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좀비가 출몰하는 숲5
강탄이의 고집스런 태도에 건수는 살짝 표정을 굳힌 채 강탄이에게 말했다.
“왜? 나 못 믿냐? 아 너만 두고 안 가. 임마.”
“그런 게 아니라...”
강탄이는 형을 거스르지도 못하겠고 다른 생각도 있는 듯 했지만 그 갈등을 꺼내놓지도 못하고 말꼬리를 흐릴 뿐이었다.
“나도 사냥 다녀봐서 아는데 뭐 밤사냥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 생각해보면 그놈들이 예방백신을 맞았다 그래도 시커먼 밤중에 이 넓은 숲에 응? 좀비들도 돌아다니는데 함부로 활보하긴 무섭지 않겠냐? 총알도 무한정 갖고 오진 않았을 거고. 내 말이 맞다니까?”
“네. 그래도 이런 상황에 잠이 드는 건 좀...”
“날 믿어. 나 못 믿어? 의리하면 안건수. 바로 나라구.”
“네 그건 알지만... 알겠습니다.”
강탄이는 뭔가 할말을 하지 않고 마지못해 일어섰다.
“안에서 문 잠글 수 있을 거야. 문 잠그고.”
“네? 아니 뭐...”
그 말엔 강탄이가 더 당황스러워하는 듯 했다.
“사실 우리 중에 누가 좀비가 될지도 모르는 거니까 너도 그게 걱정이지?”
“아니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요.”
“이럴 땐 형 말 들어라. 내가 너 무서워서 그래 임마. 니 말대로 체력은 니가 더 좋은데 갑자기 방에서 좀비가 돼서 확 튀어나오면 난 어쩌라구? 못 당하지. 못 당해.
것두 그렇고 나도 모르게 좀비가 돼서 잠들어 있는 널 덮칠 수도 있는 거고. 아 생각해보니까 그게 더 문제네. 그렇게 되면 니가 방에서 못 나오게 되잖아. 젠장.”
건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는 좀비가 되진 않을 거예요.”
강탄이는 의외로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기라도 한 듯이. 그리곤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버렸다.
건수는 그런 강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거뒀다.
김혁이 뒤따라가 벽을 통과해 방으로 들어가보니 방으로 들어선 강탄이는 문을 닫고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손잡이의 잠금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곧 구석에 놓인 이불을 펼쳐 반으로 접은 다음 그 사이로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얼굴의 건수와 강탄이의 눈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강탄이는 반쯤 눕혔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 놔, 야, 강탄이. 너 진짜 말 안 들을래? 문 왜 안 잠궜어?”
“...?”
건수가 방안을 휘 둘러보곤 말했다.
“거기 남는 이불 좀 던져. 가만히 있으니까 춥다. 연기 보고 몰려올까봐 난로도 못 피우겠고.”
강탄이가 벌떡 일어나 남은 이불을 들어 건네주었다. 이불을 받으며 건수가 미소를 머금은 채 강탄이에게 말했다.
“음 서로 좀비가 안 된 걸 확인하는 암호 같은 거라도 만들까?”
“아 형. 좀비는 말도 못하잖아요.”
“그래도 말이지. 그런 게 있으면 좀 안심이 되지 않겠어? 건수, 탄이 뭐 그런 거라도.”
그렇게 말해놓고는 자기도 멋쩍었는지 건수는 크게 웃었다. 그리곤 문을 닫고는 문 밖에서 말했다.
“잠궜어? 다시 확인한다?”
“잠궈요. 잠궈.”
강탄이가 잠금 버튼을 눌렀다. 건수는 다시 한번 문을 힘주어 열어보곤 열리지 않자 안심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강탄이는 누워서도 잠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잠에 빠져들었다.
김혁이 밖으로 나가보니 건수는 난로 앞 의자에 이불을 들쓰고 앉아 꼼짝도 않았다.
뚫린 작은 창으로 들어온 빛의 밝기로 보아 해가 지려면 아직 몇 시간 더 남아 있었다.
김혁은 빨리 저녁이 오기를 바랐다. 이토록 길고 긴 낮은 처음이었다. 열 여덟살 때 막 저승사자로 돌아다닌던 중 바다가 있는 도시에 갔을 때나 기억을 잃었을 때를 제외하곤 하루 온종일을 이렇게 허비한 적이 없었던 거다.
지금은 그때들하고도 분명히 달랐다. 그때는 자발적으로 즐기며 깊은 산 너럭바위와 처음 본 바다를 보느라 지루할 틈도 없었고, 기억을 잃었을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조차 모른 채 옛날 영화나 보고 있어도 시간이 잘 갔지만 지금은 시시각각으로 좀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더 마음이 급한데 그만큼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듯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심각한 일이 점점 커져가는 것만 보고 있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주어진 모든 밤들에 좀더 영리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아울러 하게 됐다.
김혁은 집을 벗어나 공중에 떠서 숲 전체를 이리저리 살피며 날았다.
오두막 주변엔 좀비도 마스크맨들도 없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아까 강탄이 일행이 지나쳤던 좀비 하나가 여전히 우왕좌왕하며 숲속을 배회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거의 이동은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마스크맨들이 저 좀비라도 좀 없애주길 바랐지만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김혁은 숲을 거슬러 가며 산등성이를 넘고 건물 쪽으로 날아갔다.
마스크맨들은 산등성이를 넘을 생각은 없는지 둘씩 짝지어 건물 주변 숲 언저리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거의 엉뚱한 데서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도망자들과 좀비 추격꾼들이 산산이 흩어져 있어서였다.
좀비에게 뜯어 먹혀 훼손이 심한 마스크맨의 사체는 그대로 숲에 널브러져 있었다.
김혁은 산짐승들이 저 시체를 건드린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잠시 생각해봤다. 죽었으니까 괜찮은 걸까? 바이러스가 숙주와 함께 죽는다고 했지만 확실한 건지 혹 잠시라도 살아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살아 있을 수 있는건지 정확히 알아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건 아마 유지성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이젠 정말 걷잡을 수 없게 돼버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좀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늘어나는 것만이라도 막을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짱돌로부터 시작된 좀비가 하루만에 어떻게 불어나는지를 직접 목격하고 나니 더욱더 그랬다.
아지트 건물과 거의 가까워졌는데 아래쪽에 좀비 하나가 느릿느릿 다가가는 게 보였다. 검은고치가 됐던 조직원들 중 한명이었다. 좀비는 마치 자기 집을 찾아가듯 정확히 아지트 건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뛰고 있진 않았지만 느리지도 않은 속도였다.
김혁은 아래쪽으로 몸을 낮춰 내려갔다. 아직 검은 연기를 뿜고 있는 건물은 고요했지만 주변엔 몇몇 마스크맨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다시 한번 곳곳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좀비가 다가오는 건 꿈에도 모르는 듯했다. 일을 마무리하려고 좀 서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차 한 대를 꽉 채워 떠나는 무리도 보였다.
김혁은 마스크맨들의 우두머리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별 말 없이 그저 서 있었다. 이미 지시가 끝난 상황인지 분주한 마스크맨들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들이 떠나려는 건지 산 너머로 이동하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떠나는 차를 따라가봐야 하나? 김혁은 높이 떠서 차가 가는 길을 눈으로 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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