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마을로 가는 길1
김혁은 오두막의 닫힌 문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난감해졌다. ‘지난밤에 짱돌을 찾으러 왔던 자다.’라고 할까? 아니면 ‘떠중이’라고 하는 게 좋을까, 악마의 메시지를 저들에게 각인시키려면 후자 쪽이 나아보였다.
하지만 허공에 떠서 자신이 하는 양을 지켜볼 주은정이 신경쓰였다. 본의 아니게 떠중이 역을 보여주는 게 괜찮을지를 상상했다. 천하의 무표정 주은정도 배꼽을 잡고 웃을지도 모른다.
“누구시요?”
건수의 목소리가 잔뜩 경계를 담고 문 안에서 물었다.
“좀비 바이러스를 추적하던 이상한 사람.”
“... 누구라고?”
혹시 마스크맨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해서 되묻는 듯했다.
“작은형님과 대화했었지, 어제.”
“그 우리를 묶게 했던?”
“그래.”
안에선 잠시 침묵만 이어졌다. 오두막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건수가 김혁을 마주보았다.
“여길 어떻게...”
김혁은 그를 밀고 들어갈 기세로 발걸음을 옮겼다. 건수가 슬쩍 몸을 비키고 일단 김혁이 오두막 안으로 들어서자 문을 닫았다. 강탄이도 놀란 표정으로 김혁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떠중이가 온다더니 정말 왔다고 생각하는 얼굴.
“아지트에 들렀더니 처참하더군. 훑어보다가 여기까지 왔지. 여긴 원래 비어 있던 곳인데 연기가 피어오르기에 두드려봤다.”
“이 오두막을 안다고?”
건수가 놀라서 되묻고 곧 이어 말했다.
“우린 간신히 도망쳤어. 아직 좀비도 안 됐고 이제 우린 안전해. 그러니 내버려둬.”
“난 짱돌을 찾으러 갔던 삼인조를 찾고 싶다.”
“그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어.”
“너희들 마을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있지 않나?”
“우리 마을을 알아?”
건수가 이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인데 이런 것들을 다 아나 싶은 얼굴로 훑어봤다.
“내가 알고 모르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마을은 여기서 먼가?”
“우리가 널 믿어야 하나? 네가 다녀간 다음에 우린 습격을 받았어. 거의 죽을 뻔 했다고.”
건수가 힐난을 담아 말했다.
“난 작은형님한테 분명히 물어봤었다. 혹시 거길 습격할 다른 조직이 없냐고. 그도 잘 몰랐던 것 같은데? 그게 내 책임이란 건가?”
김혁이 말을 마치고 강탄이를 지긋이 바라봤다.
“작은형님이 네게도 별말 없었나?”
“폐타이어로 입구를 막으라고는 했지만...”
강탄이는 말을 하다 말고 건수를 바라봤다.
“뭐 내 생각엔 작은형님도 별로 아는 게 없긴 했어. 내가 계속 물어봐도 잘 모르는 것 같았거든. 그래도 걱정은 됐나보군.”
“니가 그놈들과 한패가 아니란 건 어떻게 믿지?”
건수는 여전히 의심이 많은 눈초리로 바라봤다.
“그냥 좀 믿어주면 고마운데...”
김혁은 이쯤에서 떠중이라는 단어를 써야 하나 생각했다. 누군가를 믿게 하고 설득하는데도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떠중이라는 단어는 단박에 그들을 믿게 만들 수 있었다. 악마가 깔아준 밥상에 숟가락을 얹자.
“아 내가 어중이떠중이처럼 혼자 돌아다녀도 나 진짜 좋은 사람이야. 작은형님도 날 믿었으니까 그렇게 했겠지? 너희들이 습격받은 것과 난 아무 상관없어. 내가 나쁜 놈들과 한패라면 그들에게 낮에 오라고 할 이유가 없잖나? 그들이 내가 간 다음에 곧바로 쳐들어왔나?”
“그건 아니지만...”
이미 떠중이란 단어에 둘 다 이미 놀라움을 넘어 뭔가 믿어야 하나 싶은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 언제까지 그 의심에 내가 계속 불필요한 대꾸를 해야 해? 묶인 자들 중에 좀비는 하나도 없었어?”
“...”
“어떤 놈들이 쳐들어왔는지 몰라도 난 그들을 몰라. 난 분명히 밤에 다시 오겠다고 했고 그래서 가봤더니 거기엔 불탄 건물뿐이었어. 나도 누군가 쳐들어 올 거란 확신이 있었다면 너희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묶었을 거다.”
김혁은 그들이 아는 것만 골라서 대답하느라 신중을 기하면서 말을 마쳤다.
“마을에 가서 뭐하게? 그 사람들을 피신시킬 생각이야? 아니면 또 우리처럼 묶어둘 생각이야?”
“글쎄, 듣기로는 그곳은 고립된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렇지.”
“그 삼인조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오히려 그곳만큼 안전한 곳도 없겠지. 난 그것만 확인하면 된다.”
건수와 강탄이가 저희끼리 시선을 교환했다. 이쯤이면 믿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을 때 강탄이가 물었다.
“혹시 작은형님한테 당신이 떠중이라고 했었나요?”
“뭐?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잖아. 그건 내 어릴 때 변명인데 어떻게 알지?”
김혁은 일부러 깜짝 놀라는 척을 하며 대꾸했다. 쿡쿡거릴 주은정이 떠올라 낯이 간지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화를 빨리 진척시키려면 이 수밖에 없다. 떠중이인 척 하기.
강탄이가 건수를 다시 바라봤다. 거 봐라. 내 꿈이 맞지 않냐? 그런 눈빛. 자 이제 따를 일만 남았지? 김혁은 어서 그들이 확실한 대답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숲 밖에 우릴 죽이러 온 그놈들이 있을 수도 있어.”
“좀비도요.”
“밖이 위험하다고 평생 이 오두막에 처박혀 있을 건가?”
“그건 아니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거라고.”
“내 걱정은 말고 자 슬슬 움직여볼까? 마을은 여기서 먼가?”
“글쎄, 걸어가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일단 차가 닿는 데까진 한참 걸어야 해.”
“가자구. 너희들도 마을 사람들이 걱정되지?”
“그거야 당연히.”
김혁이 먼저 오두막을 나서려고 하자 건수가 소리쳤다.
“잠깐만. 옷 좀 갈아입고.”
김혁은 그들을 돌아보고 말했다.
“그냥 가.”
“그래도 어둠속에서 이런 원색보단 검정이 낫지.”
“그러시든가.”
김혁이 기다리는 동안 강탄이와 건수는 말려두었던 원래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은정은 이런 광경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조금 궁금했다.
“난로는 안 꺼도 될까?”
“저절로 꺼질 텐데 별걸 다 걱정하는군. 서두르자고.”
오두막을 나서기 전에 건수는 다시 한번 꼼꼼히 실내를 둘러보고 난 다음 열쇠로 문을 잠궜다.
셋은 오두막을 벗어나 큰길 쪽으로 조용히 움직여갔다.
김혁은 날아다니는데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밤길을 걷는 게 꽤 답답하고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수가 앞장 서 한참을 걸었을까. 큰길이 나타났다. 그러나 여전히 가로등도 하나 없는 깜깜한 길이었다. 수풀이 없어 걷기가 조금 수월해진 게 다행이랄까.
큰길을 타고도 한참을 걸었단 기분이 들 때쯤 이 녀석들은 차를 아직도 안 가져온 건가? 하는 생각에 김혁이 두리번거려봤지만 어디에도 자동차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 거리면 도시에서 날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미 걸어온 시간을 생각하면 꽤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만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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