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오두막 앞에서
건수는 여전히 난로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 어둠 때문에 불을 피운 건지 그나마 난롯불이 실내를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건수는 난로의 불을 한번 쑤석여보곤 방 쪽을 한번 바라봤다. 강탄이를 깨울까 생각해보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건수가 방문 앞으로 가서 문을 탕탕 두드렸다.
“야 탄이. 강탄이. 이제 일어나!”
방안에선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건수는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무슨 소리가 들리나 들어봤다. 혹시 좀비라도 된 건 아닐까 조심스러워하는 모양새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다시 한번 문을 탕탕 두들겼다.
“탄이야. 강탄이. 야!! 아, 이 자식 잠끝이 왜 이리 길어.”
건수는 그만 포기하고 다시 난로 앞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는 타오르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붉은 불기가 아른거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붉었지만 오라는 안정적이었다.
김혁은 벽을 지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강탄이는 역시 아직 잠에 빠져 있었다. 그의 오라도 흔들림은 없었다. 둘 다 좀비가 돼서 서로 물어뜯고 있는 장면을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삼 그 사실이 깊은 안도감을 준다는 걸 알았다.
김혁은 오두막 밖으로 나가 숲을 한 바퀴 돌았다. 민하진과 주은정이 멀리서 날고 있는 게 보였다.
김혁은 숲을 살피면서도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건수와 강탄이를 따라 가서 저들의 마을이 어딘지 알아놓는 게 좋을지 그럴 필요까진 없을지를. 숲을 안전하게 벗어나는 것까지만 도와주고 말면 할 일을 다 하게 되는 것일지를.
아무래도 삼인조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미 추적에 실패했더라도 확인은 해봐야할 듯 했다.
또 그것과 별개로 김혁은 왠지 강탄이와 건수를 그렇게 그냥 보내버리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게 싫다는 생각에 잠시 의아해졌다. 그 잠깐 지켜본 걸로 벌써 정이라도 든 건지 뭔지.
김혁은 날개가 큰 새처럼 우아하게 하늘을 느리게 선회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밤숲은 고요했다. 나머지 검은 고치들은 무사히 숲을 빠져나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늘에서 한번 크게 돌고 나서 다시 낮게 나무들 사이를 날며 샅샅이 훑어봤다. 역시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쯤에서 찾기를 그만두고 오두막 앞으로 돌아갔을 때는 주은정이 먼저 와 있었다.
“숲엔 아무도 없는데요?”
“나도 아무도 발견 못 했어. 벌써 모두 빠져나갔나봐.”
“여기 두 사람은 누군데요?”
주은정은 어느새 오두막 안까지 탐색을 마친듯했다.
“두 사람은 강탄이와 건수라는 사람이야. 검은 고치들, 아 좀비가 아닌 게 확인될 때까지 묶어뒀었거든. 그게 꼭 검은 고치들처럼 보여서.”
“네. 이 정도 시간이면 이제 안전해진 거 아닌가요?”
“어, 근데 오전중에 좀비로 변한 자들과 함께 있었고 불이 나는 바람에 전부 뒤엉켰어서 아무래도 밤늦게까진 지켜봐야 될 거야. 좀비가 되면 해치우고 그렇지 않으면 무사히 숲을 빠져나가게 도와줘야지.”
“네? 왜요?”
“이들은 스스로 좀비가 아닌 걸 증명하려고 애썼어. 연구소 일도 몰라서 한 일이고. 속아서 저지른 잘못이니 한번쯤은 용서를 해야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드네.”
“그래도 아무리 시킨다고 사람을 막 죽이는 자들인데...”
“좀비라고 믿었으니까. 밥먹듯이 사람 죽이고 다녔던 건 아닌 것 같아. 또 낮에 이들이 겪은 일은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엄청난 건지 충분히 알만큼 혹독했으니 뭔가 깨달은 것도 있겠지. 난 저들이 다르게 살고 싶어한다면 한번은 기회를 주고 싶어.”
김혁의 눈에 악마의 한심해하는 고갯짓이 보이는 듯 했다. ‘인간이 그렇게 쉽게 변할 거라고 생각하나? 쯔쯧, 넌 그래서 문제야...’ 주은정은 그보단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했다.
“그렇게 위험한 바이러스라면 예외를 두는 건 좋지 않잖아요. 좀비랑 같이 있었다면 더더욱 위험한데.”
유지성에게서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함께 들었기 때문인지 걱정이 심했다.
“그래, 그건 맞는데 어쩌면 이들은 우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응? 도와요? 검은 오란데요? 선배님, 오라는 쉽게 변하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난 지난 40년간 오라가 변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도 의문스러워. 검은 오라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오라의 색깔 자체가 변하기도 하는데 검은 오라도 선행을 계속 쌓고 속죄하다 보면 본래 색으로 회복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 말을 하며 김혁은 서진수의 오라를 떠올렸다. 방에 처박혀 있던 은둔형외톨이의 오라는 40년 전에는 검은 빛에 잠겨 있던 푸른빛이었는데 40년 후에는 파란 사파이어색으로 변해 있었다. 오수연도 서정도 오라가 더욱 여러 색이 섞이고 오묘해졌거나 광채가 더해진 걸 보면 오라는 변하는 게 분명했다.
“그건 썩기 전의 얘기죠. 썩은 것에서 싹이 난다고요?”
“영혼이니까. 나도 연구소 일은 용서하기 힘들지만 저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 이번만큼은 저들을 부린 자들의 잘못이 커.”
주은정은 여전히 걱정어린 시선으로 김혁을 바라보기만 했다.
“우린 리스트에 없는 자들을 단죄하면 안 되지.”
“네.”
“오늘 난 그걸 깨뜨렸어.”
“네? 뭐 하지만 그건 악마가 눈감아주기로 했잖아요.”
김혁은 먼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
“난 40년 동안 영혼을 걷으러 다녔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어. 오늘 그걸 깼지. 정말 참을 수가 없었거든.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깔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오늘에서야 그걸 한 거야. 그 녀석은 좀비가 될 것도 아니었는데 말야.”
마음 한켠에선 마스크맨의 우두머리도 좀비가 될 거였다고 믿고 싶었지만 역시 그렇게 되진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거예요? 깔끔하지 않던가요? 어떤 점이요?”
“글쎄, 리스트에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그럴만했으니까 그랬겠죠.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악마가 괜히 허락했겠어요? 검은 오라들이야 늘 지옥으로 가는데...”
“알지만... 기분이, 별로야.”
“우린 감상에 젖을 시간 없어요. 지금도 좀비 바이러스는 퍼져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래!”
주은정은 오두막을 한번 돌아보곤 말했다.
“선배님이 쭉 지켜봤으니까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죠. 뭐! 알겠어요.”
“넌 인간이 왜 타인을 해친다고 생각해?”
타인에게 죽임을 당한 자, 주은정이라면 그 해답을 혹시 알고 있을까 싶어 질문한 거였다.
“저도 오랫동안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어요.”
주은정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나도 1년쯤 걸리긴 했지만 결국 원장 손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가 날 때릴 땐 내가 죽을 줄 몰랐겠지만. 그 인간의 폭력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으니까. 인간들은 그걸 우발적 실수라고 한다지.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난 나머지 생을 빼앗겼어.
오늘 어떤 인간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재미라고 말하더라. 용서할 수 없었어. 그런 인간들을 이끌고 온 놈은 더더욱 더.”
김혁은 주은정에게 ‘넌 아버지를 용서했냐?’ 묻고 싶었지만 입밖에 꺼낸진 않았다. 아직은 상처일 거였다. 빗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낮의 은정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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