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리스트를 찾아서 9- 연구소의 비극
“와주었군요.”
은성이 작게 속삭였다. 은성은 여전히 두려운지 문쪽을 흘끔거렸다.
“일단 그 어어.... 이런 사람들.”
김혁은 팔을 들어 좀비들을 흉내냈다. 은성은 멍하니 김혁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런 농담이 통할 때가 아닌 듯 하여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아니 좀비들이요. 눈에 보이는 대로 다 한 곳에 가둬뒀어요. 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죠?”
“아 저도 잘, 갑자기 공격당한데다 당황해서 바로 도망쳤어요. 태어나서 이렇게 무서운 적은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결국 그 지하동에서 무슨 일인가 터진 거죠?”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이 일의 진상을 아는 자는 명석원 박사 정도 뿐일지도 몰랐다.
“명석원 박사는 어딨습니까?”
“글쎄요. 어디 숨어 있겠죠. 그때 김혁씨가 말한 게 맞다면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그 사람이 져야 할 거예요.”
은성은 예전의 그 단호하고 명석해 보이는 표정을 담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문소리가 들리고 은성이 먼저 꺄악 소리를 질렀다. 김혁도 놀라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또 좀비가? 들어오다 엉거주춤 멈춘 건 민하진이었다. 그 새빨간 얼굴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런 반응이 당연했다.
“아, 진정하세요. 저승사자에요. 저승사자."
"저승사자요?"
은성이 김혁의 얼굴과 민하진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 얼굴은... 일종의 벌인데 원래는 예뻐요.”
아마 민하진의 얼굴은 저 새빨간 얼굴 속에서 한번 더 붉어졌으리라.
“아아, 정말 놀랐어요. 그 온다던 저승사자로군요.”
“네.”
“반가워요.”
은성이 먼저 하진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하진도 발랄하게 대꾸했다.
“일단 문제의 발단이 지하동이라면 거기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김혁은 일단 지하동부터 살펴보고 싶었다.
“거기도 저런 게 득실득실한 거 아니에요?”
하진이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
“아마도? 어쩌면 거기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아까 그 좀비들이라면 의외로 저 아래는 한산할지도 모르지. 여기 연구진들이 몇 명이나 되는 겁니까? 연구소를 페쇄시키거나 하는 건 안 되나요? 밖으로 나가면 정말 위험할 것 같은데.”
“전 그런 시설 관련해서 전체적인 것까지는 자세히 모르는데...”
김은성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명석원 박사의 연구실로 가자고 말했다.
“거기 가면 뭔가 있지 않겠어요?”
모두 복도로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명석원의 사무실까지 말없이 걸었다. 복도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어서 연구소는 기괴한 분위기가 풍겼다.
명박사의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런 것은 김혁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먹으로 한방 치니 문의 잠금쇠가 부서졌는지 문이 열렸다. 사무실은 비어 있었다. 은성은 일단 명박사의 책상을 이리저리 살피며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종이 한 개를 들고 김혁 쪽으로 내밀었다.
“이거 혹시 찾던 그거 아니에요? 리스트?”
“아 맞아요. 선배님 이게 그 리스트에요.”
하진이 먼저 보고 소리쳤다. 리스트가 맞았다. 중간에 드문드문 공백이 눈에 띄었다. 벌써 죽은 자들이 있다는 건가? 좀비가 된 자들은 죽은 걸로 처리가 안 될 것 같았지만 그 사이 죽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분명히 오자 마자 타임머신에 들어간 거라 저승까지 데려간 사람이 없었는데 그동안 시간이 흐른 걸 감안한다면 아주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꼭 저승사자의 방문이 아니라도 급작스러운 사고로 죽기도 하니까. 그런 자들은 그렇게 죽은 자들만 전담으로 맡는 저승사자들이 저승으로 안내하게 돼 있다.
어쨌든 리스트를 되찾아서 다행이었다. 이제 정말 지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근데 왜 공백이 생겼지? 선배님이 누굴 데려왔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
하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은성은 뭔가 알아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명박사님이 범인이었군요. 제가 연구실에서 이걸 못 찾은 이유가 있었어요. 이분이 계속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리스트를 받아든 김혁이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본인 이름도 있으니 아마 겁이 났던 모양이죠.”
리스트의 첫 줄에 명석원이라고 또렷이 적혀 있었다. 재빨리 명단들을 살펴보니 다행히 그 이름들 중에 김은성은 없었다. 은성을 바라본다. 은성의 오라는 두려움의 색을 벗어내고 다시 총천연색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은성은 계속 서류들을 뒤적였다. 뭔가 이번 사태에 관한 단서라도 찾고 싶은 모양이었다. 서류들을 한참 뒤적이던 은성이 어떤 파일 하나를 손에 들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비밀리에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군요.”
“무슨 프로젝트죠?”
김혁이 말을 마치자마자 문 쪽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날아들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김박사 여기서 뭐하는 건가?”
모두 돌아보니 문가에 명석원이 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김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리스트를 만든 조직인가?”
명석원이 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조직?”
“비밀리에 연구원들을 제거하고 있지? 계속 사라지고 있었어. 그 리스트에 있던 사람들하고 일치해. 이제 나를 데리러 온 건가?”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김혁은 지금 자신이 어떤 다른 단체의 일원으로 오해받고 있다는 게 썩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명석원을 데리러 온 건 사실이라 자신의 존재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데리러 온 건 맞지만 조직 그런 건 몰라. 난 저승사자야.”
“대체 이유가 뭐지? 난 정말 충성을 다 하고 있었다. 배신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어."
“저승사자라니까. 왜 내 말은 안 믿는 거야? 지옥에서 왔다고. 그건 그렇고 그보다 지금 이 사태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보시지.”
명석원이 대답하기 전에 김은성이 먼저 끼어들었다.
“왜 이런 이상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던 거죠? 여긴 타임머신 개발 연구소가 아닌가요? 여기서 이런 걸 하라고 한 게 누구죠?”
“김박사. 호기심이 너무 지나쳐. 그렇지 않아도 연구소 내를 뒤적이고 다니는 것도 눈에 거슬렸는데 말이야.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면 안돼. 본인이 하던 거나 잘 하라고.”
은성이 리스트를 찾아서 꽤나 뒤적거리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날 밤에 은성의 사무실을 뒤젔던 건가?
“지금 연구소 꼴을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우수한 인재들이 전부 좀비가 됐다고요. 이걸 어떻게 하실 거죠?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고요. 치료법은 있어요?”
은성이 빠르게 쏘아붙였다.
“지하동은 내가 페쇄했어. 일단 거기서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 할 거고. 거기 있는 좀비들은 결국 죽게 될 거야. 이렇게 빨리 퍼질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선 그들을 죽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치료법 같은 건 애초에 없지. 우리라고 이렇게 될 걸 예상한 건 아니니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이건 정말 중요한 실험이었어. 새로 발견된 바이러스지.”
“그렇게 위험한 짓을 어떻게 ... ”
은성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다행히 여긴 페쇄적이고 도시와도 멀리 떨어져 있잖아. 그런 걸 하기엔 최적의 장소지.”
명석원은 여전히 자신만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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