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좀비와 마스크맨1
김혁은 허공에 높이 뜬 채 한참동안 길을 따라 달려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차는 건수가 우려한 그 길 쪽, 그러니까 오두막이 있는 쪽으로 가는 산을 도는 길로 접어드는 게 아니라 반대편 도심지 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용무로 잠시 떠나거나 그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김혁은 거기까지 확인하곤 다시 아지트로 날아갔다. 남아 있는 마스크맨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여기저기 뒤적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혹시 숨어 있을 조직원을 찾는 건가 싶었지만 그들이 헤집어대는 위치는 절대 사람이 숨을만한 곳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뭔가 다른 걸 찾고 있는 듯 보였다. 좀 더 작은 것.
건물 뒤편에도 두 명이 각각 양 끝에서 한결 깊고 축축한 그늘 속에 잠긴 잡동사니들 사이를 각목으로 헤집어 가며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산 너머에는 해가 비쳐드는 것과 달리 이쪽은 여전히 구름에 가려져 있었고 건물 앞보다는 건물 뒤가 아무래도 더 어두웠다. 게다가 빗물에 젖어 있어 미끄럽기도 하고 발목을 붙드는 잡다한 것들이 꽤 많아서 그들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숲 쪽에 더 가까운 마스크맨 뒤로 좀비가 다가들고 있었다. 좀비는 검게 썩은 이파리를 온 몸에 잔뜩 묻히고 검붉은 얼굴에 침을 흘리며 새로 발견한 먹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다가들고 있다.
마스크맨은 신경을 온통 바닥 쪽에만 두고 있었고 잡동사니가 내는 소리와 혼잣말을 하느라 그런 건지 뒤쪽에서 다가드는 좀비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아 그놈의 열쇠는 대체 어디에 빠뜨린 거야? 이런 쓰레기더미에서 뭘 찾으라는 건지, 어떻게 스페어 키도 하나 없이, 참내.”
그는 계속 혼자 궁시렁대다가 반짝이는 금속을 발견하고 끄집어냈다. 버려진지 얼마 안 된 빈 깡통이었다.
“아이 씨, 맨 쓰레기뿐이구만.”
그가 깡통을 버리고 몸을 일으켰을 때 뒤에서 좀비가 달겨들었다. 우어어어. 이상한 소리를 듣고 마스크맨이 뒤돌아 봤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좀비가 총을 든 팔을 잡아채고 곧바로 물어버렸다.
“으아악. 아악. 뭐...아윽!”
무방비 상태로 공격당한 마스크맨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팔이 단단히 물려 있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총을 쏴봤지만 총알은 좀비의 발도 맞추지 못하고 바닥 어딘가에 그저 내리 꽂혔을 뿐이었다. 총을 바꿔 잡을 새도 없이 거칠게 물어뜯기는 팔에서 힘이 빠지자 총은 바닥의 잡동사니들 틈으로 떨어져버렸다.
마스크맨은 팔을 물린 채 오도가도 못하고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살려줘. 야, 여기 나 좀 살려줘.”
멀리서 잡동사니를 뒤적거리던 마스크맨은 총소리에 이미 그 상황을 발견하고 달려오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너무 멀었다.
좀비에게 잡힌 마스크맨은 좀비의 악문 입에서 제 팔을 빼낼 수 없어 쉽사리 빠져나가질 못한 채 소리만 질러댔다. 마스크 때문에 목소리가 뭉개지는 걸 알고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다시 소리쳤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아아악.”
도와주러 달려오는 마스크맨이 서두르고는 있었지만 바닥에 쌓인 잡동사니들 때문에 그리 빨리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좀비와 동료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몇 번이나 총을 겨누었다가도 곧 포기하고 말았다.
좀비는 그 와중에도 마스크맨의 팔을 계속 물어뜯었다. 벌건 살과 힘줄이 뜯겨나가고 좀비의 얼굴에 피가 튀어 범벅이 되거나 말거나 그의 벌건 입은 다시 또 살점을 향해 다가들었다.
좀비가 물었다 입을 뗀 자리에 흰 뼈가 드러났다. 그래도 좀비는 멈추지 않았다. 핏물과 섞인 침이 진득하게 떨어져 내렸다. 마스크맨의 팔을 놓지 않고 살이 많이 붙은 다른 곳을 또 물어뜯었다.
“아윽! 아아.”
마스크맨은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쳤다. 주먹으로 때려도 보고 있는 힘껏 벗어나려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좀비는 바윗덩어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팔의 살점을 뜯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었다.
마스크맨은 공포와 고통으로 발버둥치다가 발아래 잡동사니들에 발이 끼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반동에 몸은 딸려갔지만 좀비는 같이 넘어가지 않았다. 힘줄이 끊어져 덜렁거리기 직전이었던 마스크맨의 팔이 뜯어졌을 뿐.
좀비에게는 좀 전까지 마스크맨의 것이었던 팔만 들려 있었다. 좀비는 그저 가만히 서서 획득한 팔의 나머지 살점을 열심히 뜯고 서 있었다.
넘어진 마스크맨에겐 도망칠 수 있는 기회였음에도 그는 잡동사니들에 낀 채 혼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팔이 뜯긴 것에 대한 충격이 큰 듯 했다. 그에게선 인간에게서 날 수 있는 최대치의 진한 공포의 냄새가 뜯긴 팔에서 쏟아지는 피 만큼이나 맹렬하게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 달려오고 있던 마스크맨이 이제 동료에게서 떨어진 좀비에게 총을 쏘았다.
좀비는 몸에 총알을 맞으면서도 허연 뼈가 드러난 팔을 계속 뜯고 있다가 총알이 계속 날아들자 자신의 식사를 누가 방해햐냐는 듯 얼굴을 돌려 그쪽을 쏘아봤다. 피로 물든 얼굴에 핏빛 붉은 눈이 달려오는 마스크맨을 무섭게 노려봤다.
“크아아아악”
그 얼굴만으로도 공포에 질리기 충분했다. 달려오는 마스크맨에게서도 공포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져 나왔다. 총은 쏘아댔지만 공포 때문인지 원래 사격 실력이 별로 좋지 않아선지 그는 좀비 머리를 쉽사리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좀비는 이제 허연 뼈가 확연히 드러난 팔을 버리고 쓰러져 있는 마스크맨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어어어!!! 우어어!!”
좀비가 달려들었다. 잡동사니들 틈에서 미처 몸을 못 빼내고 허우적대던 마스크맨은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아, 으악. 저리 가. 헉, 저리 가...란 말이야. 으억.”
“우어어어엌.”
좀비는 멈추지 않았다.
“제발, 제발 머리를 쏴. 머리를. 어흑!”
좀비가 마스크맨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직전에서야 그들 가까이 도착한 마스크맨이 좀비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좀비의 뇌수와 뒤섞인 핏덩이가 쓰러진 마스크맨의 얼굴에 잔뜩 튀었다.
“아, 푸, 으아, 아악, 이거 치워. 치우란 말이얏!”
피칠갑을 한 채 발광하는 마스크맨 위로 쓰러진 좀비를 간신히 밀어냈을 때, 총소리를 듣고 건물 앞쪽에서 달려온 다른 마스크맨이 도착했다.
그는 팔이 뜯긴 마스크맨을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지만 팔이 뜯긴 마스크맨은 엄청난 공포에 질려 몸을 일으킬 생각도 않고 저리 치우란 말만 계속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리 치워. 저리 치우라고.”
“정신 차려 이 새꺄.”
마스크맨이 그의 뺨을 철썩 때렸다. 그 사이 건물 앞쪽을 살피던 마스크맨 하나가 또 왔다. 사태를 파악하고는 모두 도와 팔이 뜯긴 마스크맨을 일으켰다. 한 사람이 부축해 자리를 옮기고 나자 두 사람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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