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도시의 밤
무너져 내린 좀비들 사체 위에 파냈던 흙을 끌어다 두텁게 덮고 나서야 일이 마무리 됐다. 밖에서 외부를 막는 일을 끝낸 민하진과 주은정도 손을 털고 들어왔다. 땅을 울려대던 지진 같은 진동도 쿵쿵대는 소리도 멎었다. 먼지구름도 잦아들고 다시금 고요해졌다.
저승사자들 넷은 잠시 허공에 뜬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좀 전까진 집이었던 그곳은 이제 거대한 묘지로 바뀌어 있었다.
“가족들이 찾을 텐데.”
“전염되니 어쩔 수 없어. 산 사람이 먼저지. 나중에 장례 치르도록 하면 돼.”
말을 하는 민하진이나 주은정 둘 다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여긴 이쯤하고 모두 도시로 가자. 모두 내 팔 잡아.”
김혁이 리스트를 꺼냈다. 나머지 셋은 김혁의 팔을 잡았고 김혁은 리스트에서 눈에 익숙한 병원 이름을 찍었다. 그 지역에서 구심점이 되는 기관들 넣어주기, 이런 점이 바로 악마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지옥에 앉아 인간들 속에 스며든 저승사자들을 구경하며 넋놓고 있는 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유지성이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 눈앞에 나타난 광경은 어제 왔었던 병원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돼 있었다. 복도엔 환자복이나 흰 가운을 걸친 성난 좀비들이 휘젓고 다니는데다 이미 한 차례 공포가 할퀴고 간 다음인지 내부는 온통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김혁은 병원이 이럴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빠져나갔고 침대에서 미처 피하지 못한 환자들은 여기 저기 살이 물어뜯긴 채 처참하게 뼈가 드러난 모습으로 침대며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좀비들은 피를 묻힌 채 여전히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어제까지 환자를 보살피던 의사는 이제 잡아먹기 위해 눈을 번득이고 환한 미소를 짓던 백의의 천사들은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채 붉은 눈동자를 쉴새없이 두리번거리고 있다.
바닥엔 뒤집혀진 침대들과 의자 사이로 주사기들과 깨진 약병들이 마구 흩어져 있는데다 곳곳에 핏자국이 묻어 있어 더 끔찍한 느낌을 주었다. 좀비가 맨발로 깨진 것들을 밟고 지나간 흔적이었다. 온갖 약품들이 깨져 나와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함께 얼크러져 떠다니는데 그보다도 공포의 냄새가 희미한 걸로 보아 모두 도망치고 좀비들만 남게 된 것도 한참 전인 듯 했다.
느리게 복도를 어슬렁거리던 좀비가 입에서 피가 섞인 침을 흘려대며 새로운 먹이를 발견하곤 덤벼들었다. 아아악~ 크학! 좀비의 얼굴은 한순간에 일그러지며 나가떨어졌다. 간단히 휘두른 팔을 내려놓으며 민하진이 말했다.
“아우씨, 여기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결국 삼인조 때문에...”
김혁도 생각나는 건 삼인조가 여기 와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밖엔 없었다.
“그들한테 감염된 거면 어제 낮부터 좀비가 나타났어야 되지 않아요?”
상황상 삼인조에게 전염됐다고 이해하려 해도 시간상으론 맞지 않는 얘기였다. 어제 밤에 유지성을 설득하러 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병원이었기에 오늘의 이런 상황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생겨난 감염자들은 좀비 바이러스와 접촉한 지 거의 열 두 시간 전후로 변했던 걸 감안해 볼 때 어제 저녁에 이곳이 멀쩡했던 건 전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혁도 그 말에는 딱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번엔 잡학박사 떠중이도 별 말이 없었다.
“어제 왔을 때 좀 더 잘 살펴봤어야 하는데 너무 방심했어.”
“어제 낮부터 좀비가 하나라도 돌아다녔다면 저녁에 그렇게 괜찮았을 리가 없잖아요.”
주은정도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이.”
민하진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주은정과 민하진은 각자 서정 가족을 데리고 병실 밖까지 나갔다 왔었기 때문에 김혁보다 더 많은 곳을 보았으니 더 의아한 모양이었다. 김혁은 한숨 쉬듯 대꾸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짱돌이 다 퍼뜨린 게 돌고 돌아 병원으로 흘러들어온 건지 아니면 그 잠복기라는 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긴지도 모르고.”
잠복기가 더 길 수도 있다면 문제가 또 달라진다. 문득 떠오른 건 세트장 마을에 남겨두고 온 넘버쓰리였다. 만약 전혀 예측하기 힘든 어떤 다른 감염 경로가 있대도 지금 그걸 생각해내는 건 무리였다. 무엇보다도 유지성과 그 가족들, 서정이 무사한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너희 둘은 어서 박사한테 가봐.”
민하진과 주은정은 유지성이 있던 병실로 가고 김혁과 떠중이는 눈에 띄는 좀비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푸아아악-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검은 옷의 건강한 청년들을 발견하고 좀비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달겨들었지만 주먹 한방에 바로 나가 떨어졌다. 퍼퍽, 퍽. 희디흰 벽들에 철퍼덕거리며 살과 피가 튀었다. 그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좀비들의 사체가 쌓여갔다.
김혁은 좀비들을 해치우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삼인조가 병원으로 와서 팔을 치료한 건 그저께 밤이었고 그들이 시장 마을까지 가서 좀비로 변한 건 어제 오전 넘버쓰리의 아내를 만나고 난 직후라고 했다. 그래봐야 정오 전이다. 상황 상 좀비에게 직접 물린 짱돌이나 그와 접촉이 긴밀했을 그 애인보다는 좀 더 오랜 시간을 두고 좀비가 됐지만 어쨌든 12시간에서 14시간 사이라는 것에는 들어맞는다. 삼인조가 병원 내 누군가에게 좀비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고 한다면 서너 시간 시차를 둬도 같은 날 오후 정도면 좀비로 변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곳의 좀비는 적어도 하루 이상은 지난 다음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젯밤에 유지성을 만나러 왔을 때 병원이 멀쩡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성급하게 잠복기를 단정지어버린 탓인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전혀 예상치 못한 그 하룻새에 좀비가 이미 병원 밖으로 나가 온 도시로 퍼져나갔음이 분명하다는 거였다. 이제 온 사방에 좀비가 불어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이번 임무는 정말 완벽한 실패였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실수들이 좀비들로 변해서 계속 김혁에게 덤벼드는 것만 같았다. 실수를 깨뜨리듯 마주치는 좀비들을 해치워나갔지만 마음속은 개운해지지 않았다. 방치해둔 사이 소리 없이 퍼져나갔을 좀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유박사마저 그걸 피하지 못했다면 더욱 그럴 것이었다.
김혁은 좀비들을 발견할 때마다 맘속에 혹시나 유지성이나 서정이 좀비로 변해 자신 앞에 나타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차라리 자신을 알아보게 되더라도 서정이 온전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도.
병실에 갔던 민하진과 주은정이 돌아왔다.
“없어요. 박사나 그 가족은 어디에서도 안 보이는데요?”
“아무도 없다고?”
“네.”
오수연이 벌써 유박사를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도 몰랐지만 이미 좀비가 돼서 밖으로 나갔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떨칠 수는 없었다. 김혁의 걱정을 눈치 채고 주은정이 조용히 말했다.
“어딘가로 잘 피신했을 거예요. 움직이기도 힘든 환자가 침대에 없다는 건 오히려 희망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침대는 깨끗했어요.”
김혁은 좀비들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복도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가는 곳마다 실패의 잔해들이 널려 있는 것만 같았다.
“너희들은 오늘 밤엔 이 도시를 훑어. 난 더 늦기 전에 지옥에 다녀와야겠어.”
셋이 고개를 끄덕이고 김혁은 재빨리 몸을 투명하게 하고 짱돌 애인집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 보는 밤거리는 아직 일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어둠속에 잠긴 어딘가에서 좀비들이 불어나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또 화가 치밀었다. 곧 저 거리도 어둠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좀비들로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다. 비명소리로 가득 찬 공포의 낮과 밤.
여자의 집 주변은 조용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도 역시 조용했다. 그건 불길한 고요함이었다. 초록색 오라를 가졌던 좀비는 이제 짐승소리도 내지 않았고 더 이상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이미 초록색 오라는 사라졌고 그야말로 한 마리 굼벵이처럼 시트에 싸인 그대로 잔뜩 웅크린 채 오그라져 있을 뿐이었다. 굶어죽은 모양이었다.
김혁은 가만히 서서 죽은 좀비를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파괴되지 않은 좀비의 사체는 인간과 다름없었다. 얼굴의 붉은기도 가시고 침도 흐르지 않는다. 좀비였다는 걸 알아채기 힘든 멀쩡한 모습이라 그저 잠든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인간들은 저 모습에서 좀비를 가려내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 여자는 늦오후에서 저녁 사이에 짱돌에게서 감염됐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좀비로 변했다. 그리고 감금된 지 하루 반 만에 죽었다. 이틀. 좀비 바이러스와 접촉한 지 이틀만에 생을 빼앗긴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여자를 먹어치웠다. 여자는 재빨리 격리되어 먹이를 입에 댈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혁은 이틀, 이라고 계속 중얼거렸다. 좀비들에게서 인간을 완전히 차단할 수만 있다면 좀비들을 없애는 건 어쩌면 더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한때 인간이었던 한 여자의 비참한 죽음을 보면서 생겨나는 비애감은 어쩔 수 없었다.
김혁은 하늘로 솟구쳐 올라 구름 속을 한참 뱅뱅 돌았다. 하늘에서 이는 바람이 전선을 흔들어대며 웅웅 대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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