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화 좀비가 출몰하는 숲3
건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겁에 질려 있었다. 강탄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공포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나오고 있다. 언제라도 좀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공포. 거기엔 혹여라도 좀비가 돼서까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할까봐 생기는 두려움도 섞여 있을지 몰랐다.
김혁은 그 맘이 뭔지 잘 알았다. 자신 역시 저승사자로 돌아다니던 순간에 항상 고향이 어디쯤에 있을까 찾았었으니까. 고향이란 그런 곳이다. 돌아가보고 싶고 가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 사람에게 고향은 추억의 저장소이고 마음속의 집이며 아무리 멀리 있어도 언젠가 돌아가고픈 구심점 같은 곳이다.
김혁도 생각해봤다. 좀비가 된다면 고향과 가족마저도 잊게 될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식욕만큼이나 그런 것들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어쩌면 본능처럼 집을 찾아 움직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엄마랑 아빤 완전 파파 할매, 파파 할배거든? 날 완전 늦게 낳았다니까. 그래가지고 엄마가 학교 올 때마다 애들이 할머니냐고 어찌나 놀리던지 그게 싫어가지고 학교 오지마라고 애먼 엄마한테 화도 많이 냈다. 그래도 우리 노친네들 장례는 내가 잘 해줄 생각이었는데 나 없으면 그거 누가 해주지?”
건수의 목소리가 침울해지자 강탄이가 씩씩하게 대꾸했다.
“형님이 해주면 되죠. 아직까지 괜찮다는 건 우린 괜찮다는 거 아닐까요?”
“그럴까?”
“네. 그때 왔던 좀비 추적한다는 남자도 12시간 이내면 변할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그랬었나?”
“네.”
강탄이가 시계를 보곤 덧붙여 말했다.
“지금 2시는 넘었으니까 이제 변할 사람은 다 변했다고 보는 게...”
그러나 건수는 걱정이 많은 타입인지 강탄이의 말을 끊고 또 급하게 대꾸했다.
“꼭 짱돌만이 원인이 아닐 수도 있을까봐 그러지.”
“...”
갑자기 변해버린 작은형님이나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있었던 시간들이 또 어떻게 영향을 줬을지 불안한 거란 걸 둘 다 짐작하고 있는듯했다.
“그럼 우리 좀 저만치 떨어져서 걷죠.”
그 말을 하고 강탄이는 씨익 웃음지었다. 그리곤 말을 이어갔다.
“혹시 제가 좀비가 되면 형님은 얼른 가세요. 저 달리기 잘하는 거 아시죠? 전 남아서 저놈들 하나라도 더 아작을 내고 그냥...”
“형이라고 하라니까.”
건수는 쓸쓸한 표정으로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강탄이의 말을 잘랐다. 좀비를 처리하든 도망치든 그런 상상조차도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채고 서둘러 말을 끊어버린 듯했다.
“네. 형. 저도 민혜를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만약 그게 안 되면 형이 대신 좀 말해주세요. 작은형님은 그렇게 되기 직전까지도 민혜 이름을 계속 불렀어요.”
“그래 맞다. 걘 정말 귀여운데 다섯 살배긴데 진짜 이뻐. 넌 언제 봤냐?”
강탄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전 본 적 없어요.”
건수는 조금 놀라워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아 그래? 작은형님도 장가를 워낙 늦게 들어가지고 엄청 눈에 밟혔을 텐데. 아 씨, 진짜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겨가지고.”
갑자기 건수의 눈가가 붉어지는 듯하더니 그는 서둘러 다른 데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강탄이는 말이 없었다.
“...”
이후로 그들은 침묵한 채 계속 걷기만 했다.
비는 그쳤지만 해가 나지 않는 흐린 오후였다. 온 몸이 젖은 채로 밤까지 숲에서 헤매게 된다면 아직 차가운 꽃샘추위를 견디기가 어려울지도 몰랐다.
김혁은 높이 떠서 길이나 별장이 어디에 있나 찾아보았다. 그들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지은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깔끔한 모양의 집 한 채가 있었다. 그들이 찾고 있는 집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들이 그 집을 발견하길 바랐지만 그들은 지금 집과는 다른 방향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김혁은 강탄이와 건수보다 앞서 가서 바닥을 쓸 듯이 몇 번 빠르게 집 쪽으로 날았다. 그러자 바람이 일며 부스러기 따위들이 날아들자 반사적으로 그들의 고개가 바람이 가는 방향 쪽으로 돌았다.
“아니 갑자기 웬 바람이..”
고개를 이리저리 휘젓던 건수의 눈에 뭔가가 잡힌 모양인지 강탄이를 잡아세웠다.
“아 저기다. 저기. 보이냐?”
“네? 뭐가요?”
“저기 쬐그맣게 지붕 같은 거 안 보여?”
건수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빼고 강탄이가 이리저리 보더니
“아 보여요. 보여. 저게 그 별장인가요?”
“그런 것 같은데? 가보자. 뭐 모르는 사람 집이라도 일단 한번 두드려나 보자구.”
그들은 서둘러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뛰어갔다. 집은 별장이라기엔 초라하고 오두막이라기엔 훌륭한 아담한 집이었다. 건수의 얼굴엔 안도감과 반가움이 어려 있었다.
“맞네. 맞아. 하마터면 지나쳐갈 뻔 했네.”
건수는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가더니 일단 문이 잠겨 있나를 확인했다. 당연히 문은 그냥 열리지 않았다. 그는 이리저리 고갯짓을 하며 현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강탄이는 그저 바라보면서 숲속을 두리번거렸다.
“여기 어디다 뒀던 것 같은데...”
그는 여기저기를 눈으로 더듬거리더니 마침내 바닥 깔개 돌 중 하나를 들어올려 거기서 열쇠 하나를 찾아냈다.
“그렇지. 이거거든.”
김혁은 그들이 문을 여는 사이 먼저 집안에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봤다. 근사하게 외관을 장식한 연통이 달린 쇠난로가 중앙에 하나 놓여 있고 한켠에 잡동사니가 마구잡이로 놓여 있는 식탁 같은 게 놓여 있을 뿐 가구는 없었다. 그리고 한 구석에 싱크대 및 찬장이 있고 문이 달린 방 하나가 있었다. 잠자리로 사용 가능한 작은 방 역시 이부자리나 옷가지 몇 개 빼곤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강탄이 역시 처음 와본 집 내부를 슬쩍 한번 둘러보곤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곤 탁자 위의 물건들을 들여다보았다.
“안 온지 꽤 됐나봐요? 먼지가 장난 아니네요.”
“뭐 아마 그럴 걸? 온다고 해도 사내들이 어디 청소나 제대로 하겠냐? 대충 있다 가는 거지. 어디 보자. 어디 컵라면 같은 거라도 있을 건데...”
건수는 익숙하게 싱크대 쪽으로 가서 찬장을 뒤적였다. 그리곤 버너와 일회용 가스를 찾아냈다. 그는 또 여기저기를 뒤적여서 코펠 같은 식기류도 몇 개 건드려보다가 작은 냄비를 하나 꺼내 강탄이 쪽으로 내밀었다.
“야, 거기 물 좀 받아봐. 추우니까 뜨거운 물이라도 좀 먹자.”
“네.”
강탄이가 냄비를 받아들고 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오래 안 쓰던 수도꼭지는 힘겹게 돌아가더니 텅빈 관을 때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만 할 뿐 물이 나오지 않나 싶더니 곧 녹슨 물이 조금씩 힘겹게 나오기 시작했다. 강탄이는 맑은 물이 떨어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렸다.
“물은 나오지? 한겨울에는 수도가 얼어서 그 물도 못 쓰는데 다행이네.”
찬장을 여기저기 뒤적이던 건수는 스틱형 커피를 몇 개 찾아내고 좋아했다. 즉석 식품이 담긴 통조림 몇 개도 찾아냈다.
“아 다행이다. 그래도 이런 거라도 좀 있으니. 저 방에 가봐. 마른 옷이 좀 있을지도 몰라.”
강탄이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곧 셔츠와 바지들을 들고 나왔다.
“이거밖에 없네요. 어떤 옷으로 입으시겠어요? 형님 먼저 고르세요.”
“야 아무거나 입으면 어때? 별걸 다... 난 와인색. 이놈의 깜장 옷 신물나 죽겠다.”
강탄이가 미소를 지으며 와인색 티셔츠와 바지를 식탁 옆 의자 위에 걸쳐두고는 자신의 젖은 옷을 벗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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