 (1) 19.09.21 22 0 13쪽
190 왕국의 잔재 (4) 19.09.20 27 0 13쪽
189 왕국의 잔재 (3) 19.09.20 32 0 16쪽
188 왕국의 잔재 (2) 19.09.19 96 0 12쪽
187 왕국의 잔재 (1) 19.09.19 34 0 13쪽
186 나이트와 파괴자 (4) 19.09.18 25 0 14쪽
185 나이트와 파괴자 (3) 19.09.18 38 0 13쪽
184 나이트와 파괴자 (2) 19.09.17 25 0 17쪽
183 나이트와 파괴자 (1) 19.09.17 34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