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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정령사 제이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연재 주기
제영운
작품등록일 :
2018.05.08 17:13
최근연재일 :
2018.09.0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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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7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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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쪽

42. 외출

DUMMY

“혹시 징수관이 허튼짓을 하는 건가?”

“촌장님이 영주님 직인이 찍힌 서류를 확인했어요. 성벽 보수 때문에 걷는다고요. 저희는 밀 10포대에요. 어쩌죠?”


사냥 실력은 없고 돈이 되는 물산은 숲 안쪽에 분포해서 그들이 영운에게 매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벌써 세 번째였다.

루인 왕국과 하인즈 왕국의 전쟁은 루인이 승리했으나, 엄청난 징발이 있어서 세금 징수관이 재화를 보충하기 위해 온천지를 쏘다니는 요즘이었다.


“토끼 가죽? 몇 장이 필요해?”


아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40장요. 여름이 오기 전에 갚는다고 하셨어요.”

“말은 바로 해야지. 20장이나 갚겠어. 난 필요한 게 없단다. 혹시 마을이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할 수 있니?”


아사가 입을 꼭 다물었다가 말했다.

“저희 누나요.”

“어?”

“누나와 결혼하세요. 전 찬성해요.”


영운이 마시던 차를 땅에 뿜었다.

“누구 생각이야?”

“저와 촌장님 생각이요. 누나도 허락했어요.”

“못 들은 거로 하겠다. 가죽은 줄게. 대신 화살을 만들어 와.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아사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운이 통나무집으로 들어가서 화살 하나를 들고 나왔다. 궁술 장인이 만든 전통 화살로 대당 3만원이나 하는 특등품이었다.


“이건······.”

아사는 대번에 심각해졌다.


“이대로는 못 만들 거야. 비슷하게만 만들어도 인정해주지.”

“안 되는 게 어딨어요. 되게 만들어야죠.”


영운이 새삼스러운 얼굴로 아사를 쳐다봤다.

“그래? 좋아, 잘 만들면 얼마든지 셈을 해주지.”


계약은 성립되었다. 그들에게는 쏠쏠한 부업이어서 집마다 난리였다. 영운이 살펴보니 촌장이 수시로 채근이었다.


“벌써 두 번이나 퇴짜를 맞았어. 제대로 하게. 잘 배워놓으면 우리한테도 요긴하게 쓰여.”


깃털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사거리가 40·50m까지 차이가 나서 영운이 슬쩍 참견했다. 품질은 나날이 좋아졌다. 모자란 재료는 장정들이 영지에서 구해오고, 셈은 그만큼의 송로버섯으로 해주었다.

촌장과 상의하여 300발을 만들면 빚을 탕감하고, 다시 300발을 만들면 멧돼지 한 마리를 주기로 했다.


영운은 편치 않았다. 품질이 나쁘면 물리겠다고 했더니 손이 까질 정도로 매달리고, 촌장이 쫓아다니며 불량품을 솎아내는데 구박이 심해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창고에 쌓인 고기와 꿀 3㎏을 주었다.

주민들이 환호했다. 꿀 때문이었다. 실렌티움 벌은 동물은 고사하고 몬스터까지 쏘아 죽이는 지독한 놈이었다.


모리스 영지는 물산이 원활하게 돌지 않고 환경에 민감하여 물가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꿀 1㎏에 10골드가 적정 가격이지만 실제로는 30골드에 육박했다. 밀 한 포대가 3골드인 걸 생각하면 대단한 호사품이었다. 영운은 생강이 절여진 꿀을 약으로 내놓았다. 감기 환자가 속출해서였다.


숲 가장자리를 따라 10개의 독립 마을이 있는데 규모는 비슷비슷했다. 이 중 한 마을만 사냥꾼 집단이고 나머지는 화전민이었다.

잦은 수탈로 마을 3개가 무너졌고, 사냥꾼 마을이 세 마을을 흡수해서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마을들은 살아남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촌장은 자연스레 영운을 의지했다.


“전쟁 끝이라 세금이 많습니다. 올겨울만 넘기면 어떻게든 살 수 있어요. 그저 일감만 주십시오.”

“겨울까지는 드리죠. 서둘러 자구책을 마련하세요.”


촌장은 한시름 놓았다. 그는 무엇이든 공으로 주는 법이 없다. 그러나 맡은 일에 성실하면 후하게 얹어주는 사람이었다. 즉 약속을 지킬 사람이었다.


화살이 생산되는 이맘쯤 그의 일상은 바뀌었다. 겨울이 깊어지며 숲에서 건질 게 없었다. 모든 생명이 쉬는 시간이었고, 영운도 칩거했다.


늦은 밤까지 약초를 다루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구결이······ 틀어졌어.”


그는 정혜쌍수(定慧雙手)를 참 지혜를 궁구할 때는 양손처럼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구결로 받아들였다. 직관적으로 적용하면 바로 내외겸전(內外兼全)이었다.


그런데 무예에 너무 치중해서 학문이 더디 쌓이고, 정신적 해방인 음악, 미술은 외려 퇴보하는 느낌이었다. 무예마저도 검술, 궁술, 봉술을 한꺼번에 하니 효율이 별로였다.


약초학은 그나마 진전이 있었다. 이곳은 의사를 치료사라고 불렀다. 영운은 촌장에게 선을 대고 치료사를 초빙했다. 그리고 학을 뗐다.


이 세계는 약학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영운은 방향을 선회하여 한의학을 주로 하고 이곳의 약초를 보조로 강등시켰다. 그러자 태반의 연구 거리가 줄고 발전 속도는 껑충 뛰었다. 비로소 가닥을 잡은 것이다.


무예는 검술이 가파르게 성장해서 봉법이 뒷전이었다. 아니, 발전이 없었다.

박산은 해석이 지지부진인데, 책 뒤편은 산스크리트어를 고대 중국어로 음가(音價)를 해놓았다. 희한한 것은 음가대로 산스크리트어를 적어놓으면 그마저도 다른 언어를 소리대로 옮긴 것이었다. 즉 이중으로 음가한 책이니 길수가 알아먹을 턱이 없었다.


이것을 제대로 발음하려면 중국어와 산스크리트어를 해박하게 알아야 했다. 그러나 말미에 산스크리트어로 ‘무엇을 만드는 진언(眞言)’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다.


“뭘 만든다는 걸까? 단전? 이제는 필요 없는데.”

진언은 말 자체가 힘이어서 정확한 발음과 어조를 따르면 다 된 것이다. 발동 조건을 모르겠으나 정령사이고 마나를 다루니 될 것 같았다.

문제는 무엇의 정체를 알 수 없고, 고대 중국어도 배운 것과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았다. 결국 다시 건너가야 제대로 된 진언을 뽑을 수 있었다.


박산 앞쪽이 가짜는 아니지만 길수의 말대로 평범했다. 즉 눈가림이다. 영운은 처음부터 이걸 눈치 채고 많은 기대를 했다. 만약 뒤편이 운기법이라면 구결과 합쳐서 자신의 바탕으로 삼으려고 했다.


또 페리의 뿔에 바스툼(Bastum)이란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봉으로 사용하여 안과 밖을 바로 세우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더구나 바스툼은 요정의 뿔과 가이아의 구슬이니 용도가 봉에 그칠 리가 없어서, 좀처럼 봉법을 포기하지 못했다.


“검술가, 창술가. 대단하겠지. 그러나 십팔반무예에 능통한 무도가도 꽤 있었어. 김관장이나 나는 그런 과에 속할 거야. 그런데 조급증에 빠져서 정혜쌍수를······ 사람 욕심이 그래. 봉술을 잠시 덮자.”


영운이 차를 단숨에 비우고 일어났다.

“실은 이런 거 없어도 돼. 너희들이 지켜줄 거야. 그렇지?”


운디네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마법 가방을 사선으로 매고 허리에 납작한 흑단도를 찼다. 백향목에 검은 칠을 했고 전체 길이 50㎝에 날은 30㎝이었다. 이음매 없이 전체가 매끈하고, 은백색의 날은 몹시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단순함의 극치였다.


곧 영운이 어둠 속을 질주했다. 운디네가 100m 이상 앞서서 길을 안내했다. 도착한 곳은 당시의 전쟁터였다. 이제는 설원이 되었고 그 위로 눈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찾아.”

병사들이 전쟁터를 수습했으나 완벽할 리가 없었다. 첫눈이 내리자 허둥지둥 전쟁이 종식되었다. 즉 눈이 내리면서 전쟁이 끝나서 사람들이 잔해를 뒤질 사이가 없었다. 그래도 많은 이가 찾았으나 1m가 넘게 쌓인 눈에 허탕을 쳤다.


설원은 정령에게 장애가 아니었다. 운디네가 맨땅을 훑는 것처럼 평야를 뒤졌다. 그는 출발하기 전에 필요한 항목을 알려주었는데 금전, 보석, 책, 신분패가 바로 그것이었다.

영운은 사흘 동안 평원에 머물면서 금화 57개, 은화 180개, 신분패 3개를 찾았다. 대규모 전투는 이곳이고, 하루거리에 국지전이 있었던 곳이 두 군데였다.


“집을 너무 비우는데······ 서둘러야겠어.”

바람이 없는 초저녁, 눈이 내릴 것 같지 않아서 일단 출발했다. 목적지가 숲이어서 숲 외곽을 따라 움직였다.

몇 시간쯤 걸었을까 영운이 멈추었다. 불빛이었다.


운디네가 심상을 보내왔다. 이 날씨에 야영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노인과 젊은 남자 2명이고 피곤해 보였다.

그가 손을 귀에 대자 그들의 음성이 들렸다. 영운이 잠깐 듣다가 마법 가방에서 봇짐을 꺼내고 여행복과 망토를 걸쳤다.


“실례합니다. 하룻밤 합류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긴장해서 영운이 봇짐을 툭 쳤다.

“이제 저녁을 드십니까? 저도 식사 전이니 제가 내지요.”


노인이 한 걸음 나섰다.

“노상강도는 아닐 테고요?”

영운이 웃었다.

“그렇게 보입니까?”


사람들이 그를 훑었다. 저 차림에 털목도리를 한 그가 강도라고는. 표정이 온화하고 음성은 듣기 좋은 저음이었다.


노인이 손짓했다.

“하하, 앉아요.”


영운이 한창 춤추는 모닥불 한 자리를 차지하자 남자 두 명이 다시 천막을 설치했다. 노인이 냄비를 불 위에 걸고 거기에 눈을 집어넣었다.

“어디서 오셨소?”

“타모 마을에서 왔습니다.”

“거기가 어디요?”

“이 숲에 있는 마을입니다. 저는 그 마을 근처에 살고 있지요.”


노인이 그의 얼굴과 흰 손을 보고 말했다.

“화전민은 아니신데? 사연이 있구려.”

“사연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지요.”

“아, 제가 하겠습니다.”


곡물가루를 넣으려는 노인을 만류하고 영운이 나섰다. 그가 봇짐을 어느 정도 풀자 노인이 살짝 놀랐다. 영운이 잘 손질된 소고기, 송이버섯, 양파, 마늘을 냄비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그리고 와인을 꺼냈다.


“소고기 스튜입니다. 이 날씨에 잘 어울리죠. 숙박비는 되지요?”

“훌륭해요. 그럼 식전은 내가 내겠소. 좋은 버섯 수프가 있다오.”


노인이 멋들어진 수염을 매만지며 웃었다.

온화한 노인의 이름은 노엘이고, 몸이 땅땅하고 호쾌한 인상의 남자는 프레디, 잘생기고 머리숱이 적은 남자는 산토스였다.

노인은 두꺼운 털옷, 남자들은 가죽조끼에 두꺼운 망토를 걸쳤고 검을 찼다. 복장이 아니더라도 영운은 이미 알고 있었다. 노엘은 남작이고 프레디와 산토스는 그의 기사였다.


노엘은 기분이 좋았다. 다소 다르지만 훌륭한 예절이었고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다. 기사들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영운은 주로 듣는 편이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오. 아, 이 늙은이가 말이 너무 많지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별말을 다 합니다.”

영운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별말씀을.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노엘이 와인을 비우고 허허롭게 웃었다.

“손주라도 남기고 갈 것이지······.”


노엘은 낙향하고 있었다. 영지 없이 수도에서 살다가 이번 전쟁에서 외아들을 잃고 살아갈 의욕을 상실했다. 재산을 처분해서 며느리에게 한밑천 떼어주고 모리스에 내려온 것이었다.


“영주가 나를 박정하게 대하지는 않을게요. 그의 선친과 교분이 있어서 이곳에 왔어요.”

“말을 낮추세요. 불편합니다.”

“그래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고맙네. 그런데 자네는······ 어쩌다가 산에서 사는가?”


영운은 대충 둘러댔다.

우선 공용어가 모국어인 알론소 제국을 택하고, 있지도 않은 모 남작의 아들이 되었다. 거대한 제국에서 어디 구석에 있는지 모르는 작자여서 좋았다.

다음으로 장성한 장남에게 시기를 받아서 젖먹이 때 쫓겨난 것으로 뼈대를 짰다.

그러자면 장남의 어머니는 그를 낳으며 죽어야 했고, 자신은 새로 들어온 정부인의 아들이어야 얘기가 된다.

아귀를 맞추려니 자신의 어머니 역시 산고로 죽는 지경이었다. 급조를 해서 구멍이 많고 흔하디흔한 얘기였다.


그런데 노엘은 아주 푹 빠져서 들었다.

“어쩐지, 자네 같은 사람이. 그럴 줄 알았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모가 어머니인 줄 알았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비밀을 알려 주시더군요. 이미 가문은 멸문했습니다. 형님이······.”


노엘이 짜증을 냈다.

“무슨 형님. 경쟁자일세. 원수야. 가문을 말아먹어서 복수조차 못 하지 않는가. 그 못된 성질에 재산을 탕진하고 칼을 맞거나 객사했을 것이네. 설령 살아 있어도 찾기 어려워. 빚에 쫓겨서 숨어 살겠지.”


프레디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자가 노름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영운이 떨떠름하게 긍정하자 그가 소리를 질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도 형에게 구박을 당했어요. 어디를 가나 그런 놈이 있다니까요.”


노엘이 혀를 찼다.

“내 아들도 놈팡이에게 휩쓸려서 골치깨나 썩었었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서른······ 서른 다······.”

“서른? 거짓말하지 말게.”


영운이 쓰게 웃었다.

“서른 맞습니다.”


노엘이 산토스와 프레디를 보았다.

“안쓰럽군.”


프레디가 산토스를 보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내년에는 대머리가 될 거에요. 사랑은 불가능하겠죠. 영원히.”


산토스가 프레디의 뒤통수를 때렸다.

“너나 잘해.”


산토스와 프레디는 24살이었고 노엘의 아들과 동갑이었다.

“둘 다 아들놈 친굴세. 어릴 적에 내가 거두었어.”


영운은 마음에 부담이 생겨서 화제를 돌렸지만, 프레디가 맞장구를 치며 부지런히 과거를 주워 담았다.

덕분에 영운은 그들의 인생을 꿰고 말았다.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노엘과 프레디는 감정에 휩쓸리는 낭만적인 성격 같았다. 산토스는 천막 2개를 점검하고 주변을 경계할 뿐 대화에 끼지 않았다.


와인을 더 꺼냈고 노엘은 곧 취기가 올라서 천막으로 들어갔다. 영운은 동침을 거절하고 모닥불을 지켰다.

프레디가 영운의 소매를 살짝 당겼다.

“그럼 저희와 주무시죠. 교대로 불침번을 서서 자리 있습니다.”

“괜찮아요.”


산토스가 작게 말했다.

“옷이 얇아서 노숙은 무리입니다.”


영운이 모닥불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들을 잃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요.”


순간 프레디와 산토스가 울컥했다. 구슬픈 음성에서 노엘의 아들이 마치 그의 아들인 것만 같았고, 먼저 간 친구가 그리워 말문이 막혔다.

프레디가 땔감을 구한다고 자리를 뜨자 산토스가 영운의 어깨에 모포를 걸쳐주었다.


“공자님, 날이 춥습니다.”


영운은 망부석이 되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숲에 함박눈이 내렸다. 사방이 어둠과 정적에 잠겨있었다. 두 기사는 교대로 불침번을 서면서 걱정했고, 그의 몸에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이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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