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탈출1
빗속에 서서 창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마스크맨들은 거기 다 모여 있었다. 2층 입구의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이 정도면 아무도 못 살아납니다. 연기도 심한데 1층으로 철수하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들은 처치해야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한 녀석이 폐타이어 방벽이 녹아내린 입구에 선 채 안쪽을 향해 총질을 몇 번 더 했다.
“야, 야, 총알 아껴.”
“좀비는 다 죽은 것 같은데요? 그 괴상한 소리가 이제 안 들리지요?”
“저놈들을 믿어? 안쪽에 좀비가 더 많을지도 몰라. 몇 명만 정상일 수도 있다구. 갑자기 불붙은 좀비가 훅 튀어나오면 어쩔래?”
“어쩌긴 뭘 어째? 신나게 쏴대는 거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피가 안 튀게 거리 유지하고 조심들 해.”
“네. 형님.”
김혁은 다시 2층 실내로 들어갔다. 자욱한 검은 연기로 인해 정말 바로 앞도 안 보이는 상태였다. 그러나 저승사자의 시각으로는 멀리 조직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매캐하고 탁한 연기를 지나쳐 그들 쪽으로 다가갔다. 실내의 끝 쪽이라 그나마 연기가 좀 덜한 편이긴 했지만 필사적으로 가벽을 밀고 있는 조직원들은 역시 유독가스로 인해 거의 눈도 못 뜨는데다 산소 부족으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다보니 힘도 점점 약해지고 있는 듯 보였다.
연기를 못 참고 연신 콜록대다 바닥에 납죽 엎드린 조직원도 있었다. 이제는 매트리스로 불을 꺼대던 조직원들도 합세해 전체가 가벽 무너뜨리기에만 매달려 있었다.
“이거 가벽 맞아? 뭐가 이렇게 단단해?”
“아 씨 콜록, 망치라도 있으면 금방인데. 커헉. 퉤퉤”
젖은 천으로 입을 막고 있던 한 조직원은 천을 떼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침을 뱉어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뒤에는 불길과 그 너머 적들이 있고 옆으로 가면 총알 세례를 받을 것이기에 그들은 그 벽에 죽자사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젖먹던 힘까지 다 쓴 덕분인지 마침내 흔들리던 가벽이 쿵 소리를 내며 반대편으로 넘어졌다.
“됐다. 됐어. 얼른 가!”
그들은 거의 동시에 한꺼번에 쏟아져 나가 콜록대면서 신선한 공기를 호흡했다. 그러다 복도 쪽에서 예상치 못한 쿵 소리에 뭔가 하고 달려오는 마스크맨의 발소리를 듣고 모두 안쪽 벽으로 몸을 숨겼다. 미처 몸을 다 피하지 못한 한명이 총을 맞고 쓰러졌다.
"아, 으악!"
“야, 어딜 맞은 거야?”
조직원들은 눈치만 보며 다가가지도 못한 채 안타깝게 쓰러진 동료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총알이 허벅지 바깥쪽으로 스쳐 지나간 모양인지 그는 스스로 기어 벽 쪽으로 붙었다.
“아 씨발, 좀비 될까봐 걱정했더니 총부터 맞네. 오늘 일진 진짜 사납다.”
그는 그 말을 해놓고 빈웃음을 웃었다.
“잡소리 말고 얼른 지혈부터 해.”
마스크로 썼던 젖은 천으로 피가 흐르는 허벅지를 지혈해 묶는 동안 복도에서는 ‘여기 벽이 뚫린 것 같습니다.’ 소리치는 목소리와 우루루 달려오는 발소리가 겹쳐졌다. 거의 텅 빈 건물이다 보니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꽤 크게 울려서 더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무기도 없이 막다른 공간에 던져진 조직원들은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아, 씨발, 몇 명이나 있는 거야?”
조직원들은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무기가 될만한 걸 찾았다. 있어봐야 공사하다 말고 놓고 가버린 플라스틱 물병이나 부자재 쪼가리들과 잘라낸 쇠붙이 조각들, 잘게 부서진 시멘트 덩어리, 찢어진 비닐천 따위들뿐이었다.
“야 이거라도 옮겨서 문을 막자.”
한 조직원이 자기들이 밀어내고 밟고 선 가벽을 가리키며 말하자 다른 조직원이 말했다.
“야, 시간 없어. 이건 벽하고 꽉 맞게 짜여진 거라 세워서 막는 게 더 힘들어.”
“그럼 어떡해?”
바닥으로 떨어진 가벽이 미치지 않은 쪽의 조직원은 문에서 안 보이는 벽 쪽으로 붙어 서 움직이며 던질 만한 것들을 주워서 다른 쪽 조직원들에게 던져주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단단한 것이라면 모두 모아서 다른 조직원들 쪽으로 던졌다. 잘라내다 만 나뭇조각, 자잘한 시멘트 덩어리들, 끄트머리에서 잘려진 쇠붙이들 따위가 그들의 무기 전부였다.
“이것 뿐이니까 이것도 아껴야 돼.”
“야, 줄 가져와.”
넘버쓰리가 명령했다.
“줄을 타게요?”
“그럼 그냥 뛰어내리리? 저들이 눈치 채기 전에 빨리 가야 돼. 저쪽은 아직 눈치 못 챈 것 같으니까.”
조직원 두명이 다시 심호흡을 깊게 하고 천으로 입을 틀어막고 연기속으로 뛰어들었다. 또 다른 조직원은 물 수재비를 뜨듯이 문 쪽을 향해 시멘트 조각 하나를 던졌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달려오던 중이었는지 마스크맨 하나가 불시의 공격에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면서 놓친 총 한 자루가 문 쪽으로 밀려오다 멈췄다. 그러나 안쪽에서 집기에 애매한 거리였다.
“야, 총이야. 총. 각목, 각목 좀 줘봐.”
"각목이 있어야 주지."
복도를 달려오던 마스크맨들은 따로 몸을 숨길만한 데가 없었다. 그들은 안쪽에서 뭔가가 날아와 한명을 쓰러뜨리는 걸 보곤 더 다가오진 않고 모두 벽에 붙은 채 상황을 살폈다.
“뭐냐? 그건?”
“쎄멘 쪼가린데요. 총은 없나 봅니다.”
“야, 씨, 저건.”
마스크맨들도 문가에 놓여진 총 한 자루를 보고 있었다. 가지러 가기엔 문에서 너무 가까웠다. 그렇다고 그냥 내주기엔 너무 위험한 무기였다. 그들은 저희들끼리 은밀히 작전을 주고 받았다. 두 명이 1층으로 내려갔다. 남은 녀석들끼리 떠들어댔다.
“아 찔긴 놈들. 어떻게 나온 거야?”
“저긴 빈 공간이라 화염병 던져봐야 탈 것도 없고 아까 보니까 벽 한 쪽이 공사가 안 됐었습니다.”
“벽이 없어? 젠장맞을.뛰어내리기엔 높겠지? 그 밑에 뭐 있나?”
“높긴 하지만 이불이라도 찢어서 엮으면 탈출 할 수도 있죠.”
마스크맨들이 보는 복도 쪽에서는 안쪽의 빈 벽이 정면으로 보일 뿐 문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한 뚫린 벽으로 탈출하는 모습까진 볼 수 없는 위치였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던 마스크맨들이 돌아왔다. 차 문짝과 각목을 각각 하나씩 들고 있었다. 방패로 삼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마스크맨들은 다시 수군거리더니 세 명만 남고 모두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복도 쪽에선 총 회수와 방어만 하고 건물 외곽 쪽에서 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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