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길고 긴 낮 4
작은형님의 모습을 본 조직원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멈춰선 채 다른 존재로 변해버린 작은형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작은형님 바로 옆 침대에 잠에 곯아 떨어졌던 조직원도 요란한 소리에 눈을 뜨고 곧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는 묶여 있는 몸을 조금이라도 작은형님 쪽에서 멀리하려고 애쓰며 소리쳤다.
“익? 좀비? 날 풀어. 야 이거 풀라구. 야 씨발. 하필이면 왜 내 옆에서... 야 빨리 날 풀란 말야.”
이제 고요하던 실내는 삐걱대는 두 개의 침대와 묶인 조직원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외침에 완전히 소란스러워졌다. 문가를 지키던 조직원은 묶인 자의 난리법석엔 아랑곳 않고 탄이에게 좀 더 캐물었다.
“뭐야? 작은형님이 왜 저러는 건데? 세상에. 형님이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탄이는 대답도 않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조직원이 탄이의 팔을 잡아 세웠다.
“어디 가? 너 계속 작은형님 옆에 붙어 있었잖아. 너도 언제 변할지 몰라.”
“담배 물려준 건 형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조직원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 정도론 그럴 리 없어.”
“저도 그 정도뿐입니다.”
탄이는 조직원의 팔을 뿌리치고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탄이에겐 지금 누구보다도 혼자만의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김혁은 왠지 탄이의 맘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악마에게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들었을 때 그런 기분이었었다. 그건 어린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진실이었다. 탄이는 창가로 가서 밖의 빗줄기에 눈길을 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김혁은 검은 고치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실내에 잠에서 깨지 않은 조직원은 없었다. 실내는 검은 고치들이 내뿜는 소음과 공포의 냄새들로 가득찼다. 문가 쪽 먼 침대에 묶여 있는 조직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미 불안감에 사로잡혀 소리쳐대고 있었다.
“야, 무슨 일인데 뭐야? 왜 그래? 설명 좀 해봐.”
“야 강탄이. 거기 무슨 일이야? 응?”
지키던 조직원이 먼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시끄러. 작은형님이 짱돌처럼 변했다구.”
“뭐?”
“말도 안돼. 왜?”
“작은 형님이 어째서? 짱돌이랑 그렇게 가까이 있지도 않았는데.”
“늬들 우리가 모른다고 작은형님한테 무슨 짓 한거 아냐?”
“이 새끼들이 되는대로 지껄여?”
문가를 지키던 조직원은 정말 화를 실어 소리쳤다. 그때 넘버 쓰리의 목소리가 모두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조용히들 해라. 작은형님 상태가 어떤 거야?”
“짱돌처럼 변했습니다. 몸을 심하게 떨어대면서 몸부림치고 있고 얼굴과 눈이 무섭게 새빨개졌고 또 침을 흘리면서 저건 ...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체 작은형님이 왜...”
넘버 쓰리가 기가 막힌 듯 탄식했다. 강탄이가 비 내리는 창밖에서 시선을 돌려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작은형님이 연구소에 갔을 때 손을 다치셨었죠?”
“그래. 근데?”
“짱돌 형님 총을 회수할 때 거기 묻어 있던 피가 섞인 것 같습니다.”
“총?”
“말도 안돼. 손에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다구.”
“응? 그럼 그때 벌써?”
“아 젠장. 그런 걸로 변한다고?”
“야 총기 회수할 때 너도 같이 있지 않았어?”
한 조직원이 자기 옆의 조직원을 의심쩍게 바라보며 말했다. 지적받은 조직원은 겁에 질린 채 완강하게 부인했다.
“나, 난 상자만 들고 있었는데? 손에 상처도 없고. 총에 대해선 작은형님이 워낙 까탈스러웠던 거 다들 알잖아. 일 끝나면 손도 못대게 하는데.”
“작은형님이랑 차 타고 온 애들도 그럼...”
이번엔 작은형님이랑 차를 함께 타고 온 자로 보이는 자가 다급히 대꾸했다.
“짱돌이랑 차 타고 온 애들도 안 변했는데, 맞지? 아직 변한 사람 없지?”
“네. 아직 없습니다.”
“거봐, 그 정도는 아닌 거야. 피가 직접 들어갔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야. 우린 괜찮아.”
“야 지금 몇 시나 된 거야?”
“아직 9시 좀 안 됐습니다.”
“아 씨발, 이런 땐 시간도 죽어라 안 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데?”
“작은형님이 저렇게 된 이상 더 오래 대기해야 될지도 모르죠.”
강탄이의 말에 실내가 약간 조용해진 틈을 타 작은형님 옆자리 조직원이 온 몸에 힘을 주어 침대를 흔들어대며 소리쳤다.
“야 씨벌 것들아, 날 옮겨주든지 저 좀비라도 치워주라고. 빨리.”
그때서야 잊고 있던 존재를 발견한 듯 조직원이 탄이에게 말했다.
“야, 탄이. 침대라도 저쪽으로 옮기자.”
탄이와 조직원은 작은형님의 침대를 양쪽에서 잡고 밀어 창가 쪽 빈 공간으로 옮겼다. 침을 흘리며 기이하게 몸을 뒤틀어대는 작은형님을 바라보는 탄이의 눈에선 곧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다른 조직원들이 묶인 몸에서 간신히 목을 쳐들고 작은형님의 모습을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한때 작은 세계를 관리하던 자의 끔찍한 말로에 모두들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벌건 눈을 부릅뜨고 침을 흘리며 뭔가를 찾아 두리번대는, 오로지 풀려나기만을 바라는 몸짓에만 최선을 다하는 한 마리 거대한 짐승.
이제 주도권을 쥐게 된 넘버 쓰리가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데 저 문은 뭐지?”
타어어들을 엮어서 문에 묶고 빈 침대 서너 개를 그 앞에 세워서 묶어 둔 것에 대해 묻고 있었다.
“작은형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강탄이가 대답하고
“왜? 아, 너희들이 도망갈까봐 그런 거냐?”
“그런 게 아니라....”
“그 이상한 녀석이 가기 전에 작은형님께 뭔가 다른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문가를 지키던 조직원이 대꾸했다. 그리고는 강탄이를 보고 말했다.
“작은형님이랑 꽤 오랫동안 대화를 하던데 무슨 말씀 없었어?”
“그건, 그냥 개인적인 대화였습니다.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요. 두 분이 친구시라...”
그때 또 한 개의 침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 봐. 여기 얘가 좀 이상해.”
강탄이와 조직원이 달려갔다. 한 조직원이 얼굴이 붉어지고 눈에 띄게 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그는 애써 대꾸했다.
“뭐가? 내가 뭐가 이상, 하다는 거야? 응? 좀 더운데, 많이, 더워.”
떠듬대며 대꾸하는 조직원과 말을 쏟아내는 옆 조직원 모두 강하게 공포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변하는 거야. 변하는 거 맞지? 맞지? 쟤 침대를 빼. 빨리 옮겨버려. 짱돌도 저랬어. 저랬다고.”
실내가 다시 한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침대 삐걱이는 소리와 웅성대는 검은 고치들 사이로 강탄이와 조직원은 서둘러 침대를 빼서 창가쪽으로 옮겼다.
“뭐야 쟤는 왜... 어떻게...”
모두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차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대의 차소리. 강탄이와 조직원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앗, 뭐지? 첨보는 녀석들인데?”
“작은형님이 이런 상황을 예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강탄이가 조용히 대꾸했다.
“뭐?”
“우리가 제거 대상이 된 거죠. 이제.”
“이런 젠장, 그 얘길 왜 이제 해?”
“확실하지 않았어요. 저도 추측일 뿐이라.”
김혁은 벽을 통과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멀찌기 주차된 차들 사이에 3대의 차들이 멈췄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자들이 우루루 내렸다. 열 두어명은 됐다. 그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처럼 우산을 펼쳐들고 건물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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