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를 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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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설란
작품등록일 :
2018.05.0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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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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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2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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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

DUMMY

모든 혼란과 곤경에서 벗어나 달콤하게 잠을 자던 나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복구 작업이 한창인지 사방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옆에서 졸고 있던 줄리엣이 깼는지 말을 건넸다.


“깼어?”

“어.”


간단히 의사소통을 하고 나서 일어나려고 땅에 손을 짚었다. 그때 짚은 땅이 움푹 들어갔다.


“어?”

“뭐해, 아저씨?”

“아니, 이게.......”


지반이 연약한가? 당황해서 반대쪽으로 손을 짚었다.


-푹.


뭐지? 뭐야?


“아저씨, 일어나는 것도 못해?”


한심스럽다는 듯이 날 쳐다보며 손을 내미는 줄리엣. 그 손을 붙잡았다.


-콰직.


줄리엣의 손이 뭉개지며 피가 내 얼굴까지 튀었다.


“괜찮아?!”

“아, 응. 별거 아냐.”


잠깐 얼굴을 찌푸리던 줄리엣은 손을 몇 번 털었다. 그러자 일그러졌던 손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아저씨, 문제 생긴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아.”


내 딴엔 살포시 힘을 준 것 같았는데 주변 사물들이 버텨내지 못했다.


“힘이 갑자기 세진 건가?”

“그래?”


내 말에 줄리엣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근처에 있던 단검을 내밀었다.


“한번 구부려봐”


단검을 쥐고 천천히 손을 구부렸다. 그러자 단검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내 손과 함께 구부러졌다.


“와우.”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지? 물론 의도적으로 힘을 끌어올릴 수야 있었지만 지금은 몸에 활력이 넘치지도 않았다.

혼란스러워하는 나에게 줄리엣이 넌지시 본인의 생각을 던졌다.


“녹스를 만나서 그런 거 아냐? 왜, 있잖아. 영웅이 위기를 만나 잠재돼있던 힘을 각성하는 이야기라던가.”

“말이 돼?”


어이없어하는 나에게 줄리엣은 증거물을 내밀었다.


“그럼 이 구부러진 단검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할 말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못 일어나겠어?”


혹시 몰라 다시금 조심스럽게 발로만 일어나보려 노력해보니 일어나는 일에는 성공했다. 다만 한 발짝 걸을 때마다 힘 조절이 되지 않아 땅이 파였다.

보다 못한 줄리엣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아저씨.”

“뭐야?”

“안겨.”

“어?”

“안기라구. 계속 땅 부시면서 갈 거야?”


어쩔 수 없이 줄리엣에게 안겼다. 내 오금과 목을 잡고 앞으로 안는 줄리엣. 키메라라 그런지 몸집에 비해 힘이 꽤 셌다.

줄리엣의 시점을 만끽하며 텐트 바깥으로 나갔다. 작은 소녀에게 안긴 나를 보며 인부와 용병들이 낄낄댔다.


“휘유, 줄리엣. 어떤 공주님을 데려온 거야?”

“어때, 예뻐?”

“침대에서 죽여주겠는데? 푸하하하.”


씨발. 수치 플레인가? 나도 모르는 새로운 취향이 눈뜰 것만 같다. 가슴에 가득 차오르는 수치심을 애써 외면하며 밝게 빛나는 금발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근데 줄리엣, 어디 가는 거야?”

“아저씨가 깨면 크리스티나가 불러달라고 했거든.”


줄리엣이 도착한 곳은 초라한 텐트 중에서 그나마 나아 보이는 텐트였다. 줄리엣이 위풍당당하게 입구를 밀고 들어가자 크리스티나가 서류와 씨름하고 있었다.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던 크리스티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 뭔가를 생각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몸이 다쳤었나, 한스?”

“예, 그런 겁니다.”

“그런 거?”


의문스러운지 눈썹을 약간 들던 크리스티나는 상관없다는 듯 서류 중 하나를 집더니 줄리엣에게 안긴 나에게 건넸다.


“자, 이번 의뢰의 보수금이다. 넌 특히 많은 기여를 했으니 그를 반영했다. 줄리엣, 네 몫도 여기 있다.”


손이 없는 줄리엣 대신 내가 보수를 받고 그대로 텐트를 나왔다. 뒤에서 크리스티나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줄리엣도 생각보다 힘이 세군.”


* * *


비록 녹스는 물러갔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이 죽고, 너무나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인부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는 용병들 덕분에 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길드는 갈 곳 잃은 용병들에게 마을의 복구와 호위를 의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드는 거의 파산 직전의 마을을 다시 살리려고 했다.

길드는 일거리와 보수를 지급하고, 용병은 그렇게 받은 돈을 마을에 쏟아붓는다.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유흥가가 성행했지만, 마을을 살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줄리엣과 나는 길드에서 무상으로 지급하는 텐트에서 잠시만 머물기로 했다.


“자, 아저씨. 쥐어봐.”


그동안 나는 줄리엣의 도움으로 재활치료를 하듯 늘어난 힘의 조절을 익혔다. 처음엔 돌로, 다음엔 나무로. 주위에 넘쳐나는 잔해들을 줄리엣이 주어다주면 그걸 조심스레 쥐어보는 과정을 반복하자 내 힘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참을 연습하자 드디어 땅을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식기도 들 수 있으니 밥도 먹을 수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고, 우리애기 이제 다 컸네. 스스로 걷기도 하고, 밥도 잘 먹고. 장하다, 장해!”


줄리엣이 감격스럽다며 내 등을 쓰다듬었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그동안의 식사 및 수발은 줄리엣이 모두 도맡아서 했다. 물론 마지노선인 배출은 내가 직접 해서 다행이었다.

떠나기 전에 먼저 프랑코를 만났다. 지부가 박살이 났지만 금세 설치된 가건물 안쪽에 새롭게 들어선 테네벨 길드. 그 안쪽에서 프랑코가 날 맞이해 주었다.


“오랜만입니다. 한스님.”

“오랜만입니다. 프랑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정보를 얻으러 왔습니다.”


늘 건네던 가격에 추가로 얹어서 프랑코에게 주었다. 묵직한 무게로 안에 든 가격을 가늠한 프랑코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정보를 제공했다.


“최근 있었던 마수 집결은 한스님도 보셨으니 아시겠지요. 신형 마수 녹스를 포함한 마수 집결이 드코 산맥을 중심으로 우후죽순 벌어졌고, 그에 따라 데쿠스 왕국과 스트라스 왕국 간의 전쟁도 잠시 휴전한 상태입니다.”

“사실 전쟁이라고 얘기는 했지만, 두 왕국 사이에 놓인 드코 산맥 때문에 두 왕국이 직접적으로 영토를 가지고 싸운 적은 없습니다. 옛날에야 그랬지만, 요새에 들어선 산맥 중간에 있는 고분지 지대에서만 싸우는 것으로 서로 협정을 맺었죠.”

“그리고 그 전쟁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마수 집결로 인해 위협을 느낀 두 왕국이 지금 종전을 두고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한스님이 원하시는 대로 스트라스 왕국으로 넘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


조만간이라고 얘기했지만 이 시대의 조만간의 텀이 상당히 길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마 일 년 안에 넘어갈 수 있단 소리겠지.


“그래서 싸우게 된 원인은 뭐였습니까?”

“그게....... 스트라스 왕국의 기사단 중 하나가 독단으로 벌인 행동 때문에 그렇답니다. 아, 스트라스 왕국은 데쿠스 왕국과 다르게 기사단이 귀족들별로 있습니다. 그중에 한 기사단이 도적인 척 변장해 세투스 마을을 습격했다고 합니다.”

“...어느 기사단입니까.”


내 살기를 느낀 프랑코가 잠시 목을 가다듬다가 답변을 했다.


“유스투 기사단입니다. 유스투 백작가의 기사단으로 기사단장이 기사답지 않은 매우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그게 의문입니다. 어쩌면 꼬리 자르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스투 기사단이 그런 짓을 벌였다고 주장하는 건 스트라스 왕국 측이니 말이죠.”

“그럼 그 기사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스투 백작을 비롯한 일가 모두가 처형되었고, 기사단은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옥에 갇혀있다고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모든 것을 듣고 난 뒤에도 난 나가지 않은 채 잠시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프랑코의 바삐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늘 있던 일이었지만 여태까진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해줄 게 있었는지 프랑코의 입이 벌어졌다.


“그라치아, 델리키아 대륙에서 마수의 밤이 발발하였다.”

[<정보 : 마수의 밤 발발>을 획득하셨습니다.]


“파피리오족이 프레도 섬과의 전쟁을 개시했다.”

[<정보 : 파피리오, 프레도 간에 전쟁>을 획득하셨습니다.]


마수의 밤. 소집 때의 시커먼 마수들의 물결이 생각났다. 마수의 결집이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우선 돈을 더 꺼내며 프랑코에게 질문해보면 되겠지.


“프랑코, 더 물어볼 게 있습니다.”

“네, 물어보십시오.”

“그라치아 대륙이 뭡니까?”

“오, 그라치아 대륙은 꽤나 유명하죠. 덤으로 델리키아 대륙도 말입니다. 두 대륙 모두 동물과 인간을 반쯤 닮은 듯한 생물인 수인들이 살고있는 땅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그라치아 대륙은 더운 지방에 있으며, 인간에다가 귀와 꼬리만을 붙여놓은 듯한 수인이 사는 대륙이고, 델리키아 대륙은 추운 지방에 있으며, 인간보단 동물이 두 발로 서있는 느낌의 수인이 사는 대륙입니다.”


더운 지방에는 털이 적고, 추운 지방에는 털이 많다. 그런 얘기를 프랑코가 덧붙였다.


“그럼 프레도는 무엇입니까?”


내 말에 프랑코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대답해주었다.


“프레도는 파피리오 대륙과 그라치아 대륙 사이에 있는 섬입니다. 온갖 쓰레기 인간 군상들이 다 집결한 곳입니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해적질은 물론이고 노예를 잡아다 팔곤 합니다.”

“노예는 불법 아닙니까?”

“당연히 데쿠스 왕국 내에서는 불법입니다. 하지만 당장 스트라스 왕국의 경우를 보면 노예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라스 왕국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매기는 노예가 아인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프레도에서는 옆 대륙인 엘프, 그러니까 파피리오족과 그라치오족을 주로 납치해서 노예로 팔고 있습니다.”

“반발은 없습니까?”

“당연히 심합니다. 그것 때문에 아인종들이 인간혐오 사상을 가질 정도니까요. 하지만 프레도 섬의 뒷배에 누가 있는지, 프레도 섬에는 상당한 방비가 갖춰져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문득 파피리오족에서 급진파가 족장에 올랐단 정보가 떠올랐다. 그래서 프레도를 친 게 아닐까?

더 물어볼 건 없어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또 볼 일이 있겠지.


“또 봅시다.”


* * *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줄리엣은 웬일인지 내가 처음 선물해준 옷을 입고 있었다.


“너 키가 줄어든 거야?”


분명 처음 사줬을 땐 활동이 편할 정도이긴 했으나 저렇게 헐렁하진 않았었는데?

그런 내 질문에 줄리엣은 웃으며 답했다.


“과도하게 재생하면 이렇게 줄어들어. 잘 먹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그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뜻밖의 정보를 기억하며 줄리엣과 밖으로 나왔다.

여태까지 만났던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만나가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혹시 있을지 모를 후회가 없도록.


“또 봐~.”

“또 봅시다.”


용병들과는 또 보자는 인사를.


“떠날 건가? 마지막으로 나랑 대련 한번 어떤가?”

“사양하겠습니다.”

“...잘 가십시오.”


바로크, 라울 부자와는 다소 딱딱한 작별을.


“한스, 진짜 떠나는 거예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데보라는 어디 있습니까? 작별 인사를 좀 하려고 했는데.”

“...죽었어요.”

“그렇습니까. 안타깝군요.”

“네, 정말로요.”


그리고 뜻밖의 이별에 약간의 씁쓸함도 느꼈다.

나머지 사람들과도 작별을 나누고 재건되고 있는 성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쉽사리 떼이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움직였다.

슬쩍 옆에 있는 줄리엣의 금발을 어루만졌다.


“왜 그래, 아저씨?”

“아냐, 아무것도.”


재활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된 행동이 튀어나왔다. 뻘쭘해진 손을 배낭끈으로 옮기고 다시 움직였다.


“근데 아저씨, 어디로 갈 거야?”


음. 일 년 정도의 빈 시간을 때울만한 곳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추가적으로 스벤에게 소개받은 알마에게도 꼭 들러야 했다.


“글쎄.”

“갈 곳 없으면 내가 태어난 곳 한번 구경해볼래?”

“네가 태어난 곳?”

“응, 흔히 유적이라 부르는 거기.”

“어디쯤인데?”

“어, 저 방향으로 세달 쯤?”


마침 사전에 알아둔 알마의 거처와 같은 방향이었다. 게다가 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줄리엣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거절의 말을 꺼내기도 힘들었다.


“알았어. 안내해줘.”

“응, 잘 따라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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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세상의 끝(3) 18.07.01 56 0 14쪽
53 세상의 끝(2) 18.06.30 71 1 13쪽
52 세상의 끝 18.06.29 75 0 13쪽
51 준비 18.06.28 71 0 13쪽
50 이야기의 시작(2) 18.06.27 83 0 13쪽
49 이야기의 시작 18.06.24 87 0 14쪽
48 '나' 18.06.23 114 0 15쪽
47 전쟁(3) 18.06.22 80 0 12쪽
46 전쟁(2) 18.06.21 8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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