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마을로 가는 길 3
차 안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차체를 스치는 바람소리만 묵직하게 공명했다. 김혁은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이 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영원 같은 길 끝은 세상의 끝이고 그곳에 작은 마침표처럼 가난한 자들의 마을이 있다...
확실히 도심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듯 했다. 오래된 낡은 집들이 스쳐 지나가고 더 나아갈수록 불빛들도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으며 결국은 불빛조차 사라지고 어둠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곳들로 접어들었다.
대체 마을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떤 곳이길래 이런 외진 곳까지 들어간 것인지 쉽사리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오수연의 차를 타고 연구소 기숙사를 나올 때만 해도 무인자동차에다 자동 점멸하던 가로등까지 있었는데 여긴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가로등도 없는 데다 자동차는 이제 울퉁불퉁 돌이 튀어나온 포장도 안된 좁은 오솔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가족들을 이렇게 오지 구석에 데려다 놓은 이유가 따로 있나?”
김혁의 질문에 건수는 속시원한 대답 대신 짧게 대꾸했다.
“다 와가.”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도 이런 데 모여 산다고요?”
이번엔 민하진이 물었다.
“도시의 복잡함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죠. 살기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고. 이런 덴 이런 데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으니까요.”
딱 보기에도 어려 보이는 민하진에겐 깍듯이 존댓말을 하는 건수가 김혁은 조금 못마땅했다. 자신한테는 반말을 해대면서 왜 여자에게만 존댓말을 해주는 건가 싶은데다 한결 친절한 저 말씨는 또 뭐란 말인가? 여자라서? 아니면 민하진이라서? 처음 봐서?... 맘에 들어서?
문득 그런 생각들을 진행시키다가 김혁은 또 한번 놀랐다. 요즘 들어 자꾸만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상한 지점에서 화가 치밀고 생각지 못한 부분에 신경이 쓰이고... 암튼 이상했다. 뭔가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면이 있었다.
마침내 자동차가 멈춰 섰다. 그러나 밖은 여전히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불빛 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차에서 내려 보니 오히려 하늘에 빛이 모여 있었다. 도시에선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반짝이고 있는데 마치 숨을 쉬듯 아주 밝게 반짝거려서 곧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뭐지? 아무것도 없는데?”
“조금 걸어야 해.”
건수가 먼저 앞서 나가며 대꾸했다. 역시 말이 짧다. 김혁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참 꽁꽁도 숨겨놨군.”
“약자들만 사는 곳이니까.”
모두 건수를 따라 걸었다. 손전등 하나 없이 별빛에만 의존해 걷는 길이었다. 하지만 건수는 익숙한 길이라 그런 건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잘 찾아내 자신 있게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일행은 어느 동굴 앞에 이르렀다.
“뭐야? 마을 사람들이 동굴 속에 사는 건가?”
“따라와 보면 알아.”
동굴 속은 완전히 캄캄해서 손으로 벽을 더듬어가며 이동해야 했다. 저승사자들의 시각으로는 사물 분간은 가능했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한 그들처럼 이동하는 척은 해야 했다. 세 번째로 강탄이의 뒤를 따르는 민하진은 열심히 벽을 짚어가며 가고 있었다. 물론 어설픈 연기 중이라는 걸 김혁은 알았다. 김혁은 맨 뒤라 팔짱을 낀 채 걸었다. 어둠속에서 오랫동안 젖어 있던 축축한 동굴 냄새가 기분 나쁘게 따라붙었다.
“이 축축한 건 물이겠죠?”
강탄이가 묻자 건수가 대답했다. 동굴 속에 목소리가 왕왕 울려댔다.
“조금만 참아. 그리 길지 않으니까. 튀어 나온 데가 있으니 발 밑 조심하고.”
김혁은 조금 지나 답답해져서 몸을 사라지게 하고 얼른 앞서 날아가보았다. 인간들 눈엔 완전한 어둠속이니 맨 끝에 서 있는 김혁이 따라오는지 어떤지 모를 거였다.
날아가 보니 동굴의 직선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고 일종의 터널처럼 반대편이 좁게 뚫려 있는 구조고 그 끝에 문이 달려 있었다. 문에서 왼쪽으로 꺽으면 더 깊은 동굴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깊은 동굴 속에 살 것 같진 않아 먼저 특이한 그 문을 통과해 나가봤다. 역시 조금 떨어진 곳에 옹기종기 불 밝혀진 마을이 보였다. 불빛으로 가늠하기엔 작고 아담한 규모였다. 하늘로 높이 떠서 살펴 보니 동굴을 통과하는 것 말고는 눈에 띄는 길은 없었다. 마을 주변은 첩첩산들로 에워싸여 있었다.
쉽사리 드나들지 못한다는 게 이런 의미였군. 김혁은 동굴로 돌아가 출구께에서 기다렸다. 건수 일행이 더듬대며 문 앞에 도착하고 건수가 문에 달린 빗장 같은 쇠붙이에 리듬을 실어 세 번 연속 두드렸다. 그리고 좀 사이를 두고 두 번을 더 두들겼다. 그들만의 암호인 모양이었다. 얼마 후 빗장이 저절로 철컥 열렸다.
문이 열리고 모두 나가길 기다려 김혁은 몸을 나타내고 마지막으로 동굴을 나갔다.
“아, 축축한 벽을 더듬는 건 다신 하고 싶지 않아.”
민하진이 투덜거리며 손바닥을 옷에 문질러댔다.
불빛을 향해 조금 더 걸어가자 마을의 벽 색깔이나 형태가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다 왔어. 여기야. 우리들의 집.”
“우와, 여긴, 여긴?”
민하진이 마을을 보곤 과장스런 몸짓으로 두리번대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곳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를 가진 집들이었다. 집들이 나지막하고 오밀조밀한데다 환상 속에서나 볼법한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버섯 모양 같기도 하고 모자처럼 눌러앉은 색색깔의 지붕하며 둥그렇게 돌아드는 벽과 여러 가지 색으로 멋을 낸 문이나 창문 모양이 마치 과자로 만든 집 같기도 했다.
그 집들에선 마법사나 요정들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구석진 오지에서 이렇게 조화롭게 지어진 예쁜 마을을 만나리라곤 예상치 못해서 더욱 놀라웠다.
“원래는 영화 세트장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이래.”
“이런 데다가 세트장을 만들었다고?”
김혁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데다 영화세트장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한 걸까?
“영화사가 예산이 부족하기도 했던 것 같고 이 동굴이나 주변 배경을 활용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암튼 이쪽이 땅값이 싼 건 맞아. 이 마을을 만든 사람이 괴짜기도 했고. 그 사람 되게 특이하다고 소문났거든. 근데 세트장까진 어찌저찌 완성했는데 영화는 다 찍기도 전에 망했다고 들었어. 여기가 매물로 돌아다니면서 여러 업자들 손을 거치다 결국 우리 쪽으로 넘어오게 된 거지.”
“와, 진짜 동화 속 마을 같아.”
민하진은 계속 여기저기 둘러보며 어린애처럼 들뜬 목소리를 냈다.
“보기엔 이쁘지만 막상 살려고 하니 손볼 데가 너무 많아서 난감했죠. 난방 시설이며 전기 시설이며 전부 새로 해야 해서요.”
“너무 예뻐요.”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기로 했던 도로 개발도 무산되고 이래저래 악재가 겹쳐버려서 버려진 마을이 된 걸 운 좋게 주은 거죠.”
이번엔 건수가 친절한 설명 끝에 씨익 웃기까지 한다. 너무도 친절한 건수와 그의 말을 너무도 진지하게 듣고 있는 민하진의 모습이 탐탁치 않았지만 김혁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친절한 걸 뭐라고 할 순 없다. 막 대하는 것보단 낫잖아. 만약에 건수가 하진이에게까지 반말을 틱틱 한다면 분명 먼저 나서서 뭐라고 했을 테다. 꼭 여자라서가 아니라 처음 본 사이니까 그래야 하는 게 맞다. 근데도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이상하면서도 싫다. 저 녀석이 하진이에게 웃고 부드러운 말투로 길게 대꾸하는 게 싫다.
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어느 집 앞에 멈춰선 건수에 맞춰 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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