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종말의 시작2
강탄이와 조직원은 잽싸게 각자 한명씩 맡아 묶은 줄을 풀기 시작했다. 조직원은 먼저 넘버쓰리에게 달라 붙었고 탄이는 가장 크게 꿍시렁대는 조직원을 맡았다.
그동안 폐타이어 너머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들과 바닥에 딱딱한 것들이 계속 쌓이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지 않아?’ 하는 말에 이어 ‘이거 뿌리면 이거 없어도 되는데.’ 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강탄이와 조직원은 더욱 더 서둘렀다. 하지만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 헛손질을 할 때가 많아지는지 줄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좀비가 될 때를 대비해서 몸을 묶고 침대에 묶고 그렇게 이중으로 묶어둔 것이 이럴 때는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고 있었다.
출렁출렁, 차락차락 액체가 뿌려지는 소리. 곧 실내엔 휘발유 냄새가 진동했다. 거침없는 마스크맨들에 비하면 검은 고치들이 풀려나는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너무 단단히 묶여 있는 모양이었다.
“아 씨발, 빨리 빨리 좀 해.”
“하고 있잖아. 가만히 좀 있어, 임마.”
풀려난 사람이 다음 사람을 풀고 있는데 입구에서 검고 매케한 연기가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연기를 쐬는 폐타이어 문 앞 좀비는 더 심하게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그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아직 풀려나지 않은 조직원들은 더욱 크게 아우성이었다.
“대체 이게 뭐야? 누가 이렇게 하자고 했어, 개새끼, 난 여기서 안 죽을 거야. 안 죽어.”
“야, 강탄이 나한테 와. 나 좀 빨리...콜록 콜록”
“아아, 내가 저 저놈들 가만 안 놔둘 거야. 이 개새끼들아!”
묶인 자들의 몸부림에 침대 삐걱이는 소리가 더욱 커져서 실내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좀비와 좀비 아닌 자들의 아우성과 침대가 내는 철컥이는 소리 위로 검은 연기가 커튼처럼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폐타이어 너머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건너왔다.
탄이는 한 사람을 풀어준 뒤에 빈 침대로 가서 침대 시트를 걷어 북북 찢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창밖 빗속에 내놓고 적셨다. 아직 물이 뚝뚝 흐르는 천을 먼저 풀려난 조직원들에게 나눠줬다. 두명 이상이 풀려나자 줄을 푸는 속도는 빨라져갔지만 실내는 점점 더 뿌얘져서 기침 소리가 더 잦아졌다. 좀비는 더 거세게 “우어어어어” 소리치며 고통스러운지 더욱 거세게 요동을 쳤다. 이제 폐타이어들은 불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무가 타는 냄새가 고약한데다 연기는 더 검어졌다. 곧 입구가 열릴 터였다. 실내는 자욱한 연기로 눈을 뜨기도 힘들어졌다. 그때 창문으로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바닥에서 터진 불길은 터진 너비만큼 불길을 피워 올렸다.
“아 씨발, 진짜 저것들이.”
미리 풀려난 조직원 둘이 서둘러 매트리스 하나를 화염병이 터진 바닥에 쾅 덮었지만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불이 붙기 전에 공기를 차단해야만 했다 그들은 매트리스를 다시 들어 다시 한번 쾅 내려놓았다. 간신히 불길이 사그라졌다.
그러나 화염병은 계속 날아들고 있었다. 이제 모두 풀려난 검은 고치들이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합세해서 가벽을 무너뜨리려 침대를 들고 돌진하고 한쪽에선 매트리스로 화염병으로 생긴 불꽃을 잡거나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에 젖은 천으로 마스크를 하고 있어도 숨을 쉬기가 고통스러운 건 모두 마찬가지였다. 기침을 해대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은 필사적으로 불을 끄고 가벽을 부수기 위해 안간힘 썼다.
가벽은 쉽사리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계속된 타격에 흔들거림은 있었다.
그때 폐타이어가 녹아내린 틈으로 화염병 하나가 날아들어 좀비가 있던 침대에 떨어졌다. 좀비는 금새 불길 속에 휩싸였다. 우어어어! 우어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좀비와 불길이 옮겨 붙는 작은형님의 침대 쪽으론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다.
좀비를 묶고 있던 줄이 먼저 타 내리자 좀비가 풀려났다. 몸에 불이 붙은 채로 좀비는 빙 둘러 세워 놓은 침대들을 넘어뜨리며 그 사이로 떨어지긴 했지만 어디로도 갈 곳이 없었다. 팔을 휘저어대며 제 자리에서 뱅글뱅글 몇 번인가 돌았다. 그러면서 창가로 조금씩 다가가던 좀비는 결국 몸의 중심을 잃고 창에서 떨어졌다. 창밖에서 타탕, 탕탕, 총성이 몇 번 울렸다.
“개새끼들.”
조직원들 틈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김혁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바닥으로 떨어진 좀비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리는 비에 타오르던 불길은 잦아들었고 연기를 풀풀내며 꺼멓게 타다 만 좀비는 휘적휘적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 씨발, 뭐야? 왜 안 죽어.”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마스크맨들이 좀비를 향해 총을 쏴댔다. 총소리에 비해 좀비 몸에 총알이 박히는 건 적었다. 비가 오는데다 그들의 사격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했다. 총 맞은 자리에 피를 흘려대면서도 좀비는 계속 휘적휘적 걸어나갔다.
“좀비?”
“머리를 쏴. 머리. 좀비는 머리를 쏴야지.”
한참 더 총소리가 울린 뒤에 좀비 머리에 총알이 명중했다. 한쪽 머리가 터지며 좀비가 쓰러지고 마침내 움직임이 멈췄다. 마스크맨들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좀비의 피가 빗물을 따라 그들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것들엔 신경쓰지 않았다. 제자리에 선 채로 좀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그들은 다시 건물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김혁도 건물을 바라보았다. 검은 연기가 2층 창마다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못 견디고 뛰어내려야 되지 않냐?”
“야, 창문에 나와 매달리는 녀석도 하나 없는데?”
“벌써 다 질식해버린 거 아닐까?”
“아 그럼 진짜 재미없는데.”
재미라, 김혁은 마스크맨들이야말로 지옥 속에서도 가장 깊은 지옥에 떨어져야 할 인간들이란 생각을 하며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콜록대며 검은 고치들은 가벽을 부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었다. 김혁은 가벽을 통과하며 벽 두께를 보았다. 가벽으로 세운 나무 틀 사이 공간이 약간 넓은 편이었다. 합판 하나를 뚫는다 해도 다른 합판 하나가 더 남는 셈이었다. 전체적으로 넘어지기엔 나무 틀의 지탱하는 힘이 좀 큰 느낌의 너비였다. 저들이 질식하기 전에 저 벽을 뚫거나 넘어뜨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가벽 너머는 벽이 없는 그 방이었다. 강탄이가 와서 앉아 있던 한쪽 벽이 없는 방. 그 방엔 복도로 연결된 문이 따로 있긴 했지만 거길 통해 나가면 2층 계단을 지키고 있는 마스크맨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벽을 뚫고 나온다 해도 신선한 공기 외에는 탈출로가 따로 없었다.
가벽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김혁이 복도쪽으로 나가 좀 더 돌아보니 마스크맨들은 거의 2층 침실 입구 쪽과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 몰려 있었다. 그들은 서서 불타는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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