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인과응보
김혁은 숲속 조만호 일당의 차에 도착한 다음 그대로 날아 병원으로 가려고 했지만 발목을 붙드는 게 있었다. 얼핏 차 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응? 무슨 소리지?
돌아봐도 모든 게 그대로이고 주변은 고요했다. 트렁크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소리가 맞았다. 말소리는 없고 철벅철벅 물을 쳐대는 소리와 함께 듣고 싶지 않은 짐승소리들이 섞여 있다.
“우어어어!!”
“크아아앜앜!!”
서로 다른 좀비의 괴성.
김혁은 서둘러 트렁크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씨, 뭐야 이거! 김혁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트렁크에서 머리를 훅 뺐다. 솔직히 이것까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좁은 트렁크 속 반쯤 차오른 물은 이미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고 이한태와 조만호의 중간에 끼어 있던 운전석 남자는 거의 형체도 못 알아보게 반쯤 뜯어 먹힌 채로 뼈가 드러나 있었다.
좀비로 변한 이한태와 조만호는 비좁은 트렁크에서 운전석 남자를 뜯어먹을 대로 뜯어먹고 공간이 조금 여유로워지자 자유로운 팔을 허적대며 몸을 일으켜보려 발버둥치고 있는 중이었다. 새빨간 핏물 속에서 시뻘건 좀비들이 허브적대는 모습은 그것 자체로 끔찍하기만 했다.
김혁은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컴컴한 동굴 속 같은 비좁은 공간에서 좀비를 피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을 운전석 남자의 공포가 짐작되니 진저리가 쳐졌다. 가엾은 사람. 이 또한 자신의 책임인 것만 같아 또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정말 그때는 눈꼽만치도 이렇게 될 거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만호가 먼저였을까 이한태가 먼저였을까, 아니 이들은 왜 어디서 좀비 바이러스와 접촉했단 말인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고 좀비 바이러스가 어디선가 또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왔다.
왜냐하면 이들은 연구소를 간 적도 없었고 조직원들과 내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나는 건 짱돌뿐이었다. 짱돌이 이들과 먼저 접촉했다면 모든 상황이 아귀가 맞는 것 같았다.
대체 지난 저녁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짱돌이 연구소에서 돌아오던 차에서 내려 애인을 만나는 것 말고 이들을 만날 시간이 충분했는지를 계산해봤다. 아지트로 돌아올 때까지 넉넉잡아 서너 시간 정도라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담 왜가 남는다. 짱돌이 이들을 왜 만났는지는 짐작할만한 게 없었다. 아니면 짱돌이 그 시간동안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김혁은 이미 벌어진 일에 더 이상 추측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는 뭔가를 예상하고 짐작하는 것조차 겁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예상대로 되는 게 없었다.
김혁은 우울한 마음으로 숲을 다시 한번 휘 둘러보았다. 지금까지처럼 이 좀비들을 건드릴 사람은 따로 없을 거였다. 저 통나무를 차에서 내리는 건 힘센 장정 몇 사람이 달겨들어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혹시나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좀비들을 처리하고 가야 하나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그건 보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리스트의 인물들이라 빠르게 이동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다. 아무리 좀비가 됐다 해도 살아 있는 동안은 리스트로 이동이 가능한데 이들마저 없다면 이동에 시간이 더 걸릴 게 분명했다. 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김혁은 우울한 마음을 안고 병원으로 날아갔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유지성의 병실엔 예전에 기억을 잃었을 때 김혁에게 삼촌 서진수를 만나게 해줬던 그 여동생이 함께 있었다.
유지성은 쾌활하게 동생과 대화하며 웃고 있다. 그녀는 아직 연구소의 비극을 모른다. 그런 일들을 알게 된다면 저런 환한 웃음을 다시 웃게 될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었다.
김혁은 민하진과 주은정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했다.
“선배님. 선배님?”
생각들 속으로 스며드는 민하진의 목소리.
김혁이 돌아보니 민하진과 주은정이 나란히 서서 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네요?”
주은정이 표정을 살피며 대꾸하고 김혁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른 질문을 했다.
“짱돌 애인은 잘 정리하고 온 거지?”
“네. 그럼요.”
“지금 유지성한테 말해야 해. 누가 가서 저 동생 좀 데리고 나와. 저 앤 내가 저승사자인 걸 알아.”
“정말요? 어떻게요?”
하진이 동그란 눈을 하고 물었다.
“기억을 잃었을 때 만난 적이 있어.”
이제 하진의 눈이 살짝 흘긴 눈이 됐다. 김혁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별 말은 안 했지만 또 한마디 하고 싶을 거였다. 여자란 여자는 다 그냥...
“민하진 니가 가.”
은정이 하진을 떠밀었다.
“왜 나야?”
“난 원래 대화 같은 건 잘 못하잖아.”
“치.”
하진은 싫은 티를 내면서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대화를 나누더니 그 동생을 데리고 나와 다른 곳으로 갔다.
김혁과 주은정은 병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유지성이 주은정을 알아보고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희 다른 요원도 함께 왔어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 네.”
유지성이 김혁에게 고개로 인사를 하며 슬몃 훑어봤다.
“안녕하십니까?”
김혁은 인사를 건네 놓고 일단 숨을 골랐다. 저 얼굴에서 미소를 빼앗는 역할은 정말 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으로선 말을 전달해서 시키고 하는 과정 자체도 불필요하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에 직접 하는 수밖에 없었다.
“몸도 불편하신데 이런 말씀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상황이 너무 급하다보니 이해해주십시오. 사실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저희는 미래연구소에서 연구하던 좀비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걸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네? 오박사님을 찾는 게 아니고요?”
유지성이 놀란 눈으로 주은정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 이제 더 이상 웃음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오박사님도 찾아야 합니다. 하루 빨리. 유지성씨가 오박사님을 찾아가다가 사고가 난 거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저희에게도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아시는 모든 걸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건, 그건... 기밀 사항인데 어떻게...”
“좀비 바이러스가 이미 연구소 밖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제 걷잡기 힘든 지경인데 저들은 여전히 비밀에 부치고 있죠.”
유지성도 놀란 얼굴이었지만 주은정도 더 깜짝 놀란 얼굴로 김혁을 바라봤다.
“네? 그럴 수가, 왜요? 어떻게요? 그건 아직 지하에서만 연구가... 무슨 일이죠?”
“지하동 연구원들은 지금 아무도 살아 있지 않습니다.”
가급적 담백하게 모든 진실을 전달하리라 마음먹은 김혁이지만 차마 무참하게 모두가 몰살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유지성은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김혁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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