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사랑하기에1
바닥에 쓰러진 여자는 심하게 몸부림을 쳐대며 마당을 뒹굴었다. 우아아악, 콰악! 립스틱이 칠해진 예쁜 입술에선 짐승 소리가 났고 묽은 침이 흘러내렸다. 붉어진 얼굴과 충혈된 눈으로 먹이를 찾아 고개를 갸웃대는 좀비는 이제 그들이 알던 그 친절한 마을 일꾼이 아니었다.
겁에 질린 마을 여자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몸을 떨면서도 이 괴이하고 무서운 장면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노인 역시도 이 모습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좀비가 어떤 건지 마을 사람들도 봐둘 필요는 있겠지.”
김혁의 말에 남자가 사납게 돌아봤다.
“내 아내가 구경거리냐?”
김혁은 남자를 무시하고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좀비가 하나도 없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모두 격리해야 합니다.”
“가둬둔다고요? 우리를?”
“저 총각이 지금 뭘 한다는겨?”
건수 엄마도 어느새 나와서 구경꾼들에 합류해 있었다.
“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선 치료법도 없고 예방법도 없습니다. 이 마을은 안전할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도 이제 어쩔 수 없습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서 문을 잠그고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12시간 이상은 지켜봐야 합니다. 좀비와 닿지 않는 곳에서 기다리는 게 최선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가족들끼리도 가급적 접촉 없이 떨어져 있는 게 안전합니다. 잠복기 중에는 침이나 땀도 위험하니까요.”
화목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불신과 의심이 싹트는 밤을 선사하고야 마는군. 김혁은 그런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고 뭐가 뭔지 이해가 어렵다는 얼굴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김혁이 추가로 덧붙였다.
“지금 바깥엔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습니다. 저렇게 변하고 나면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뜯어 먹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술렁였다.
“사람의 살을?”
“미친개처럼 그런다는겨?”
“무슨 그런 병이 있어?”
“다시 말씀드리지만 물린 사람은 무조건 감염되고 물리지 않아도 피가 튀거나 체액이 묻으면 감염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격리되고 대략 12시간 정도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안전하다고 봅니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불안한 듯 바라보거나 마당의 좀비를 다시 한번 보기도 했다. 거의 천연색 오라로 채워진 울긋불긋한 무리 속에서 퍼져오는 공포의 냄새가 독한 스모그처럼 김혁을 감쌌다.
“혹시 이 분과 같이 외출했던 분이 있습니까?”
김혁이 묻자 좀비가 된 여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가 나서서 말했다.
“아니요. 평소랑 다르게 오늘은 개인 볼일이 있다고 해서 혼자 나갔다 왔어요.”
“돌아와서는 뭘 했죠?”
“뭐 그냥 장봐온 것들을 나눠주고.. 그 뿐인데...”
여자의 손을 거쳐서 물품들이 전달됐다? 역시 안심하기엔 이르다. 김혁은 또 다시 시작된 불안과 공포의 밤을 상상하니 벌써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건수야, 이게 다 무슨 말이여? 응?”
건수의 아버지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다.
“집에 가서 다 설명해줄게. 조금만 참아요.”
여자들 사이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높아졌다.
“우리 은희 아빠가 연락이 안 되던데 그이는 어디 갔죠? 그이는 왜 안 왔어요, 건수씨?”
“...”
건수는 대답을 못하고 마을 여자들만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연락해봤는데 전화를 안 받아서 바쁜가보다 했구만.”
“그 집도 그래? 나돈데.”
“우리 아들 녀석은 원래 전화를 잘 안 하는데 한번 해봐야겠네.”
여자들의 불안이 모여 점점 공포를 키워가고 있었다. 김혁은 건수와 눈을 맞췄다. 지금 조직원들의 불행한 소식을 전해야 하는가? 근데 누가 살고 누가 죽었는지 정확치 않았다. 숲으로 도망친 조직원들 중엔 분명 좀비가 안 된 조직원도 있을 거였다. 그들이 돌아온 다음에 소식을 전해도 되지 않을까?
김혁도 이 부분에 대해선 어째야 할지 몰라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어차피 조직원들의 이름도 모르니 결국 그 소식은 건수에게 맡겨야 할 일이긴 했다. 건수를 바라봤다.
건수도 그 생각 중이었는지 김혁의 시선에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이 마을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여자들은 여전히 머뭇대며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건수씨, 우리 애들 아빠 괜찮은 거 맞죠?”
젊은 여자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가지는지 재차 물었다. 건수도 더 이상 대답을 피할 수 없다 판단했는지 힘없이 대꾸했다.
“형님은, 그러니까 각자 다른 일을 하던 중이라 저도 잘... 좀 기다리면 연락이 될 겁니다. 일하는 중엔 원래 전화를 못 받아요. 일단 집으로들 돌아가 계세요. 이 사람 말이 다 맞아요. 지금은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형님들이 돌아와도 맞아줄 거 아니에요.”
건수까지 그렇게 말하자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불안과 공포를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혁은 저승사자들에게 말했다.
“민하진, 장한조 여자를 안으로 옮겨.”
서 있던 민하진과 떠중이가 마당 바닥을 구르고 있는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김혁은 강탄이와 건수에게도 말했다.
“두 사람은 멀찍이 떨어져 있어. 아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들 해. 오늘도 꽤 긴 밤이 될 테니. 여긴 우리 요원들에게 맡겨.”
“예방백신이란 게 정말 있는 건가?”
아무 꺼림낌 없이 여자를 맞들어 옮기는 민하진과 떠중이를 보며 건수가 물었다.
“그런 건 없어. 그 마스크 쓴 녀석들도 속은 거다. 그들 때문에 좀비가 더 빨리 퍼지겠지.”
“근데 어째서...?”
건수가 의아해하며 여자를 옮기는 저승사자들을 바라봤다. 김혁은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잠시 말문이 막혀 있는데 떠중이가 말했다.
“우린 특이체질자들이야. 실험을 통해 선발된 요원들이지. 웬만한 병엔 모두 면역성을 가졌다구. 이런 전염성 질환을 추적하기엔 딱이지.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거라고. 아, 이 말은 하면 안 되던가요?”
떠중이는 약간 장난스런 눈빛으로 김혁을 바라봤다. 실험을 통해 선발된 요원? 떠중이의 엉뚱한 상상력에 김혁은 설풋 웃음이 났지만 지금은 달리 설득력 있게 설명할 다른 말이 없어 잠자코 있었다.
강탄이와 건수도 그닥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김혁이 별 말이 없자 더 이상 캐묻진 않았다. 다만 쓸쓸히 마당에 혼자 서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오상 형님!”
남자는 목발을 짚은 채 낯선 타인들의 손에 옮겨지는 여자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으르렁대며 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남자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대체, 대체 늬들은 무슨 일을 한 거야? 조만호가 우리한테 무슨 짓을 시킨 거야? 그 개새끼가 우리한테!!!”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짚고 있던 목발을 거칠게 집어던졌다. 그러면서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대다 마당에 꼬꾸라지려 했다. 강탄이와 건수가 본능적으로 남자를 부축하려고 몸이 꿈틀대는 걸 발견하고 김혁이 먼저 몸으로 받치며 남자를 지탱했다.
“이 남자도 감염자일 수 있어. 너희는 그만 돌아가. 네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김혁이 목발 대신 남자의 어깨를 부축하고 아니, 실상은 분노와 절망감으로 축 늘어진 묵직한 남자를 거의 들다시피 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바라보던 건수와 강탄이는 멍하니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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