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동안 여친에게 쫓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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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
작품등록일 :
2018.05.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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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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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200년동안 남친을 쫓은 마녀(3)]

DUMMY

내 이름은 XX.

······어라? 내 이름이 뭐였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이름···.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바이릭 엘시우스.


"······읏."


두 개의 기억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다.

XX로서의 기억과 바이릭으로서의 기억. 두 개의 기억을 믹서기에 넣고 작동시킨 듯 뒤죽박죽이 되어 머릿속을 괴롭힌다.

기억이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가운데,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이릭. 무슨 일이지?"


나를 내려다보는 여자가 있다.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색이 바래진 붉은 머리카락.

귀찮은 것을 보는 듯한 무기질적인 눈동자.


"······엄마?"

"마법을 쓰라고 했을텐데? 왜 마법을 쓰지 않는 거지?"

"그게······."


떠오르려는 XX의 기억을 억누른다.

하지만 XX의 기억을 억누르려고 해도 억누를 수가 없다.

연못에 퍼진 XX의 독은 점점 나(바이릭)를 깊은 곳에서부터 침식하여, 떨쳐낼 수가 없다.

나는······.

나는 대체 누구지······?


【이건 또 재미있게 되었군.】


그 순간, 새로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자의 딸이여. 너,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나 보구나?】


비웃음이 섞인, 기분 나쁜 목소리.

엄마의 옆에 붙어있는 그 남자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명백하게 나를 깔보고 있는 눈동자.


"······당신은."

【기억이 혼란스러운가? 나다. 바들레이. 이젠 기억하겠나?】

"바들레이······."


바들레이.

엄마와 계약한 악마.

마녀인 엄마는 바들레이와의 계약을 통해 '조건부 젊음'을 손에 넣었다.


【다행히 나를 기억하고 있나 보구나.】

"······."

【계약자여. 오늘은 이쯤하지. 정말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것 같으니.】

"전생의 기억이라···. 귀찮게 됐네."


얼굴을 살짝 찌푸리는 엄마.

엄마는 물건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바들레이와 방을 나가, 밖에서부터 문을 걸어 잠갔다.


나는 뒤섞인 기억을 끌어안은채로 멍하니 그걸 바라보기만 했다.


*


기억을 정리했다.


내 이름은 바이릭 엘시우스. 8살. 마녀의 딸.

엘시우스 백작가의 마지막 자손이다.


엘시우스 백작가는 흔히 말하는 부패귀족이었던 것 같다.

몇 대 전의 엘시우스 백작은 무척이나 선하고 청렴결백한 사람이었던 것 같지만, 그의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에겐 세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문을 물려받아야할 첫째는 너무 병약했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걸 백작가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둘째는 이대로 자신이 가문을 세습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둘째의 행실이 너무 나빴기 때문이다.

그래서 셋째에게 물려주겠다고 공표했고, 그 말을 들은 둘째는 아버지와 셋째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첫째는 예상대로 오래 지나지 않아 죽고, 그렇게 둘째가 영주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영주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가 백작령을 잘 다스릴 리가 없었다. 세율을 올려서 소작인을 압박하기만 했을 뿐.

세율을 올려 소작인들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적어지고, 소작인들은 치료 받을 돈이 적어도 목숨을 잃거나 일을 그만두어야만 하는 사람이 늘었고, 소작인이 줄어 세금이 줄어들면 오히려 세율을 더 올렸다고──바들레이가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악순환.

악순환이 낳는 것은 단 하나 뿐.

파멸.


그렇지만 그 파멸을 눈치챈 자는 백작가에 없었다.

백작가는 벌어들인 돈을 품위유지비라는 명목으로 흥청망청 쓰고, 돈이 부족해지면 백작령에서 일하는 주민들을 갈구고 돈을 갈취한다.


나의 엄마──메이리 엘시우스는 그 백작가의 첫째 부인으로 들어왔던 사람.


엄마는 하급 귀족 출신이지만 마법에 그럭저럭 재능이 있었다. 능력'만큼은' 나름 우수했던 사람이라 백작가의 눈에 들어, 엘시우스 백작가에 시집을 왔다.

백작가에 시집을 온 엄마도 딱히 성격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부를 손에 넣게 된 엄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호화로운 드레스를 사들이고, 보석들을 사들이고, 화장품을 사들이고.

나중에는 영원한 젊음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발달로 젊음을 긴 시간동안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기술의 혜택은 일부 기득권들에게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당히 비쌌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귀족들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엄마는 백작가의 돈을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는 데 부어넣었고.


몰락하고 있던 백작가는 얼마가지 않아 멸망했다.


몰릴대로 몰린 사람은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금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범죄에 손을 댄다.

세금은 높고 갈 곳은 없는데 자신을 몰아넣는 백작에게 증오를 품는 백성은 많았다.

그래서 백작령의 주민들은 들고 일어났다.

단체로 백작가를 기습하였고, 엘시우스 백작가의 사람들은 전부 죽였다.


단 한 명, 마법에 실력이 있었던 우리 엄마를 제외하고.

엄마는 폭동이 일어난 그 날 마법으로 가장 먼저 백작가를 탈출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녀가 되어 숨었고.

백작가에서 임신했던 나를 낳았다.


그것이 8년 전의 일이다.


"······'오빠'가 좋아할 만한 스토리네."


오빠라는 울림.

달콤한 울림.


──아아, 그 사람이 보고 싶어.

──그 사람과 영원을 맹세했는데.

──그런데 어째서 나는 이런 곳에서 태어나버린 거야?


"······방금 그건, XX의 마음일까."


전생의 나를 XX라고 부르기로 했다. 정확한 이름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생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XX는 전생에서 27년을 살아온 사람인 것 같다. 살아온 세월에서 큰 차이가 있어서일까. '바이릭으로서의 나'가 먹히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먹혀버린 것일지도.


XX 본인에 대해서는 기억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XX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정말 어렴풋한 기억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XX의 남자친구에 대한 기억은 내 안에서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파멸을 맞았는지, 그 기억은 이상할 만큼 선명하게 남아있다.


XX는 그 사람을 굉장히 사랑했던 거겠지.


'나' 역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생각하면 굉장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되고.

그 사람이 옆에 없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감각. 이질적인 감각.

──아니, 아니야.

──뭐 이리 복잡하게 생각해, 바이릭?


"그저 잠깐 '오빠'에 대해서 '잊었을 뿐'이라고, 바이릭."


자기 자신에게 되내듯이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평소의 내 목소리지만, 무언가 이질감이 깃든 목소리.

이건 누구의 목소리지?


"너는 잠깐 '오빠'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말았을 뿐이야, 바이릭." 나는 재차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가슴이 뛸 리가 없잖아.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절망할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육체, 나에게 줘.


──당장 오빠를 만나러 가야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말들.

그 말들은 분명 '나'의 말이 아닐 테지만, 계속해서 가슴 속에서 울리고 있자니 어쩐지 '나'의 말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들을 받아들이면, '나'는 죽는다.

기존까지의 '나'와 다른 무언가가 된다.

그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굳이 저항할 필요가 있을까."


나를 낳은 엄마로부터 물건 취급 당했던 삶. 마지못해 키워지고 있는 삶.

좁디 좁은 방이 나의 세계의 전부이며, 자유로웠던 전생의 기억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가축처럼 키워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텅 비어있다.

전생의 나와 비교하면 지금까지의 바이릭은 텅 비어있다.


텅 비어있는 바이릭 안에 XX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게 있을까?


만나지도 못한 사람에게 좋아하는 이 감정.

이 감정은 분명 '나'의 것이 아니겠지.

하지만 어쩐지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감정이었고, 소중히하고 싶었다.


복잡해.

복잡해.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는데.


'오빠'를 강렬하게 만나고 싶은 기분이야.


"···드디어, 정리 됐다."


뒤죽박죽인 기억을 드디어 정리할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오빠'를 만나면 될 거야. 응.

어쨌든 XX는 '오빠'를 사랑하고 있고, 나 역시 만난 적이 없지만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 일단 '오빠'를 만난 뒤에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


내가 이 세계에서 기억을 갖고 태어났다는 건, '오빠' 역시 이 세계 어딘가에서 나처럼 환생을 했겠지.

조금 귀찮게 되었지만 하는 일은 변함이 없다.


오빠를 찾는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함께, 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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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020中 [그리고 소설가는 다시 이야기를(2)] +2 18.05.18 530 5 10쪽
30 020上 [그리고 소설가는 다시 이야기를(1)] 18.05.18 597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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