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1. 그와의 불화

웹소설 > 자유연재 > 중·단편, 일반소설

미사71
작품등록일 :
2018.04.27 17:25
최근연재일 :
2018.05.26 1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1,567
추천수 :
25
글자수 :
59,728

작성
18.05.18 12:03
조회
49
추천
1
글자
4쪽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그것은 아주 사소한 농담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사건들의 시작이 그러하듯이, 일말의 진정성에 하릴없는 장난기를 조금 섞어 치댄다. 다소의 취기를 첨가하고, 근거없는 상상력을 골고루 뿌린 후에 오븐에 넣는다. 그리고.... 기다린다.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달궈진 오븐 안에서는 제멋대로 부풀어오른 추잡한 상념과 도덕율이 격렬히 부딪히고, 또 폭발한다. 이윽고 종이 울리고 오븐을 열었을 때, 의도와는 다른 낯선 결과물에 황망해지고 만다... 무언가가 너무 많이 첨가되었거나, 과열되었거나, 오븐에 너무 오래 넣어두었거나.




DUMMY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몸무게 3kg 늘었지.”

J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무려나 진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들과 얘기하느라 좀 지친 표정이었다.

“근데말야, 남편은 사업을 하고, 애들은... 몇 살?”

유일한 총각인 L이 물었다.

“대학교 2학년이래. 작년엔가 군입대했다나봐.”

“그래, 남편 사업도 그럭저럭 잘 되어가고, 아들은 군대에 있고, 그런 마나님이 왜 삼겹살집에서 일을 하냐는 거지. 말이 안 되잖아?”

“뭐, 일할 수도 있지. 소일거리라잖아.”

얼마 전에 묶었다던 K가 껴들었다.

“야, 식당일, 그거 네가 몰라서 그래. 물론 다른 일보다 시급은 높은 편인데, 보통 힘든 일이 아니거든. 온통 연기 범벅이 되어서 고기 자르고, 굽고, 또 불판 닦고.... 돈 있는 마나님이 할 일이 아니란 말이지.”

L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긴 그렇긴 하네. 소일거리라면, 편한 일자리도 있을 텐데 말이야. 그 여자 뭔가 사정이 있는 거 아냐?”

J는 말없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무언가가 궁금했다.

“뭔가 있구나?”

그러자 L이 뒤이어 물었다.

“크림맥주만 먹은 게 아니구나?”

K가 따라 말했다.

“너 이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오~ 일제히 함성을 울렸다.


그녀는 크림맥주 말고도 하고 싶은 일들,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팝콘과 콜라를 들고 심야영화를 같이 보기도 했고, 눈꽃빙수를 먹기도 했으며,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들인 파스타를 먹기도 했다. J는 늘 거기에 있었다. 때로는 그녀의 제안을 따르기도 했고, 때로는 내내 궁리하다가 제안을 내기도 했다. 제안은 늘 성공적이었다. 그녀는 늘 활짝 웃으며 좋아했고, 그 모습은 J를 기쁘게 했다.

5월 1일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J는 향수와 꽃다발을 선물했다.

“고기냄새... 많이 나지?”

그녀가 물었다.

“아니... 뭐.”

J는 미안해졌다.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그 일 그만두면 안될까? 형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일이야. 네가 상관할 일은 아니잖아.”

J는 더 미안해졌다.

“미안해... 오늘 생일인데, 기분 풀어.”

“아냐. 네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 오늘은 그만 일어날게. 그이가 일찍 들어오라고 했거든. 생일파티 해준다고.”

“그래... 집 앞까지 바래다줄까?”

“아니야. 집 앞에 나와 있을 거야. 그이...”

그녀는 곧장 일어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나섰다. J는 당황스러웠다. 반쯤 남아 있는 커피를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는 뒤따라 일어섰다. J도 곧장 그녀의 집 앞으로 향했다. 방금 전에 나갔던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던 그이도 보이지 않았다. 열한 시를 넘긴 고급단지의 초입은 한산했다. 간간히 승용차들이 차단봉을 열고 지나는 정도. J는 담배 두 개비를 연속으로 피웠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녀가 무슨 일을 하든지 J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서운했다. 그녀는 늘 피곤해보였다. 정말 보고 싶은 영화였다면서 정작 심야영화관에 들어가서는 꾸벅꾸벅 졸았다. 잔을 치켜든 손에는 잔상처들이 나 있었다. J는 단지 그녀가 좀 걱정되었던 것이다. 어느덧 자정, 그녀도 그이도 보이지 않았다. J는 구두코 앞에 떨어진 담배꽁초들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자꾸만 미안해졌고, 또 서운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낡은 운동화가 떠올랐다. 찌든 때로 얼룩진 군데군데 실밥이 드러난 작은 운동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농담1. 그와의 불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1(끝) 18.05.26 39 1 7쪽
25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10 18.05.25 40 1 5쪽
24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9 18.05.24 45 1 4쪽
23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8 18.05.23 53 1 5쪽
2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7 18.05.22 52 1 4쪽
21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6 18.05.21 47 1 6쪽
20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5 18.05.19 56 1 4쪽
»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4 18.05.18 50 1 4쪽
18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3 18.05.17 63 1 5쪽
17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2 18.05.17 41 1 4쪽
16 농담2. 사랑 한번 해보고 싶지 않냐? 1 18.05.16 58 1 4쪽
15 그와의 불화15(끝) 18.05.13 54 1 6쪽
14 그와의 불화14 18.05.12 55 0 9쪽
13 그와의 불화 13 18.05.11 52 1 6쪽
12 그와의 불화12 18.05.10 61 1 5쪽
11 그와의 불화11 18.05.09 62 1 5쪽
10 그와의 불화10 18.05.08 46 1 7쪽
9 그와의 불화9 18.05.07 45 1 4쪽
8 그와의 불화8 18.05.06 67 1 4쪽
7 그와의 불화7 18.05.05 56 1 3쪽
6 그와의 불화6 18.05.04 66 1 6쪽
5 그와의 불화5 18.05.03 67 1 9쪽
4 그와의 불화4 18.05.02 68 1 6쪽
3 그와의 불화3 18.05.01 87 1 5쪽
2 그와의 불화2 18.04.30 125 1 5쪽
1 그와의 불화1 +3 18.04.27 113 1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