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부서진 꿈들
김혁은 처음보는 낯선 모습들에 신기해서 주은정에게 물었다.
“쟤네는 또 뭐 하는 거냐? 어? 떠중이 쟤 춤이 보통이 아니네?”
“그쵸? 제법 잘 춰요. 오후 내내 저러고 있어요. 하진이 쟤는 아무래도 몸치 같죠?”
민하진은 열심히 떠중이의 춤을 따라하고는 있었지만 늘 한 박자가 느렸다. 어쩌면 떠중이가 너무 잘 춰서 그래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민하진의 춤 역시도 뭔지 모르게 어설픈 데가 있었다. 그러나 떠중이는 확실히 달랐다.
음악도 없이 추는 춤인데 그 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음률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팔다리와 머리를 적절히 이용한 현란하고 절도 있는 완벽에 가까운 몸놀림이었다.
“한조는 웬만한 아이돌 뺨치는데? 저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네.”
“선배님도 떠중이가 애기 때부터 뮤트브 스타였던 거 모르셨어요?”
주은정은 김혁이 자신들에 대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건 김혁도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악마가 해주는 얘기들 외에는 더 아는 게 없었다. 말해주지 않는 사실을 시시콜콜하게 캐물어가며 남의 살아온 내력을 알아내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이 아이들을 저승사자로 고른 건 악마의 판단이고 그건 그럴만하니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춤을 보고 있자니 한조가 뭘로 개인방송 스타를 했을까 궁금해졌다.
“응. 그랬대? 춤 실력으로?”
“아니 춤만은 아니고 부모님이 애기 때부터 혼자 노는 것까지 매번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렇게 됐대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쟤 어린 시절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대요.”
“정말?”
“네.”
“저런 외모에 저 정도 춤꾼이면 스타 될만은 했겠네. 말도 잘했을 거고. 유식한 거 뽐내는 것도 좋아하고. 딱이네. 근데 왜 그렇게...”
김혁은 일단 말을 멈췄다. 아무리 공공연하게 알려진 죽음이라도 자신들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건 좀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김혁이 알기로 떠중이, 장한조는 괴한들에게 납치됐다가 괴한들의 실수로 잘못돼서 죽었다고 들었다. 부모가 진 엄청난 빚 때문이었다. 그건 저승사자들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주은정도 김혁이 말을 멈춘 이유를 아는지 대답을 뒷말을 딱히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녀석, 겨우 17년이었는데 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네? 김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떠중이를 보고 있는데 주은정이 먼저 질문했다.
“그걸로 어릴 때부터 돈을 꽤 벌었던 모양인데 떠중이 진짜 꿈이 뭐였는 줄 아세요?”
“진짜 꿈이라니?”
“진짜 아이돌이 되는 거였대요.”
“그래? 저 정도 실력이면 했어도 됐을 것 같은데 왜 부모님이 반대했어? 아니 부모가 뮤트브까지 찍을 정도면 반대한 건 아닐 테고 무슨 사정인데?”
김혁은 그 빚쟁이들 때문에 꿈을 이루려던 순간이 좌절된 건가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주은정의 말은 영 엉뚱한 거였다.
“노래가 안 돼서래요.”
“응? 노래가 안돼?”
김혁은 열심히 춤추고 있는 떠중이를 다시 찬찬히 뜯어보면서 주은정의 얘기를 들었다.
“춤은 진짜 최고였던 모양인데 목소리가 영 아니었나봐요. 뮤트브 보고 저 외모와 춤추는 거에 반해서 연락은 많이 왔는데 기획사마다 다 노래를 들어보곤 미안하다고 하더래요.”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둘은 한동안 어중이와 떠중이만 바라본 채 말이 없었다. 비스듬히 서쪽으로 지는 해가 조명처럼 그 둘에게 마지막 빛을 뿌리고 있었다. 지옥과 이곳에서의 시간은 다르다. 김혁이 지옥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어느새 지상에서는 해질녘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은 너무 조용했다. 김혁은 마을을 한번 둘러보며 악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주은정 아버지가 만든 마을. 은정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지 벌써부터 걱정스런 마음이 됐다.
건수 말로는 이 마을을 계획한 사람이 괴짜라고 소문이 자자했던 남자였다고 했다. 그의 꿈은 뭐였을까? 김혁의 시선은 주은정의 옆 모습에서 멈췄다. 차라리 내내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모든 것에서 실패한 남자는 남겨진 가족들이 겪을 곤란까지도 예상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닐지. 왠지 애처로운 생각에 김혁의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마을에 좀비가 된 사람은 없어?”
“아직 없어요.”
“그 남자도 아직?”
“네. 제가 좀 전에 한번 돌았을 때까지는 멀쩡했어요.”
여자가 어젯밤에 변했다면 그 남자도 아침에는 변했어야 하는데 역시 좀비는 되지 않는 건가? 생각하며 다른 것들을 물어봤다.
“저쪽 마을은?”
“오전 내내 거기 있었는데 거긴 좀비가 하나 둘 계속 생겨나고 있어요. 아침에 몇 명 더 생겨서 돌아다니는 걸 보긴 했어요. 근데 새벽에 선배님 가고 나서요. 다짜고짜 이장네 찾아가서 방송을 하게 했거든요.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그래서 대부분 집밖으로 안 나오고 있어서 크게 번지진 않을 것 같아요.”
“잘했네.”
“장회장은 데려갔어요? 악마는 뭐래요?”
“어? 음, 어제는 이한태를 데리고 갔어.”
“왜요? 떠중이 말로는 장회장을 데리고 갈 거라고 했다던데?”
“응 그랬는데 하루 더 시간을 줄 일이 있었어.”
“네에.”
주은정은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진 않았다. 이런 게 민하진과 다른 점이었다. 민하진이라면 궁금한 모든 걸 알아낼 때까지 질문을 해댔을 거였다. 민하진이 더 좋아? 주은정이 더 좋아? 악마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괜히 그런 질문을 머릿속에 심어놔서 애들을 볼 때마다 기분만 이상해지게 만들었다.
“아, 진짜 또, 또...”
민하진의 목소리가 김혁의 생각을 방해했다. 민하진이 어느새 지붕 가까이 날아와 나란히 앉아 있는 둘을 말끄러미 보고 있었다. 또 말도 안 되는 억측을 늘어놓을 태세라 김혁은 선수쳐서 질문했다.
“어이 춤꾼. 이제 팬이 아니라 직접 아이돌이 되기로 한 거야? 춤 잘 추대?”
“그럼요. 제가 찬수 오빠 춤을 얼마나 많이 췄는데요. 아직 잊어버리지도 않는다니까요. 그래서 떠중이한테 가르쳐줬죠.”
떠중이가 너한테 가르쳐준 게 아니고? 김혁은 그런 생각을 감추며 빙그레 웃음지었다. 떠중이도 날아왔다.
“저승사자가 되니까 춤출 때 숨도 안 차고 땀도 안나. 한달 내내 춤을 출 수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가벼운 기분은 처음이야.”
김혁이 떠중이게도 한마디 건넸다.
“한조, 넌 웬 춤을 그렇게 잘 추는 거야? 진작 자랑 좀 하지 그랬냐?”
“제가 한춤 하죠?”
떠중이가 김혁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러는 동안 서산에 해가 졌다. 다시 일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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