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모두 한 자리에
떠중이가 저승사자들 곁으로 다가오자 김혁이 먼저 물었다.
“넌 또 어쩐 일이냐?”
악마가 전하는 뭔가 중요한 소식이라도 들고 온 걸까 싶어서였다.
“저도 이 중대한 임무에 합류하라는 거죠. 뭐.”
“이제 악마만 넘어오면 되는 건가? 지구의 지옥화.”
주은정이 뾰족하게 대꾸했다. 악마가 저승을 떠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너 아직도 세상이 지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주은정에게 한마디 하곤 무섭게 노려보는 시선을 피해 떠중이는 얼른 김혁에게 말했다.
“악마님이 날 밝는 대로 선배님 한번 다녀가시라는데요?”
“지금 같은 때 왜?”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 뭔가 얘기해줄 게 있나봐요.”
“너한테 전하면 되지. 굳이 오라는 이유는?”
“저야 모르죠. 중요한 얘기겠죠. 그게 아니면 선배님한테만 하고 싶은 얘기거나. 저야 악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니까.”
“선배님만? 우리는?”
민하진이 물었다. 떠중이는 ‘김혁’에 또박또박 힘주어 민하진을 향해 대답했다.
“김.혁. 선배님만 오라고 했어. 정확히.”
“치, 뭐 우리는 맨날 찬밥이네.”
“악마한테야 선배님이 제일이지.”
민하진의 말에 주은정도 한마디 거드는 모양새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둘이 점점 티격태격하는 회수도 줄어든 데다 이젠 보조 맞춰 대꾸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었다. 며칠만에 저렇게 변할 수도 있는 건가 조금 놀랍기까지 했다.
그러나 악마가 김혁만을 위한다는 말은 사실과 달랐다. 김혁은 애들에게 그걸 다시 한번 인식시키려 했다.
“뭐라는 거야? 내가 늬들보단 훨씬 오래 같이 있었으니까 그런 거지. 왜 나뿐이겠냐?”
“선배님만 아닌 척 하지 우리 모두는 다 그렇게 생각해요. 은근 티 많이 내는데 진짜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하진이 야무지게 대꾸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떠중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댔다.
“참, 별걸 다 질투하네.”
“질투가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는 거죠. 악마한테 사랑받는다고 딱히 좋을 것도 없는데 그걸 누가 질투하겠어요?”
주은정이 감정 없이 말했다. 그에 맞춰 떠중이가 동조했다.
“맞아. 악마가 더 좋아해봤자지.”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셋이 편먹고 김혁을 악마 쪽으로 밀어내는 듯.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벌칙이나 핀잔 말고 저승사자들이 악마에게 받을 수 있는 혜택 같은 건 아예 없으니까. 뭐 혹시 환상을 더 근사하게 짜준다거나 길이를 더 길게 해준다거나 하는 거라면 모를까. 그건 당사자만 아는 내용이지 다른 저승사자들과 비교할 꺼리가 아니었다.
“야 조심해. 나처럼 빨갛게 변하면 어쩌려고?”
‘악마새끼’라고 했다가 온 몸에 얼룩점이 새겨졌던 민하진은 악마에 대해 말하는 것에 한층 더 조심스러워진 분위기였다. 그런 민하진의 표정에 주은정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김혁이 생각하기엔 악마가 몸을 빨갛게 만들거나 파랗게 만들거나 주은정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게 분명했다. 민하진 만큼 외모에 특별히 집착하지도 않는데다 때로는 악마도 주은정의 눈치를 보는 것 같으니. 김혁은 가만히 서 있는 떠중이에게 물었다.
“악마가 뭐라고 하면서 널 가라고 했는데?”
“이제 여기가 좀비 세상이 된다면서요? 셋만으론 부족할 거라더라고요.”
“그 말뿐이야?”
“네. 아, 참 인간들에게 우리 정체를 들키지 않게 좀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하던데요?”
“음.”
김혁이 짧게 대꾸하자 떠중이는 민하진과 주은정을 향해 쾌활하게 말했다.
“야, 내가 좀비를 실제로 보게 될 날이 오네. 이게 무슨 일인지? 야, 근데 좀비가 원래 부두교에서 만들어진 노예들이었던 건 알아?”
떠중이가 또 장광설을 늘어놓은 태세자 주은정과 민하진이 입을 모아 제지했다.
“야야, 관심 없어.”
“야아~, 그만해. 그런 골치 아픈 얘기 듣고 싶지 않아.”
민하진은 손사래까지 쳐가며 만류하는데도 언제나처럼 떠중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고 대꾸했다.
“이게 왜 골치 아픈 얘기야? 흥미로운 얘기지.”
“뭐 그런 거 안다고 좀비 잡는 게 쉬워져?”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그걸 안다고 좀비 치료제를 만들 수 있어?”
“아니.”
“그럼...”
“아 됐어. 됐어. 안 하면 되잖아. 명색이 좀비 잡는 저승사자라면 그런 것도 알고 있음 좋잖아? 지식 좀 늘리자는데 뭘 그렇게 질색을 하는지.”
“넌 간단하게 설명하는 법을 모르잖아. 시작하면 주구장창 계속 떠들거잖아.”
“재미있는 얘긴데 좀 길면 어때? 넌 스스로 상식이 좀 부족하단 생각이 안 들어?”
“나중에 너 얘기 좋다는 사람한테나 실컫 들려주라고 난 싫으니까.”
민하진과 떠중이의 대화는 그렇게 계속 이어질 태세다. 김혁은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악마가 강탄이의 꿈에 나타나서 왜 자신을 따르라고 했을까?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생각해봤다. 강탄이와 건수가 저승사자들을 도울 수도 있다는 김혁의 생각에 악마도 동의했다는 뜻일까?
김혁은 강탄이와 건수를 바라봤다. 그들은 꿈 얘기에 이어 건수 엄마가 꾼 꿈 얘기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무슨 말로 저들을 따르게 하지? 뭘 하길 원하는 걸까? 저들은 우선 마을로 돌아갈 거고 그리고 마을을 알아내고 나면 그 다음은? 저들이 도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뿐 뭘 하게 해야 할지도 당장 생각나는 건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시작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들의 생존을 도우라는 뜻인가?
“악마는 내가 저들 앞에 나타나길 바란다는 거지?”
김혁이 민하진과 가볍게 티겨태격거리고 있는 떠중이에게 물었다.
“아마도? 별 말은 없었어요.”
“뭐 이왕 널 보낼 거였으면 뚜렷한 명령을 전달할 것이지 참.”
“낼 가시면 아시게 될 건데요. 뭘.”
“그럼 난 저들과 동행할 테니 너희들은 대기하고 있다가 몰래 따라 와. 아 참 시내 가서 깨끗한 차 한 대만 구해와라.”
“차요?”
“마을까지 언제 걸어가? 인간들 발걸음이면 날 다 새도록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여긴 외져서 차도 잘 안 다닌다더라고.”
“네.”
김혁은 리스트를 꺼냈다.
“거기 장씨성 가진 사람 누르면 도시로 이동할 거야. 여기서 조금 나가면 큰 길이 있으니까 그 길 어디쯤으로 갖다 놓고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하자고. 내가 차를 세울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떠중이가 난감한 얼굴로 물었다.
“전 운전을 못하는데요? 들고 오는 것까진 하겠지만.”
민하진이 잽싸게 대꾸했다.
“나, 나, 운전할 수 있어.”
“미성년잔데 운전을 어디서 배웠어?”
“아빠 차로 좀 배웠죠.”
민하진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남들 공부할 때 영 엉뚱한 일만 골라서 한 청소년이었다는 반증.
“그럼 너희 둘이 같이 갔다 와.”
“넵.”
민하진과 떠중이가 리스트의 장회장 이름을 손으로 찍고 사라졌다. 김혁은 혼자 남겨진 주은정에게 말했다.
“혹시 이동 중에 우리 주변 좀비들은 네가 맡아줘.”
“네. 염려 마세요.”
김혁은 오두막 밖으로 나가 오두막 문을 쿵쿵 두드렸다. 안에서 새어나오던 말소리가 뚝 멈췄다. 그들은 누가 외진 오두막 문을 노크하는가 긴장한 상태로 가늠해보고 있을 터였다.
- 작가의말
제가 100화를 쓸 날이 오네요.
처음 쓸 때만해도 50화까지만 예상했었는데 말이죠. 1부까지 합하면 거의 150화 가까이 썼네요. 다른 분들이 200~300화 이렇게 쓰신다는 걸 보면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궁금해하며 100화도 못 쓰겠다고 투덜거리던게 얼마 안 됐는데 말이어요.
암튼 여기까지 써온 것만으로도 되게 뿌듯하군요. 크리스마스 특집 같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하네요.
독자님들 모두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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