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예상치 못한 위험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지금은 닥친 일을 수습하기도 급급한 상황이다. 내일 일까지 걱정할 여유가 없다. 김혁은 알고 싶은 사실을 알아내고 이제 마을을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온 밤을 보낼 순 없었다.
“삼인조가 마을에 안 들어온 건 확실한가?”
“안 왔다니까.”
남자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동굴 문으로 드나드는 걸 모두 알 수 있는 건가? 누가 드나들고 하면...”
“내가 문지기나 마찬가진데 왔으면 내가 모를 리 없어. 나 몰래 나가는 건 더 어렵지. 마을에 차도 두대 뿐이고. 모를 순 없어.”
김혁은 남자의 퉁명스러운 대꾸는 껄끄러웠지만 이 확신에 찬 대답에는 조금 안심이 됐다.
“마을 밖으로 나갔다 온 사람도 없다는 거지?”
“... 없는... 잠깐. 그건 그냥 시장에 간 건데...?”
“누군데? 언제?”
“누군데요. 형님?”
김혁과 건수는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이미 좀비 바이러스의 전염력을 몸소 체험한 건수는 화들짝 놀라 상체를 바짝 남자 쪽으로 들이대기까지 했다. 남자는 그런 사소한 일에 이들이 왜 이다지 호들갑인가 싶은 얼굴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우리 와이프.”
“형수님이요?”
건수가 급하게 남자에게서 떨어지도록 몸을 뒤로 젖혔다.
“왜? 그 사람이 상만이 패거리를 만날 일이 뭐가 있어? 그 좀빈가 뭔가가 다른 데까지 퍼진 건 아니잖아.”
김혁과 건수는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리 그렇대도 그냥 두고 가기엔 꺼림칙했다. 조만호와 이한태가 좀비가 될 줄 몰랐듯이 언제 어디서 만남이 이뤄지고 언제 좀비로 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여자가 정말 아무 접점이 없었는지 확실히 확인해야만 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인간이 자기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꿰뚫고 있는 것도 아니면 매순간 일어난 일을 다 알 수 없다는 건 이미 짱돌의 일로 확인했으니까.
그때 밖에서 다급하게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나고 밖에서 강탄이가 ‘형수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여자가 뛰쳐나간 모양이었다. 김혁은 본능적으로 뭔가 있다는 생각에 달려나갔다.
“민하진, 가서 데려와.”
여자가 울타리 밖으로 달려가는 걸 보고만 있던 민하진이 여자를 쫓아 달려나갔다. 강탄이는 놀란 얼굴로 바깥 쪽을 보고 있었다. 건수도 문가로 나와 김혁 옆에 섰다.
“설마, 아니겠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건수의 목소리와 다르게 그에게선 엷은 공포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스멀스멀 좀비에 대한 공포가 일고 있는 모양이었다. 간신히 도망쳐 와서 이제 안전하다 생각한 이곳에서 삼인조가 아닌 엉뚱한 사람을 의심하는 상황이 일어나리라곤 김혁도 예상치 못했다.
“짱돌이 누굴 만났는지도 몰랐지. 안심할 순 없어. 아까 쟁반을 떨어뜨린 것도 그렇고 갑자기 도망친 이유가 있겠지.”
남자가 목발을 짚고 건수 옆으로 다가와 섰다.
“왜? 대체 왜들 그러지?”
“형님, 형수님이 언제 나갔다 온 거죠?”
“아침 먹고 나갔다가 점심 전에 돌아왔어. 왜?”
“...”
건수는 대답 대신 김혁을 바라봤다.
그 시간엔 조직원들이 하나 둘 좀비로 변해가던 시간이었다. 삼인조가 만약에 좀비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무렵이 거의 좀비로 변하기 직전이었을 터였다. 물리지 않더라도 전염될 수도 있는 위험한 시간. 여자가 그때 삼인조를 만나기라도 했다면 정말 좀비 바이러스를 옮겨왔을 수도 있었다.
김혁은 그런 걱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삼인조가 좀비가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걸 떠올렸다.
지나친 걱정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뭔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했다. 뭔가 다른 이유로 여자가 뛰쳐나간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셋 와이프들끼리 특히 친하게 지내거나 하진 않았고?”
김혁은 간절히 다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아, 결혼도 안 한 녀석들인데 와이프는 무슨... 가만, 나 몰래 저 사람이 다른 놈이라도 만난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금 그런 걸 묻는 거야?”
남자가 또 언성을 높이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남자에게서도 엷은 공포의 냄새가 풍겨나기 시작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게 무얼지 궁금했다.
“꼭 그런 게 아니라도...”
건수가 말을 하는 도중에 남자의 넓적한 손바닥이 건수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건수는 느닷없는 공격에 몸의 중심을 잃고 문밖으로 비틀대며 약간 밀려났다.
“형님!”
건수가 중심을 잡고 궁금증과 놀람을 담은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마당에 서 있던 떠중이나 강탄이도 놀란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갑작스런 폭력은 그만큼 밑도끝도 없는 것이었다. 그 순간 거기 누구도 그가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내에 대한 쓸데없는 의심을 부추긴 김혁을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을 건수에게 푼 건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지금 무슨 수작들을 하는 거야? 우릴 마을에서 내쫓으려는 거지? 이건 금방 나아. 나으면 다시 일 할 수 있다고.”
“그런 게 아닙니다. 형님.”
건수는 다급하게 형님의 오해를 설득해보려 했다.
“뭐가 아니야? 마을을 떠나는 가족들은 여기가 싫어서 나가는 줄 알아? 눈치가 보여서지. 남에게 짐되는 게 싫어서. 하지만 난 아니라고. 나 한오상 아직 살아 있다고.”
남자는 온 마을이 다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소리쳐대고 있었다. 가까운 집들에서 무슨 일인가 싶어 문이 열리고 여자들이 나와서 두리번거렸다.
“이봐, 그런 거 아니야.”
김혁도 한마디 했다. 다친 짐승은 쉽사리 난폭해지는 법. 다리를 다친 이후 이곳에 고립된 채 그가 느꼈을 고독한 불안감이 뭔지 짐작이 갔다.
남자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을 때 민하진이 여자를 붙들어 마당에 데리고 들어왔다.
여자는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에게선 공포의 냄새가 엷은 향수 냄새와 섞여 독특한 향이 되어 풍겨져 왔다. 여자는 이제 가볍게 숨을 헐떡이기까지 했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온 힘을 다해 달려서 그런 것처럼 보일 법했다.
“그 손 놓지 못해? 내 아내가 뭐 죄졌어?”
남자가 목발을 짚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민하진이 여자에게서 떨어져 살짝 옆으로 물러났다.
“멈춰. 모두 떨어져.”
김혁이 소리쳤다. 여자의 오라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승사자들은 오라를 통해 그 의미를 알았고 강탄이와 건수는 이미 한 차례 겪어본 일이라 그 말뜻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자에게 다가가 여자의 손을 잡았다. 마치 나는 무조건 당신 편이라는 표현을 하듯이 다정스럽게.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손을 아주 매몰차게 뿌리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운에 밀려 남자가 짚고 있던 목발의 중심이 흐트러지면서 남자는 마당에 털썩 넘어졌다. 깁스한 다리가 땅바닥에 부딪치며 통증이 있는지 남자가 인상을 잠시 찡그렸지만 여자를 향해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화났어?”
“이런 거 다 지긋지긋해. 난 나갈 거야. 떠날 거라고.”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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