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리스트의 비밀1
김은성도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벌써 지하동에서도 나왔잖아요. 통제가 안 된다는 거고 대책도 없다면 이대로 한명이라도 밖으로 나간다면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죠?”
“내가 샅샅이 훑어 봤지만 1층을 돌아다니는 좀비들은 없어. CCTV도 샅샅이 보고 있는 중이고.”
“그야 우리가 한군데 몰아넣었으니까 그렇지.”
하진이 삐죽거리며 작게 소곤거렸다.
“오는데 좀 시간은 걸리겠지만 사태 보고도 끝났네.”
명석원은 끝까지 자기 할 일은 다 했고 자신은 아무 잘못 없다고 믿고 있는 듯 했다.
“이렇게 중대한 일을 별다른 뒤처리 방안도 없이 진행하고 있었다고요? 와서 처리해 줄 팀이 정말 있긴 한 건가요? 어떻게 정말 이럴 수가. 저런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비밀 실험을 하면서 이렇게 위험할 거라는 걸 몰랐다구요?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생각 안 했다구요? 아니면 그냥 이 연구소 사람들은 희생시켜도 된다고 생각했나요?”
김은성은 점점 더 화가 치미는지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고 명석원은 여전히 아무 문제없다는 얼굴로 말이 끝날 때까지 김은성을 바라보았다.
“글쎄, 둘 다일까? 아니, 사실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퍼질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분명히 처음 발견한 바이러스는 세포 진행 속도가 아주 느렸거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다면 나도 알고 싶네만 다들 저 모양이 됐으니. 근데 김박사, 이건 정말 중요한 기밀프로젝트야. 그렇게 많이 알면 위험하단 생각은 안 하나? 자네는 예전부터 봐왔지만 호기심이 너무 지나치단 말이지.”
“명박사님. 무슨 일이든 알아야 해결을 하지 않겠어요? 지금 이건 이 연구소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런 속도라면 금새 이 나라 전체가 위험해질 거라고요.”
“자네가 바이러스까지 연구하는 줄은 몰랐군 그래.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응? 자네는 이미 너무 많이 참견하고 있어. 설사 저들이 밖으로 나간다 해도 여기서 마을까지 가는 건 쉬운 것도 아니고 아마 가다가 다 죽을 걸. 그런 만약의 사태 때문에 이 연구소를 택한 거기도 하고 말이지. 하지만 난 저들보다 지금 자네가 더 걱정스럽군. 어쩌면 저런 꼴로 죽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명박사의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었다. 김혁이 바람보다 빠르게 몸을 날려 총알을 그대로 몸으로 막았다. 은성은 너무도 놀라서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까지 자신의 상관이었던 사람이 설마 자신을 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놀란 건 명석원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지?”
총알은 발사됐고 김혁이 분명히 가슴에 총을 맞았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채 그대로 자신 쪽으로 다가오자 명석원은 딋걸음질치며 다시 한번 총을 발사했다. 김혁은 끄떡도 하지 않고 재빨리 그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반으로 분질러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얼이 빠져 있는 명석원을 공중에 들었다 바닥에 패대기쳤다.
“으악.”
그는 바닥에 부딪치며 어딘가 뼈가 부딪쳤던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아, 그러니까 박사님. 물어볼 때 한번에 대답을 잘 해주면 좋잖아요. 타인의 생명을 누구 맘대로 하겠다는 거야? 당신이 저승사자야? 누구 앞에서 총질이야?”
“너, 넌 뭐냐. 대체.”
“아, 저승사자라니까. 계속 못 알아듣는 척 하면 살려줄 것 같아요?”
“그,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명석원은 은성을 바라보았다. 은성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믿지 않는다고 없다고 생각하진 말라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저승사자 힘 빠지니까. 근데 이 리스트는 어디서 발견했지? 타임머신 안에 있던가?”
김혁이 명박사 쪽으로 몸을 구부리고 리스트를 들이밀며 물었다.
“뭐? 그건 이동박스 안에 있었어.”
“네?”
은성이 놀라 소리친 다음 곧바로 물었다.
“저게 거기 들어 있었다고요?”
이동박스가 뭔데 저렇게 놀라지? 싶은 마음에 김혁이 은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그럼.”
은성은 놀란 채로 김혁을 바라보았다.
“아, 뭔데요. 대답 좀 해가면서 얘기 하면 안돼요? 답답해 죽겠네.”
듣고만 있던 하진이 또 투덜거렸다.
“김혁씨가 타임머신 안에 있었다고 했죠?”
“네. 거기서 깨어났죠.”
“그건 원래 김혁씨가 지니고 있던 리스트고요?”
“네. 그랬죠.”
“그러니까 그게 어떻다는 건데요. 박사님.”
하진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은성은 뭔가 조금 흥분한 얼굴이었다.
“아, 그럼, 그렇다면 타임머신이 성공했단 거잖아요. 그것 좀 줘봐요. 그 리스트.”
은성이 눈을 반짝이며 김혁 쪽으로 다가왔다. 김혁이 리스트를 건네주자 은성은 리스트를 만져보며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평범한 재질이 아닌가? 이건 어떻게 옮겨졌지? 아, 이것만 분석해내면 어쩌면 타임머신의 작동 원리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기쁨에 들떠 있는 은성과 달리 하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요. 박사님. 그건 지옥의 물건이라 여기 남겨둘 수도 없고 분석할 수도 없어요. 뭔가 달라도 다르겠지. 종이 위에서 저절로 불도 타오르고 글씨도 지워지고 그러는 건데.”
하진이 삐죽이거나 말거나 은성은 여전히 종이를 쓰다듬어 보고 만져보고 불빛에 비쳐 보기도 하며 다른 서류 종이와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좀 전에 총에 맞아 죽을 뻔한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명박사는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싶은 얼굴이고 김혁은 말없이 은성이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김혁의 몸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고 종이 위에서 불이 타도 이름만 지워진다. 손으로 이름을 만지면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이동시켜주기도 하는 신기한 종이다. 그것은 마법에 가까웠다. 그렇게 들여다본다고 뭔가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아마 김은성도 알고 있으리라. 다만 타임머신이 어떻게든 작동을 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싶어서 하는 몸짓인지도 몰랐다.
바닥에 그대로 앉은 채 은성을 바라만 보던 명석원이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김박사 말은 그게 타임머신 안에 있다가 이동박스로 옮겨졌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하하. 자넨 정말 호기심만 많은 게 아니라 상상력까지 풍부하군 그래. 연구실에 있지 말고 어디 가서 소설이나 쓰는 게 어때?”
“뭐라고 비웃든 괜찮아요. 아무도 이걸 이동박스에다 일부러 갖다 두진 않았어요. 그게 중요한 거죠. 타임머신에 반응한 거라고요. 이게.”
은성이 냉정한 눈으로 명석원을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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