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진실과 마주할 시간2
그 전화는 오수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유지성은 간단한 설명 후에 김혁에게 전화기를 넘겼다.
“저 5층입니다.”
“김혁씨?”
“네. 좀 만나뵙고 싶은데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 아주 급한 일입니다.”
“... 지금은 ... 안돼요. 다음에...”
오수연의 목소리는 아주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말을 길게 하면 할수록 고통이 덕지덕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제가 찾아뵙죠. 어디신지 알려주시면.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꼭 만나주셔야 합니다.”
“...”
오수연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 속에 무엇이 스며들었는지 모르지만 결국 오수연은 주소와 찾아오기 수월한 지형지물을 빠르게 말했다.
김혁은 통화를 마치고 유지성에게 전화기를 넘겨줬다. 오수연과 통화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김혁은 이미 유지성에게 믿을만한 존재로 인정받았다. 그 눈빛에 신뢰가 깃든 걸 알 수 있었다.
“만나주시겠다든가요?”
“네.”
김혁은 이제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가 놓친 부분이 생각나 질문했다.
“아, 혹시 변이가 빠르다고 하셨는데 연구하시려면 변이된 좀비 바이러스가 필요합니까? 발견한 좀비가 몇 있는데 아직 처치하진 않았습니다.”
“연구를 한다고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유지성은 김혁을 바라봤다. 오수연과의 통화가 목적이 아니었나 묻고 있는 눈빛이었다.
“치료법을 개발해야죠. 명소장 말고 다른 팀을 꾸려서라도.”
“치료법 개발은 사실 지금으로선 별로 희망적이진 않아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아니 전 힘들다고 생각해요. 너무 위험한 거기도 하고. 지금까진 없던 새로운 거예요. 그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해내야 합니다. 그건 인류의 운명이 걸린 일이에요. 저는 지난 하루 동안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걸 똑똑히 봤습니다. 너무 끔찍했어요. 감당하기 벅찰 만큼 사나운데다 사람의 살을 죽을 때까지 뜯어먹었죠. 막지 못하면 인류는 곧 멸망할 겁니다.”
“네? 그렇게까지는 사납지 않을 텐데...?”
“연구소에서 연구하던 그 느린 남자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 좀비가 된 연구원들은 ...”
김혁은 말을 잠시 멈추고 유지성을 살폈다. 이 말까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좀비가 됐다고요? 우리 연구원들이요? 그럼 그래서 전부...?”
유지성은 정말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녀는 지하동 사람들이 아무도 살아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어떤 사고로 상상했을까? 타임머신이라도 폭발했다고 생각한 걸까?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오해한 채 두고 싶지 않았다. 그건 명백히 지하동의 실수 때문이니까.
연구소 앞 광장에 꽃이 지듯 소멸하던 천연색 오라들이 눈앞에 다시 어른거리는 듯 했다.
“어차피 아셔야 하니까 말씀드리죠. 지하동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좀비가 된 연구원들이 1층으로 나왔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될 때까지 몰랐죠?”
“그것까진 저희도 모릅니다. 워낙 잠복기 동안은 멀쩡하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혁은 그 말을 하면서 검은 고치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계속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근데 이상한 건 연구소에서 본 좀비들은 행동이 그다지 과격하거나 하지 않았어요. 침도 많이 안 흘리고 그저 사람한테 다가가서 물어뜯고 가는 게 전부였는데 하루쯤 지나서 생긴 좀비들은 사람을 마구 물어뜯는 게 아주 난폭하고 많이 달라서요. 그게 연구원들과 킬러들의 차이일까요? 그 본성 때문에? 아니면 체력 차이? 뭐 그런 게 아니면 변이가 빨라서라든가...”
“킬러... 라고요?”
유지성의 눈이 더욱 커다래졌다. 강력한 공포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차라리 모든 걸 밝히는 게 나을 듯싶다. 대화 할 때마다 계속 놀라서 되묻는 일이 없도록.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연구소에 좀비사태가 발생하자 그걸 안 명석원 박사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근데 달려온 사람들이 미스터리한 조직의 킬러 같은 자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날 연구소에 있던 연구원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던 겁니다. 그 자들 중 한명이 좀비한테 물려서 밖으로 나갔고 결국 이렇게까지 된 거죠.”
“...!”
유지성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제가 지금까지 본 좀비들은 연구원 좀비들과 킬러 좀비들뿐이라, 근데 그들의 행동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혹시 뭔가 다르게 변화시키는 특성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유지성은 눈에 가득 찬 눈물을 떨어뜨리고 대답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죠?”
충격이 너무 큰 모양이었다. 그러나 말이 나온 김에 물어봐야 했다.
“혹시 지하동에 사멸시스템이 있다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사멸시스템이라뇨?”
유지성은 정말 금시초문이란 얼굴이다.
“좀비 사태가 발생하면 그걸 가동시킬 생각이었답니다. 지하동은 페쇄되고 좀비 바이러스가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못 나오도록. 그게 실패해서 킬러들을 불러들인 거죠.”
유지성에게선 더욱 강력한 공포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곳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이라 그 상황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이게 다 무슨 말이죠? 그런 비인도적인 결정을 누가 했다는 건데요? 연구소에 정말 그런 게 있었다고요?”
“제가 명석원 박사에게 들은 바로는 지하동을 개조할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선임 연구원에게 그 시스템을 작동시킬 열쇠가 하나 더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다른 분이셨군요. 전 박사님인가 했습니다.”
유지성은 충격으로 얼이 빠진 얼굴을 하고 있다가 다시 소리쳤다.
“어떻게 거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에게 아무 말도 안 할 수가 있어요. 그렇게 위험한 일을. 어떻게!”
유지성의 눈에서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티슈를 몇 장 뽑아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김혁은 잠깐이나마 그녀의 울음을 방해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몇 십 초가 지난 후에 유지성이 눈물을 닦고 붉어진 눈으로 김혁을 바라봤다.
“그럼 결국 세상이 좀비 천지가 된다는 말인 거죠?”
“네.”
“그래서 절 찾아오신 거구요? 실험 중단이 아니라 치료제를 개발해야 해서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박사님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정말 막막하네요. 그건 연구된 게 별로 없는데...”
“박사님이 못하신다면 그 누구도 못하겠죠. 명도원 측이 연구를 강행하려는 건 분명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아직 확실친 않지만 그것만은 막을 겁니다.”
“그들의 목적이야 뻔하죠. 돈이죠. 설혹 치료제를 개발한대도 그들은 쉽게 풀지 않을 거예요.”
유지성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뭔가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좀비들 행동이 왜 다른진 아직 실험이 진행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원래 저희가 연구하던 바이러스는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전염성은 있었지만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죠. 지난 5년간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봐도 그렇잖아요. 근데 최근에 들어온 남자의 몸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발견됐어요. 우린 그를 치료하려던 거였어요. 그 2개의 바이러스가 결합하면서 변종이 탄생한 거예요. 그건 얼마 전 일이라 정말 연구랄 것도 없어요. 자료도 거의 없고요. 세포를 죽이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변이도 너무 빠르다는 것 밖에는 알아낸 게 없으니까요.”
연구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책임을 덜고 싶은 건지 유지성의 말이 길었다.
“대체 그 느린 남자는 어디서 온 겁니까?”
“저도 정확한 건 몰라요. 해외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졌다고 하든데 어느 날 그렇게 됐다고 들었거든요. 감염원 경로 추적에는 실패했어요. 그 사람이 거의 뇌기능이 저하된 상태여서요. 확보한 건 여권 기록뿐이었죠. 하여간 처음 보는 바이러스였는데 그의 가족들이 임상실험에 동의했고요. 그 남자는 거의 중증 치매 상태나 다름없었거든요.”
유지성의 슬픔과 더해진 자책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박사님이 자책하실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의도치 않아도 나쁜 일이 일어날 순 있는 거니까요. 오박사님을 만나보고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밤은 저희 요원들이 지키지 못하니 가족들이라도 꼭 옆에 있도록 하십시오. 그럼.”
김혁이 병실을 나가려고 하자 유지성이 불러세웠다.
“잠시만요. 오박사님과 함께라면 제가 하겠어요. 그분을 꼭 설득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몸도 낫지 않은 환자에게 본의 아니게 고통과 겁을 주고 말았다고 생각하며 김혁은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곳으로 가서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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