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손을 물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SF, 공포·미스테리

니콜라스최
작품등록일 :
2018.04.30 19:07
최근연재일 :
2018.07.02 19:15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60,861
추천수 :
1,451
글자수 :
316,817

작성
18.06.27 18:34
조회
467
추천
9
글자
10쪽

노아의 방주(4)

과학과 미스테리가 만난 본격 SF 소설 '좀비가 손을 물었다' 입니다




DUMMY

스와질란드, 음바바네


작전지역에 다다를 즈음, 이미 히로토는 전투준비를 다 마친 것 같았다.

좀비들과의 싸움이라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를 것 까지는 없었지만, 그가 스페츠나츠 대원으로서 특수작전에서 사용했던 장비들은 웬만큼 챙긴 것 같았다.

그럴 정도로 작전 지역에 가까이 다가가진 않을 것이라며 긴장을 풀어주려 했지만, 히로토의 생각은 확고했다.

“분명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예감도 그랬다.

비록 나는 과학자이고, 히로토는 엘리트 군인 출신이라 하는 일은 달랐지만 우리 사이에서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직감이었다.

나오미에게 들은 대로라면, 음바바네 지역 내에 있는 좀비들 안의 바이러스들은 상당한 위기감을 가지고 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일 것이다.

일단 음바바네 주민들 중 좀비로 각성한 사람들은 전체의 1% 안쪽이고, 미리 준비된 매뉴얼대로 모든 통행과 외출은 금지되었다.

주민들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정부가 보급한 식량을 축내면서 1주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좀비들은 이제 수명이 며칠 남지 않았을 것이고, 바이러스들은 다른 숙주를 찾지 못해 증식속도가 거의 최고조에 이르면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숙주의 탐지능력과 공격성을 최대로 올려놓았을 것이다.


3천명의 특공대는 만만치 않은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라크루와 사령관은 마치 사파리 관광이라도 가듯이 선글라스를 쓰고 한껏 폼을 잡고 있지만, 그를 다시 웃는 얼굴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나도 히로토가 옆에서 나를 지켜주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아무리 의무감 어쩌고 했어도 단연코 작전지역 참관을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불행이 일어나더라도 그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얘기할 사람이 있어야 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들에게 자신들의 실패에 대한 원인을 담담히 털어놓으라고 할 만큼 가벼운 일은 아니니까.


해가 중천에 떠있는 음바바네의 한낮은 그야말로 불지옥이었다.

비록 숲과 들의 녹음은 알프스처럼 푸르렀지만, 시위진압대보다 더 중무장한 차림으로 작전을 펼쳐야 하는 병사들에겐 오븐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인 것이다.

작전은 시 경계지역의 동쪽 출입로부터 시작되었다.

드론이 보내온 정보에 의하면 이 지역 반경 3킬로미터 이내에 좀비로 보이는 개체가 백여명 가까이 거리를 걸어 다닌다는 것이다.


“히로토, 한 1킬로미터쯤 뒤쪽에서 관찰하면 적당할까요?”

나는 히로토에게 우리가 작전지역과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러자 히로토는 원래 갖고 있던 답을 즉시 시원스럽게 들려주었다.

“지금 들어가는 병력 중에 헬멧에 카메라를 장착한 병력들이 없답니다. 작전이 시작되면 좀비들과 거의 난투극을 벌일지도 몰라서 카메라는 다 떼었다니까, 멀리서 보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요. 멀어도 300미터 이상 떨어지면 곤란합니다”

히로토의 말에 등골이 서늘할 지경이었다.


“그러다 우리 쪽으로 좀비들이 몰려오면요?”

“그 정도라면 이미 특공병력의 저지선이 무너졌을 때이니까, 그야말로 줄행랑을 놓아야겠죠”

히로토는 웃음을 띤 얼굴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얘기해주었다.

“실제로 박사님 얘기하신대로 좀비들이 가장 공격성이 높을 때라면 그만큼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 사관학교 체육대회 매스게임은 아니라서요”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히로토가 나에게 들려준 첫 유머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때, 나에게도 들리는 무선채널을 통해서 라크루와 사령관이 지시하는 돌격신호가 들려왔다.


그 날 저녁, 스와질란드 국제공항 내 임시작전본부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처음에 거리를 헤매는 좀비 몇 명을 잡으러 다가간 미국의 레인저 분대는 좀비들로부터 30미터쯤 떨어진 지점에서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레인저들을 발견한 좀비들이 그야말로 치타처럼 두 세 번의 도약만으로 대원들을 덮치고 만 것이다.

레인저들의 손에는 진압봉과 초합금사로 만들어진 반자동식 그물 발사기가 있었지만,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바로 앞 공중에 떠있는 좀비들을 보고 그만 얼이 빠지고 만 것이다.

대원들의 헬멧과 장갑이 벗겨져 나가고, 보호복이 뜯겨 나간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대부분의 대원들이 목을 물려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대원들 한 두 명이 벨트에 차고 있던 총기류도 써보지 못한 채, 방향을 틀어 반대로 달아나려 했지만, 반대방향에서 그쪽으로 이미 향하고 있던 다른 좀비들에게 그대로 몰살당하고 만 것이다.


다른 구역의 상황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좀비들과 첫 접촉이 있은 후, 돌격소총의 첫 발사음이 들린 것은 무려 10분이 다되어서였다.

그 전에 들려온 것은 각 나라 특공대원들의 비명과 경악의 고함뿐이었다.

경무장한 상태였다면 맨 뒤의 일부 병력들은 피신에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총 무게가 1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거운 장비와 보호복은 그들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좀비의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초반에 사기가 급속도로 꺾인 대원들은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면서 자기 몸 챙기기에 바빴다.

헬멧과 장갑 등 그나마 단 몇 초라도 생명을 연장시켜줄 장비들은 벗어버리고 오직 좀비들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기에 바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에게는 행운이 손톱만큼도 주어지지 않았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정부에서 남은 주민들과 공무원들에게 신신당부한 대로 모든 건물과 주택의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그 당부가 없었더라도 밖에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반갑게 대원들을 맞아줄 사람들은 없었을 것이다.


라크루와 사령관은 얼이 빠졌고,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약 300미터 거리에 있던 내가 타고 있던 험비 쪽으로도 좀비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전속력으로 차를 후진시키면서도 오른손에 든 권총으로 저격을 하는 훈련이 몸에 밴 히로토는 나에게 한마디 묻지도 않은 채, 바로 저격을 시작했다.

한 발에 한 명씩 이마를 맞고 쓰러질 때도 있었지만, 처음 두세 명의 좀비가 쓰러지자, 옆의 좀비들의 위기 대응의식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쪽으로 불규칙한 패턴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히로토의 저격성공률은 50%대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험비를 운전하는 마크 상사는 얼굴이 새하얗게 굳어진 채, 좀비들을 뒤로 하고 전속력으로 험비를 몰았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게 국제공항에 있는 임시작전본부로 돌아오자 우리는 모두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죽음 직전에서 탈출했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내가 서울대병원에서 맞섰던 좀비들과 이들은 또 달랐다.

아프리카인들 특유의 탄력성과 근력이 더해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그날 무사히 본부로 돌아온 인원은 물론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3천명 전부가 손을 잡고 일렬로 투입된 것도 아니고, 선발대와 예비대로 나눠서 투입되었지만 선발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수송트럭이 예비대도 다 태우지 못한 채 줄행랑을 놓은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멀리서 선발대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지켜보던 예비대는 트럭의 뒤를 쫓아 전력으로 일찌감치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나마 그중에서 제일 먼저 선두에서 달아난 병사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이었다.


라크루와 사령관은 돌아오지 못했다.

선발대 중에 다행히 빠져나온 병사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라크루와 사령관이 타고 있던 험비는 좀비들 몇 명에 의해서 통째로 뒤집혔다고 한다.

그리고 라크루와 사령관이 끌어내려지는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그 이후의 얘기가 필요하겠는가.


그날 우리 최초의 연합작전군은 거의 전멸에 가까울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작전에 투입된 3천 명 중 무사히 임시작전본부로 돌아온 인원은 1천명 이내였다.

황급히 띄운 드론이 촬영한 바에 의하면 아직 곳곳에서 좀비들과 교전해가며 본부로 오고 있는 병사들이 수백 명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중 몇 명이나 이미 좀비에게 물려 감염자가 되어 있는 지도 몰랐다.

그리고 내가 작전에 참여한 의미대로 그날 포획한 좀비는 단 한명도 없었다.

반대로 그날 바이러스들이 새로 얻은 숙주들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좀비에 대한 인류의 대응은 이날을 계기로 완전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나와 히로토가 발견한 대로 바이러스는 인류에 못지않게 생존본능이 높았고,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비록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원래의 의식을 잃고 새로운 존재로 각성한 좀비에 대한 인권은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인류와 바이러스간의 싸움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으며, 좀비와 싸워서 죽이는 것도 전쟁에서 일어나는 피치 못할 합법적 살인의 하나라고 여기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나와 WHO의 입장은 처음부터 좀비의 인권을 지킨다기보다 감염자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 성적 차별, 그리고 평등성의 침해를 걱정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나부터가 마음이 잘 정리되고 편해진 면이 없지 않았다.

현재 인류의 능력으로 그들을 구원할 수 없고, 오히려 우리가 희생되어야 한다면 이제는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들을 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전환은 또 다른 변곡점을 곧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좀비는 과연 사실일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좀비가 손을 물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마치며... +12 18.07.02 854 0 -
64 노아의 방주(6) -끝- +16 18.07.02 606 8 9쪽
63 노아의 방주(5) +2 18.06.29 474 9 13쪽
» 노아의 방주(4) 18.06.27 468 9 10쪽
61 노아의 방주(3) +6 18.06.22 481 9 10쪽
60 노아의 방주(2) +6 18.06.21 495 12 11쪽
59 노아의 방주(1) +6 18.06.20 467 10 13쪽
58 운명(10) +6 18.06.18 466 10 11쪽
57 운명(9) +6 18.06.15 489 8 9쪽
56 운명(8) +6 18.06.13 511 14 11쪽
55 운명(7) +6 18.06.12 491 13 12쪽
54 운명(6) +5 18.06.11 480 9 13쪽
53 운명(5) +2 18.06.10 464 11 12쪽
52 운명(4) +6 18.06.09 544 10 13쪽
51 운명(3) +8 18.06.08 543 14 12쪽
50 운명(2) +13 18.06.06 558 13 14쪽
49 운명(1) +7 18.06.04 583 15 12쪽
48 인간의 경계(14) +8 18.06.03 580 14 12쪽
47 인간의 경계(13) +6 18.06.01 628 13 12쪽
46 인간의 경계(12) +2 18.05.31 579 12 12쪽
45 인간의 경계(11) 18.05.30 553 14 13쪽
44 인간의 경계(10) +3 18.05.29 557 14 10쪽
43 인간의 경계(9) 18.05.28 598 17 11쪽
42 인간의 경계(8) 18.05.28 613 16 13쪽
41 인간의 경계(7) +2 18.05.27 662 16 10쪽
40 인간의 경계(6) 18.05.24 685 14 10쪽
39 인간의 경계(5) +2 18.05.22 685 15 11쪽
38 인간의 경계(4) +2 18.05.21 673 18 11쪽
37 인간의 경계(3) +7 18.05.20 809 17 10쪽
36 인간의 경계(2) +7 18.05.19 851 1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