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손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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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최
작품등록일 :
2018.04.3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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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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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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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10)

과학과 미스테리가 만난 본격 SF 소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입니다




DUMMY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리오보 시 외곽 관저


푸틴은 지난번 WHO에서도 마주보았고 악수도 나눴지만, 이렇게 별도로 대면하게 되니 그의 강한 이미지는 상대방이 누구더라도 충분히 압도할 만 했다.

집무실에는 푸틴과 그의 젊은 비서실장 안톤 바이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박사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전 세계를 다니시면서 지구를 구하시느라고 얼굴이 아주 핼쓱해지셨군요. 아, 참. 사모님 얘기도 들었습니다. 상심이 크실 텐데,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그 순간 나는 푸틴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빼서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싶었다.

말 한마디에 이성을 잃고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기분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보는 순간이었다.

미리엄의 얘기만 하지 않았어도 조금 더 침착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런 도발도 노회한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술책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정말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안톤 바이노와의 악수까지 끝나고 나서 나는 그들이 권하는 대로 쇼파에 앉았다.

“그런데 어떤 일로 여기까지... 약속도 안하시고 오실만큼 급한 일이 있습니까?”

“...”

“연구 때문에 오신 것도 같은데, 저를 직접 만나야 할 때는 뭔가 특별한 부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

“설마, 러시아에서 남아공이나 미국처럼 인종차별을 한다고 들으신 것 아니겠지요?”

나는 푸틴이 계속 얘기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저 자는 내가 자기를 만나자마자 몹시 흥분해서, 어떻게 그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느냐, 내 아내를 이렇게 만든 죗값을 어떻게 치를 것이냐하고 따질 줄 알았을까?

나는 그냥 푸틴이 말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푸틴과 바이노는 내 눈동자를 통해 내 망막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만 보았을 것이다.


내가 영혼이 없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다는 것을 문득 느꼈는지, 푸틴과 바이노는 얼굴을 굳히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보이지 않는 두꺼운 셔터라도 내려진 듯한 단절감이 집무실내에 돌았다.

나는 무겁게, 아주 천천히 입을 떼었다.

“돌려주십시오. 구스타브를 통해서 우리에게서 뺏어간 것들을요. 하나도 남김없이 손대지 말고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푸틴과 바이노의 안색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 푸틴이 정치의 중앙에 나서면서부터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설사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혈혈단신으로 자신의 집무실에 별안간 쳐들어 와서, 이처럼 통보하듯이 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을 것이다.


“바이노 실장, 알렉스 박사님께서 무엇을 돌려달라고 하시는지 알고 있나?”

푸틴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전혀 모르겠습니다. 알렉스 박사님의 것을 뺏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푸틴은 깊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박사님, 저는 러시아의 대통령입니다. 아무리 박사님이 요즘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고는 하나 러시아의 대통령에게 약속도 없이 찾아와서 저를 도둑놈처럼 취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정확한 것을 얘기하셔서 오해를 푸시던가, 아니면 제가 더 이상 화를 내기 전에 돌아가 주십시오”


예상했던 반응이다. 내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에서 거의 90% 이상 틀리지 않았다.

나는 푸틴을 만나러 오기 전에 근 10년간 푸틴의 주요 공식발언들을 몇 번씩 들어가면서 푸틴의 예상반응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푸틴은 분명 세 마디 이전에 화를 낼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는 나를 협박하려고 할 것이다.

나는 수도 없이 이 대화를 준비했고, 그는 내 예상대로 따라와 주는 형국이 되었다.


내가 별 반응 없이 그를 쳐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을 짓자, 푸틴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보르트니코프 들어오라고 해”

푸틴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바이노를 돌아보면서 언성을 높였다.

이것도 예상대로였다.

조금 있으면 각이 제대로 잡힌 군인이 들어와서 나에게 겁을 줄 것이다.

바이노가 인터폰으로 호출을 하자, 1분도 안되어서 역시 백전노장급의 노회한 군인이 들어와서 푸틴에게 경례를 하였다.

‘알렉산드로 보르트니코프. 러시아연방보안국장이군. 이 정도면 나한테 겁을 주기엔 충분할 것이다’


푸틴은 보르트니코프가 들어오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국장, 저 시건방진 미국인께서 나를 한낱 도둑놈 취급하는 것 같다. 저자에게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알게 해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이미 상황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연방보안국장이 어떻게 푸틴에게 충성심을 표현하는지가 오히려 궁금해졌다.

“예, 말씀만 하시면 러시아에 입국한 흔적조차 다 없앨 수 있습니다”

뜻밖에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푸틴은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 두 눈에 분노가 이글거리면서 단호하게 얘기를 이어나갔다.

“알렉스 박사. 지금 당장 돌아서서 여기를 나가는 대로 러시아를 떠나면 무사히 돌려보내겠지만, 계속 나를 모욕하면 지금 들은 대로 머리카락 한 올 안 남기고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해주겠소”

아마 다른 사람이거나, 아니면 내가 수없이 많은 예행연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쯤에서 겁에 질려 제 풀에 혼비백산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이 상황을 이미 수십 번 그렸었고, 내가 과연 그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하고 자신감을 갖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침상에 누워있는 미리엄과 풀이 죽은 나머지 성격마저 바뀌어버린 니콜라스를 떠올렸다.


“저 자에게 가져오라고 하시면 되겠군요. 계통상 보안국장이 알파부대를 지휘할 테니 구스타브가 가져간 것 그대로 다시 가져오도록 이 자리에서 얘기하시면 되겠습니다”

나는 보르트니코프를 가리키면서 낮은 어조로 또박또박 얘기했다.

그 순간 가장 놀란 것은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장이었다.

하늘같은 푸틴에게 서슴없이 얘기하는 이 미국인의 뱃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며, 눈을 등잔처럼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못 말리겠군. 지금 나한테 뭐하자는 건가?”

푸틴은 이제 귀밑까지 빨개져서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마 부하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 싶을 것이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이미 UN이나 WHO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여기 온다는 메모가 전달되도록 했으니까요. 당신들이 없앤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가 내일까지 질병통제센터로 돌아가지 않으면 내가 그동안 정리해놓은 이번 사태에 대한 전말이 전 세계로 알려질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 당신이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구스타브를 통해서 탈취해간 일 자체가 지나친 무리수였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올림픽에서 도핑샘플을 바꿔치기하는 것과 인류의 미래가 달렸을지도 모르는 정보를 뺏어가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말도 안 되는 욕심 때문에 한국의 젊은 군인들이 죽었고, 머나먼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피습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위해 무섭고 어려운 임상시험을 자원했던 의료진들도 희생되었고, 그중에 내 사랑하는 아내도 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한국에서 안다면 국교단절만으로 끝날 것 같습니까? 다른 나라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러시아는 힘이 세니까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놔두자라고 침묵이라도 할 것 같습니까?“

내 목소리에는 점점 힘이 실리면서 내 어투는 급하게 격앙되어갔다.


내 도발에만 신경쓰느라 아직 한국과 다른 나라 수뇌부들에게 이 정보가 넘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문득 푸틴은 충격을 느낀 것 같았다.

만약 여기서 나를 해친다면, 아마 푸틴과 러시아의 만행에 대한 규탄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는 현실이 푸틴의 분노를 차갑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일개 과학자의 도발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씩 기대면서 푸틴의 이성은 급속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손짓으로 보르트니코프를 나가게 한 뒤, 푸틴은 나에게 일단 앉아서 얘기하자고 했다.

바이노 실장을 포함한 셋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셋 다 이다음 얘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꼴이 되었다.


“그렇게까지 무리한 작전을 할 줄은 몰랐네. 처음에는 자네가 아까 얘기한 것처럼 도핑 샘플을 훔쳐오는 정도로 작전을 짠 모양이야. 그런데 건물을 겹겹이 특전대원들이 감싸고 있는 상태에서는 현장요원 스스로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 구스타브라는 놈도 그렇게까지 일이 크게 벌어지자, 도저히 그냥 돌아올 수 없었던 것 같아. 원래대로 하면 바이러스 생명과학기술연구센터에 샘플을 주기로 했는데, 아직 돌아오는 밀항편도 못타고 있어. 한국에 있다는 말이지.

아까 내가 화를 내고 자네를 협박한 것은 사과하겠네. 나를 죽이고 싶겠지만, 나도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보안국장한테 얘기해서 구스타브가 자수하도록 하겠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까지 잔인한 작전을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믿어주기 바라네. 그리고 자네 아내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 안타깝고 미안하기 이를 데 없고“

푸틴의 어깨는 많이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자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 자가 승인한 작전에 의해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고, 미리엄은 나와 니콜라스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리엄을 만나서 직접 사과하십시오.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에게도요. 그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마음만 보여줘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겠습니다”

바이노 실장이 순간 움찔하며 푸틴의 눈치를 보았지만, 푸틴은 요동하지 않았다.

“그러지, 우리 러시아를 궁지로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가겠네”

푸틴은 성격대로 시원시원하게 답했다.

내 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신호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 철혈군주 같은 강한 지도자 앞에서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하지만, 설사 지옥의 대마왕이라고 해도 나는 피하지 않고 찾았을 것이다.

미리엄을 가슴에 묻은 내 마음은 아직 어디까지 아픈지도 모르고 있었다.


푸틴이라는 인물도 거친 세계를 헤치고 러시아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종신으로 지배할 수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강함과 책략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오해였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의 아성을 넘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실수가 일개 과학자의 가정과 이어지고,

그것이 훗날 그의 정치가로서의 생애와 그가 영구히 소유하려 했던 제국을 재편할 운명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좀비는 과연 사실일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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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운명(1) +7 18.06.04 583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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