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동안 여친에게 쫓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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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작품등록일 :
2018.05.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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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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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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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下 [하루 전(4) 레코드 브레이커(4)]

DUMMY

나와 포리포는 레테스 씨의 저택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레테스 씨는 마차를 불러오겠다며 이 자리에 없다.


"<레코드 브레이커>는 이제 어떻게 될까?"

"글쎄."


의뢰는 미묘한 형태로 종결되었다.

포리포의 목적이었던 무용담을 정리하는 것 말인데. 레테스 씨가 마음이 바뀌었다면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굳이 의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네.

─이미 나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내가 정리해서 자네에게 보내지.

─내 이야기를 자네가 정리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고 한다.

아마도 손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본인 나름대로 정리하려는 거겠지. 그리고 나에겐 정리한 내용의 검수정도만 맡길 생각인 모양이었다.


즉.

레테스 씨는 루이나 후작령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미안, 포리포."

"응? 왜 갑자기 사과를 해?"

"네가 원하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의뢰가 끝났잖아."


포리포는 <레코드 브레이커>가 모험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길 원했다. 그래서 무용담을 정리하고 퍼뜨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레코드 브레이커>는 이제 이 마을을 떠난다.


"너 <레코드 브레이커>를 엄청 좋아했잖아. 그런데 내가 떠나게 만든 것 같아서, 미안하다."

"미안할 것 없어. 나는 전생에 그룹을 그만두고 솔로 선언한 연예인들도 응원했거든. 그러니까 상관없어!"

"···그러냐."


<레코드 브레이커>를 연예인 취급하는 거냐.


"무엇보다 말이지. <레코드 브레이커>는 웃고 있었어."

"그랬나?"

"나는 알아. 그 사람을 오래 전부터 봐왔으니까."


실실 웃는 포리포.

그 얼굴과 근육은 무척이나 남자다웠지만, 표정은 소녀 같은 표정이었다.

전생에 여자였다는 건 아무래도 거짓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그걸로 된 거겠지. 나는 불만이 없어."

"그럼 다행이고."


안심했다.

이야기의 좋은 결말을 내기 위해선 레테스 씨가 루이나 후작령을 떠나야하는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결말은 어디까지나 내가 개인적으로 원했던 이야기다.


글쓴이가 원했던 이야기와 독자가 원했던 이야기, 그리고 편집부가 원하는 이야기가 서로 다른 경우는 제법 있는 편이다. 물론 나는 편집부와 함께 일한 적이 아직은 없다만···. 이 경우, 나에게 부탁을 했던 건 포리포였으니, 포리포가 편집부라고 봐도 좋을 테지.


소설가란,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 닿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꼴리는 대로 글을 썼는데 독자의 마음에 닿지 못했다면, 그건 그냥 자기만족용 소설이다.

나의 주관을 강하게 넣은 이 결말이, 자기만족용에서 그칠지, 소설로 거듭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편집부 역할이었던 포리포가 만족한다면, 긍정적으로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마차를 불러왔다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레테스 씨가 다가왔다.

레테스 씨의 옆에서는 검은색 마차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레반. 오늘은 정말 수고 많았군. 꽤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네."

"아뇨. 레테스 씨야말로 고생 많으셨어요."

"이건 의뢰 보상금이라네."


레테스 씨는 두둑한 돈 주머니를 건네왔다.


"···너무 많은데요. 나 오늘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석판에다가 레테스 씨의 이야기를 가볍게 정리만 했을 뿐. 그 이후로 그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무언가를 대필하는 일도 없었고, 무용담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무용담을 말해주지도 않으셨으니까.


"아닐세. 충분히 일을 했다네."


레테스 씨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 내 손에 돈 주머니를 꽉 쥐어주었다.


"하나밖에 없었던 인생의 목표를 잃고, 그저 되는 대로 살아왔지. 그게 슬펐던 것은 아니네만 굉장히 무미건조했었지."

"······."

"목적 없는 삶이란 굉장히 재미없는 것이더군. 하지만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롭게 목표를 정할 수 있었지."


굉장히 악질적인 목표지만 말일세, 하하하.

레테스 씨는 소리내어 웃었다.


"악질적인 목표이긴 해도, 그 목표를 이뤄보는 건 재미있을 것 같더군. ──나에게 아직 검을 휘둘 이유가 남아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이 이야기를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자네겠지."

"아니에요. 기존의 스토리와 설정이 탄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작품을 어떻게 써야하는가.

정답 같은 건 없다. 작가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것이 정답이며, 편집부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것이 모범답안이며,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것이 진리이다.

작품을 쓰는 방법은 작가마다 다르고, 정해진 방법 같은 건 없으며, 진정한 해답을 알아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렇긴 해도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있으면, 어떻게 써야할 지가 눈에 보이는 것이다.

레테스 씨의 결말을 정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레테스 씨의 기존의 스토리가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


"제가 한 일은 조미료를 한 스푼 넣은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자네가 한 것 뿐일 지도 모르지.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나를 도왔던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네라는 걸세."


레테스 씨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까 자네 덕분일세."

"······낯간지럽네요."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고평가를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편치 않다.


"나중에 반데메헬다 백작령에 놀러오면 어떤가. 내가 대접해주지."

"솔직히 말해서 귀족들은 무서우니까, 그건 조금 생각해보겠습니다아···."

"하하하. 솔직하군. 그래, 열심히 생각해보게나. ─그럼 다음에 또 만나세."


다음에 또 만나자는 약속.


그 말의 의미는, 자신의 이야기에 반드시 제대로 된 결말을 내겠다는 것.

그리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에게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다음 만남을 기대할게요."


*


소설가는 이야기를 위해서 살아가는 족속들.

그리고 그 소설가들이 왜 이야기를 쓰고자 마음을 먹었느냐면, 이야기를 읽는 것을 좋아했기에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은 굉장히 단순하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평가를 받는 것이다.

때문에 소설가들은 글을 많이 읽어야한다. 본인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 만큼, 그만큼 이야기를 많이 읽는 것 역시 소설가다.


그러니까 소설가들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한다.

굳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멋진 이야기 들고 찾아올 것을 기대한다.


"특히 나는 소설 신간을 꼬박꼬박 사는 사람이었거든."


기대된다.

<레코드 브레이커> 레테스 반데메헬다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그런데 레반. <레코드 브레이커>의 무용담은 어떻게 할 거야?"

"응···? 레테스 씨가 무용담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뭘 할 수가 없는데?"

"그렇지만 나중에 무용담을 정리해서 보내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검수하긴 할 생각인데?"

"받은 무용담을 퍼뜨릴 생각은 없고?"

"아, 그렇군."


나는 조금 생각해봤다.


"퍼뜨려야겠지."


만약에 이야기가 정말로 잘 풀려서 반데메헬다의 차기 영주후보가 레테스 씨를 따라 모험가가 되려한다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레테스 씨가 차기 영주후보를 데리고 이곳에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 때 <레코드 브레이커>의 전설이 퍼져있는 쪽이 더 형편이 좋겠지.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이 고평가 받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니까.


"거기다가 나는 모험가 협동조합에 썰을 푸는 걸로 용돈벌이를 하고 있으니까.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진짜 레반은 성격 나쁘네. 뭐어, 나야 <레코드 브레이커>의 전설이 퍼지면 좋긴 하지만. 음······?"


무심코 창 밖을 보던 포리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길을 잘못 들고 있는 거 같은데."

"엉?"

"봐봐. <창세의 탑>에서 엄청 멀어졌잖아."


포리포는 창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루이나 후작령에 들어올 때는 <창세의 탑> 근처를 지나서 왔는데, 지금은 <창세의 탑>에서 굉장히 멀어졌다.

마차는 <창세의 탑>이 있는 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봐요! 길을 잘못 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포리포가 큰 목소리로 마부석을 향해 말했지만.

마부석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계속 그대로 달리고 있을 뿐.


"이봐요! 내 말 듣고 있어?!"

"네에~. 듣고는 있는데요~?"


마부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목소리가.


······여자의 목소리라고?


"······!!"


포리포는 그 순간 주먹으로 마차의 문을 내리쳤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문에는 방어 마법을 미리 쳐놨거든요~. 이거 생각보다 비싼 마차라서요오~. 그래서 상처가 나면 조금 아까우니까아~, 일단은 방어 마법을 쳐두었어요오~."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굉장히 가벼우면서도, 어쩐지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이 깃들어있는 목소리.

이질적인 목소리.


"······누구냐."


포리포는 긴장감을 머금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서야 마부가 움직인다.

후드를 벗은 소녀가, 두 개의 눈동자로 이쪽을 본다.


피보다 더 붉은 좌안.

암흑보다 더 어두운 우안.

눈 색깔이 서로 다른 오드아이.


"길드원들이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아~. 저의 이름은 '마이트 아이 크로케이니스'. <영혼의 현자>입니다아~.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기도 하죠~."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온 마법사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80 잘잤어
    작성일
    18.05.11 21:08
    No. 1

    재밌다 요즘 식상한 요리, 회귀, 스포츠 이런거만 나와서 짜증났는데 이거보니 좋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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