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좀비가 출몰하는 숲2
“건수 형님?”
강탄이의 떨리고 가느다랗지만 반가움이 묻은 목소리가 들리자 건수는 안도했다.
“너 이 자식, 좀비 된 거 아니지?”
“진배 형님이, 진배 형님이 좀비가 돼서...”
“진배도?”
건수가 둔덕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말했다.
“하, 우리가 지금까지 묶여 있었으면 더 큰일날 뻔 했네. 태명이놈도 좀비가 됐다.”
건수가 절망스럽게 말을 마치고 강탄이가 일어서며 대꾸했다.
“왜 다들 좀비가 돼 가는 거죠? 그럴 만큼 짱돌형님한테 가깝게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낸들 알겠냐? 넌 임마, 더 멀리 갔어야지. 제일 빨리 갔으면서 이만큼밖에 못 왔냐? 난 니가 그러고 있길래 죽었나 했잖냐.”
“갑자기 진배 형님한테 쫓기느라고 달리다 보니까 되돌아왔나봐요.”
“얼른 가자. 그놈들도 다 따라 들어온 것 같으니까.”
“네.”
그나마 둘이라는 것 때문인지 그들에게선 공포의 냄새가 많이 옅어졌다. 그 둘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산 너머로 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좀 멀긴 하지만 이 산에 큰형님 별장이 있으니까 거기 가면 좀 쉴 수 있을 거다.”
“별장이요?”
“큰 형님이 사냥하러 가끔 다니시잖냐.”
“네. 근데 이런 데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뭐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나도 딱 한번 따라와 본 거라 사실 장담은 못해. 찻길만 눈에 익어서 말이지. 그래도 뭐 이 산 어디에는 있으니까 찾다 보면 안 찾아지겠냐?”
강탄이는 별로 기대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숲을 벗어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어쩌면 건수는 힘든 상황에서 지친 강탄이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일단 산이나 넘어보자. 근방엔 마을도 없어. 큰길까지 가려면 한참 가야 하고. 배고파 죽겠다.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참, 넌 잠도 못 잤지?”
“네.”
“별장이든 인가든 어디든 가서 좀 쉬어야 돼. 이런 상태로 내내 계속 갈 순 없어.”
강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는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산속을 걸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좀비와 총을 마구 쏘아대는 마스크맨들을 경계하며 둘 다 돌을 단단히 움켜쥔 채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들은 산 너머를 향해 제대로 가고는 있었지만 길없는 길을 가다 보니 곧잘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곤 했다. 그런데다 바스락 소리만 나도 멈추는 통에 그들의 여정은 너무 느렸다. 청설모가 지나가거나 산새가 날아오르는 때가 잦았다.
간간이 들리던 총소리도 한참동안 들리지 않고 숲의 능선을 넘어 내리막길을 가고 있을 때 건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네. 젠장 비스무리한 데도 안 보여.”
“별장은 그만두고 그냥 큰길로 나가시죠.”
“그래도 괜찮겠냐? 너...”
“견딜만 해요.”
“그래...”
건수는 강탄이의 상태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작은형님이 그렇게 돼서 마음이 참 그래.”
“네.”
“사실 지금 말이지만 우리끼리는 니가 작은형님 숨겨논 아들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건 아닌데요?”
“그래? 왠지 돌아보면서 찡그리는 얼굴이 많이 닮았더라고. 그럼 너 혹시 그거 연습한거냐?”
“네? 무슨 연습을?”
“그 찡그리는 표정말야. 작은형님만의 특유의 그 표정. 가끔 너한테서 그 표정이 보일 때가 있어서....”
“그랬어요?”
“그래. 임마.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생각을 안 하겠어?”
“전 그런 생각을 정말 한번도 해본적도 없는데요.”
“그래? 정말? 혹시 작은형님이 뭔 말씀 없으셨어?”
“네.”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하는 강탄이를 보면서 오히려 건수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괜한 오해해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괜히 그래서 널 더 미워하는 녀석들도 있었지 뭐. 숨겨놓은 아들 데려다 놓고 차별한다고.”
“네.”
강탄이가 계속 너무 심상하게 대꾸하니 오히려 미안했던지 건수의 말이 길어졌다.
“아니 뭐 진짜 차별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진짜 그런가 해서 그렇게 생각했다는 말이지.”
“우리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특별히 부탁하신 것도 있고 해서 더 그랬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도 작은형님이 워낙 조직원 모두를 잘 챙기셨잖아요.”
강탄이가 또 덤덤히 대답하자 건수는 강탄이를 조심스럽게 흘깃거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콩탄이라고 불렀던 거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아, 작은형님이 데려온 것만 아니었어도 넌 우리들한테 꽤 귀여움 받을 녀석이었어.”
“네.”
“아휴, 딱딱하긴. 애들이 다 사랑도 못 받고 막 굴러먹던 애들이라서 그러니까 이해해라. 원래 그런 놈들이 질투가 많지.”
“섭섭한 적 없었어요. 정말로.”
“그럴 리가 있나. 사람이란 게 그게 아니지. 너가 잘 말도 안 섞고 맨날 2층 구석에 짱 박혀 있는 거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안 좋고 그랬다 임마.”
“부모님 돌아가시고 마음 붙일 데도 없고 환경도 갑자기 바뀌고 그래서, 제가 숱기가 많지 않아서 그렇죠 뭐. 형님들 탓 안 했어요.”
“하여간 쬐그만 놈이 꽤 멋지단 말이야. 이제부턴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
건수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강탄이도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둘은 행동을 멈췄다.
“쉿!”
“우어어어.”
일순간 그들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이렇게 멀리까지 좀비가 넘어왔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디선가 좀비에게서 들리던 익숙한 그 짐승소리가 들려왔던 거였다.
“젠장, 또 뭐야? 앞서 갔던 애들 중에 하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저쪽이요. 형님.”
강탄이가 가리킨 쪽에 좀비가 된 조직원 하나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녀석까지?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딸내미도 있는데...”
“조용히 벗어나죠.”
건수가 다른 쪽으로 고갯짓을 하고 둘은 조심스럽게 비껴나 다른 길로 걸었다. 아무리 좀비라도 한때 함께 웃고 울던 동료에게 돌을 던지고 싶진 않을 거였다.
무사히 좀비에게 안 들키고 멀어지고도 그들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묵묵히 걷다가 건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말이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좀비가 되면 아 씨, 내가 좀비가 되면 그때는 니가 꼭 날 처리해줘라. 마을로 못 가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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