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마을 사람들2
남자는 말없이 사건의 전말을 들으며 점점 더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갔다. 건수가 말을 마쳤을 때 남자는 탄식하듯 한마디 내뱉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 저는 이 일을 마을 사람들한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도 걱정입니다.”
“큰형님은? 큰형님은 아직 무사하시단 말이지?”
남자의 부질없는 한 가닥 희망은 재빨리 꺾어줄 필요가 있었다.
“조만호와 이한태도 좀비가 됐다.”
남자 못지않게 건수도 깜짝 놀라 김혁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선 혼란스러워하는 마음이 읽혔다.
남자는 무엇엔지 계속 화가 나는 모양으로 건수에게 소리치는 것으로 그 화를 가라앉히려 하는 것처럼 짜증을 담아 또 소리쳤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야?”
건수가 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좀비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사람인데... 암튼 저희를 습격했던 놈들하고는 달라서 또 강탄이 꿈에 작은형님이 나타나서 이 사람을 따라가라고 하고..”
“뭐 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꿈 하나 믿고 여길 데려왔다는 거냐? 너 이 자식 정신이 있어? 그놈들이랑 한패면? 엉? 마을까지 위험해진다고.”
남자는 잡아먹을 듯이 김혁을 노려봤다. 김혁은 또 어떤 말을 늘어놓으며 믿을 때까지 설득해야 하나 싶어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역시 한번은 거쳐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그냥 좀 믿어주면 안 되겠어? 너희들 작은 형님은 날 믿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스로 묶이지 않았을 거야. 이들도 날 믿었으니까 여기까지 왔겠지.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날 믿었다면 그냥 좀 믿어주는 건 어때? 만나는 사람마다 믿어달라고 하는 것도 지치는군. 내 목적은 좀비 확산을 막는 거지 이런 작은 조직을 없애는 게 아니야.”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김혁을 찌를 듯이 쏘아보기만 했다. 건수가 얼른 덧붙였다.
“네. 형님 그건 맞는 것 같습니다. 작은 형님도 그러길 바랄 거구요. 작은 형님 아시잖아요. 타이어로 입구를 막지 않았다면 우린 바로 그놈들 총알받이가 됐을 겁니다. 또 이 사람 말대로 서로를 묶지 않았다면 좀비한테 당했겠죠. 얼마나 불안하면 작은 형님이 강탄이 꿈에까지 나타났을까 싶기도 하고 원래 꿈도 안 꾸던 녀석이라는데, 그보단 지금 중요한 건 나머지의 안전입니다.”
“...”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말이 없었다. 김혁이 질문했다.
“내가 궁금한 건 조만호나 이한태가 왜 좀비가 됐나 하는 건데 짱돌이 혹시 조만호를 따로 만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큰형님이 좀비가 됐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건수가 먼저 물었다.
“조만호 쪽이라고 가만 놔둘 순 없지. 따로 감시중이었다. 그들이 좀비가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변해버려서 나도 놀랐거든. 내가 알기론 조만호나 이한태는 연구소 근처엔 얼씬도 안 했단 말이야. 다른 조직원들이 변한 시간이랑 비슷한 걸로 봐선 그 전에 짱돌과 접촉이 있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어.”
“그건 그런데 짱돌이 큰형님을 만날 일이 뭐...? 형님.”
말을 하다 말고 건수가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마치 한숨을 쉬듯 대답했다.
“짱돌은 큰형님이 데려왔지.”
“그럼 정말...?”
“친척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다른 관계가 있는 것 같긴 했어.”
“우리 내부 일을 큰형님이 먼저 아는 게 짱돌 때문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짱돌이 큰형님의 개인 스파이였다?
“그거네. 그놈 애인 핑계대면서 늘 일 끝나면 슬쩍 빠져나가고 그랬는데.”
건수가 이해했다는 투로 대답했다. 남자는 체념을 담아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마을은 어떻게 하냐? 그나마 쥐꼬리만큼 들어오던 돈도 끊기게 생겼으니.”
김혁은 얘기가 나온 김에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밀폐된 룸에서 조만호와 장회장의 은밀한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장회장은 자금을 넉넉히 대주고 있다고 하던데 책임질 가족들이 꽤 많은가?”
“회장님 정보까지 안다고?”
남자는 진심으로 궁금한 얼굴로 되물었다. 건수가 곧장 대답했다.
“이 사람은 모르는 게 없더라고요.”
“아니, 난 조직 관련해서는 잘 몰라. 이 얘긴 우연히 듣게 된 거라 궁금했던 거고.”
김혁은 곧바로 정정했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뭐 얼마나 준다고 넉넉하대?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돈데...”
또 화가 나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원래 성격이 다혈질인지 낯선 김혁의 존재에 본능적으로 예민해져서인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한 액수는 나도 모르지만 장회장은 분명히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했는데 말이지. 회장쯤 되면 푼돈을 주고 큰돈이라 하진 않을 것 같은데...”
장회장이 엄청난 구두쇠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김혁은 그런 비슷한 대답이 흘러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혹시...!”
“큰형님이...”
둘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말을 하다 말고 끊어버렸다. 분명 중간에서 사라진 돈을 의심하고 있는 듯 했지만 입 밖에 꺼내진 않으려 했다. 점조직처럼 비밀과 비밀로 단절돼 있는 조직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작은 형님 같은 보스라면 몰라도 조만호 같은 보스라면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직원들을 제거하도록 만든 인물이라면 그들의 돈을 훔치는 것쯤이야 못할 일도 아니리라.
“조만호 가족도 여기 사나?”
“아들딸은 다 외국 유학중이고 형수님은 이런 곳에 들어올 생각도 없어. 그런 분이 이런 데 와서 살겠다 할 리 없지.”
“그렇군.”
역시, 김혁은 방안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마을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좋아서 사는 거라고 할 수 없는 삶이리라. 어쩔 수 없어 들어와 사는 사람들의 곤궁함이 저절로 상상됐다.
“벼룩의 간을 내먹지. 씨발.”
남자가 거칠게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대를 물고 급히 불을 붙였다.
“내가 이런 꼴만 아니었다면 나도 마을 사정은 잘 몰랐을 거야. 살아보니 전해 듣는 거하곤 좀 달라. 그 돈으론 삼시세끼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기 힘들다니까.”
“정말요? 그 정도는... 우리가 일 한게 얼마나 많았는데...?”
건수는 정말로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말했고 남자는 담배 연기를 연신 피워내며 대꾸했다.
“뭐 말로는 회장님이 돈을 제때 안 줘서 그렇다고 한다더라만.”
“...!”
일순간 모두 할 말을 잃고 침묵했고 뿌연 담배 연기만 허공중에 맴돌았다. 너무 늦게 안 진실이다. 따져 물을 조만호도 없고 장회장은 이제 더 이상 돈을 보내오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을의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니 안타까움이 더 컸다. 가족의 상실감까지 얹은 채 앞으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아무 관련도 없는 김혁조차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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