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좀비와 마스크맨2
새로 온 마스크맨이 바닥에 쓰러진 좀비를 보며 물었다.
“이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몰라. 갑자기 총소리가 나길래 돌아보니까 벌써 팔을 물어뜯고 있더라고.”
총을 쏘아대던 마스크맨이 말을 마치고 좀비의 다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들은 좀비의 참혹한 공격을 처음 목격했기 때문에 다소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들에게서는 옅은 공포의 냄새가 끊이질 않았다.
“숲에서 돌아온 건가? 아까 샅샅이 다 뒤졌는데 없었잖아.”
그 말을 하며 마스크맨은 불안한 눈길로 숲 쪽을 두리번거렸다.
“저 정도 거리면 눈에 띄었을 텐데...”
이때 그들 뒤로 다가든 좀비가 또 하나 있었다. 그 좀비는 검은 고치들을 지키던 진배였다. 강탄이를 쫓다가 어느 결에 아지트로 돌아와 있었는지 건물 뒤쪽 잡동사니 더미 뒤에서 슬며시 나타났다.
그들은 동료들이 다시 돌아온 줄 알고 돌아보다가 좀비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그 중 좀비 쪽에 더 가까이 있던 새로 온 마스크맨이 좀비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달아날 틈도 없이 좀비에게 얼굴을 우악스럽게 물어 뜯기고 말았다.
“아, 으악.”
좀비의 억센 잇사이로 그의 마스크와 얼굴 살점이 같이 떨어져나갔다. 뺨을 움켜쥔 채 마스크맨이 한 발짝 물러났다. 그는 이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데다 통증과 함께 후두둑 떨어지는 핏방울로 거의 패닉 상태라 손에 든 총도 쓸 생각을 못했다.
미리 몸을 피한 옆에 있던 마스크맨이 총을 쏘았지만 그 총은 이미 그 전의 좀비에게 총알을 다 발사한 상태였는지 철커덕거리는 소리만 났다. 그는 그곳에서 멀찌기 물러나며 소리쳤다.
“야, 총을 쏴. 총!”
약간의 살점을 씹지도 않고 삼킨 좀비는 다시 마스크맨에게 달려들었다.
“우어어어어!!!”
“아, 으아...”
뺨을 물어뜯긴 마스크맨은 그제서야 자신이 든 총을 들어 좀비의 머리를 조준하고 쐈지만 첫발은 빗나갔다. 좀비가 조금 더 빨랐기 때문이다. 좀비가 이번엔 마스크맨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으, 으아악!!”
목을 물어뜯긴 마스크맨은 좀비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비틀거리다 잡동사니들 틈으로 넘어졌다. 총을 놓치고 잡을 새도 없이 좀비가 곧바로 또 달겨들었다.
마스크맨은 계속 소리를 질러댔지만 바로 달려와 줄 누군가가 가까이에 없었다. 총알이 떨어져버린 다른 마스크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배고픈 좀비는 다른 사람들이 달려오기 전에 그 마스크맨을 맘껏 뜯어먹을 수 있었다.
김혁은 그런 참혹한 장면을 그저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지금 좀비에게 물어뜯기고 있는 마스크맨은 건물이 불 탈 때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조직원들을 쏘려고 대기하고 있던 자 중에 하나였다.
비 내리는 건물 밖에 서서 검은 고치들이 불길을 피해 창문으로 뛰어내릴 때만 기다리던 자. 아무도 뛰어내리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 했었던가?
김혁은 어쩔 수 없이 그때의 마스크맨처럼 한 발짝 떨어져 구경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이 상황이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지옥 속에서도 가장 아래 지옥에 처박힐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좀비에게 뜯어 먹히는 걸 맘편히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 이런 상황을 목격해야만 하는 게 마치 자신에게 내려진 벌처럼 느껴졌다. 저절로 좀비의 확산을 막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게 됐다. 가슴속에서는 무엇에겐지 모를 분노도 샘솟았다.
죽음조차 재미로 삼을 수 있고 좀비조차 별것 아니라 여겼던 남자가 결국 좀비에게 먹히는 최후일 뿐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그랬다.
폐타이어를 옮기며 배고프다던 남자, 엄마의 부침개가 먹고 싶다던 그 남자, 진배는 지금 다른 것을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그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게 괴롭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앞으로의 좀비와의 전쟁을 위해선 모든 걸 알아놔야 했다.
그들은 그렇게 한동안 한 덩어리로 얽혀 있었다. 마스크맨은 이제 눈만 뜨고 있을 뿐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고 좀비의 거친 숨소리와 살점을 뜯어내고 씹어대는 소리만 계속 났다. 마스크맨의 검은 오라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반면에 좀비의 검은 오라는 바람을 만난 깃발처럼 세차게 펄럭여댔다. 그럴수록 주변엔 시뻘건 핏물이 흩뿌려졌고 살점이 떨어져 뒹굴었다. 좀비는 허기진 야수처럼 계속 검붉은 침을 흘려대며 마스크맨을 뜯어발겼다.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고치들이 좀비가 되기 전부터 굶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좀비가 되면 저런 식욕이 기본적인 건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연구소에서 본 좀비들과는 뭔가 좀 다른 듯 보였다.
황급히 달려온 마스크맨들이 일제히 좀비에게 총을 쏘아댔다. 좀비는 결국 잡동사니들 틈에 터진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그러나 마스크맨을 구하기엔 늦었다. 마스크맨은 이미 얼굴과 목덜미가 너무 많이 뜯겨나가 숨이 끊어진 다음이었다.
마스크맨들은 조용히 육체가 찢긴 동료와 좀비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소란스런 상황을 살피러 우두머리가 다가왔다. 우두머리도 좀비와 마스크맨의 사체를 보았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힐난했다.
“대체 뭐를 하다가 이 지경까지 된 거야?”
“형님, 여기 일은 아무래도 우리가 처리하기엔 너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일단 철수하시죠.”
나중에 달려온 사람 중 하나가 말했다.
“이렇게 될 동안 뭘 한 거냐고.”
우두머리는 여전히 화가 난 채 씩씩거리며 여럿을 둘러봤다.
“총알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좀비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습니다.”
동료를 구하지 못한 마스크맨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떨궜다.
“여기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요. 숲이 저렇게 떨어져 있는데, 그것도 두 놈씩이나. 어휴.”
팔이 뜯긴 마스크맨을 부축해 옮겼던 마스크맨이 말하자 우두머리도 숲을 한번 곁눈질하곤 다시 마스크맨들에게 시선을 줬다.
“이 녀석은 어떻게 하죠?”
마스크맨의 사체를 가리키며 한 명이 묻자 우두머리가 대답했다.
“일단 건물로 옮겨.”
모여 있던 마스크맨들이 동료의 시신을 나누어 잡고 건물 안으로 옮겼다. 그들은 예방백신을 너무 맹신하고 있는지 자신들의 손이며 옷에 피가 묻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김혁은 건물 외부 여기저기를 샅샅이 훑으며 돌아다녔다. 혹시 또 좀비로 변한 조직원이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확인했지만 다행히 돌아온 좀비는 없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도 여기저기 훑어보았다. 역시 깨끗했다. 불은 추가로 붙지 않고 그대로 꺼졌는지 2층 침실도 매케한 연기만 어느 정도 차 있을 뿐이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