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진실의 힘
“은성이가 하려던 일이라뇨? 뭐 타임머신이 완성되면 그앨 다시 살릴 방도가 있단 말씀을 하고 싶은 건가요?”
오수연의 목소리엔 비아냥거림보단 체념이 묻어 있었다.
“아니요. 김은성씨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좀비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애썼을 걸 알기 때문입니다.”
“대관절 좀비바이러스는 뭐고, 은성이는 타임머신을 만들던 애에요. 분야가 완전히 달라요.”
“제 말은 본인이 못한다 해도 어머니라도 설득했을 거라는 말이죠. 하루라도 빨리 치료제를 개발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거야...! 날 찾아온 이유가 뭐죠? 뭘 도와달라는 건가요?”
“유지성씨를 도와주십시오.”
오수연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로 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나 그날의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건가? 그날 김은성과 통화가 되지 않았던가?
끔찍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오수연을 일으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김혁은 그 방법을 몰랐다. 진실을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실을 다 알고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르게 설득할 방법을 찾거나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밖에는.
“유지성씨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딸입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유박사도 이 일을 알리려다 그런 사고를 당한 겁니다. 또 장회장 측은 유박사를 데려다 연구를 계속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녀를 지켜주실 분도 박사님뿐입니다.”
오수연이 입을 열었다.
“그건 이미 경호가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특별히 신경써주라고 했어요.”
“네. 하지만 안심할 순 없습니다. 경찰 쪽에도 장회장 측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수연의 눈빛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의 연구자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듯 했다.
“치료제 개발은 장회장 측이 아닌 선의를 가진 쪽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유지성씨는 박사님이 도와주신다면 연구를 계속 하겠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유지성씨가 박사님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
“좀비는 이제 곧 모든 곳을 장악해버릴 겁니다. 하루 동안 좀비가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좀비를 막는 것보다 멀쩡한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에 고립시키는 게 낫겠다는 판단입니다. 곧 세상은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릴 겁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모두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막고 있어요. 정부도 속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지하동도 되찾아야 하고 새 연구팀도 빨리 꾸려야 하죠. 명도원 소장은 장회장과 결탁해서 연구를 강행하려 하는데 그들이 인류를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군요. 그들이 진정 인류를 위한다면 먼저 정부 측에다 진실을 알렸을 겁니다.”
오수연에게서 흐릿한 공포의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수연이 물었다.
“대체 진실이 뭐죠? 왜 은성이가 죽어야 했나요?”
이제 오수연도 진실과 맞딱뜨릴 시간이었다. 김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빠르게 내뱉었다.
“좀비를 처치한다며 킬러들이 동원됐습니다.”
“좀비? 킬러라고요?”
오수연도 이 부분에선 눈을 커다랗게 뜨고 침대 헤드에 기대 있던 등을 앞으로 당겨 곧게 앉았다. 공포의 냄새도 더욱 진해졌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좀비 바이러스 관리를 못했고 그걸 숨기려다 지하동에서 연구하던 연구원들이 좀비가 돼서 1층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김은성씨는 잘못된 시간에 그곳에 있었던 것뿐이고요.”
“그게, 그럴 수가... 그들은, 그들이 거짓말을 했어...”
“그들이 하는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괴조직이 타임머신 프로젝트 자료를 훔치러 침입했다가 희생된 거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란 말인가요? 은성이가 전화했을 때는 연구소가 침범당했다는 소식만 전하다가 통화가 끊겨버려서 내막을 알 수 없었는데 그들은 내게 그렇게 말 했어.”
오수연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오수연의 오라에도 붉은기가 감돌았다.
“정부에선 좀비바이러스 때문에 1층 연구원들이 그렇게 됐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명도원이 통화하는 걸 제가 들었습니다. 아마 박사님께도 잘못된 정보가 전달 됐겠죠.”
“용서할 수 없어!”
오수연이 목소리에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지하동의 좀비 사태는 결국 타임머신 연구 때문인 걸로 바뀌어버렸죠. 그 지하동은 지하 5층에 있는데 1층 연구원들 모르게 비밀스럽고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사멸시스템이라는 걸 갖추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긴 했지만 너무 늦게 가동됐죠. 그 사멸시스템이란 것도 유박사는 모르고 있었더군요. 모든 게 비밀스럽게 진행된 게 틀림없습니다.”
“사멸시스템? 그런 걸 수석 연구원이 모르다니?”
“그 연구원들은 따로 출퇴근을 하지 않고 거기서 먹고 자며 연구했습니다. 최적의 시설로 보이긴 했지만 만약 바이러스가 누출되거나 하면 사멸시스템이란 것으로 모두를 한꺼번에...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져야 열리는 구조라고 하더군요.”
오수연의 표정이 바뀌었다.
“미친, 그게 정말인가요?”
“네. 극히 일부만 아는 정보였던 걸로 보입니다. 그게 실패하자 부른 해결팀이라는 게 더 이상한 조직이었던 거죠. 좀비를 포함해서 그곳에서 살아남은 연구원은 없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그들은 연구원들의 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타임머신 연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시설인데 결국은 1층이 지하동의 위장 시설로 되게 만들어버렸고 사고 책임도 그쪽에다 덮어씌웠습니다.”
“난,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이렇게... 아, 은성아.”
오수연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김혁은 잠시 선 채로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40년 전, 학교 5층 난간에 올라 서 있던 오렌지색 오라를 가진 여자아이는 엄마가 어떻게 생각할까 싶은 마음에 거기에 섰었다고 했었다. 이제 엄마가 된 그녀는 먼저 떠난 딸의 죽음에 오열하고 있다.
교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져 놓고는 금새 쾌활하게 웃으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던 열 일곱 살짜리 그 오수연처럼 곧 웃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딸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다음날 세미나가 있음에도 한걸음에 달려왔던 그 어머니의 씩씩함이라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수 있을런지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오수연의 울음이 잦아졌다.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을 들어 김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애의 마지막은 어땠나요? 고통스럽진 않았나요?”
김혁은 타인의 죽음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죽음을 보는 자로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자들과의 만남 외에는 그 누구와의 접촉도 불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건 남겨진 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이 순간 막상 그 가족의 죽음에 대해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조금 난감해졌다. 뭘 어떻게 말해줘야 하지?
“저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마지막은 고통스럽진 않았습니다. 그건... 정말...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김혁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은성씨는 용감했습니다. 물러서지 않았죠. 제게 도움을 요청해서 연구소에 갔던 날 밤에도 은성씨는 좀비바이러스가 있을지도 모르는 지하동에 내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그건 아무도 말릴 수 없었죠. 지하동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그녀는 맹렬한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꼭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 전부터도 연구원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고 했었죠.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는 좀비 바이러스 관리를 못한 무책임한 상사에게 호통까지 쳤습니다.”
“그애라면 그랬을 거야.”
오수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슬픔이 그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지막 슬픔을 떨어내듯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저야말로 은성씨를 구하지 못한 걸 가장 많이 자책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박사님께 간곡히 부탁드리는 겁니다. 지금 인류는 박사님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
오수연은 눈물을 멈추고 잠잠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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