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탈출2
김혁은 문 정면 허공에 떠서 복도의 마스크맨들과 실내의 조직원들을 모두 보고 있었다. 죽이려는 자들과 살아남고자 하는 자들의 필사적인 대치였다. 문도 달려 있지 않고 사각 구멍만 뻥 뚫린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두 조직. 그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 있는 총 한 자루. 누가 먼저 그 총을 움켜쥐느냐가 중요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서 생겨나는 견제와 긴장이 상당했다.
총은 검은 고치들 쪽에 가까웠지만 방패도 없이 총을 집기엔 드러나는 팔에 총알 맞을 각오를 해야 하고 마스크맨들이 집으러 가기엔 검은 고치들에게 너무 가까워지는데다 총알만큼은 아닐지라도 역시 치명적일 잡다한 쪼가리들에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들은 잠시 서로 눈치를 보며 멈칫해 있었다. 그러더니 곧 한 마스크맨이 차량 문짝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들기 시작했다.
실내에서는 줄을 찾으러 갔다가 막 연기 속을 뚫고 나온 두 조직원이 급히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느라 약간 소란스러워서 복도에서 다가드는 위협적인 소음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조직원들이 던져 놓은 줄 뭉치를 서둘러 잡고 짧은 줄들을 연결해 묶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또 다른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매듭이 잘 묶였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한쪽에서는 강탄이가 폐비닐에다 비교적 크고 넓적한 각목 조각을 하나 넣어 묶고 있던 게 거의 완성됐다. 이제 마스크맨은 두어 걸음만 더 다가들면 총을 집어들 수 있는 거리에 와 있었다.
“됐다. 엄호할 테니까 한번에 하자.”
강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비닐 끌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문 가까이에 섰다. 조직원들 모두 각자 손에 든 조각들을 단단히 움켜잡고 대기중이었다. 아무도 바깥 사정을 모르니 마스크맨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도 모를 터였다.
모든 조직원들이 넘버쓰리의 조용한 손짓, 하나 둘 셋 신호에 맞춰 일제히 들고 있던 쪼가리들을 복도로 던졌다. 쪼가리들은 허공에 제멋대로 날아가다 떨어지거나 드물게는 마스크맨의 몸을 맞추기도 했지만 안 보고 던지는 거라 거의 소 뒷걸음치다 쥐잡는 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쪼가리들이 차 문짝에 부딪쳐 탱탱탱 소리를 내며 떨어지거나 튕겨져 문 안쪽까지 도로 들어오기도 했다.
“뭐야? 저 소린?”
방패를 들고 오던 마스크맨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뒤로 물러나 벽쪽으로 붙고 남은 마스크맨들이 총을 발사해대기 시작했다. 총소리가 잠잠해진 틈을 타 탄이가 재빨리 비닐 끌개를 복도로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강탄이의 몸을 발견하고 쏜 총알이 빗나갔다. 탄이가 숨을 고르고 비닐 끌개를 당겨보았지만 아무것도 함께 끌고 오지 못했다. 한 조직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잘 좀 해봐. 던질 것도 얼마 없다고.”
“어림짐작에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요. 저들은 차 문짝을 방패 삼아 버티고 있어요. 지금 보이는 건 세 명입니다.”
탄이가 말하자 조직원은 머쓱해져서 대꾸했다.
“뭐? 야 그새 언제 또 그걸 다 봤어?”
탄이는 다시 대꾸했다.
“한놈이 가까운 걸로 봐선 총을 가지러 오던 중이었던가봐요. 서둘러야 해요.”
문도 안 달린 문 구멍이 뚫린 벽 하나를 두고 양쪽이 소리로만 서로를 살피고 있던 상황에서 이제 서로의 패를 다 보여줬으니 더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맨 둘이 동시에 차 문짝으로 복도를 메운 채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끔 문을 향해 쏜 총알이 김혁의 몸을 지나 벽에 가 박혔다. 그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걸 실내의 조직원들도 들을 수 있을 만큼 그다지 살금거리지도 않았다.
“야, 막 던져."
그들은 가지고 있는 조각들을 집어 되는 대로 던지기 시작했다. 총알과 쪼가리들이 허공에서 오고가는 틈을 타 탄이는 거의 누운 채 비닐 끌개를 바닥으로 던졌다. 끌개를 발견하고 바닥 쪽으로 총알이 발사됐다. 그 와중에도 끌개는 총을 걸고 함께 끌려오고 있었다.
마스크맨들에게도 총알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 마스크맨의 총알이 철컥 걸리는 소리를 내고 한 마스크맨이 거의 문 가까이 다가들었을 때 강탄이가 총을 집어들었다. 탄이는 망설임 없이 총을 쏘았다. 마스크맨의 다리에 총알이 명중했다. 그는 차 문짝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는 문 가까이 복도에 쓰러진 채 문 쪽을 향해 총을 마구 쏘아댔다. 그러느라 그의 총알도 떨어져버렸다. 철컥 철컥. 타앙-, 마지막 총성은 마스크맨의 머리를 명중시켰다.
몸을 굴려 벽 쪽으로 붙은 탄이가 숨을 몰아쉬었다.
“한놈 제거했습니다.”
그리곤 탄창을 꺼내 총알 개수를 확인하곤 탄창을 다시 넣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두발 뿐이네요. 이제 형님이 맡으십쇼.”
탄이는 총을 다른 조직원에게 넘겼다. 총을 받아드는 조직원은 꽤 호의적인 미소를 담고 말했다.
“야, 강탄이. 너 사격 실력 꽤 쓸만하네. 언제 그렇게 늘었냐?”
“형님만 할려고요. 아슬아슬했어요. 거의 문앞이었으니깐요.”
“총알도 두 개, 놈들도 두 놈 남았다 이거지?”
그는 총을 쥐어 이리저리 살펴보곤 말했다.
“야 침실에 누구 거울 갖다 놓은 거 없냐?”
“거울이요?”
“사내놈들이 거울을 누가 봐?”
“... 아 코털, 있을 텐데 그건...”
말을 꺼낸 조직원은 괜히 말을 꺼냈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건 뭐? 있으면 빨리 가서 갖고 와.”
“아, 제가요?”
“아는 사람이 가야지. 시간 없어. 빨리 갖고 와.”
“아 그건 철산이 건데...”
모두들 그 의미를 아는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말을 꺼낸 조직원은 인상을 잔뜩 구겼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을 다시 빗물에 적시고 심호흡을 깊게 한 다음 다시 끔찍한 연기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스크맨들은 멀찌기 뒤로 물러나 탄창을 바꿔 갈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복도에 피를 흘리며 앉아 있는 동료를 바라보곤 시선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실내 바닥엔 던질만한 쪼가리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리 총이 생겼대도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적들에겐 더 많은 총이 있었다.
“이거 밑에도 좀 있지 않을까?”
한 조직원이 바닥에 깔려 있는 가벽을 살짝 구르며 말했다.
“야, 함 들어보자.”
다른 조직원과 힘을 합해 가벽을 살짝 들었다.
“있다. 있어. 야 새끼야 빨리 모아.”
두 조직원이 가벽을 받치고 있는 사이 한 조직원이 열심히 쪼가리들을 모았다. 그러나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었다. 다시 가벽을 털썩 내려놓고 그들은 다시 벽쪽에 붙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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