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좀비는 저승으로
복도에서 잠시 기다리자 곧 유지성의 동생과 하진이 돌아왔고 또 조금 지나 서정과 주은정이 돌아왔다. 그 가족들이 병실에 들어간 이후 민하진과 주은정은 김혁을 따라 건물 밖으로 나갔다.
둘에게도 이제까지의 상황을 말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자신의 실패와 실수를 고백하는 느낌이라 탐탁치는 않았다. 주은정과 민하진은 김혁이 입을 열 때까지 채근하지 않았다. 김혁은 둘에게 조용한 눈길을 주곤 말했다.
“얘들아,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됐어. 좀비들이 계속 불어나. 연구소에 침입했던 놈들이 계속 좀비로 변하고 있는데다 그 녀석들을 죽이러 온 놈들까지도 피를 흠뻑 쓰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이젠 정말 하나하나 추적하긴 힘들게 돼버렸어.”
“네? 한명이 물렸는데 왜요?”
민하진은 질문하고 주은정은 말없이 바라만 본다.
“나도 모르겠어. 시간차를 두고 계속 변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겠더라고. 물리는 것 말고도 감염이 잘 된다는 얘기지. 유박사 말로는 침이나 체액이 점막이나 상처에 닿아도 감염이 된다니까 아마 그런 경우겠지. 좀비와는 아예 접촉을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데? 후, 인간들이 그게 가능하겠냐고. 암튼 우린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해. 날 따라와.”
김혁은 리스트를 꺼내 조만호의 이름을 가리켰다. 셋은 함께 조만호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저승사자들은 곧 숲속의 차 앞에 도착했다. 숲은 어느새 어둑해져서 거의 사물 분간이 어려웠다.
“어디 갔죠?”
주은정이 텅 빈 차 안을 살피곤 물었다. 김혁이 뒷 트렁크를 가리켰다.
“우와, 이런 데다 가둬놨어요? 엄청 무섭겠는데?”
하진이 트렁크 뚜껑을 통통 쳐댔다. 안에서 찰박찰박 물을 치는 소리가 났다.
“응?”
무서운 건 너희가 보게 될 걸.
김혁은 통나무를 치운 다음 트렁크 뚜껑을 열어 물좀비가 확 튀어나오게 해서 애들을 놀래켜줄까 하다가 곧 단념했다. 그러면 여자애들이 너무나 깜짝 놀란 나머지 곧바로 좀비들을 저승으로 보내버릴 위험이 있었다.
“그냥 저 트렁크에 얼굴을 디밀고 보기만 해.”
민하진과 주은정은 아무것도 모른 채 트렁크 속으로 상체를 구부렸다가 김혁이 그랬듯이 깜짝 놀라 튕겨져 나왔다.
“아우, 이게 이게...”
“이게 뭐에요? 좀비들끼리도 뜯어먹어요?”
민하진은 말도 못 끝마치고 주은정은 그 와중에도 이미 상황 분석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둘 다 끔찍한 장면에 기겁한 표정은 같았다.
“아니야. 트렁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셋 다 멀쩡했어. 셋 중에 한 사람이 좀비바이러스를 갖고 있다가 좀비로 변한 것 같아. 아니면 둘이 변했거나. 근데 어디서 좀비 바이러스랑 접촉했는지 모르겠단 말야. 암튼 그 중간 녀석만 불쌍하게 됐지. 운전만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던데.”
“아유, 끔찍해라.”
“왜 바로 처치하지 않았어요?”
김혁은 리스트를 흔들었다.
“리스트에 오른 두 사람이야. 빨리 이동하려면 그들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하.”
하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일단 여긴 그렇고 다른 데 먼저 가자.”
“또 어디를요?”
김혁이 먼저 하늘로 날아오르자 둘도 따라왔다. 아지트로 길을 잡았다. 얼마간 날아가자 멀리 어둠속에 잠긴 덩치 큰 건물이 보였다. 민하진이 물었다.
“여긴 또 어디래요?”
“킬러들의 아지트.”
“아지트? 근데 불이라도 났어요? 탄내가 진동하네.”
“오늘 낮에 다른 놈들이 와서 불을 질렀어. 한쪽에선 총 쏘고 불 지르고 죽이겠다 난리고 한쪽에선 탈출하는데 좀비로 막 변하고 아주 엄청났지. 그 얘긴 나중에 한가해지면 얘기해줄게. 일단 좀비들부터 처치하고. 이 건물 안팎에서 눈에 띄는 자들은 다 좀비라고 생각하면 돼. 일단 마스크 쓰고 총 든 놈들부터 먼저 처치하자고.”
“여기 전부요?”
“응. 놈들은 예방백신이 있다는 말에 속아서 좀비한테 물어뜯긴 동료를 마구 만져대는 바람에 다들 피를 묻혔어. 전혀 조심성이 없었지. 그게 아니라도 좀비보다 못한 놈들이니 지옥 가도 할 말 없고. 연구소에 온 놈들보다 더한 놈들이거든.”
“아니 그런 걸 누가 속여요?”
민하진이 말하자 주은정이 대꾸했다.
“이런 데서 진실을 기대하는 게 바보지.”
셋은 곧바로 건물 내부로 통과해 들어가 재빨리 흩어져 각자 건물 내부를 샅샅이 뒤졌다. 건물엔 아무도 없었다. 1층에는 입구 가까이 숲에 널브러져 있었던 마스크맨의 사체만 덩그라니 놓여져 있을 뿐 마스크맨들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나가 건물 밖을 훑어보던 주은정이 손짓했다.
숲에 들어갔던 마스크맨과 남아 있던 마스크맨까지 다섯은 검은 고치들의 펑크난 차 여러 대에 아무렇게나 퍼져 앉아서 본거지에서 돌아올 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저승사자들은 건물 내부에서 몸을 드러내고 그들한테로 다가갔다.
마스크맨들은 느닷없이 다가오고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발견하곤 차문을 열고 나왔다. 정상적으로 걸어오니 좀비는 아니라고 판단한 듯 했지만 얼굴을 보려고 잠시 뜸을 들이는 듯 했다. 그러다 자신들의 동료가 아닌 걸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총부터 쏴대기 시작했다.
타앙- 탕 탕, 타앙-.
“어휴, 저것들은 총밖엔 믿을 게 없나봐.”
몇 발의 총성을 신호로 저승사자들은 일제히 달려가 거침없이 주먹을 날렸다. 퍽 퍽, 퍽, 으억, 퍽, 퍽. 마침내 모든 게 조용해졌다. 이제 짙은 어둠만이 마스크맨들의 검은 육신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김혁은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젠 진짜 좀비를 찾자. 숲속에선 정상인 사람은 일단 살려두고.”
“뭐가 이렇게 복잡하담.”
김혁이 먼저 숲 쪽으로 날아올랐다. 주은정과 민하진도 따라붙었다. 그들은 낮게 날며 어두운 숲을 세심히 살폈다.
좀비는 좀처럼 찾아지지 않았다. 제자리를 맴돌던 좀비도 아까 그 자리나 그 근처에 없었다. 마스크맨들에 의해 제거됐나 했지만 사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산을 넘어갔단 뜻이었다.
“아무도 없는데요?”
“저도 하나도 못 찾았어요.”
“다 산을 넘어갔나본데? 가볼 데가 있어.”
저승사자들은 건수와 강탄이가 머물고 있는 오두막으로 날아갔다. 숲속 한가운데 가느다란 연기를 피우는 작은 집을 보고 민하진이 먼저 물었다.
“여긴 또 어딘가요? 이런 데 집이 다 있네?”
“이쪽은 도심지와는 완전 딴판이네요. 완전 오지네. 오지.”
주은정도 한마디 거들었다.
“연구소에 왔었던 무리 중 두 명이 여기로 피신해 있지. 좀비가 됐을지는 모르겠네. 낮 동안엔 괜찮았는데.”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나보네요.”
“음. 일단 너희들은 이 주변을 한번 더 돌아보고 이리로 와.”
둘이 뿔뿔이 흩어져 날아가고 김혁은 몸을 투명하게 한 채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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